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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10월28일 남자와 여자(2) [4]

  • 2008-10-27
  • 조회 수 1763

||0||02008년 10월28일 남자와 여자(2) 창조 때로부터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지으셨으니(막 10:6) 우리가 성서를 읽을 때 놓치기 쉬운 관점 중의 하나는 성서가 현실의 인간 세계를 전제로 해서 기록되었다 는 사실입니다. 성서기자들이 살고 있던 그 세계관을 그대로 담았다는 뜻입니다. 그 세계에는 인간이 남자와 여자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런 성서의 지평을 몰트만은 인간학적 원리라고 설명했습니다. “성서의 문헌 전통들은 강한 인간적 원리의 지배를 받고 있다. 이스라엘의 두 가지 창조 보도(창 1-3장)는 인간의 창조를 목적으...

10월27일 남자와 여자(1) [3]

  • 2008-10-26
  • 조회 수 2128

||0||02008년 10월27일 남자와 여자(1) 창조 때로부터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지으셨으니(막 10:6) 위 본문은 창세기 1:27절 말씀의 인용입니다. 창세기의 창조 전승이 두 가지라는 사실을 알만한 분들은 대개 알겠지요. 따라서 인간 창조 이야기도 두 개가 서로 다릅니다. E 문서는 바로 위에서 인용한 대로 하나님이 남자와 여자를 창조했다는 사실만 언급하지만, J 문서는 여호와께서 사람을 흙과 생기로 지으신 뒤에 아담의 갈비뼈로 여자를 만들었다고,(창 2:7,22) 예술적인 감각을 살려서 언급합니다. 두 전승에서 일치하는 점은 사람...

10월26일 이혼증서(3) [2]

  • 2008-10-25
  • 조회 수 1931

||0||02008년 10월26일 이혼증서(3)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 마음이 완악함으로 말미암아 이 명령을 기록하였거니와(막 10:4) 이혼증서에 대한 예수님의 답변이 4절부터 시작됩니다. 이혼증서를 써주고 아내를 내보내라는 모세의 명령은 사람들의 마음이 완악한 탓에 주어진 것이라고 합니다. 인간의 완악함을 조금이라도 막아보기 위해서 그런 율법이 주어졌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런 설명은 (율)법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정확한 진술입니다. 온갖 종류의 법이 왜 만들어졌을까요? 법 정신은 기본적으로 자기를 지킬 수 없는...

10월25일 이혼증서(2)

  • 2008-10-24
  • 조회 수 4378

2008년 10월25일 이혼증서(2) 이르되 모세는 이혼 증서를 써주어 버리기를 허락하였나이다.(막 10:4) 모세는 왜 이혼증서를 써 주라고 했을까요? 일단 고대 이스라엘의 가부장적 문화가 만든 악한 질서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남자가 마음만 먹으면 간단히 이혼증서를 써 주고 여자를 쫓아낼 수 있으니 말입니다. 우리나라에도 칠거지악(七去之惡)이 아내를 내쫓을 수 있는 근거로 통용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말이 많거나 질투 하는 것도 그런 근거였다고 하네요. 여자, 아이, 노예 등을 성인 남자에 비해서 어딘가 부족한 인간이라고 생...

10월24일 이혼증서(1)

  • 2008-10-23
  • 조회 수 1994

2008년 10월24일 이혼증서(1) 이르되 모세는 이혼 증서를 써주어 버리기를 허락하였나이다.(막 10:4) 바리새인들은 신명기 24:1절의 말씀으로 예수님에게 대답했습니다. 그 구절을 그대로 인용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사람이 아내를 맞이하여 데려온 후에 그에게 수치 되는 일이 있음을 발견하고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면 이혼증서를 써서 그의 손에 주고 그를 자기 집에서 내보낼 것이요” 이혼증서에 관해서 말씀을 나누기 전에 신명기의 내용이 실제로 모세의 가르침인지에 대해서 먼저 짚겠습니다. 우리가 성서텍스트를 어떻게 대해야 하...

