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16일 죄인 (1)

조회 수 1904 추천 수 23 2006.09.16 23:09:57
2006년 9월16일 죄인 (1)

예수께서 들으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느니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막 2:16)

“죄인을 부르러 왔다.”는 예수님의 이 말씀에서 죄인은 어떤 사람을 의미할까요? 본문의 배경을 전제한다면 세리, 창녀, 이방인처럼 유대교 율법에서 부정하다고 보는 사람들이 바로 그들이겠지요. 이 죄인의 목록에 실제로 살인자, 강도, 성폭력범, 유아 납치범들이 포함되는지 단정하기는 어렵네요. 물론 근본적으로는 그런 반사회적 폭력범들에게도 하나님의 은총이 필요하고 가능하지만, 오늘 분문의 배경이 그들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죄인은 매우 모범적이고 종교적인 바리새인들과 대립된 사람들, 즉 교양이 없고 비종교적인 사람들입니다. 이 죄인의 목록을 넓혀보면 어린아이들과 여자들, 장애인들과 난치병환자들, 외국인 노동자, 불학무식한 사람들, 노예, 백정 같은 사람들이 포함된다고 보아야 합니다. 이들은 사회의 비주류이면서 마이너리티입니다. 떳떳하게 내놓을 것도 없고, 자기 발언권을 가질 수 없는 사람들이겠지요.
이렇게 교양이 없는 사람과 시간을 보낸다는 건 좀 피곤한 일입니다. 예를 들어서 밥을 먹을 때 입에 거품을 물고 말하면서 남의 밥에 침을 튀기는 사람들, 함께 밥을 먹고 밥값을 낼 때는 요리조리 빠지는 그런 사람과 같이 지내는 건 피곤한 일입니다. 대화를 나누면서도 남을 비판하기만 하거나 말꼬투리만 잡고, 또는 자기만 내세우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조용하게 예배를 드리고 싶은데 혼자 은혜 받은 것처럼 반복적으로 “주여, 주여”나 “할렐루야” 하고 외칩니다. 이들은 교양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저는 그런 사람들과 지내기가 피곤한데, 예수님은 그들을 구원하러 오셨다고 합니다. 나 같이 조금 교양이 있는 것처럼 흉내 내는 사람은 아니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레벨:4]New York

2006.09.17 03:59:54

우선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누구가 죄인이고 의인일까라는 질문도 좋겠지만 우리 각기 안에 그러한 죄인과 의인이 공존한다는 사실을, 그 "현실"을 논리의 틀에서 간과하게 한다는 엄청난 위험을 내재하고 있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물론 그렇게 각 개인을 두고 누구는 뭐고 아니고하는 논리를 전개하는 것은 문명인의 습관이고 주석으로 그 위험성을 수습하는 일부 속 깊은 지식인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제가 이 다비아의 보석이라고 느끼는 하나님중심의 설교, 교회, 믿음, 사랑생활, 나아가서는 삶을 사는 것이 주석이 아닌, 교회의 모양새를 갖추기 위해 간간히 덧 붙이는 말이 아닌 처음도 끝도 하나님을 중심에 두어야한다는, 그 주님의 은총을 바로 잡는 진리에서 멀어지는 일, 지금 비판하고 있는 글자 그대로 모든 교회의 큰 허수를 또 되풀이하는 지름길이 된다는 것에서는 안타까움이라고 말한다면 인내가 부족한 소치일까요? 교양이라는 말에 덧부쳐서 하자면 교양이 없는 사람들과 같이 함은 분명 피곤한 일입니다. 교양이 부족한 자신과 평생을 살아야하는 일은 분명 더 피곤한 일입니다. 교양 뒤에 숨어사는 사람들과는 피곤을 넘어서 문제의식까지 사라져버려서, 피곤하건 안 피곤하건 아예 소통의 부재를 가져옵니다. 성령이 부족하면 매일 시시각각 다가오는 고통들이 피곤하고 그냥 싫습니다. 즉, 주님의 뜻을 쫒기도 전에 자신에 가려 그 고통이 고통으로만 보일뿐, 왜 하나님이 이 고통을 "허락"하는 지는, 정말 말도 안돼는 그 말도 안되는 고통을 허락하는 지를 볼 수가 없지 않을까요? 한 개인도 항시 시시각각 다른 성령을 갖고 산다는 사실에 담긴 진리와 놀 수 있는 놀이터가 요원한 것은 분명한 현실입니다. 그러한 현실 속에서 초신자나 평신도들은 아니 우리 모두는 목사님이 가장 성령이 풍부하고 그 다음 장로님, 집사님이다라는 엄청난 착각의 굴레내지는 유혹을 시시각각 극복해햐 합니다. 아니면, "목사라는 사람이, 장로라는 사람이, 교회다닌다는 사람이"하는 손가락질이 나가고 결국은 그 손가락은 자신을 찌릅니다.

