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123
7:10
큰 소리로 외쳐 이르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하니
요한은 천국 백성의 찬송 소리를 듣습니다. 그는 그리스도교 신앙의 가장 원초적인 깊이로 들어간 것입니다. 그 깊이에서 그는 구원을 봅니다. 구원은 말 그대로 억압된 삶에서 해방된다는 뜻입니다. 우리의 삶을 억압하는 것들은 한둘이 아닙니다. 세상에서 벌어지는 온갖 것이 우리의 삶을 억압합니다. 먹고사는 문제와 인간관계가 우리의 삶을 피곤하게 만듭니다. 그런데 사실은 자기 자신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자기 자신에 의해서 삶이 억압당하는 게 결정적입니다. 삶의 신비와 기쁨을 누릴 줄 안다면 연봉 5천만 원을 받는 사람과 2천만 원을 받는 사람, 그리고 사무직으로 사는 사람과 공장에서 육체노동으로 사는 사람이 그 조건으로 인해서 행복과 불행이 결정되지는 않는다는 데서 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요한은 구원이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과 어린 양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온다는 찬송 소리를 듣는 중입니다. 이런 찬송을 실제로 살아내는 사람이 있고 단순히 종교적인 교양으로 대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비유적으로, 군대에 가서 힘들게 훈련받던 훈련병이 입대하기 전에 가깝게 지내던 연인의 방문을 받았다고 상상해보십시오. 그 순간에는 힘들었던 훈련에서 해방됩니다. 오직 그 사람과 함께하는 기쁨으로 충만합니다.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어느 정도로 친밀하게 아느냐, 하는 게 그리스도교 신앙에서 원천 중의 원천입니다. 친밀하게 지내려면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하는 성경의 세계 안으로 깊이 들어가야겠지요. 그 세계 안으로 들어가는 기쁨을 아는 사람은 세상의 어떤 조건 가운데서도 주눅이 들거나 자만하지 않을 겁니다. 구원을 이루기 위해서 삶을 수행으로 받아들이겠지요.
알기만 하고 깨닫지 못하고 있는게 현실에 오늘 다시 물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