10월23일 역사비평에 대해

  • 2008-10-22
  • 조회 수 1814

2008년 10월23일 역사비평에 대해 대답하여 이르시되 모세가 어떻게 너희에게 명하였느냐?(막 10:3) 예수님은 이혼 운운하는 바리새인들에게 모세의 가르침이 뭐냐고 되물었습니다. 이것도 가이사에게 세를 바치는 것이 옳으냐 하고 묻는 바리새인들에게 로마 화폐인 데나리온을 가져오라고 하신 말씀과 비슷한 맥락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조금 옆으로 나가는 질문을 해야겠습니다. 이렇게 비슷한 유형의 질문과 대답이 예수의 공생애에서 실제로 일어난 것일까요? 우선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복음서는 예수님의 공생애를 정...

10월22일 물음의 이중성 [3]

  • 2008-10-21
  • 조회 수 1744

2008년 10월22일 물음의 이중성 바리새인들이 예수께 나아와 그를 시험하여 묻되 사람이 아내를 버리는 것이 옳으니이까?(막 10:2) 바리새인들이 예수께 와서 물었습니다. “사람이 아내를 버리는 것이 옳은가?” 아무런 전이해 없이 이 질문만 본다면 말이 되지 않습니다. 아내를 버리는 게 옳을 리가 없지요. 이렇게 당연한 것을 묻는다는 것은 여기에 어떤 속사연이 있다는 뜻이겠지요. 우선 이 물음은 가이사에게 세를 바치는 것이 옳은가, 옳지 않은가 하는 질문과(막 12:14) 비슷한 맥락입니다. 바리새인들은 그것 자체에 관심이 있었...

10월21일 신앙의 눈 [2]

  • 2008-10-20
  • 조회 수 2152

2008년 10월21일 신앙의 눈 예수께서 거기서 떠나 유대 지경과 요단 강 건너편으로 가시니 무리가 다시 모여들거늘 예수께서 다시 전례대로 가르치시더니(막 10:1) 마가복음의 설명에 따르면 예수님은 이제 가버나움을 떠나서 예루살렘을 향해서 내려가는 중입니다. 예수님의 공생애를 가장 짧은 도표로 만든다면, 가버나움에서 제자들을 부르시고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시다가 예루살렘으로 가시어 십자가에 처형당하셨다고 보면 됩니다. 그 기간을 보통 3년이라고 하지만, 정확한 건 아닙니다. 길게 잡아서 대략 2년여, 짧게 잡아서 1년 ...

10월20일 제자 정체성 [7]

  • 2008-10-19
  • 조회 수 1884

2008년 10월20일 제자 정체성 소금은 좋은 것이로되 만일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이를 짜게 하리요. 너희 속에 소금을 두고 서로 화목하라 하시니라.(막 9:50) 50절에서 글의 흐름이 완전히 바뀐 것처럼 보입니다. 지옥, 구더기, 불이 49절에서 소금과 연결되더니 이제 소금의 짠 맛과 화목 하라는 도덕적인 가르침으로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지옥 운운은 결국 화목을 가르치기 위한 서론이었을까요? 우리는 이 대목을 제자의 정체성과 연결해서 생각해야 합니다. 막 9:33절 이하에서 “누가 크냐?” 하는 제자들의 논...

10월19일 불과 소금

  • 2008-10-18
  • 조회 수 4286

2008년 10월19일 불과 소금 사람마다 불로써 소금 치듯 함을 받으리라.(막 9:49) 그냥 눈에 들어오는 대로만 본다면 49절은 48절에 대한 부연설명 같습니다. 48절은 지옥을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않는다고 했으며, 49절은 사람이 불로써 소금 치듯 당하게 된다고 했으니, 그렇게 이해 할만도 합니다. 그러나 내일 묵상하게 될 50절과 연결해서 보면 이상한 구석이 없지 않습니다. 소금의 맛을 유지하고 서로 화목 하라는 가르침과 소금을 치는 듯한 지옥불의 연단은 별로 자연스럽게 연결되지 않습니다. 지옥에 대한 이야기는 일...

