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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10월17일 오병이어 (84)

  • 2007-10-17
  • 조회 수 1726

2007년 10월17일 오병이어 (84) -오병이어와 일상 남은 떡 조각과 물고기를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떡을 먹은 남자는 오천 명이었더라. (막 6:43,44) 지금 제 책상 위에는 컴퓨터와 몇 가지 물건들이 놓여 있습니다. 그중에서 접시 위에 놓인 홍시가 눈에 뜨이는군요. 홍시를 반으로 잘랐습니다. 놀라운 세계가 펼쳐지는군요. 사과나 수박처럼 껍질과 살의 색깔이 서로 다른 과일이 많은데, 홍시는 똑같이 주홍색이군요. 살이 참으로 부드럽습니다. 홍시의 살은 살살 녹는다는 표현이 틀리지 않군요. 그 가운데 꼭꼭 숨어 있는 씨...

10월16일 오병이어 (83)

  • 2007-10-15
  • 조회 수 1971

2007년 10월16일 오병이어 (83) -오병이어와 일상 남은 떡 조각과 물고기를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떡을 먹은 남자는 오천 명이었더라. (막 6:43,44) 하나님 경험이 일상과 결합할 때 오병이어 사건은 어떻게 다가오는 걸까요? 우리가 앞에서 여러 번 짚은 것처럼 오병이어는 구체적인 먹을거리이면서 동시에 영적인 양식을 가리키기도 합니다. 우선 우리는 이 세상의 모든 먹을거리를 부활생명의 차원에서 대해야합니다. 오병이어를 생리학적인 차원에서만 본다면 우리 입을 통해서 우리 몸 안에 들어가 소화기관을 거치면서 분...

10월15일 오병이어 (82) [1]

  • 2007-10-14
  • 조회 수 1377

2007년 10월15일 오병이어 (82) -오병이어와 일상 남은 떡 조각과 물고기를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떡을 먹은 남자는 오천 명이었더라. (막 6:43,44) 하나님 경험이 탄탄한 느낌으로 우리의 인식세계에 자리 잡으면 이제 우리는 이 세상을 새로운 눈으로 보게 됩니다. 우리의 일상이 이 하나님 경험에 휩싸이게 됩니다. 이 대목이 조금 까다롭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경험과 일상이 서로 다른 차원이기 때문입니다. 신구약성서 전체와 그것의 해석인 신학과 그것의 실천인 경건생활을 통해서 주어지는 하나님 경험은 여전히 관념...

10월14일 오병이어 (81) [1]

  • 2007-10-13
  • 조회 수 1562

2007년 10월14일 오병이어 (81) -오병이어와 일상 남은 떡 조각과 물고기를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떡을 먹은 남자는 오천 명이었더라. (막 6:43,44) 성서를 통한 하나님의 경험이 느낌이라는 어제의 묵상 내용이 자칫 오해를 불러일으킬지 모르겠군요. 그 느낌은 오늘 날씨가 좋은 탓인지 뭔가 좋은 일이 일어날 것 같다는 막연한 기분이나 우수수 떨어지는 가을 낙엽을 보고 들게 되는 애틋한 감정을 의미하는 게 아닙니다. 그것은 일단 쉴라이어마허가 말하는 ‘절대의존감정’이나 루돌프 오토가 말하는 ‘누미노제’ 같은 것에 ...

10월13일 오병이어 (80) [2]

  • 2007-10-12
  • 조회 수 1389

2007년 10월13일 오병이어 (80) -오병이어와 일상 남은 떡 조각과 물고기를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떡을 먹은 남자는 오천 명이었더라. (막 6:43,44) 우리가 성서말씀을 바르게 이해하면 부활생명을 만난다는 게 옳은 주장일까요? 그게 옳다면 그 근거는 무엇일까요? 상투적인 근거가 아니라 실질적인 근거는 무엇일까요? 이런 질문을 이 묵상 독자들에게 확연하게 설명할만한 능력이 저에게 없지만, 이왕 말이 나왔으니까 설명하는 시늉만이라도 해야겠군요. 성서는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과 비슷합니다. 손가락의 방향을 정확하...

