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어록(365) 16:13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요한복음의 특징을 나타내는 단어 중에서 하나는 진리이다. 이 단어는 본문에 자주 나오기도 하고 그 개념이 본문 전반에 깔려 있다. 오죽했으면 예수 운명의 마지막 단락인 빌라도와의 대화에서도 이 단어가 나오겠는가. “네가 유대인의 왕이야?”라는 빌라도의 질문에 예수는 자신이 진리에 대하여 증언한다고 말하면서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음성을 듣는다.”라고 대답했다(18:37). 뜬금없다고 생각했는지 빌라도는 다시 진리가 무엇이냐?”라고 묻는다. 이것으로 두 사람의 대화는 끝났다.

우리말 성경이 진리의 성령이라고 번역한 헬라어 토 프뉴마 테스 알레테이아스를 헬라어 본문에 충실하게 번역하면 진리의 영이다. 같은 단어(토 프뉴마 테스 알레테이아스)를 요 14:17절에서는 진리의 영이라고 번역했다. 헬라어 본문이 성령이라고 표현할 때는 토 프뉴마 토 하기온이라고 쓴다. 우리말 성경은 성령과 영을 일관성 없이 사용한다. NIV 성경은 헬라어 본문에 맞게 번역했다. “토 프뉴마 테스 알레테이아스“the Spirt of truth”, “토 프뉴마 토 하기온“the Holy Spirit”로 번역했다.

진리의 영인 성령이 예수 제자들을 이끈다는 말은 기독교가 진리의 토대를 잃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다. 진리는 독단(도그마)에 머물지 말고 보편성을 확보할 수 있어야 한다. 독단과 보편성 사이에 긴장이 있다. 초기 기독교는 교회 안에서만이 아니라 교회 밖에서도 진리로 인정받는 작업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게 기독교 변증론이다. 요한복음이 도입부에서부터 그리스 철학의 핵심 용어인 로고스(말씀)를 언급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오늘 한국교회는 보편적 진리에 열려 있는 게 아니라 오히려 닫혀 있다. 진리론 문제에서 초기 기독교보다 훨씬 수준이 낮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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