10월18일 지옥(10) [6]

  • 2008-10-17
  • 조회 수 2094

2008년 10월18일 지옥(10) 거기에서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막 9:48) 루터는 지옥에 예수님이 계시다면 지옥을 택하겠다고 말했습니다. 무슨 뜻인지 아시겠지요? 기독교 신앙의 핵심은 지옥의 고통에 대한 두려움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구더기와 불로 표상되는 지옥의 두려움 때문에 예수를 믿는다면 그건 기독교 신앙에 대한 모독입니다. 기독교 신앙은 ‘생명’과 직결됩니다. 루터가 지옥이라도 갈 수 있다고 말한 이유는 예수를 통해서만 생명을 얻을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반복되는 질문이지만...

10월17일 지옥(9)

  • 2008-10-16
  • 조회 수 1480

2008년 10월17일 지옥(9) 거기에서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막 9:48) 지옥의 두려움을 강조해야 한다는 주장도 듣기에 따라서 일리가 있긴 합니다. 지옥의 두려움이 전혀 없다면 사람들이 방탕한 삶에서 돌아서지 않는다는 겁니다. 사태를 좀더 냉철하게 직시해야 합니다. 지옥의 두려움을 불어넣는다고 해서 사람들이 죄악에서 돌아선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이건 사형제도가 있다고 해서 범죄가 줄어드는 게 아니라는 사실과도 맥을 같이 합니다. 예수님이 지옥을 사실로 말씀하셨기 때문에 우리도 지옥을, 그 두...

10월16일 지옥(8) [4]

  • 2008-10-15
  • 조회 수 1912

2008년 10월16일 지옥(8) 거기에서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막 9:48) 독자들 중에서 어린이 주일학교에 관계된 분들이 있겠지요. 그런 분들에게 한 마디 해야겠습니다. 어린이들을 지옥 교리로 위협하지 말아야합니다. 이건 어린이만이 아니라 청소년들이나, 또는 그들과 비슷한 정신세계에서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해당되겠군요.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지옥의 두려움을 알게 하고, 그런 두려움으로라도 평생 예수를 잘 믿고 착하게 살도록 하면 좋은 게 아니냐, 하고 생각할 분들도 있을지 모르겠군요. 이건...

10월15일 지옥(7) [2]

  • 2008-10-14
  • 조회 수 1745

2008년 10월15일 지옥(7) 거기에서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막 9:48) 구성적인 요소와 그렇지 않은 요소를 구별해야 한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고 생각할 분들이 있을 겁니다. 그런 생각은 자연스러운 겁니다. 이런 짧은 묵상의 글로 이런 문제를 다룬다는 것 자체가 조금 경솔합니다. 짧게 글을 쓰다보면 비약되는 부분이 적지 않아서 논리적으로 오해의 소지가 없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이왕에 말이 나왔으니 마무리는 해야겠습니다. 이 맥락에서 핵심은 기독교 교리가 매우 긴 과정을 통해서 완성...

10월14일 지옥(6)

  • 2008-10-13
  • 조회 수 1480

2008년 10월14일 지옥(6) 거기에서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막 9:48) 어제 말씀드린 원죄 개념이 우리의 묵상 주제인 지옥과도 간접적으로 연결되니까 조금 더 설명하겠습니다. 교부들이 원죄 개념을 주장한 이유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죄의 보편성에 있습니다. 그 어떤 사람도 이 죄의 마력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없습니다. 이미 바울이 로마서에서 지적한 그것입니다. 그렇다면 죄는 인간에 의해서 처리될 수 없는 존재론적 능력이라는 말이 됩니다. 원죄 개념은 그것을 선악과 설화와 연결해...

