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1월21일 씨 (9)

  • 2007-01-21
  • 조회 수 2404

2007년 1월21일 씨 (9) 들으라.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막 4:3) “씨”를 주제로 한 이 대목의 큐티가 너무 분산되는 느낌이 있군요. 오늘로 이 대목을 끝내야겠습니다. 성서가 은폐하고 있는 하나님의 계시사건을 청중들에게 조금이라도 정확하게 알려주기 위해서 전문적인 해석학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어제 짚었는데, 한 마디만 보충하겠습니다. 원래 해석학이라는 낱말은 헬라신화 ‘헤르메스’(hermes)에서 왔습니다. 제우스의 말을 사람에게 전달하는 메신저인 헤르메스는 신의 말을 인간의 말로 번역, 통역, 해석해야만 합니다....

1월20일 씨 (8) [2]

  • 2007-01-20
  • 조회 수 2528

2007년 1월20일 씨 (8) 들으라.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막 4:3) 예수님의 설명에 따르면 오늘 본문이 말하는 씨의 영적인 의미는 “말씀”입니다. 말씀이 사람들에게 전달되었을 때 어떤 결실을 맺는가에 대한 가르침입니다. 여기서 말씀이 무엇일까요? 우리는 우선 성서를 말씀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반드시 문자에 한정되는 건 아닙니다. 이미 계시 사건이 있으며, 선포도 있고, 하나님이 창조한 세상도 있습니다. 이런 모든 것이 큰 의미에서 말씀입니다. 근본적으로 말씀은 하나님의 존재방식이기...

1월19일 씨 (7) [6]

  • 2007-01-19
  • 조회 수 2432

2007년 1월19일 씨 (7) 들으라.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막 4:3) 민들레꽃을 볼 때마다 우주와 비슷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지구는 민들레홀씨의 작은 알맹이이고요. 지구라는 씨 안에서 온갖 생명체가 활발하게 약동치고 있습니다.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생명들이 살아 움직이고 있습니다만 그것이 완전한 생명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이 모든 것들은 잠시 지구에 나타났다가 다시 사라집니다. 그 어떤 것도 여기서 예외가 없습니다. 영원하지 않은 것을 완전한 생명이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것 아닐는지요. 우리...

1월18일 씨 (6) [2]

  • 2007-01-18
  • 조회 수 2483

2007년 1월18일 씨 (6) 들으라.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막 4:3) 저는 어제 인간과 나무는 왜 이런 모양으로 생명을 유지하고 있는가, 하는 질문을 드렸습니다. 저는 인생의 연륜이 조금씩 늘어나면서 그런 것들이 점점 더 궁금해집니다. 만약 하나님이 그렇게 창조하셨다는 말로 이 문제가 해결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믿음이 좋은 게 아니라 단순한 겁니다. 그는 하나님의 창조가 무엇인지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오늘 한국교회에서는 기독교의 가르침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하는 것보다는 무조건 믿...

1월17일 씨 (5) [1]

  • 2007-01-17
  • 조회 수 2206

2007년 1월17일 씨 (5) 들으라.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막 4:3) 씨는 땅에 들어가야만 생명으로 변화됩니다. 이걸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그런 현상에서 생명의 비밀을 깨닫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깨닫는다 하여도 그 깨달음이 우리의 삶을 실제로 추동해나가는 경우는 찾아보기 힘듭니다. 실제로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우리는 성자, 도사, 진인 등으로 부릅니다. 어쨌든지, 씨가 땅속에 묻히면 무엇으로 변화합니다. 그런 현상을 우리는 일반적으로 썩는다고 표현합니다. 썩는다는 말은 우리에게 별로 좋은 느낌...

1월16일 씨 (4) [3]

  • 2007-01-16
  • 조회 수 2727

2007년 1월16일 씨 (4) 들으라.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막 4:3) 씨는 그 안에 생명을 은폐의 방식으로 담고 있습니다. 이런 상상을 해볼까요? 나노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게 될 미래에 씨 안으로의 여행이 가능하게 되었다고 합시다. 수억 만분의 일보다 작은 로봇을 만들어서 씨앗의 세계를 여행하면 무엇이 보일까요? 안타깝지만 거기서 잎이나 꽃과 비슷한 그 무엇도 발견할 수 없습니다. 물론 열매도 발견할 수 없습니다. 씨 속에는 탄수화물, 단백질, 아주 적은 양의 물 등등, 그리고 식물을 구성하는 원소들이 들어있겠...

1월15일 씨 (3)

  • 2007-01-15
  • 조회 수 2066

2007년 1월15일 씨 (3) 들으라.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막 4:3) 여기 농부의 손바닥에 볍씨 한 알이 놓여있다고 합시다. 그 농부는 지금 우주를 손바닥 위에 올려놓은 셈입니다. 씨는 곧 우주와 동일한 존재의 차원에 속하기 때문입니다. 우주가 “있다.”는 사실과 나락 한 알이 “있다.”는 말은 존재론적으로 똑같은 무게입니다. “없다”의 반대는 “있다.”입니다. 우주도 있고, 나락 한 알도 있습니다. “있다.”, 즉 존재한다는 차원에서 이 둘은 똑같습니다. 이런 게 말장난처럼 느껴지시나요? 그렇다면 그는 아직 존재의 차원에 대...