저는 후배들에게 "남의" 책을 읽을 때에 자신이 그 책을 썼다고 생각하고 읽으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이 곳 다비아에도 많은 글과 덧 글이 올라옵니다. 이 곳에 글을 쓰고 덧 글을 부치게 하신 분이 각기가 아니고 주님이라는 것을 안다면 모든 글을 대할 때에 "내가 쓴 글"이라는 자세가 무엇을 의미하는 지 알 것입니다. 믿음이라는 애씀없이도 믿을 수 있고 무엇보다 사랑을 갖고 그 글들을 대할 수 있게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이 다비아가 얼마나 좋은 놀이터입니까? 우리 각기가 잘 나서 이 곳에서 미끄럼을 타고 그네를 서로 밀어 주는 특권을 가진 것은 아닙니다: 가끔 딴지도 걸지만 그 곳이 놀이터이니 서로 용서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겐 돌아갈 집이 있기에 불안하지 않지 않습니까: 주님의 품. 죄인을 보고 죄인이 가능함에 자신을 반성할 줄 알고 의인을 보고 의인이 가능함에 희망을 갖고 그러함 속에도 이 말도 안 되는 고통을 허락하시는 하나님의 뜻과 사랑을 이해할려는 사랑과 믿음을 여기 다비아에서만이라도 실천하려고 한다면 그 빛은 우리가 노력하지 않아도 모두를 비출수 있으리라고 감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곳에서 성의있게 글 쓰시고 덧 글을 올리시는 분이나 편지를 쓰시는 분들은 느낄 것입니다. 한 글을 올리고 나면 무엇을 이룬 느낌 그래서 그 날 할 일은 다한 것 같은 착각말입니다. 저도 이 글은 여기까지고 저의 하는 일의 현장에서 하나님을 나타내는 일에 돌아갈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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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2006.09.17 21:00:28

뉴욕 님, 위의 글 잘 읽었습니다.
어떤 경지에 들어가서 글을 쓰고 계시는 것 같군요.
궁극적인 지평에서는 모든 생각과 행위 사이의 차이점은 사라지겠지요.
인간과 돌맹이 사이의 차이도 없구요.
히틀러와 테레사 사이의 차이도 없겠지요.
그 모두 내면 속에 선과 악, 이중성을 갖고 있으니까요.
모든 인간의 차이라는 건 상대적이니까요.
그런 궁극적인 지평은 그것대로 의미가 있고,
오늘 실질적인 삶의 현장은 이것 나름으로 의미가 있지 않을까요?
이 현장에서는 여전히 선과 악의 구분이 필요합니다.
선과 악의 존재론적 차원보다는
그런 경향성을 말하는 겁니다.
그런 분석을 통해서 합리적인 사회를 구현해나가는 작업 말입니다.
이게 바로 궁극 이전의 세계,
절대 이전의 이 세계에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책임기도 하구요.
물론 이런 판단과 분석은 늘 상대적일 뿐만 아니라
잠정적이기도 하고, 때로는 자체 모순에 빠질 때도 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두 발을 이 땅에 딛고 살아가는 한
이런 노력을 게을리 할 수는 없습니다.
언어가 존재론적으로 우선적이라 하더라도
바른 글쓰기 훈련과 다른 시인들의 시를 읽는 연습이 없으면
시인이 될 수 없듯이
우리는 그런 훈련의 일환으로 인간 행위에 대한 성찰을 놓칠 수는 없습니다.
감사!

일전에 주신 메일을 잘,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재미로만 읽어서는 안 되겠기에 조금 천천히,
숙독해볼까 합니다.
어떤 한 개인의 매우 사적인 진리 경험을 따라잡는다는 게
간단한 일은 아니거든요.
그럼, 이만.

[레벨:11]권현주

2006.09.18 11:51:56

뉴욕님의 글에 머리를 유쾌하게 한방 얻어맏은 느낌입니다.

"교양이라는 말에 덧부쳐서 하자면 교양이 없는 사람들과 같이 함은 분명 피곤한 일입니다. 교양이 부족한 자신과 평생을 살아야하는 일은 분명 더 피곤한 일입니다. 교양 뒤에 숨어사는 사람들과는 피곤을 넘어서 문제의식까지 사라져버려서, 피곤하건 안 피곤하건 아예 소통의 부재를 가져옵니다."

절감합니다.

초보크리스쳔이란 점을 전제하며 조심스럽게 이 담화에 참여합니다.

자신의 불안정성 혹은 상대성,
현상의 불안정성 혹은 상대성,
을 극복한,
이원론으로서의 세계가 아니라
"어둠, 너는 밝음을 이렇게 얘기하기도 하는구나"와 같은 시구절처럼
일원론으로서의 그야말로 문자그대로의 '하나'님을 인식하려는
뉴욕님의 그 열정이
예민하게 느껴집니다.

아울러
정목사님도
교양의 개념에 머물러서 죄인이다 아니다를 규정하는 것의 위험성에 대해 경고하기위해
자신의 교양까지 들먹이며
인간인식의 한계가 얼마나 명백한가를 보여주시고있다는 점에서
두 분의 지향이 묘하게도 닮아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발견이 저로서는 유쾌하고도 신나네요.

[레벨:0]서우정

2006.09.20 22:08:32

뉴욕님의 의견을 읽고 제 자신을 돌아보았습니다. 반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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