10월12일 오병이어 (79) [1]

  • 2007-10-11
  • 조회 수 1434

2007년 10월12일 오병이어 (79) -오병이어와 일상 남은 떡 조각과 물고기를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떡을 먹은 남자는 오천 명이었더라. (막 6:43,44) 저는 어제의 묵상 마지막 대목에서 오늘 우리의 일상에는 부활의 흔적이 전혀 없는가, 하고 물었습니다. 이 질문은 당연히 부활의 흔적이 있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게 무엇일까요? 우리는 일상에서 어떻게 부활 생명을 경험할까요? 사람들은 절망에서 희망을 발견하는 경우라든지 도덕적으로 새로워지는 걸 그것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군요. 또는 씨앗에서 꽃이 핀다...

10월11일 오병이어 (78)

  • 2007-10-10
  • 조회 수 1300

2007년 10월11일 오병이어 (78) -오병이어와 일상 남은 떡 조각과 물고기를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떡을 먹은 남자는 오천 명이었더라. (막 6:43,44) 바울은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고전 15:19) 고린도전서 15장은 소위 부활장입니다. 그는 부활이 기독교인의 궁극적인 생명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생명과 질적으로 다른 생명인 부활이 없이 단지 우리의 생명이 이 세상의 것으로 완전히 끝장...

10월10일 오병이어 (77) [1]

  • 2007-10-09
  • 조회 수 1374

2007년 10월10일 오병이어 (77) -오병이어와 일상 남은 떡 조각과 물고기를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떡을 먹은 남자는 오천 명이었더라. (막 6:43,44) 예수님이 우리에게 참된 양식이라는 의미의 오병이어 사건은 오늘 우리의 일상과 어떻게 연관되는 것일까요? 이 질문 앞에서 우리에게 가장 우선적으로 필요한 작업은 삶(생명)에 대한 인식과 경험을 심화하는 일입니다. 일상은 곧 삶의 문제이니까요. 우리는 살아가면서도 그 삶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감수성이 예민한 사춘기 시절이나 청년기에는 친구들과 ...

10월9일 오병이어 (76) [2]

  • 2007-10-08
  • 조회 수 1377

2007년 10월9일 오병이어 (76) -오병이어와 일상 남은 떡 조각과 물고기를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떡을 먹은 남자는 오천 명이었더라. (막 6:43,44) 지난 며칠간에 걸쳐서 저는 우리의 신앙과 일상이 일치하지 않는 이유가 기독교 신앙의 몰이해라는 사실을 말씀드렸습니다. 그 한 가지 예로 죄를 거론했군요. 기독교 신앙의 몰이해는 단지 성서와 교회에 관한 정보를 모른다는 뜻이 아닙니다. 정보는 웬만하면 대충 따라갈 수 있습니다. 조금 더 노력하면 전문가보다 더 많은 정보를 획득할 수 있습니다. 신앙은 정보가 아니라 ...

10월8일 오병이어 (75) [4]

  • 2007-10-07
  • 조회 수 1424

2007년 10월8일 오병이어 (75) -오병이어와 일상 남은 떡 조각과 물고기를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떡을 먹은 남자는 오천 명이었더라. (막 6:43,44) 인간의 자유의지를 전제하지 않으면 인간의 죄 문제는 설명할 수 없습니다. 아담과 이브는 선악과를 따먹으면 하나님처럼 눈이 밝아진다는 뱀의 유혹을 거절할 수도 있었지만 결국 받아들였습니다. 그것이 자유의지입니다. 그렇다면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허락한 하나님의 창조는 실패한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인간이 자유의지로 인해서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사태가 오는 ...

