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 20:13

조회 수 117 추천 수 0 2024.03.13 20:09:47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54

20:13

바다가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12절에 이어서 13절에도 나오는, 그리고 22:12에도 나오는 행위대로 심판을 받는다.’라는 말은 조심해서 읽어야 합니다. 행위대로 심판을 받으면 아무도 구원받을 자가 없습니다. 우리 행위에는 칭찬받을 일도 있고 비난받을 일도 있습니다. 천칭에 올려놓으면 칭찬받는 쪽이 더 무겁게 나올 거로 자신하는 분들은 많지 않을 겁니다. 바울도 자신을 죄인의 괴수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여기서 더 중요한 관점은 겉으로 드러난 행동 자체가 그 사람을 그대로 보여주는 게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사람은 교만하면서도 겉으로는 겸손하게 행동할 수 있습니다. 표면적으로 종교적이지만 속으로는 아주 세속적일 수 있습니다. 개개인의 인격이 퇴락해서라기보다는 인간 실존이 본래 그렇다고 보는 게 옳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롬 3:20에서 이렇게 짚었습니다.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바울은 행위가 아니라 믿음으로 의롭다고 인정받는다는 사실을 아주 분명하게 주장했습니다.

요한계시록을 기록한 사람은 바울의 신학을 반대하는 건 아닙니다. 바울은 그리스도교 신앙의 본질을 율법과의 관계에서 설파했다면 요한은 로마 제국의 극심한 박해에 맞서려는 이들을 격려한 것입니다. 각각 처한 삶의 자리가 달랐기에 요한은 행위를 강조하고 바울은 믿음을 강조하는 듯이 보이나 실제로는 같은 것을 이야기하는 겁니다. 믿음으로 의로워진 사람은 당연히 행위에서도 이에 상응하는 열매를 맺는 거지요.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2:14)라는 구절도 이와 비슷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행함에는 믿음이 전제됩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리스도교 신앙은 윤리와 도덕주의에 떨어지고 말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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