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27일 두려움 (1)

조회 수 1405 추천 수 23 2007.03.27 08:06:21
2007년 3월27일 두려움 (1)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하시니(막 4:40)

풍랑과 파도가 수그러든 다음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왜 이렇게 무서워하는가 하고 나무라셨습니다. 실제로 제자들을 책망하신 건지 아니면 연민의 정을 그렇게 표현하신 건지 정확하게는 모르겠습니다. 어쨌든지 제자들이 풍랑 앞에서 두려워한 행동에 무언가 문제가 있었던 것만은 분명합니다.
사실 제자들의 이런 두려움은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생각해보십시오. 38절에 언급되어 있는 것처럼 그들은 실제로 물에 빠져 죽을지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파선을 막기 위해서 온갖 수단을 강구해보았지만 속수무책이었겠지요. 죽음이 바로 코앞에 이른 상황에서 누가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나요?
죽음은 가장 강력한 두려움의 대상입니다. 죽음은 모든 것과의 완전한 단절을 의미합니다. 가장 가깝게는 평생 동안 함께 지냈던 가족과 완전히 헤어져야 하며, 자신이 쌓은 모든 업적과도 인연을 끊어야 합니다. 이런 것들과의 관계가 우리 자신을 확인할 수 있는 결정적인 요인인데, 그런 것들과 완전히 단절된다면 결국 자기 자신을 잃는 것입니다. 그것보다 더 큰 두려움은 없을 겁니다.
평소에 우리는 이런 두려움을 실감하지 못합니다. 단순한 지식으로서는 죽음을 생각하지만 실질적으로는 별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죽음이 아주 절실하게 다가오는 순간이 우리 평생에 최소한 몇 차례는 찾아옵니다. 친지의 장례식에 갔을 때나 결정적인 사고소식을 접할 때도 그렇고, 또는 자신이 늙어간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실감할 때도 그렇습니다. 멀지 않은 기간 안에 자신이 완전히 사라진다는 사실을 존재 전체로 받아들이는 순간에 우리는 세상이 완전히 뒤집혀질 정도로 큰 충격을 받습니다. 그것은 두려움이고 공포이기도 합니다.  

[레벨:28]첫날처럼

2007.03.27 16:26:11

어떤 면에선 지금의 기독교는 그런 근본적인 두려움을 진지하게 성찰하지 못하게 차단하는 장애물 역할을 하고 있기도 합니다... 통증을 아예 못느끼게 하는 진통제와 비슷하다고 할까요?

죽음 앞에서는 자신의 사상 ,이름, 몸에서 부터, 자신의 사회적 위치, 업적, 등등등 이 땅에서 빌어 쓰던 그 모든 것이 다 사라진다는 허무한 실상을 똑바로 직시하는 훈련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고통스럽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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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2007.03.27 23:50:12

그렇습니다.
죽음, 허무를 피할 게 아니라
두 눈 부릎뜨고 직면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죽음과 허무보다 더 큰 존재의 힘이 필요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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