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28일 오병이어 (65)

조회 수 1862 추천 수 4 2007.09.28 00:37:53
2007년 9월28일  오병이어 (65)

남은 떡 조각과 물고기를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떡을 먹은 남자는 오천 명이었더라. (막 6:43,44)

어떤 점에서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교회는 불가능한 일이 일어나는 곳이어야 하지 않을는지요. 세계에서 가장 큰 교회당을 건축하는 일은 가능한 일입니다. 불치병 환자가 치료되는 일도 따지고 보면 가능한 일입니다. 교회 밖에서도 자연치유는 많이 일어납니다. 교회에서 일어나야 할 기적은 무엇일까요?
한 가지 예를 들자면 ‘일치’입니다. 세상에서 일치는 불가능합니다. 회사끼리의 경쟁은 둘째로 치고, 노동조합도 서로 일치하지 못하고, 대학교도 역시 그렇습니다. UN 및 산하 여러 위원회도 역시 중구난방입니다. 겉으로는 세계 평화를 위해서 움직이는 것 같지만 유사시에는 힘이 지배합니다.
만약 한국교회가 일치를 이룬다면 그것이야말로 기적이며, 그런 기적을 통해서 참된 선교가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게 실제로 가능할까요? 세상보다 더 심하게 갈라진 교회는 이런 기적을 스스로 이뤄낼 수는 없을 겁니다. 다른 힘이 개입되어야만 하겠지요. 가능하면 현재의 교회가 크게 상처를 받지 않는 한도 안에서 밖으로부터 어떤 강력한 힘이 작동되었으면 합니다.
더 근본적인 기적은 교회 공동체가 전혀 새로운 생명의 깊이 안으로 들어가서 그것을 세상에 알리는 일입니다. 세상은 표면적인 질서에 고정되어 있습니다. 기독교인들은 이런 고정된 생각을 뚫고 들어가서 일상과 사물에서 영적인 차원을 열어야 합니다. 그것의 상징은 성만찬입니다. 빵과 포도주가 예수님의 몸과 피인 성만찬에서 우리는 사물의 심층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이런 영성이 우리에게 확보된다면 오늘 당장이라도 오병이어 사건은 우리에게서 다시 일어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아주 적게 먹어도 배부를 수 있으며, 부족한 것 같은 상황에서도 많은 걸 남길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것을 경험하고 있을까요?

[레벨:0]소피

2007.09.28 09:15:44

목사님 ~
종종들러서 글도 쓰고 해야하는데 그럴시간이 잘 주어지지 않네요
(특별히 바쁜건 없고 애를 키우는 일이 24시간 풀타임 이라서 말이죠..ㅋㅋ)
건강하시지요..

쭉욱~눈팅만 하다가 오늘 일치라는 말에 꽂혀 이렇게 몇자라도 적어요.
하나가 되기위해서는 하나님의 개입이 반듯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새삼 느낍니다.
오직 여호와 하나님은 한분이신데,
각자에겐 서로 다른 하나님이 존재하는것일까요?
한 하나님을 섬길때 일치가 될수 있다는것은
어쩌면 당연한 사실이겠지요
서로 다른 하나님을 으로는 분란과 분열 뿐이라는 것을 절감하게 되네요.
나를 포함해서 많은 사람들은
자신만의 하나님이 고정되어 어떤새로운 세계에 대해 전혀 받아들이려
하지 않고 있다는걸 느끼게 됩니다.
서로 다른 세계관,다른 경험들이 하나님에 대한 인식을 다르게 만드는것일까요?
이런것들을 이해한다는건 그렇게 쉬운일이 아니네요
신앙이 각자에게 존재론적 토대로 있기에 더욱 어려운부분같습니다.
사람들과의 관계속에서 요즘은 더 이런부분이 답답하고 슬퍼져서
기도중이거등요..

