1월11일 보기를 원하나이다(3)

조회 수 1695 추천 수 2 2009.01.10 23:09:37
||0||02009년 1월11일 보기를 원하나이다(3)

예수께서 말씀하여 이르시되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맹인이 이르되 선생님이여 보기를 원하나이다(10:51)

보기를 원한다는 바디매오의 대답은 물론 보지 못하는 데서 일어나는 불편함, 그리고 그런 장애로 당하는 인간적 모멸감, 더 나아가서 그것으로 인한 생존의 위기를 벗어나고 싶다는 강렬한 욕망의 한 표현이겠지요. 이런 욕망이 옳으냐 아니냐 하는 판단은 여기서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바디매오가 어떤 절대적인 힘에 사로잡혔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그는 빛이 없는 세계로부터 빛이 있는 세계로 가려는 것이었습니다. 이것보다 더 절대적인 힘이 어디 있겠습니까?

불교의 선승들은 화두 공부에 매진합니다. 하안거와 동안거는 거의 모든 선승들의 기초 공부이고, 고승들은 평생을 구도적으로 화두를 붙듭니다. 화두를 붙든다는 것은 삶의 어떤 대답을 당장 얻겠다는 게 아닙니다. 그 대답을 향해서 안간힘을 쓰는 과정을 말합니다. 절대적인 힘에 휩싸이는 경험을 가리킵니다. 기독교 신앙이 불교의 화두를 붙잡는 것과 똑같다고 할 수는 없지만 빛이 없는 세계에서 빛이 있는 세계로 나가려고 한다는 점에서는 비슷합니다.

그런데요. 이런 공부가 쉽지는 않습니다. 더 정확하게 말해서 이런 공부의 필요성을 느끼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자기가 지금 빛이 없는 세계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을 잘 모를 뿐만 아니라 그것과 대별되는 빛의 세계는 더더욱 모르기 때문입니다. 동굴 안에서만 살던 사람은 밖의 세계에 대해서 아무리 설명을 들어도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와 비슷합니다.

우리는 지금 보기를 원할까요? 만약 그런 내면적인 요구가 솟아난다면 그 이외의 것들에 대해서는 관심이 가지 않을 겁니다. 놀이에 빠져 있는 아이들에게 공부하라는 말이 들리지 않듯이 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빛을 보고 싶은 사람들입니다.

[레벨:4]알고파

2009.01.11 09:29:29

실용적이 아닌 실존적인 물음이 던져지고
그에 대한 대답의 과정에서 예수의 존재가 이해되는 것이
불교의 '화두'와 비슷한 것이 아닐까요?
진지한 질문이 없이 답만 주어진 것이 지금 교회의 모습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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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2009.01.14 19:29:51

알고파 님,
그렇습니다.
질문과 답변의 변증법적 과정을 통해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신비 안으로
점차 깊이 들어갈 수 있겠지요.
그걸 모른다고 해서 구원에서 배제되는 것은 아니지만
"구원을 이루라."는 바울의 충고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그런 깊이로 들어가는 과정 자체가 구원이라는 점에서
신앙적인 질문은 필수불가결한 요소인 것 같습니다.
주의 은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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