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 9:6

조회 수 436 추천 수 0 2023.05.31 07:21:59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149

9:6

그 날에는 사람들이 죽기를 구하여도 죽지 못하고 죽고 싶으나 죽음이 그들을 피하리로다

 

요한은 무저갱의 실체를 무시무시한 문장으로 표현했습니다.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는 운명이라고 말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오래 살려고 하지 죽으려고 하지는 않습니다. 우리나라 남자의 평균 수명이 팔십 초니까 칠십이 넘은 제가 팔십 살까지 살 확률은 50% 정도 되고, 구십 살까지 살 확률은 20~30%나 될까요? 아주 간혹 백 살 넘게 사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런 이들을 사람들은 축하하고 부러워합니다. 물론 건강해야 하겠지요. 삶의 질이 크게 떨어진 상태에서 평균 수명만 늘어나는 건 별로 바람직한 현상이 아닙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친구는 물론이고 자식도 다 죽었는데 자기만 건강하게 이백 살까지 살아있다고 가정해봅시다. 그런 상황은 정말 끔찍합니다. 그리스 신화에는 신으로부터 죽지 않는 징벌을 받은 이가 너무 괴로워서 다시 죽게 해달라고 요청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삶과 죽음의 실체가 무엇인지,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지, 어떻게 누릴 수 있는지, 피조물인 우리 인간에게는 너무나 무거운 숙제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분명한 사실은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선물이고 은총이라는 사실입니다. 맞는 말일까요?

삶이 너무 고통스러워서 죽고 싶으나 죽을 수 없다는 위 구절의 묘사는 무저갱, 즉 지옥에 대한 묵시적 표상입니다. 단순히 문학적 수사가 아니라 오늘 현실에서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고, 실제로 일어나는 사태입니다. 자기를 부정하고 싶을 정도로 삶을 고통스럽게 경험하거나 허무에 떨어지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거꾸로 자기 안에 갇히거나 쾌락에만 몰두하는 사람들도 비슷한 경우가 아닐는지요


[레벨:23]브니엘남

2023.05.31 08:28:22

80까지 사는 사람: 30%

90까지 사는 사람: 5%


남자 평균 수명: 80.6세

여자 평균 수명: 86.6세


그러니 남자는 아마


80세: 15~20%

90세: 1~2% 정도일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사람이 의학적으로 살 수 있는 한계까지 이르렀습니다. 




profile

[레벨:100]정용섭

2023.05.31 21:22:02

계산이 참 이상하군요.

평균 수명이 80이면 50%가 80까지는 산다는 게 아닐는지요.

그런데 남자의 경우에 15~20%라니 이해가 안 되네요.

의사 선생님이 그렇다고 하니 그렇게 믿겠습니다.

나는 90세까지 테니스 장에 나갈 야무진 꿈을 꾸고 있는데, 

허망한 이야기로군요.

profile

[레벨:41]새하늘

2023.05.31 15:32:08

공동번역 [9:6 그 다섯 달 동안에는 그 사람들이 아무리 죽으려고 애써도 죽을 수가 없고 죽기를 바라더라도 죽음이 그들을 피해 달아날 것입니다.]

새번역 [9:6 그 기간에는 그 사람들이 죽으려고 애써도 죽지 못하고, 죽기를 원해도 죽음이 그들을 피하여 달아날 것입니다.]

유럽 일부에서는 안락사 있다고 하는데, 때론 이해는 갑니다.
본인이 원한다고 하지는 않겠지요.
남용을 막기 원해 여러가지 과정을 거칠것 것이라고 봅니다.

사는 것이 사는 것 같지 않다는 것을 아직은 경험하지 않아 모르겠습니다.
연명치료 거부는 주변에서 종종 보지만요.
생명은 소중합니다.
그리고 거룩한 죽음도 소중하다고 봅니다.
죽음을 논하기에는 아직 이른(?) 나이이지만 죽음을 맞이 하는 연습을 했으면 좋겠네요.
갑자기 다가 올 수도 있겠지만 잘 맞이 하고 싶습니다.
profile

[레벨:100]정용섭

2023.05.31 21:25:15

예, 안락사와 연명치료 거부 등등, 다 어려운 주제입니다.

우리가 주님 안에서 죽음을 정말 평온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단계에 이르도록 

살아있는 동안 정신 바짝 차리고 영적인 수행을 매순간 게을리하지 말아야겠습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어 함께해주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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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 (막 1:1), 3월21일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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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3월21일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막 1:1)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본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표현이 어떤 사본에는 생략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루터는 1절 말씀을 이렇게 번역했군요. “이 책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복음의 시작입니다.” 이렇게 사본에 따라서 성서의 내용이 아주 일부분이기는 하지만 들쑥날쑥 한다는 사실에 대해서, 현재 발견된 수천 개에 이르는 사본 중에서 동일한 게 전혀 없다는 사실에 대해서 오늘 우리가 자세하게 언급할 필요는 없겠지요. 다만 누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막1:1), 3월22일 [2]

  • 2006-03-22
  • 조회 수 10632

2006년 3월22일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막 1:1)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신약성서의 앞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네 복음서는 예수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부분적으로 예수님의 출생설화와 열두 살 때의 에피소드가 나오기는 하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예수님이 출가한 후 갈릴리에서 사마리아를 거쳐 예루살렘에 이르러 체포당하고 십자가 처형을 당한, 소위 공생애가 핵심입니다. 그 기간은 짧게 잡으면 1년여, 길게 잡으면 2년여가 됩니다. 다른 종교창시자나 성인들과 비교할 때 전체 삶도 짧았을 뿐만 아니라 활동...

