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20일 제자 정체성

조회 수 1894 추천 수 2 2008.10.19 23:07:20
2008년 10월20일 제자 정체성

소금은 좋은 것이로되 만일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이를 짜게 하리요. 너희 속에 소금을 두고 서로 화목하라 하시니라.(막 9:50)

50절에서 글의 흐름이 완전히 바뀐 것처럼 보입니다. 지옥, 구더기, 불이 49절에서 소금과 연결되더니 이제 소금의 짠 맛과 화목 하라는 도덕적인 가르침으로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지옥 운운은 결국 화목을 가르치기 위한 서론이었을까요?

우리는 이 대목을 제자의 정체성과 연결해서 생각해야 합니다. 막 9:33절 이하에서 “누가 크냐?” 하는 제자들의 논쟁이 제시되었고, 38절 이하에서는 제자 집단에 속하지는 않았지만 주님의 이름으로 능력을 행하는 사람들에 대한 문제가 불거졌습니다. 이것도 역시 제자의 정체성과 연결됩니다. 도대체 누가 예수의 제자인가, 제자의 삶은 어떤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겠지요.

제자는 작은 자들을 실족케 하지 말아야 하고(42절), 손과 발과 눈의 범죄가 없어야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그들을 음식에 소금을 치듯이 불로 정화하십니다.(49절) 소금이 소금의 맛을 유지하고 있어야 하듯이 제자들은 제자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 제자의 정체성이 곧 화목입니다. 서로 화목하려면 자기의 주장을 물리칠 수 있어야 하겠지요. 누가 크냐 하는 논쟁에 빠지면 결코 화목할 수 없습니다. 누가 제자 집단에 속했냐 하는 것에 예민하게 반응하면서 화목할 수는 없겠지요.

이런 제자의 정체성은 오늘 한국교회에서 가장 시급한 요소가 아닐는지요. 감리교회 감독회장 선거에서 두 사람이 서로 자기가 당선되었다고 주장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자신을 포기할 수 있는 능력이 없는 분들이라고 한다면 감독회장 자격이 없는 게 아닐까요. 요즘 많은 교회에서 이런 분쟁이 그치지 않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니 늘 조용할 수만은 없겠지만, 정도가 지나칩니다. 우리에게 제자의 정체성이 훼손되었다는 증거겠지요.

profile

[레벨:7]희망봉

2008.10.20 10:53:09

요즈음 다비아QT를 통해
날마다 깨어 지고 부서지는 시간입니다
그래서 한단계 올라 갔나 싶었는데
여전히 제자리로 옵니다
아니 한순간 바닦에 내려 앉고 있습니다

오직 성령의 사람으로
포기하지 말아야 겠다고
오늘도 마음 다잡고
생명의 세계로 나아갑니다
그 희열을 얼핏 보았기에 말입니다
놓칠수 없는 한줄기 생명의 빛입니다



profile

[레벨:100]정용섭

2008.10.20 14:46:58

마가복음 묵상이 희망봉 님의 영적 순례에 도움이 된다니 다행입니다.
요즘 금융시장이 불안해서 근무하기가 힘들지 않아요?
다음 목요일에 봅시다.

[레벨:7]시드니

2008.10.20 19:39:58

목사님, 49절과 50절은 이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49절에서 '소금 치듯'이란 구절은 불을 받는 형태를 설명하기위한 것이지, 실제로 소금이 쳐지는 것은 이닌 것으로 보여지구요, 또 50절에서 첫구절은 소금의 맛을 유지하는 것에 대해서 말씀하시다가, 둘째 구절에서는 소금 그 자체를 간직하는 것으로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제가 너무 문자에 집착하는건가요?

이렇게 해석하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지금까지 제자로서 살아야 할 삶의 자세를 얘기하셨고, 그러나 우리에게 그것을 이룰 능력이
없음을 아시는 주님은, 49절에서 성령의 불이 소금치듯이 우리에게 내릴것이며,
50절에서 성령을 잃으면, 다른 어떤 것으로도 제자로서의 정체성을 지킬 수 없으므로,
성령을 가지고 그의 능력으로 서로 사랑(화목)하라는 말씀으로 들립니다.

8월 31일 목사님의 설교 '율법과 사랑'에서 말씀하셨듯이 사랑(화목)이라는 것이 우리가
애쓴다고 이룰 수 있는 어떤 것이 아니라 존재 그 자체라면, 그 말씀과도 상통하는 해석이라고
생각되기도 합니다.
profile

[레벨:100]정용섭

2008.10.20 23:21:05

시드니 님,
성서텍스트의 깊이로 들어가려는 모습이 보기 좋습니다.
그러나 논리적으로 엉켜 있는 부분을 억지로 해석할 필요는 없습니다.
자칫하면 자의적으로, 적용 중심으로, 알레고리로 흘러갈 위험이 있거든요.
이 대목에서 성령 운운하는 건 중심에서 벗어난 것 같습니다.
제가 보기에 그렇다는 것뿐입니다.
좋은 밤.