일치를 위한 기적의 통로를
성만찬 이라고 힌트를 주셨네요..
목사님이 말씀하신
"빵과 포도주가 예수님의 몸과 피인 성만찬에서 우리는 사물의 심층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하는지 좀더 설명해 주실수 있나요?

성만찬의 경험이란것에 대해 좀더 알고 싶습니다.
또,성만찬의 경험없이 우리가 새로운 피조물이 된다는 것은 불가능한것일까요?

그동안 큐티도 뜨문뜨문보다가
갑자기 질문하게 되네요..
(결석해서 진도따라잡지도 못하고 뜬금없이 질문하는 불량학생이랍니다..ㅋㅋ)
오병이어를 이렇게 연재하시는 특별한 이유라도 계신건가요?

깊이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해주시는 목사님께
감사드립니다.
profile

[레벨:100]정용섭

2007.09.28 11:49:26

소피 님,
애기를 키우느라 수고가 많습니다.
모든 어린이들은 잠재적 메시아라고 하네요.
애기와 엄마에게 주님의 은총이...

성만찬과 성육신은 같은 신학개념입니다.
성만찬은 현재 역사를 떠나 보이지 않으시는 예수 그리스도가
보이는 빵과 포도주에 임재하는 사건이고,
성육신은 영원한 하나님이 유한한 인간 몸을 입으신 사건이니까요.
문제는 그런 신학개념이 우리에게 실질적으로 들어오지 않는다는 데에 있습니다.
빵은 빵일 뿐이지 그게 왜 그리스도 몸이냐, 하는 거지요.
어떤 이들은 그것을 단순히 감정적인 차원에서만 받아들입니다.
빵을 떼어 먹으면서 그리스도의 구원에 감격해서 울기도 합니다.
신앙은 때로 감정적으로 표현되는 거니가 그걸 뭐라 할 수는 없지만
순전히 그런 쪽으로만 나타나면 건강한 시간은 아니지요.
성만찬은 기독교의 고유한 세계이해이기도 합니다.
그 예식으로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함께 사는 신앙고백을 드리는 겁니다.
더 넓게는 빵(밥) 안에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이 담겨 있다는 신앙고백이기도 합니다.
매일의 밥인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되는 거지요.
그것이 단지 사물로서만이 아니라 영적인 생명으로 받아들여져야겠지요.
다시 '영적'이라는 말로 돌아왔군요.
신자들이 이 '영적'이라는 말은 충분하게 이해하지 않고 대하기 때문에
대화에 혼란을 느끼게 됩니다.
또한 그것을 이해하는 것만큼 우리의 삶과 하나님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영적이라는 말은 우리가 하나님의 창조와 그 완성을
이해할 수 있는 통로입니다.
빵에 그리스도가 은폐의 방식으로 임재한다는 사실을
우리가 인식할 수 있을까요?
그러면 그는 영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밥 한그룻에서도 궁극적인 생명을 경험하겠지요.
성만찬의 경험이 없이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게 불가능하냐, 하고 물으셨지요?
기독교 교리는 서로 연결되기 때문에 어떤 것이 없으면 무엇인 안 된다는 식으로 이해하지 말아야합니다.
성만찬의 영적 의미를 깊이 아는 것은 새로운 피조물이 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기독교 신앙의 깊이와 풍요를 누리기 위한 것입니다.
새로운 피조물은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는데서 주어지는 거지요.
수영을 할 줄 안다고 하더라도
동네 연못에서 개수영을 하는 사람과
정신 풀장에서 전문적으로 훈련을 받은 사람과는 차이가 있겠지요.
우리는 기독교 신앙의 깊이로 들어가기 위해서
성만찬의 신학적 깊이를 배워야 하고,
다른 것들도 많이 배워야합니다.
왜 오병이어 주제를 연재하느나고요?
오병이어만을 주제로 묵상집을 내볼까 하는 생각에서요.
<오병이어 묵상 365일>, 어떻습니까?
괜찮을까요?
앞으로 300번을 더 써야겠군요.
정신이 더 맑아지고 시간이 주어져야만 이게 가능할 텐데, 어떨른지요.
내 능력 밖입니다.