원당일기(70)- 창 file

  • 2020-09-18
  • 조회 수 10195

저는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책상 앞에 앉아서 보냅니다. 건강에는 나쁘지요. 그래서 생각날 때마다 스트레칭을 합니다. 책상이 창 바로 옆에 놓여 있어서 창을 바라보는 시간도 상당히 깁니다. 제 방의 창이 마음에 듭니다. 오늘 하루 종일 설교 준비하다가 오후에 찍은 사진인데, 한번 보세요. 의자에 앉아 눈에 들어오는대로 그대로 찍은 탓에 네모 반듯하게 나오지 않았네요. 오른쪽으로 치우친 사진입니다. 밖이 밝으니 창틀이 어둡게 나왔습니다. 창 자체가 마음에 든다기보다는 창을 통해서 보는 밖을 좋아하는 거겠지요. ...

6월23일 발먼지를 털어내라.

  • 2007-06-23
  • 조회 수 10032

2007년 6월23일 발먼지를 털어내라. 어느 곳에서든지 너희를 영접하지 아니하고 너희 말을 듣지도 아니하거든 거기서 나갈 때에 발아래 먼지를 떨어버려 그들에게 증거를 삼으라 하시니(막 6:11) 제자들이 지켜야 할 또 하나의 규칙은 사람들에게 거부당했을 때 발먼지를 털어내는 것이었습니다. 도대체 발먼지를 어떻게 털어내라는 것일까요? 발을 땅바닥에 대고 쾅쾅 울리라는 것인지, 아니면 발을 들고 신발에 묻는 먼지를 손으로라도 털어내라는 것인지, 무엇일까요? 이것은 그 당시의 일반적인 습관, 또는 격언이었던 것 같습니다. 우...

교회 일꾼들을 위한 기도, 11월20일(화)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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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회 수 9896

주님, 교회 공동체를 위해서 최선으로 수고와 봉사를 아끼지 않는 일꾼들을 위해서 기도드립니다. 그들은 마지막 때에 당신께서 부르신 일꾼들입니다. 청지기들입니다. 당신의 부르심을 허투루 듣지 않고 영혼을 기울여 순종하는 이들입니다. 그들의 수고와 희생이 있었기에 교회 공동체가 살아 움직일 수 있습니다. 그들의 땀은 바로 하나님의 땀입니다. 주님, 교회 일꾼들은 오직 당신만을 바라보며 살지만 다른 한편으로 사람들과 어울리기에 인간적인 갈등을 겪지 않을 수 없습니다. 때로는 사람들의 오해와 시기심으로 인해서 ...

선지자 이사야, 3월26일 [1]

  • 2006-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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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3월26일 선지자 이사야의 글에,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그가 네 길을 준비하리라. (막 1:2) <선지자 이사야> 요즘 논문을 쓰는 사람들이 각주를 달듯이 마가는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인용합니다. 왜 그랬을까요? 마가의 속을 내가 뚫어볼 수는 없지만, 아마 자신의 글을 읽어야 할 독자들이 바로 이사야 선지자에 관해서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선지자들만큼 중요한 역할을 한 집단은 없습니다. 물론 이스라엘 사람들의 삶에 직접적으로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이들은 왕이며, 종교적인...

복음 (2), 3월24일 [4]

  • 2006-03-24
  • 조회 수 9665

2006년 3월24일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막 1:1) <복음 2> 마가복음 기자가 전하는 복음(福音, 유앙겔리온)이라는 단어는 복된 소식, 기쁜 소식이라는 뜻입니다. 유대인들의 역사를 배경으로 기록된 구약성서에서 볼 때 가장 큰 기쁜 소식은 출애굽과 바벨론포로 귀환입니다. 먹고살기 힘들어 이집트 땅으로 이민 갔던 이스라엘 민족이 그곳에서 소수민족으로 당해야만 했을 고난, 그리고 전쟁에서 패배하여 인질로 잡혀갔던 바벨론 제국에서 당해야만 했을 모욕이 그들에게 얼마나 견디기 힘든 것이었는지는 긴...

선지자 이사야의 글, 3월27일 [12] [1]

  • 2006-03-27
  • 조회 수 9602

2006년 3월27일 선지자 이사야의 글에,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그가 네 길을 준비하리라. (막 1:2) 선지자 이사야의 글 마가는 지금 이사야의 글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마가가 인용하고 있는 글은 분명히 이사야에 의해서 작성된 것이지만 우리는 그것을 곧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입니다. 마가도 역시 우리와 마찬가지로 이사야의 글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우리는 여기서 매우 곤란한 문제에 봉착합니다. 성서 기자들의 글을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생각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이 바로 그 문제입...

TEL : 070-4085-1227, 010-8577-1227, Email: freude10380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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