[레벨:7]시드니

2008.10.21 08:40:57

네, 맞습니다. 분명히 끼워 맞추고 싶은 무리한 마음이 있습니다.
왜 그런지 제 마음으 들여다 봤습니다. 문자주의를 비난하지만, 아직도 제 마음의 80%는
그곳에 속해 있음을 봅니다.
그리고, 또하나는 성경을 경전으로 보는 견해 때문이기도 합니다. (목사님은 성서라고 하시고,
저는 성경이라고 하죠.)
이것은 기존교회의 가르침이나 세뇌에 의한 것이 아니라, 제가 개인적으로 성경을 솔직하게 대할 때에
얻은 제 신앙고백이기 때문에, 포기하거나 뒤로 물러나기가 더욱 어려운 것 같습니다. 경전이라고
생각할 때에, 논리가 맞지않고 횡설수설하는 부분을 성경에서 만나면, 무리하게 그것을 끼워 ㅁㅏㅊ추려고하죠.
제 생각속에서 두가지의 입장과 견해가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있습니다. 이 전투에서 잃는 것은
아집이요, 얻는 것은 진리일 것이기 때문에 기쁜 마음으로 전투를 치릅니다.
오늘 아침에 저의 지금 현재 서있는 위치를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되어서 감사드립니다.
profile

[레벨:29]유니스

2008.10.21 12:39:26

막 9:38~50은 예수님과 제자들 간의
그 공동체 내의 대화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만인을 위한 말씀이고
그리스도인은 모두 제자라는 의식이
이 내용에 '물타기'가 되었다는 생각입니다.

38~50절 까지의 서로 연결하기 힘든 구절들이
계속되는데 열린 대상을 향하지 않고
공동체라는 닫힌 대상을 향한 내용이라고
새롭게 묵상하니 더 와닿습니다.
이건 또 왜 그런지.....^^;
같은 상황이라도 영화의 상황이
감동적인 것과 같은 것인지...

그리스도의 제자인 우리-->제자인 그들
로 다시 생각하면
늘 대하는 싱거운 말씀이
'물타지않은' 진함으로 오네요.



profile

[레벨:100]정용섭

2008.10.21 23:16:46

자유로운 글쓰기의 경지로 들어가셨군요.
물타기의 음모도 밝혀내시고,
대단하십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10월31일 남자와 여자(5)

  • 2008-10-30
  • 조회 수 1659

||0||02008년 10월31일 남자와 여자(5) 창조 때로부터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지으셨으니(막 10:6) 제가 앞에서 남자와 여자로 창조되었다는 사실에 대해서 질문해야 한다고 말씀드렸지만, 그것은 창조사건을 부정하기 위한 게 아니라 더 근본적인 진리로 들어가자는 뜻이었습니다. 지금 우리는 남자와 여자로 삽니다. 이건 하나님의 놀라운 은총입니다. 만약 모두가 남자뿐이라고 한다면, 거꾸로 모두 여자뿐이라고 한다면 인간 세상이 얼마나 삭막할는지 생각해보십시오. 남자와 여자가 어울리면 낭만적이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그것은 훨...

10월30일 남자와 여자(4) [8]

  • 2008-10-29
  • 조회 수 1809

||0||02008년 10월30일 남자와 여자(4) 창조 때로부터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지으셨으니(막 10:6) 어제 묵상의 마지막 단락에서 저는 인간의 본질이 무엇인지 아는가, 하고 물었습니다. 저 자신을 향한 질문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지금의 인간을 당연한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은 당연히 남자와 여자로 살고, 결혼하고, 아이 낳고, 돈 벌고, 밥 먹고, 물마시고, 배설하며 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게 우리에게 나타난 생명 현상입니다. 그런데 그게 정말 확고한 것일 걸까요? 1만년 쯤 후로 돌아가 보세요. 그 시대에 우리 후손들은...

