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 구원(56)

조회 수 1230 추천 수 0 2018.03.20 21:07:50

(56)

21:4-9절에 그 유명한 놋뱀 이야기가 나온다.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생활에 지쳐서 하나님과 모세를 이렇게 원망한다.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는가 이곳에는 먹을 것도 없고 물도 없도다 우리 마음이 이 하찮은 음식을 싫어하노라.” 그들이 당장 먹을 게 없어서 굶어죽거나 식수가 없어서 죽을 정도는 아니었다. 문제는 하찮은 음식으로 마음이 상했다는 데에 있다. 그 하찮은 음식은 만나로 추정된다. 만나는 미디안 광야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광야식물의 열매다. 평소에는 식용으로 사용하지 않지만 특별한 경우에는 그걸 먹고 기아는 면할 수 있었다.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만나를 하찮게 취급함으로써 결국 하나님의 은총을 외면했고 결과적으로 하나님을 원망하게 되었다.

나를 포함해서 사람들은 왜 하찮은 것을 못마땅해 할까. 이해는 된다. 하찮은 것을 대하면 자신도 시시해지는 것처럼 느끼기 때문이다. 목사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작은 교회를 맡은 목사의 경우에 대부분은 자존감이 떨어진다. 큰 교회를 맡은 목사도 자신의 목회 업무 중에서 하찮다고 여기는 부분은 소홀히 대하고, 거꾸로 그럴듯해 보이는 부분에 마음을 쏟는다. 이런 상황에서는 영혼의 만족은 불가능하다. 하찮은 것들과 그렇지 않은 것들을 구분하는데 과도하게 신경을 쓰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하찮다고 생각하는 것에서 영적인 만족감을 경험할 수 있다면 삶의 근본이 새로워질 수밖에 없다. 이것은 어떤 고상한 철학을 말하는 게 아니다. 하나님 경험이 바로 그것이다. 십자가에 처형당한 이를 그리스도이며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 사람에게서는 이런 일이 반드시 일어난다. 성령은 그런 안목을 우리에게 열어준다. 이제 하찮은 것이 왜 하나님의 은총인지를, 즉 하찮은 것이 왜 실제로는 하찮은 게 아닌지를, 더 근본적으로 하찮은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분리가 왜 인식론적 오류인지를 몇 개만 예로 들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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