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1일 도상의 물음(2)

조회 수 1864 추천 수 29 2008.04.01 09:47:29
2008년 4월1일 도상의 물음(2)

예수와 제자들이 빌립보 가이사랴 여러 마을로 나가실새 길에서 제자들에게 물어 이르시되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막 8:27)

제가 기억하기로, 마틴 하이덱거는 철학을 가리켜 “사유를 향한 길”(Weg zum Denken)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길은 일종의 메타포입니다. 철학은 어떤 실증적인 대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을 의미한다는 뜻이겠지요. 저는 이런 철학의 본질이 신학, 또는 신앙의 그것과 다를 게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에 관한 논리적 진술인 신학은 영적인 길입니다. 길은 멈춤이 아니라 진행입니다. 출애굽 공동체는 광야에서 계속 움직였습니다. 만약 그들이 그 여정을 귀찮게 여기고 그냥 광야에 머물렀다면 하나님이 약속하신 가나안에 들어가 수 없었을 것입니다. 가나안은 요단강을 건너에 있습니다. 광야에서 아무리 좋은 곳을 찾았다고 하더라도, 그곳이 설령 오아시스였다고 하더라도, 그곳은 약속의 땅이 아닙니다. 광야와 요단강은 차원이 다릅니다. 질적으로 새로운 생명이 시작하는 그곳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이 광야에서 계속해서 길을 가야합니다. 다시 강조하거니와 여기는 그 어느 곳이라도 영원히 정주(定住)할 데가 아닙니다.
오늘 우리는 신앙적으로 길을 가야한다는 사실을 좀더 진지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는 신앙의 완료된 대답 안에 머물러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누구인가, 예수가 누구인가, 구원이 무엇인가, 하는 근본적인 질문을 포기할 수 없습니다. 세례문답에서 배운 그 교리에만 머무는 것은 마치 미디안 광야의 한 구릉에 천막을 치고 머물러 버리는 것과 똑같습니다. 이것은 마치 장가가야 할 나이가 들었는데도 어머니 치마폭에서 떨어지지 못하는 ‘마마보이’와 똑같습니다. 한 마디 더 한다면, 임상치료가 필요한 나르시시즘과 다를 게 없습니다. 세상(광야)에 던져진 우리는 비록 불안하다 하더라도 종말론적으로 열린 생명의 세계를 향해서 뚜벅뚜벅 길을 가야 합니다. 우리는 도상의 존재들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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