10월29일 남자와 여자(3) [2]

  • 2008-10-28
  • 조회 수 1866

||0||02008년 10월29일 남자와 여자(3) 창조 때로부터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지으셨으니(막 10:6) 지난 이틀간의 묵상을 읽고 조금 이상하게 생각할 분들도 있을 겁니다. 인간이 처음부터 남자와 여자로 창조된 게 아니라는 말이냐, 하고 말입니다. 저는 그것을 사실로 주장한 게 아니라 질문의 자리에 올려놓은 것뿐입니다. 질문이 잘못된 것일까요? 저는 거꾸로 질문하지 않는 것이 잘못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에게 완전히 마음을 쏟는 사람은 성서의 내용에 대해서 근본적인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제가 몇 번 ...

10월28일 남자와 여자(2) [4]

  • 2008-10-27
  • 조회 수 1773

||0||02008년 10월28일 남자와 여자(2) 창조 때로부터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지으셨으니(막 10:6) 우리가 성서를 읽을 때 놓치기 쉬운 관점 중의 하나는 성서가 현실의 인간 세계를 전제로 해서 기록되었다 는 사실입니다. 성서기자들이 살고 있던 그 세계관을 그대로 담았다는 뜻입니다. 그 세계에는 인간이 남자와 여자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런 성서의 지평을 몰트만은 인간학적 원리라고 설명했습니다. “성서의 문헌 전통들은 강한 인간적 원리의 지배를 받고 있다. 이스라엘의 두 가지 창조 보도(창 1-3장)는 인간의 창조를 목적으...

10월27일 남자와 여자(1) [3]

  • 2008-10-26
  • 조회 수 2136

||0||02008년 10월27일 남자와 여자(1) 창조 때로부터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지으셨으니(막 10:6) 위 본문은 창세기 1:27절 말씀의 인용입니다. 창세기의 창조 전승이 두 가지라는 사실을 알만한 분들은 대개 알겠지요. 따라서 인간 창조 이야기도 두 개가 서로 다릅니다. E 문서는 바로 위에서 인용한 대로 하나님이 남자와 여자를 창조했다는 사실만 언급하지만, J 문서는 여호와께서 사람을 흙과 생기로 지으신 뒤에 아담의 갈비뼈로 여자를 만들었다고,(창 2:7,22) 예술적인 감각을 살려서 언급합니다. 두 전승에서 일치하는 점은 사람...

10월26일 이혼증서(3) [2]

  • 2008-10-25
  • 조회 수 1938

||0||02008년 10월26일 이혼증서(3)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 마음이 완악함으로 말미암아 이 명령을 기록하였거니와(막 10:4) 이혼증서에 대한 예수님의 답변이 4절부터 시작됩니다. 이혼증서를 써주고 아내를 내보내라는 모세의 명령은 사람들의 마음이 완악한 탓에 주어진 것이라고 합니다. 인간의 완악함을 조금이라도 막아보기 위해서 그런 율법이 주어졌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런 설명은 (율)법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정확한 진술입니다. 온갖 종류의 법이 왜 만들어졌을까요? 법 정신은 기본적으로 자기를 지킬 수 없는...

10월25일 이혼증서(2)

  • 2008-10-24
  • 조회 수 4388

2008년 10월25일 이혼증서(2) 이르되 모세는 이혼 증서를 써주어 버리기를 허락하였나이다.(막 10:4) 모세는 왜 이혼증서를 써 주라고 했을까요? 일단 고대 이스라엘의 가부장적 문화가 만든 악한 질서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남자가 마음만 먹으면 간단히 이혼증서를 써 주고 여자를 쫓아낼 수 있으니 말입니다. 우리나라에도 칠거지악(七去之惡)이 아내를 내쫓을 수 있는 근거로 통용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말이 많거나 질투 하는 것도 그런 근거였다고 하네요. 여자, 아이, 노예 등을 성인 남자에 비해서 어딘가 부족한 인간이라고 생...

10월24일 이혼증서(1)

  • 2008-10-23
  • 조회 수 2002

2008년 10월24일 이혼증서(1) 이르되 모세는 이혼 증서를 써주어 버리기를 허락하였나이다.(막 10:4) 바리새인들은 신명기 24:1절의 말씀으로 예수님에게 대답했습니다. 그 구절을 그대로 인용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사람이 아내를 맞이하여 데려온 후에 그에게 수치 되는 일이 있음을 발견하고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면 이혼증서를 써서 그의 손에 주고 그를 자기 집에서 내보낼 것이요” 이혼증서에 관해서 말씀을 나누기 전에 신명기의 내용이 실제로 모세의 가르침인지에 대해서 먼저 짚겠습니다. 우리가 성서텍스트를 어떻게 대해야 하...