얼마 전에 서울에 왔다 가셨지요?
전화도 안 주시고,
의리(?)도 없이,
소리소문도 없이 가버리셨구요.
애기 잘 키우세요.
신랑에게도 안부 전하시구요.
감사.

[레벨:0]소피

2007.09.28 13:37:43

아니,어떻게 몰래갔다온걸 아시는지..
혹시 제주위에 스파이라도 심어놓으신건
아니시겠지요...
몰래갔다온걸 어찌 아셨을까??
진짜로 궁금해지네요..
변명을 하자면요...
한국까지 와서 사부님ㅋ을 안보면 제자된 도리가
아닌것같아..대구에 내려갈려고도 했었는데
왠지 멎쩍고해서 다음기회로 미뤘어요...
(내년 여름쯤 또 올기회가 있어서요..)
전화는 더 생뚱맞은것 같아서 못드렸구요
제가 좀 사교성이 떨어져서리.....

아무튼 ,삐지셨다면 죄송해요^^


성만찬에 대해선 좀더 폭넓은 이해가 필요한것 같네요
이것이 제삶의 경험으로 살아 움직이기 위해서 말이죠..
저는 아직 밥에서 예수님과 궁극적 생명을 느낄만큼의 깊이는 아직 아니거등요
밥을 먹으면서 하나님의 임재를 매일 느낄수 있다니...
밥상은 신성한 곳이네요..
밥짖는 일도 거룩한 일이구요...
(오늘은 또 뭘하나? 매일 걱정인 한사람으로 ...약간 뜨끔하긴 하네요^^)

저도 책을 내실 생각이신가 생각하긴 했어요
그러시군요
그런데..오병이어 묵상365일은 별로인데요
너무 상투적이예요
다른 좀 더 좋은 제목이 생각나면 알려드릴께요

건강하세요..

















profile

[레벨:29]캔디

2007.09.28 13:55:49

와! 반갑네요 은수맘!!!
소피님 서울에 온다는것 어렵풋이 알고는있었는데...
벌써 다녀가셨군요.
성서읽기 모임에 은수 이모가 나오는 걸로 알고있는데... 맞지요?
인사는 나누지 못했어요.
목사님은 인사를 나누신것 같네요....
서울에 다녀가신걸 알고계시니...ㅋㅋㅋ
내년 여름에는 은수 보여주세요 꼭꼭^^*

[레벨:0]소피

2007.09.28 14:57:14

캔디님 안녕하시지요
언제나 환영해주시니 몸들바를 모르겠어요
서로 안면도 없는 사인에 참 다정하고 친절하시니
뭐라 고맙다는 인사를 드려야할지 모르겠어요
제 동생은 저번 모임에 안간걸로 알고 있고
이번모임은 내일모래 아닌가요?

어쨌든 내년에 기회가 되면 캔디님에게
저녁도 거하게 대접해드리고 싶어요.

평안하세요...







[레벨:0]求道者

2007.09.28 20:05:49

세상에~ 이게 누구신가?
요렇게 살짝 Q.T 방에만 다녀가면 누가 모를 줄 알고...버럭!

하도 반가워서 약간 오버했지요.
홍콩 남께서도 여전히 행복하시지요?
가만, 은수 첫돌이 얼마 안 남은 것 같은데....
돌사진 거하게 찍어서 포.갤에 올려주면 안 잡아먹지~^^
(지난 고국방문 사건도 무마해 주겠음)