1월14일 씨 (2) [3]

  • 2007-01-14
  • 조회 수 2178

2007년 1월14일 씨 (2) 들으라.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막 4:3) 씨 뿌리는 행위가 곧 예배라는 어제의 말을 뒤집으면, 예배는 곧 씨 뿌리는 행위와 같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씨를 뿌리는 사람이 철저하게 자연에 깃든 생명의 능력을 의지하듯이 예배도 역시 철저하게 자신과 구별되는 영에 의존합니다. 그 영은 아버지의 영이고 아들의 영인 성령입니다. 우리가 흔하게 들은 성삼위일체 하나님이 예배의 주관자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이 예배의 주도자가 아니라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물론 형식적으로 사람이...

1월13일 씨 (1)

  • 2007-01-13
  • 조회 수 2399

2007년 1월13일 씨 (1) 들으라.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막 4:3) 예수님은 출가하기 전에 분명히 목수로 살았을 겁니다. 니코스카잔차키스의 <최후의 유혹>에 보면 유대의 무장 독립운동가 한 사람이 십자가 처형을 당할 때 그 십자가를 만든 인물이 예수님으로 그려집니다. 작가의 재미있는 상상력이 만들어낸 장면입니다. 그 사형수의 어머니는 예수를 향해 저주를 퍼붓습니다. 당신도 결국 내 아들처럼 십자가에 달려 죽으리라! 어쨌든지 목수로 생계를 유지하셨을 텐데도 불구하고 예수는 목수 일과 연관된 말씀을 전혀 하지 ...

1월12일 예수의 비유 (4) [1]

  • 2007-01-12
  • 조회 수 2187

2007년 1월12일 예수의 비유 (4) 이에 예수께서 여러 가지 비유로 가르치시니 그 가르치시는 중에 그들에게 이르시되(막 4:2) 예수의 비유에 대해서 한 마디 하려다가 나 스스로 빠져나오기 힘든 신학적 사유 안에 갇히고 말았군요. 대충 정리해야겠습니다. 여러분이 이런 신학적 개념 안으로 들어가려면 하나님이 누구인가에 대한 생각을 처음부터 새롭게 해야 합니다. 그중에서도 하나님의 타자성과 내재성의 변증법적 관계를 깊이 이해해야 합니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의 타자성만 강조하게 된다면 예수의 신성은 존립될 수 없습니다. ...

1월11일 예수의 비유 (3) [1]

  • 2007-01-11
  • 조회 수 2423

2007년 1월11일 예수의 비유 (3) 이에 예수께서 여러 가지 비유로 가르치시니 그 가르치시는 중에 그들에게 이르시되(막 4:2) 예수도 하나님의 실체를 완전히 알지 못했다는 말이 많은 분들에게 당혹스럽게 들릴 것 같습니다. 지금 내가 책임질 수 없는 말들을 쏟아내고 있는 걸까요? 만약 저의 생각이 잘못되었다면 훗날 교정하도록 하고, 일단 이런 이야기를 조금 더 이어가겠습니다. 기독교 신앙의 중심에는 역사적 예수와 하나님과의 관계가 놓여 있습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도대체 예수가 하나님이냐 하는 질문입니다. ...

1월10일 예수의 비유 (2) [3]

  • 2007-01-10
  • 조회 수 2578

2007년 1월10일 예수의 비유 (2) 이에 예수께서 여러 가지 비유로 가르치시니 그 가르치시는 중에 그들에게 이르시되(막 4:2) 이 대목에서 우리는 질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예수는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며, 하나님을 ‘아빠’라고 불렀고, 하나님을 직접 본 분인데 왜 사람들에게 하나님(나라)을 간접적인 방식인 비유로 가르치셨을까요? 그가 실제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한다면 그는 하나님의 나라를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하는 게 아닐까요? 그는 왜 하나님의 나라를 비유적으로만, 암시적으로만, 간접적으로만 가르쳤을까요? ...

1월9일 예수의 비유 (1) [1]

  • 2007-01-09
  • 조회 수 2209

2007년 1월9일 예수의 비유 (1) 이에 예수께서 여러 가지 비유로 가르치시니 그 가르치시는 중에 그들에게 이르시되(막 4:2) 예수의 가르침은 주로 비유의 방식을 취하셨습니다. 구약성서에 대한 재해석이나 간단한 경구를 제외하고는 대개가 비유로 진행되었었습니다. 비유는 어떤 진리를 깨우치기 위해서 다른 것을 빗대어 설명하는 것입니다. 예수가 비유를 많이 사용하신 이유는 가르침의 내용이 다른 방식으로는 불가능했기 때문입니다. 그 내용은 곧 하나님 나라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이며, 또한 하나님의 통치입니다. 우리는...