10월23일 역사비평에 대해

  • 2008-10-22
  • 조회 수 1820

2008년 10월23일 역사비평에 대해 대답하여 이르시되 모세가 어떻게 너희에게 명하였느냐?(막 10:3) 예수님은 이혼 운운하는 바리새인들에게 모세의 가르침이 뭐냐고 되물었습니다. 이것도 가이사에게 세를 바치는 것이 옳으냐 하고 묻는 바리새인들에게 로마 화폐인 데나리온을 가져오라고 하신 말씀과 비슷한 맥락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조금 옆으로 나가는 질문을 해야겠습니다. 이렇게 비슷한 유형의 질문과 대답이 예수의 공생애에서 실제로 일어난 것일까요? 우선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복음서는 예수님의 공생애를 정...

10월22일 물음의 이중성 [3]

  • 2008-10-21
  • 조회 수 1752

2008년 10월22일 물음의 이중성 바리새인들이 예수께 나아와 그를 시험하여 묻되 사람이 아내를 버리는 것이 옳으니이까?(막 10:2) 바리새인들이 예수께 와서 물었습니다. “사람이 아내를 버리는 것이 옳은가?” 아무런 전이해 없이 이 질문만 본다면 말이 되지 않습니다. 아내를 버리는 게 옳을 리가 없지요. 이렇게 당연한 것을 묻는다는 것은 여기에 어떤 속사연이 있다는 뜻이겠지요. 우선 이 물음은 가이사에게 세를 바치는 것이 옳은가, 옳지 않은가 하는 질문과(막 12:14) 비슷한 맥락입니다. 바리새인들은 그것 자체에 관심이 있었...

10월21일 신앙의 눈 [2]

  • 2008-10-20
  • 조회 수 2160

2008년 10월21일 신앙의 눈 예수께서 거기서 떠나 유대 지경과 요단 강 건너편으로 가시니 무리가 다시 모여들거늘 예수께서 다시 전례대로 가르치시더니(막 10:1) 마가복음의 설명에 따르면 예수님은 이제 가버나움을 떠나서 예루살렘을 향해서 내려가는 중입니다. 예수님의 공생애를 가장 짧은 도표로 만든다면, 가버나움에서 제자들을 부르시고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시다가 예루살렘으로 가시어 십자가에 처형당하셨다고 보면 됩니다. 그 기간을 보통 3년이라고 하지만, 정확한 건 아닙니다. 길게 잡아서 대략 2년여, 짧게 잡아서 1년 ...

10월20일 제자 정체성 [7]

  • 2008-10-19
  • 조회 수 1894

2008년 10월20일 제자 정체성 소금은 좋은 것이로되 만일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이를 짜게 하리요. 너희 속에 소금을 두고 서로 화목하라 하시니라.(막 9:50) 50절에서 글의 흐름이 완전히 바뀐 것처럼 보입니다. 지옥, 구더기, 불이 49절에서 소금과 연결되더니 이제 소금의 짠 맛과 화목 하라는 도덕적인 가르침으로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지옥 운운은 결국 화목을 가르치기 위한 서론이었을까요? 우리는 이 대목을 제자의 정체성과 연결해서 생각해야 합니다. 막 9:33절 이하에서 “누가 크냐?” 하는 제자들의 논...

10월19일 불과 소금

  • 2008-10-18
  • 조회 수 4314

2008년 10월19일 불과 소금 사람마다 불로써 소금 치듯 함을 받으리라.(막 9:49) 그냥 눈에 들어오는 대로만 본다면 49절은 48절에 대한 부연설명 같습니다. 48절은 지옥을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않는다고 했으며, 49절은 사람이 불로써 소금 치듯 당하게 된다고 했으니, 그렇게 이해 할만도 합니다. 그러나 내일 묵상하게 될 50절과 연결해서 보면 이상한 구석이 없지 않습니다. 소금의 맛을 유지하고 서로 화목 하라는 가르침과 소금을 치는 듯한 지옥불의 연단은 별로 자연스럽게 연결되지 않습니다. 지옥에 대한 이야기는 일...

10월18일 지옥(10) [6]

  • 2008-10-17
  • 조회 수 2105

2008년 10월18일 지옥(10) 거기에서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막 9:48) 루터는 지옥에 예수님이 계시다면 지옥을 택하겠다고 말했습니다. 무슨 뜻인지 아시겠지요? 기독교 신앙의 핵심은 지옥의 고통에 대한 두려움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구더기와 불로 표상되는 지옥의 두려움 때문에 예수를 믿는다면 그건 기독교 신앙에 대한 모독입니다. 기독교 신앙은 ‘생명’과 직결됩니다. 루터가 지옥이라도 갈 수 있다고 말한 이유는 예수를 통해서만 생명을 얻을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반복되는 질문이지만...

