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12일 오병이어 (79)

조회 수 1440 추천 수 10 2007.10.11 23:49:14
2007년 10월12일  오병이어 (79) -오병이어와 일상

남은 떡 조각과 물고기를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떡을 먹은 남자는 오천 명이었더라. (막 6:43,44)

저는 어제의 묵상 마지막 대목에서 오늘 우리의 일상에는 부활의 흔적이 전혀 없는가, 하고 물었습니다. 이 질문은 당연히 부활의 흔적이 있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게 무엇일까요? 우리는 일상에서 어떻게 부활 생명을 경험할까요?
사람들은 절망에서 희망을 발견하는 경우라든지 도덕적으로 새로워지는 걸 그것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군요. 또는 씨앗에서 꽃이 핀다거나, 부활절에 우리가 흔히 예로 들듯이 달걀에서 병아리가 나오는 생명현상들을 그렇게 볼 수도 있구요. 그런 것들을 부활생명의 간접적인 증거들이라고 할 수 있긴 하지만 그런 자연현상은 결정적인 게 아닙니다.
제가 보기에 생명의 영인 성령과의 소통이 그 증거입니다. 잠정적인 이 세상에서 우리가 부활생명을 경험할 수 있는 가장 바른 길은 성령과의 소통입니다. 이렇게만 말하면 우리는 또 혼란스러워집니다. 성령과의 소통이 여전히 명료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간혹 잠을 자다가 비몽사몽간에, 또는 기도하는 중에 어떤 소리를 듣는 일이 있겠지만 성령과의 소통을 그런 현상이라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아주 특별한 경우에 그런 현상이 없을 수는 없겠지만 기독교 신앙의 중심에서 볼 때는 그것이 대답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 대답입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존재하십니다. 창조도 언어로 일어났습니다. “빛이여 있으라.” 하니 빛이 생겼다고 합니다. 그 언어는 ‘다바르’, 즉 창조의 힘입니다. 로고스인 예수님은 태초에 있었던 그 다바르이십니다. 구체적인 우리의 역사를 떠나시어 하나님 우편에 앉아계신 예수님은 지금 전혀 다른 존재방식인 성서말씀으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따라서 우리가 성서말씀을 바르게 이해한다면 거기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되며, 더 나아가서 부활생명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레벨:8]流水不爭先

2007.10.12 09:32:29

목사님 좋은 하루 되십시요

성서말씀의 바른 이해를 통하여 주님을 만나고
더 나아가서 부활생명의 만남이 있다.

길을 제시하시고 방향을 제시하시어 명쾌한 답을 주셨지만서도
말씀의 바른 이해라는 것이 마음의 큰 부담으로 다가옵니다.
신학도 공부하지 아니하였고 ,가르쳐주는 곳도 별로 없고, 가르쳐 주시는 분도 별로 없고
그렇다고 생업을 그만두고 신학대학을 가자니 여의치 않고
마치 이디오피아 내시와 같은 심정입니다.

그래도 다비아가 있어 희망이 솟아오릅니다.
다비아의 여러글들을 접하면서 나름대로 하나님도 생각하고, 부활, 성령님도 생각하고
조금식 깨달을때마다 보물을 발견한 농부처럼 기쁨이 넘쳐 감사드립니다.
정용섭목사님
아마 이 사이트는 목사님이 생각하셨던 것 보다 더 크게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게 될 것이라 믿읍니다.

정목사님을 비롯한 모든 칼럼방 방장님들께 이 아침에 감사를 드립니다.
정목사님의 표현대로 아자 아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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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0월24일 오병이어 (90) 남은 떡 조각과 물고기를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떡을 먹은 남자는 오천 명이었더라. (막 6:43,44)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내린 만나 사건은 분명히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이기는 하지만 그것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을 근본적으로 새롭게 바꾸지는 못했습니다. 굶어죽을 지경이 되었을 때 처음 경험하게 된 만나는 그들이 하나님의 은총을 전혀 새롭게 경험할 수 있는 길이었지만, 그것이 일상으로 들어오면서 다시 시시하게 되었습니다. 그게 참으로 이상합니다. 만나를 경험했는데도 불구...

10월23일 오병이어 (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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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0월23일 오병이어 (89) 남은 떡 조각과 물고기를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떡을 먹은 남자는 오천 명이었더라. (막 6:43,44) 구약성서가 보도하고 있는 만나 사건에는 두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 그들은 만나를 식구수대로 먹을 만큼만 거둬들여야 했습니다. 개중에는 많이 거둬들인 사람도 있었는데, 집에 돌아와서 그들의 계측기인 오멜로 되어 보면 결국 식구 몫에서 더도 아니고 덜도 아닌, 딱 맞춤으로만 남았고, 거꾸로 적게 거둬들인 사람의 몫도 결과적으로는 똑같았다고 합니다. 이런 점에서 만나는 가장 정...