10월13일 지옥(5) [4]

  • 2008-10-12
  • 조회 수 1822

2008년 10월13일 지옥(5) 거기에서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막 9:48) 사도신경은 주님이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신다고 말할 뿐이지 사람들의 운명을 천당과 지옥으로 나눈다고 명시적으로 진술하지는 않습니다. 기껏해야 암시되고 있을 뿐입니다. 이게 중요합니다. 성서와 신조가 어떤 것은 명시적으로 언급하고, 어떤 것은 단지 암시적으로 언급한다는 사실이 말입니다. 명시적인 언급은 기독교 신앙을 해명하는 자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근본 토대이지만, 암시적 언급은 아직 명백하게 드러나지 않은, ...

10월12일 지옥(4) [3]

  • 2008-10-11
  • 조회 수 1802

2008년 10월12일 지옥(4) 거기에서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막 9:48) 어제 묵상의 마지막 문장을 다시 쓰겠습니다. “그것을(인간의 지옥행) 단정적으로 선포하는 사람은 성서의 세계와 기독교 신앙을 잘 모르는 사람입니다.” 이 문장을 읽고 지옥을 부인하는군, 하고 생각할 분들이 없지 않겠지요. 그건 오해입니다. 저는 지옥을 부인하는 게 아니라 모른다는 사실을 강조하려는 것뿐입니다. 우선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십시오. 예수를 믿지 않았다는 이유로 창조와 은총의 하나님께서 그 많은 영혼들을 영원히 구더...

10월11일 지옥(3) [6]

  • 2008-10-11
  • 조회 수 2038

2008년 10월11일 지옥(3) 거기에서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막 9:48) 지옥은 ‘게헨나’의 번역입니다. 신약에 12번 언급된 이 게헨나는 골짜기를 뜻하는 ‘게’와 사람 이름인 ‘힌놈’이 합성된 단어인데, 이 힌놈의 골짜기는 예루살렘 남쪽으로 멀리 않은 비탈의 한 계곡이라고 합니다. 이에 대한 구약의 보도는 느헤미야 11:30, 여호수아 15:8, 왕하 23:6,16 등에 나옵니다. 고대에 이곳에서는 아이들을 불에 태워 몰록신에게 바치는 일들이 벌어지기도 했고, 예루살렘의 쓰레기를 버리는 곳으로 사용되기도 했습니...

10월10일 지옥(2) [2]

  • 2008-10-09
  • 조회 수 2312

2008년 10월10일 지옥(2) 거기에서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막 9:48) 벌레와 불이라는 지옥 표상에 대한 어제의 신학적 묵상이 좀 지루하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그런 것보다는 지옥이 있는지, 없는지를 먼저 확인하고 싶을지도 모르겠군요. 그러나 그런 접근은 별로 신학적이지도, 신앙적이지도 않은 겁니다. 왜냐하면 성서는 근본적으로 그런 것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에 관련된 성구들이 나오기는 하지만 그것은 어떤 ‘다른 사실’을 말하기 위한 것입니다. 바로 이 ‘다른 사실’을 ...

10월9일 지옥(1) [3]

  • 2008-10-08
  • 조회 수 2535

2008년 10월9일 지옥(1) 거기에서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막 9:48) 손을 찍어버리라는 43절, 발을 찍어버리라는 45절, 그리고 눈을 빼버리라는 47절은 지옥(게헨나)에 떨어질 운명을 영생과 대립적인 것으로 설명합니다. 이제 48절에서 지옥에 대한 묘사가 한 번 더 등장합니다. 구더기가 죽지 않고, 불이 꺼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죽지 않는 구더기를 상상해보십시오. 그것들과 붙어서 지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건 인간의 파멸을 가리킵니다. 지옥이 얼마나 끔찍스러운 곳인가 하는 것을 그런 방식으로 형상...

TEL : 070-4085-1227, 010-8577-1227, Email: freude10380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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