10월7일 오병이어 (74)

  • 2007-10-06
  • 조회 수 1640

2007년 10월7일 오병이어 (74) -오병이어와 일상 남은 떡 조각과 물고기를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떡을 먹은 남자는 오천 명이었더라. (막 6:43,44) 어제 저는 죄 문제와 연관해서 기독교 신앙이 우리의 삶을 파괴하는 게 아닌가, 하는 질문으로 묵상을 끝냈습니다. 너무 거친 표현이래서 이에 관해서 보충 설명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우리는 기독교인들의 삶이 건강하지 못할 때가 많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들이 부도덕하거나 파렴치하다는 사실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그런 것은 기독교인이냐 아니냐에 상관없이 모든...

10월6일 오병이어 (73)

  • 2007-10-05
  • 조회 수 1339

2007년 10월6일 오병이어 (73) -오병이어와 일상 남은 떡 조각과 물고기를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떡을 먹은 남자는 오천 명이었더라. (막 6:43,44) 기독교 신앙을 모른 채 신앙생활을 한다는 사실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게 좋겠습니다.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성서, 계시, 그리고 창조와 종말과 칭의가 무언지 낱말 뜻으로만 알지 실제로는 모릅니다. 그들의 관심은 기독교 신앙이 아니라 순전히 교회생활입니다. 제가 지금 다른 사람을 무시하거나 비판하려는 게 아닙니다. 그들보다 제가 많은 걸 안다는 말씀도 아닙니다. 신...

10월5일 오병이어 (72) [5]

  • 2007-10-04
  • 조회 수 1514

2007년 10월5일 오병이어 (72) -오병이어와 일상 남은 떡 조각과 물고기를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떡을 먹은 남자는 오천 명이었더라. (막 6:43,44) 교회 지도자들이 기독교 신앙을 모른다는 이 엄연한 사실을 사람들은 외면하고 있습니다. 벌거벗은 임금님의 행차 앞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사람들과 비슷합니다. 서로 속고 속이는 것이지요. 속인다는 표현이 지나치게 들릴지 모르지만 제가 보기에는 그렇습니다. 교회에서는 그런 속임수가 잘 통합니다. 기도를 적당하게 하고, 헌금도 남부끄럽지 않게 낼 줄 알고, 주일학교 ...

10월4일 오병이어 (71) [2]

  • 2007-10-03
  • 조회 수 1323

2007년 10월4일 오병이어 (71) -오병이어와 일상 남은 떡 조각과 물고기를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떡을 먹은 남자는 오천 명이었더라. (막 6:43,44) 신앙과 일상이 분리되는 이유는 여럿이지만 그중의 가장 핵심적인 것을 꼽으라고 한다면 기독교 신앙의 몰이해입니다. 이해만 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냐, 하는 질문이 가능합니다. 그것은 또 다른 문제입니다. 신앙에 관한 이해가 실제 일상 안으로 들어가려면 오랜 동안의 훈련이 필요하기도 하고, 그 이해의 결정적인 순간을, 즉 큰 깨우침인 돈오(頓悟)의 순간을 경험해야 하...

10월3일 오병이어 (70) [3]

  • 2007-10-02
  • 조회 수 1544

2007년 10월3일 오병이어 (70) -오병이어와 일상 남은 떡 조각과 물고기를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떡을 먹은 남자는 오천 명이었더라. (막 6:43,44) 이제 우리는 본문이 전하는 오병이어 사건이 우리의 구체적인 일상에서 무슨 의미가 있는지 질문할 차례입니다. 아무리 귀한 가르침이라 하더라도 일상과 연결되지 않는다면 그 현실성이 떨어져서 쓸모가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기독교 신앙은 비록 초월적인 현실을 기다리고 있지만 지금 여기서 우리가 몸담고 있는 이 일상을 방기하지 않습니다. 그 어떤 종교보다도 일상을 중요...