10월22일 오병이어 (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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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0월22일 오병이어 (88) 남은 떡 조각과 물고기를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떡을 먹은 남자는 오천 명이었더라. (막 6:43,44) 이스라엘 민족의 광야생활에는 영적인 사건들이 많이 일어났습니다. 그중에서 만나는 대표적인 사건이라 할 수 있습니다.(출 16장 참조) 그 만나는 오병이어와 대비되는 구약의 전승입니다. 구약에는 만나, 신약에는 오병이어가 있다고 보면 됩니다. 만나도 오병이어와 마찬가지로 사람들의 굶주림이 그 동기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집트에서 탈출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곧 먹는 문제가 현안...

10월21일 오병이어 (87)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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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0월21일 오병이어 (87) -오병이어와 일상 남은 떡 조각과 물고기를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떡을 먹은 남자는 오천 명이었더라. (막 6:43,44) 일용할 양식을 구하라는 주기도의 가르침이 우리의 삶에 현실화할 수 있는 길은 제가 보기에 두 가지입니다. 첫째, 일용할 양식을 공동의 문제로 삼아야 합니다. 국가나 세계를 가정 경제로 꾸려가는 것이지요. 한 가정에서 밥상 공동체에는 온전한 정의가 실현됩니다. 어느 한 사람에 의해서 밥상이 독점되는 일은 없습니다. 가정에서는 약한 아이들에게 오히려 더 좋은 밥상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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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0월20일 오병이어 (86) -오병이어와 일상 남은 떡 조각과 물고기를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떡을 먹은 남자는 오천 명이었더라. (막 6:43,44) 오병이어를 주제로 한 이 묵상의 앞쪽에서 짚었듯이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뜻하는 오병이어는 실제로 한 끼나 하루의 먹을거리에 불과합니다. 그것으로 남자만 오천 명이 먹고도 남은 것이 열두 바구니에 찰 정도라고 했는데, 여기서 오천 명이라는 숫자에 관심을 너무 기울이지 마십시오. 그 숫자는 이 사건의 확실성을 강조하기 위한 수사에 불과합니다. 우리는 숫자...

10월19일 오병이어 (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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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0월19일 오병이어 (85) -오병이어와 일상 남은 떡 조각과 물고기를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떡을 먹은 남자는 오천 명이었더라. (막 6:43,44) 예수님은 우리에게 귀한 기도를 가르쳐주셨습니다. 그 주기도에 이런 대목이 나옵니다.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십시오.” 일용할 양식에 대한 간구는 땅에 관한 용건 중에서 가장 먼저 나옵니다. 그 뒤로 용서와 시험이 나오고, 마지막으로는 송영이 나옵니다. 일용할 양식이 땅의 삶에 가장 시급한 문제라는 뜻이겠지요. 하루의 먹을 것을 위해서 기도하라는 이유는 우리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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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0월17일 오병이어 (84) -오병이어와 일상 남은 떡 조각과 물고기를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떡을 먹은 남자는 오천 명이었더라. (막 6:43,44) 지금 제 책상 위에는 컴퓨터와 몇 가지 물건들이 놓여 있습니다. 그중에서 접시 위에 놓인 홍시가 눈에 뜨이는군요. 홍시를 반으로 잘랐습니다. 놀라운 세계가 펼쳐지는군요. 사과나 수박처럼 껍질과 살의 색깔이 서로 다른 과일이 많은데, 홍시는 똑같이 주홍색이군요. 살이 참으로 부드럽습니다. 홍시의 살은 살살 녹는다는 표현이 틀리지 않군요. 그 가운데 꼭꼭 숨어 있는 씨...

10월16일 오병이어 (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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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0월16일 오병이어 (83) -오병이어와 일상 남은 떡 조각과 물고기를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떡을 먹은 남자는 오천 명이었더라. (막 6:43,44) 하나님 경험이 일상과 결합할 때 오병이어 사건은 어떻게 다가오는 걸까요? 우리가 앞에서 여러 번 짚은 것처럼 오병이어는 구체적인 먹을거리이면서 동시에 영적인 양식을 가리키기도 합니다. 우선 우리는 이 세상의 모든 먹을거리를 부활생명의 차원에서 대해야합니다. 오병이어를 생리학적인 차원에서만 본다면 우리 입을 통해서 우리 몸 안에 들어가 소화기관을 거치면서 분...