1월8일 예수의 가르침 (5)

  • 2007-01-08
  • 조회 수 2647

2007년 1월8일 예수의 가르침 (5) 예수께서 다시 바닷가에서 가르치시니 큰 무리가 모여들거늘 예수께서 바다에 떠 있는 배에 올라앉으시고 온 무리는 바닷가 육지에 있더라.(막 4:1) 불교의 선종(禪宗)에서는 화두(話頭)가 가르침과 배움의 매우 중요한 방법입니다. 이는 말 그대로 스승이 제자에게 말의 머리만 제시하고 제자가 스스로 깊은 사유를 통해서 어떤 깨우침의 상태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런 방식의 교육에서 중요한 것은 스승이 제자에게 콩놔라팥놔라 하고 일일이 가르치는 게 아니라 제자가 생각할 수 있는 방향만 제시한...

1월7일 예수의 가르침 (4)

  • 2007-01-07
  • 조회 수 2499

2007년 1월7일 예수의 가르침 (4) 예수께서 다시 바닷가에서 가르치시니 큰 무리가 모여들거늘 예수께서 바다에 떠 있는 배에 올라앉으시고 온 무리는 바닷가 육지에 있더라.(막 4:1) 가르침은 배움이 있을 때 의미가 있습니다. 돼지 앞의 진주는 아무런 의미가 없겠지요. 예수님의 가르침은 분명히 진주이지만 우리는 그것을 알아보지 못한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참된 배움이 자주 일어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크게 두 가지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하나는 과거의 선입관이 배움을 방...

1월6일 예수의 가르침 (3)

  • 2007-01-06
  • 조회 수 1993

2007년 1월6일 예수의 가르침 (3) 예수께서 다시 바닷가에서 가르치시니 큰 무리가 모여들거늘 예수께서 바다에 떠 있는 배에 올라앉으시고 온 무리는 바닷가 육지에 있더라.(막 4:1) 오늘 본문에 “큰 무리”가 모였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말씀에 대중성이 있었다는 뜻일까요? 그런 질문은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복음서 기자들은 대중성 여부보다는 예수님에게서 발생한 하나님 나라를 설명하는 데만 집중했습니다. 일반적으로 청중들은 하나님 나라에 대해 일관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습니다. 자기에게 직접적으로 유익한 일이 ...

1월5일 예수의 가르침 (2)

  • 2007-01-05
  • 조회 수 2187

2007년 1월5일 예수의 가르침 (2) 예수께서 다시 바닷가에서 가르치시니 큰 무리가 모여들거늘 예수께서 바다에 떠 있는 배에 올라앉으시고 온 무리는 바닷가 육지에 있더라.(막 4:1) 예수님은 좋은 선생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자기와 자신의 지식을 드러내는 게 아니라 진리 자체에 집중하셨기 때문입니다. 진리를 깨달은 선생은 늘 이런 태도를 취합니다. 그는 남을 설득하기 위해서 애를 쓰지 않습니다. 그는 당연히 청중을 기만하지도 않고 선동하지도 않습니다. 그는 단지 진리의 물결에 자신을 맡길 뿐입니다. 반면에 바리새인들...

1월4일 예수의 가르침 (1) [1]

  • 2007-01-04
  • 조회 수 2257

2007년 1월4일 예수의 가르침 (1) 예수께서 다시 바닷가에서 가르치시니 큰 무리가 모여들거늘 예수께서 바다에 떠 있는 배에 올라앉으시고 온 무리는 바닷가 육지에 있더라.(막 4:1) 마가복음 기자는 3장 뒷부분에서 매우 살벌했던 장면으로부터 껑충 뛰어넘어서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운 장면으로 독자들을 인도합니다. 앞 대목은 분명히 바알세불, 용서받지 못하는 죄, 누가 내 어머니며 동생이냐 등등, 상당히 격한 분위기였습니다. 군중들이 예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본문의 장면은 분명히 앞의 장면과 대조적입니다. 그 장소...

1월3일 하나님 나라 공동체 (5)

  • 2007-01-03
  • 조회 수 2602

2007년 1월3일 하나님 나라 공동체 (5)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막 3:35) 여러분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의 범주를 어디에 놓습니까? 교회에 나오는 사람, 교회에 나와서 신실하게 살아가는 사람, 그것과 상관없이 윤리적으로 사는 사람 등등, 누가 과연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들일까요? 하나님의 뜻과 실천을 조금 예민한 문제와 연관해서 생각해볼까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타종교입니다. 불교인들 중에서 매우 성실한 사람, 실제로 남을 위해 희생하는 사람이 있다고 합시...

1월2일 하나님 나라 공동체 (4)

  • 2007-01-02
  • 조회 수 2067

2007년 1월2일 하나님 나라 공동체 (4)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막 3:35) 예수의 가족은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는 것에 머물지 않고 그 뜻대로 행하는 사람입니다. 인식과 행위가 일치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말만 그럴듯하게 할 뿐이지 실제로 행동이 없다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특히 교회에 오래 다닌 사람들일수록 이런 경향은 더 강합니다. 머리로 생각하는 게 많을수록 손발이 잘 움직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지식인들의 특징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각종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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