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19일 바람이 그치다.(2)

조회 수 1830 추천 수 3 2007.11.18 23:12:47
2007년 11월19일 바람이 그치다.(2)

배에 올라 그들에게 가시니 바람이 그치는지라. 제자들이 마음에 심히 놀라니(막 6:51)

어제 묵상에서 저는 제자들의 기억에 관해서 말씀드렸습니다. 사람의 기억은 진리가 드러나는 길목에서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기억은 참으로 이상합니다. 완전히 망각했다고 생각되는 것도 우연하게 다시 살아나게 합니다. 우리의 일상에도 그런 경험은 자주 일어납니다. 커피를 마시다가 실수로 커피 잔을 놓쳐 깨뜨리는 순간에 완전히 잊고 있던 십년 전의 어떤 사건이 생생하게 기억나는 일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 기억은 지난 사건을 단지 사실의 차원에서 복원하는 정신현상만은 아닙니다. 그 일이 발생했던 당시에는 전혀 이해하지 못했던, 또는 표피적으로만 알고 있었던 사건의 심층적 의미를 인식하게 합니다. 문학과 예술에는 이런 특징들이 강합니다. 제가 신학대학교 다닐 때 읽었던 조병화 선생의 <어느 젊은 시인에게 쓰는 편지>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책 이름이 정확한지는 모르겠네요. 조병화 선생이 시인 지망생에게 주는 편지 모음입니다. 삶에서 어떤 놀라운 경험을 했을 때 그 즉시 시를 쓰지 말라고 하더군요. 완전히 잊어버리라는 겁니다. 시간이 한참 지나 그 경험이 내면에서 다시 떠올라올 때 시를 쓰라는 겁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이런 영적 경험을 했을 겁니다. 예수님의 공생애에서는 그들이 별로 느낀 게 많지 않았을 겁니다. 훗날 그들은 예수님과 함께 지낸 시절을 전혀 새로운 차원에서 기억하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이 배에 오르자 바람이 그쳤다는 기억이 번뜩 떠오른 것입니다. 그들은 초기 기독교 공동체 안에서 그런 이야기를 반복해서 나누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다른 제자들의 경험이 덧붙여지기도 했겠지요. 흡사 어느 시인이 완전히 잊고 있던 시상(詩想)을 때가 되어 새롭게 떠올리듯이 말입니다. 이렇게 우리를 끌어가는 분이 바로 진리의 영이신 성령이십니다.

[레벨:5]희락당

2007.11.19 00:23:21

오래 전이라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정현종 선생님도 수업 시간에 비슷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삶에서 어떤 놀라운 경험이나 감정의 두께가 곧 시어로 옮겨지는 것은 아니라고 말이죠. 시간의 작용이 일어나야 진리의 실체가 서서히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폴 리꾀르의 "시간과 이야기"라는 책은 이 주제를 좀 더 깊게 들여다 볼 수 있게 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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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2007.11.19 10:03:41

폴 리꾀르의 <시간과 이야기>를 읽어보고 싶군요.
이번 겨울에는 좀 시간의 여유를 갖고
그 시간 이야기를 읽어야겠네요.
좋은 한 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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