10월15일 오병이어 (82)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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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0월15일 오병이어 (82) -오병이어와 일상 남은 떡 조각과 물고기를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떡을 먹은 남자는 오천 명이었더라. (막 6:43,44) 하나님 경험이 탄탄한 느낌으로 우리의 인식세계에 자리 잡으면 이제 우리는 이 세상을 새로운 눈으로 보게 됩니다. 우리의 일상이 이 하나님 경험에 휩싸이게 됩니다. 이 대목이 조금 까다롭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경험과 일상이 서로 다른 차원이기 때문입니다. 신구약성서 전체와 그것의 해석인 신학과 그것의 실천인 경건생활을 통해서 주어지는 하나님 경험은 여전히 관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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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0월14일 오병이어 (81) -오병이어와 일상 남은 떡 조각과 물고기를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떡을 먹은 남자는 오천 명이었더라. (막 6:43,44) 성서를 통한 하나님의 경험이 느낌이라는 어제의 묵상 내용이 자칫 오해를 불러일으킬지 모르겠군요. 그 느낌은 오늘 날씨가 좋은 탓인지 뭔가 좋은 일이 일어날 것 같다는 막연한 기분이나 우수수 떨어지는 가을 낙엽을 보고 들게 되는 애틋한 감정을 의미하는 게 아닙니다. 그것은 일단 쉴라이어마허가 말하는 ‘절대의존감정’이나 루돌프 오토가 말하는 ‘누미노제’ 같은 것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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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0월13일 오병이어 (80) -오병이어와 일상 남은 떡 조각과 물고기를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떡을 먹은 남자는 오천 명이었더라. (막 6:43,44) 우리가 성서말씀을 바르게 이해하면 부활생명을 만난다는 게 옳은 주장일까요? 그게 옳다면 그 근거는 무엇일까요? 상투적인 근거가 아니라 실질적인 근거는 무엇일까요? 이런 질문을 이 묵상 독자들에게 확연하게 설명할만한 능력이 저에게 없지만, 이왕 말이 나왔으니까 설명하는 시늉만이라도 해야겠군요. 성서는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과 비슷합니다. 손가락의 방향을 정확하...

10월12일 오병이어 (79) [1]

  • 2007-10-11
  • 조회 수 1440

2007년 10월12일 오병이어 (79) -오병이어와 일상 남은 떡 조각과 물고기를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떡을 먹은 남자는 오천 명이었더라. (막 6:43,44) 저는 어제의 묵상 마지막 대목에서 오늘 우리의 일상에는 부활의 흔적이 전혀 없는가, 하고 물었습니다. 이 질문은 당연히 부활의 흔적이 있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게 무엇일까요? 우리는 일상에서 어떻게 부활 생명을 경험할까요? 사람들은 절망에서 희망을 발견하는 경우라든지 도덕적으로 새로워지는 걸 그것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군요. 또는 씨앗에서 꽃이 핀다...

10월11일 오병이어 (78)

  • 2007-10-10
  • 조회 수 1307

2007년 10월11일 오병이어 (78) -오병이어와 일상 남은 떡 조각과 물고기를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떡을 먹은 남자는 오천 명이었더라. (막 6:43,44) 바울은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고전 15:19) 고린도전서 15장은 소위 부활장입니다. 그는 부활이 기독교인의 궁극적인 생명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생명과 질적으로 다른 생명인 부활이 없이 단지 우리의 생명이 이 세상의 것으로 완전히 끝장...

10월10일 오병이어 (77) [1]

  • 2007-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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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0월10일 오병이어 (77) -오병이어와 일상 남은 떡 조각과 물고기를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떡을 먹은 남자는 오천 명이었더라. (막 6:43,44) 예수님이 우리에게 참된 양식이라는 의미의 오병이어 사건은 오늘 우리의 일상과 어떻게 연관되는 것일까요? 이 질문 앞에서 우리에게 가장 우선적으로 필요한 작업은 삶(생명)에 대한 인식과 경험을 심화하는 일입니다. 일상은 곧 삶의 문제이니까요. 우리는 살아가면서도 그 삶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감수성이 예민한 사춘기 시절이나 청년기에는 친구들과 ...