10월17일 지옥(9)

  • 2008-10-16
  • 조회 수 1489

2008년 10월17일 지옥(9) 거기에서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막 9:48) 지옥의 두려움을 강조해야 한다는 주장도 듣기에 따라서 일리가 있긴 합니다. 지옥의 두려움이 전혀 없다면 사람들이 방탕한 삶에서 돌아서지 않는다는 겁니다. 사태를 좀더 냉철하게 직시해야 합니다. 지옥의 두려움을 불어넣는다고 해서 사람들이 죄악에서 돌아선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이건 사형제도가 있다고 해서 범죄가 줄어드는 게 아니라는 사실과도 맥을 같이 합니다. 예수님이 지옥을 사실로 말씀하셨기 때문에 우리도 지옥을, 그 두...

10월16일 지옥(8) [4]

  • 2008-10-15
  • 조회 수 1926

2008년 10월16일 지옥(8) 거기에서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막 9:48) 독자들 중에서 어린이 주일학교에 관계된 분들이 있겠지요. 그런 분들에게 한 마디 해야겠습니다. 어린이들을 지옥 교리로 위협하지 말아야합니다. 이건 어린이만이 아니라 청소년들이나, 또는 그들과 비슷한 정신세계에서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해당되겠군요.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지옥의 두려움을 알게 하고, 그런 두려움으로라도 평생 예수를 잘 믿고 착하게 살도록 하면 좋은 게 아니냐, 하고 생각할 분들도 있을지 모르겠군요. 이건...

10월15일 지옥(7) [2]

  • 2008-10-14
  • 조회 수 1753

2008년 10월15일 지옥(7) 거기에서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막 9:48) 구성적인 요소와 그렇지 않은 요소를 구별해야 한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고 생각할 분들이 있을 겁니다. 그런 생각은 자연스러운 겁니다. 이런 짧은 묵상의 글로 이런 문제를 다룬다는 것 자체가 조금 경솔합니다. 짧게 글을 쓰다보면 비약되는 부분이 적지 않아서 논리적으로 오해의 소지가 없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이왕에 말이 나왔으니 마무리는 해야겠습니다. 이 맥락에서 핵심은 기독교 교리가 매우 긴 과정을 통해서 완성...

10월14일 지옥(6)

  • 2008-10-13
  • 조회 수 1487

2008년 10월14일 지옥(6) 거기에서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막 9:48) 어제 말씀드린 원죄 개념이 우리의 묵상 주제인 지옥과도 간접적으로 연결되니까 조금 더 설명하겠습니다. 교부들이 원죄 개념을 주장한 이유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죄의 보편성에 있습니다. 그 어떤 사람도 이 죄의 마력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없습니다. 이미 바울이 로마서에서 지적한 그것입니다. 그렇다면 죄는 인간에 의해서 처리될 수 없는 존재론적 능력이라는 말이 됩니다. 원죄 개념은 그것을 선악과 설화와 연결해...

10월13일 지옥(5) [4]

  • 2008-10-12
  • 조회 수 1841

2008년 10월13일 지옥(5) 거기에서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막 9:48) 사도신경은 주님이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신다고 말할 뿐이지 사람들의 운명을 천당과 지옥으로 나눈다고 명시적으로 진술하지는 않습니다. 기껏해야 암시되고 있을 뿐입니다. 이게 중요합니다. 성서와 신조가 어떤 것은 명시적으로 언급하고, 어떤 것은 단지 암시적으로 언급한다는 사실이 말입니다. 명시적인 언급은 기독교 신앙을 해명하는 자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근본 토대이지만, 암시적 언급은 아직 명백하게 드러나지 않은, ...

10월12일 지옥(4) [3]

  • 2008-10-11
  • 조회 수 1816

2008년 10월12일 지옥(4) 거기에서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막 9:48) 어제 묵상의 마지막 문장을 다시 쓰겠습니다. “그것을(인간의 지옥행) 단정적으로 선포하는 사람은 성서의 세계와 기독교 신앙을 잘 모르는 사람입니다.” 이 문장을 읽고 지옥을 부인하는군, 하고 생각할 분들이 없지 않겠지요. 그건 오해입니다. 저는 지옥을 부인하는 게 아니라 모른다는 사실을 강조하려는 것뿐입니다. 우선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십시오. 예수를 믿지 않았다는 이유로 창조와 은총의 하나님께서 그 많은 영혼들을 영원히 구더...

TEL : 070-4085-1227, 010-8577-1227, Email: freude103801@hanmail.net
Copyright ⓒ 2008 대구성서아카데미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