[레벨:0]소피

2007.09.29 07:04:05

구도자님 그간 잘지내셨능지요^^
살짝살짝 다비아에 들어와도
예전만큼 구도자님의 활약이 없어서 적잖이
재미없던 차였었는데 ..
쥐도새도 모르게 갔다온 죽을 죄를 지고 나서
앞으론 꼬~~옥 보고 하고 고국방문 하고
고국방문했다는 신고해야겠다고 이번차에 굳게 다짐하고 또 다짐했으니
용서해주시지요....^^
그 홍콩남은 행복에 넘쳐 ~어제는 바지를 겨드랑이까지 올리고 집안을
왔다리 갔다리 내앞에서 어슬렁거려서 웃겨죽는줄 알았어요..
(40일간 두사람의 빈자리가 컸는지 안하던 코메디까지 하던데요..ㅋㅋ)
돌사진도 찍어 올립죠..
24시간 귀여운 은수 꼭~~보여드리고 말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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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0월11일 오병이어 (78) -오병이어와 일상 남은 떡 조각과 물고기를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떡을 먹은 남자는 오천 명이었더라. (막 6:43,44) 바울은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고전 15:19) 고린도전서 15장은 소위 부활장입니다. 그는 부활이 기독교인의 궁극적인 생명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생명과 질적으로 다른 생명인 부활이 없이 단지 우리의 생명이 이 세상의 것으로 완전히 끝장...

10월10일 오병이어 (77)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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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7-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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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0월7일 오병이어 (74) -오병이어와 일상 남은 떡 조각과 물고기를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떡을 먹은 남자는 오천 명이었더라. (막 6:43,44) 어제 저는 죄 문제와 연관해서 기독교 신앙이 우리의 삶을 파괴하는 게 아닌가, 하는 질문으로 묵상을 끝냈습니다. 너무 거친 표현이래서 이에 관해서 보충 설명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우리는 기독교인들의 삶이 건강하지 못할 때가 많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들이 부도덕하거나 파렴치하다는 사실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그런 것은 기독교인이냐 아니냐에 상관없이 모든...

10월6일 오병이어 (73)

  • 2007-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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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0월6일 오병이어 (73) -오병이어와 일상 남은 떡 조각과 물고기를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떡을 먹은 남자는 오천 명이었더라. (막 6:43,44) 기독교 신앙을 모른 채 신앙생활을 한다는 사실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게 좋겠습니다.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성서, 계시, 그리고 창조와 종말과 칭의가 무언지 낱말 뜻으로만 알지 실제로는 모릅니다. 그들의 관심은 기독교 신앙이 아니라 순전히 교회생활입니다. 제가 지금 다른 사람을 무시하거나 비판하려는 게 아닙니다. 그들보다 제가 많은 걸 안다는 말씀도 아닙니다. 신...

10월5일 오병이어 (72) [5]

  • 2007-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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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0월5일 오병이어 (72) -오병이어와 일상 남은 떡 조각과 물고기를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떡을 먹은 남자는 오천 명이었더라. (막 6:43,44) 교회 지도자들이 기독교 신앙을 모른다는 이 엄연한 사실을 사람들은 외면하고 있습니다. 벌거벗은 임금님의 행차 앞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사람들과 비슷합니다. 서로 속고 속이는 것이지요. 속인다는 표현이 지나치게 들릴지 모르지만 제가 보기에는 그렇습니다. 교회에서는 그런 속임수가 잘 통합니다. 기도를 적당하게 하고, 헌금도 남부끄럽지 않게 낼 줄 알고, 주일학교 ...

10월4일 오병이어 (71) [2]

  • 2007-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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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0월4일 오병이어 (71) -오병이어와 일상 남은 떡 조각과 물고기를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떡을 먹은 남자는 오천 명이었더라. (막 6:43,44) 신앙과 일상이 분리되는 이유는 여럿이지만 그중의 가장 핵심적인 것을 꼽으라고 한다면 기독교 신앙의 몰이해입니다. 이해만 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냐, 하는 질문이 가능합니다. 그것은 또 다른 문제입니다. 신앙에 관한 이해가 실제 일상 안으로 들어가려면 오랜 동안의 훈련이 필요하기도 하고, 그 이해의 결정적인 순간을, 즉 큰 깨우침인 돈오(頓悟)의 순간을 경험해야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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