10월9일 오병이어 (76) [2]

  • 2007-10-08
  • 조회 수 1384

2007년 10월9일 오병이어 (76) -오병이어와 일상 남은 떡 조각과 물고기를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떡을 먹은 남자는 오천 명이었더라. (막 6:43,44) 지난 며칠간에 걸쳐서 저는 우리의 신앙과 일상이 일치하지 않는 이유가 기독교 신앙의 몰이해라는 사실을 말씀드렸습니다. 그 한 가지 예로 죄를 거론했군요. 기독교 신앙의 몰이해는 단지 성서와 교회에 관한 정보를 모른다는 뜻이 아닙니다. 정보는 웬만하면 대충 따라갈 수 있습니다. 조금 더 노력하면 전문가보다 더 많은 정보를 획득할 수 있습니다. 신앙은 정보가 아니라 ...

10월8일 오병이어 (75) [4]

  • 2007-10-07
  • 조회 수 1430

2007년 10월8일 오병이어 (75) -오병이어와 일상 남은 떡 조각과 물고기를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떡을 먹은 남자는 오천 명이었더라. (막 6:43,44) 인간의 자유의지를 전제하지 않으면 인간의 죄 문제는 설명할 수 없습니다. 아담과 이브는 선악과를 따먹으면 하나님처럼 눈이 밝아진다는 뱀의 유혹을 거절할 수도 있었지만 결국 받아들였습니다. 그것이 자유의지입니다. 그렇다면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허락한 하나님의 창조는 실패한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인간이 자유의지로 인해서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사태가 오는 ...

10월7일 오병이어 (74)

  • 2007-10-06
  • 조회 수 1646

2007년 10월7일 오병이어 (74) -오병이어와 일상 남은 떡 조각과 물고기를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떡을 먹은 남자는 오천 명이었더라. (막 6:43,44) 어제 저는 죄 문제와 연관해서 기독교 신앙이 우리의 삶을 파괴하는 게 아닌가, 하는 질문으로 묵상을 끝냈습니다. 너무 거친 표현이래서 이에 관해서 보충 설명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우리는 기독교인들의 삶이 건강하지 못할 때가 많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들이 부도덕하거나 파렴치하다는 사실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그런 것은 기독교인이냐 아니냐에 상관없이 모든...

10월6일 오병이어 (73)

  • 2007-10-05
  • 조회 수 1344

2007년 10월6일 오병이어 (73) -오병이어와 일상 남은 떡 조각과 물고기를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떡을 먹은 남자는 오천 명이었더라. (막 6:43,44) 기독교 신앙을 모른 채 신앙생활을 한다는 사실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게 좋겠습니다.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성서, 계시, 그리고 창조와 종말과 칭의가 무언지 낱말 뜻으로만 알지 실제로는 모릅니다. 그들의 관심은 기독교 신앙이 아니라 순전히 교회생활입니다. 제가 지금 다른 사람을 무시하거나 비판하려는 게 아닙니다. 그들보다 제가 많은 걸 안다는 말씀도 아닙니다. 신...

10월5일 오병이어 (72) [5]

  • 2007-10-04
  • 조회 수 1524

2007년 10월5일 오병이어 (72) -오병이어와 일상 남은 떡 조각과 물고기를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떡을 먹은 남자는 오천 명이었더라. (막 6:43,44) 교회 지도자들이 기독교 신앙을 모른다는 이 엄연한 사실을 사람들은 외면하고 있습니다. 벌거벗은 임금님의 행차 앞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사람들과 비슷합니다. 서로 속고 속이는 것이지요. 속인다는 표현이 지나치게 들릴지 모르지만 제가 보기에는 그렇습니다. 교회에서는 그런 속임수가 잘 통합니다. 기도를 적당하게 하고, 헌금도 남부끄럽지 않게 낼 줄 알고, 주일학교 ...

10월4일 오병이어 (71) [2]

  • 2007-10-03
  • 조회 수 1328

2007년 10월4일 오병이어 (71) -오병이어와 일상 남은 떡 조각과 물고기를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떡을 먹은 남자는 오천 명이었더라. (막 6:43,44) 신앙과 일상이 분리되는 이유는 여럿이지만 그중의 가장 핵심적인 것을 꼽으라고 한다면 기독교 신앙의 몰이해입니다. 이해만 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냐, 하는 질문이 가능합니다. 그것은 또 다른 문제입니다. 신앙에 관한 이해가 실제 일상 안으로 들어가려면 오랜 동안의 훈련이 필요하기도 하고, 그 이해의 결정적인 순간을, 즉 큰 깨우침인 돈오(頓悟)의 순간을 경험해야 하...

TEL : 070-4085-1227, 010-8577-1227, Email: freude10380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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