10월2일 오병이어 (69) [3]

  • 2007-10-01
  • 조회 수 2135

2007년 10월2일 오병이어 (69) 남은 떡 조각과 물고기를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떡을 먹은 남자는 오천 명이었더라. (막 6:43,44) 어제 저는 오병이어로 오천 명이 배불리 먹고도 열두 바구니를 남기는 일은 메시아에게서만 가능한 사건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여기서 메시아에게서 일어나는 사건을 초자연적 기적이라고만 생각하지 마십시오. 신앙적으로 초보에 속한 사람들만 그런데 머물러 있습니다. 그것은 사과의 껍질을 혀로 핥은 것에 불과합니다. 메시아 경험은 전혀 다른 생명과의 접촉이기 때문에 많은 걸 소유하고 많...

10월1일 오병이어 (68) [2]

  • 2007-09-30
  • 조회 수 1430

2007년 10월1일 오병이어 (68) 남은 떡 조각과 물고기를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떡을 먹은 남자는 오천 명이었더라. (막 6:43,44) 마르크시즘만이 아니라 마르크시즘과 대립하고 있는 자본주의도 역시 인간을 유물론적으로 접근한다는 점에서는 비슷합니다. 자본주의가 표면적으로는 유물론을 거부하는 것 같지만 내면적인 작동기제는 다를 게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현실을 조금만 냉정하게 바라보면 이게 사실이라는 게 드러납니다. 마르크시즘과 자본주의의 차이점은 소위 ‘파이’ 분배냐, 키우기냐에 있습...

9월30일 오병이어 (67) [2]

  • 2007-09-29
  • 조회 수 1499

2007년 9월30일 오병이어 (67) 남은 떡 조각과 물고기를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떡을 먹은 남자는 오천 명이었더라. (막 6:43,44) 인류 역사에서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완성되어 인민이 노동의 소외로부터 해방되고 모두가 배부른 시대가 온다는, 따라서 그런 역사 발전을 위해서 계급투쟁을 불사해야 한다는 마르크시즘은 부분적으로 옳기도 하고 부분적으로 틀리기도 했습니다. 오늘 저는 제가 잘 알지 못하는 사회과학을 설명하거나 마르크스의 주장을 무조건 배척하려는 게 아닙니다. 노동해방과 굶주림으로부터의 자유라는 마...

9월29일 오병이어 (66)

  • 2007-09-28
  • 조회 수 1608

2007년 9월29일 오병이어 (66) 남은 떡 조각과 물고기를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떡을 먹은 남자는 오천 명이었더라. (막 6:43,44) 오병이어로 오천 명이 배부르게 먹었다는 말은 모두가 만족스러웠다는 뜻입니다. 이런 일이 오늘 우리에게 실제로 가능할까요? 여기에 가장 큰 관심을 기울였던 학자라고 한다면 칼 마르크스가 아닐는지요. 그는 사람이 능력만큼 일하고 필요한 것만큼 가져가는 사회를 내다보았는데, 이런 사회라고 한다면 분명히 모두가 배부르다는 말에 어울릴 것 같습니다. 저도 그런 사회가 이 땅에 하루라도 ...

9월28일 오병이어 (65) [7]

  • 2007-09-28
  • 조회 수 1851

2007년 9월28일 오병이어 (65) 남은 떡 조각과 물고기를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떡을 먹은 남자는 오천 명이었더라. (막 6:43,44) 어떤 점에서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교회는 불가능한 일이 일어나는 곳이어야 하지 않을는지요. 세계에서 가장 큰 교회당을 건축하는 일은 가능한 일입니다. 불치병 환자가 치료되는 일도 따지고 보면 가능한 일입니다. 교회 밖에서도 자연치유는 많이 일어납니다. 교회에서 일어나야 할 기적은 무엇일까요? 한 가지 예를 들자면 ‘일치’입니다. 세상에서 일치는 불가능합니다. 회사끼리의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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