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전서 강해(10)

조회 수 1263 추천 수 0 2019.09.14 20:06:12

신앙의 기쁨

베드로 사도는 가장 기초적인 기독교 신앙을 설명한 뒤에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6절부터 시작한다. ‘그러므로라는 접속 부사가 이를 의미한다. 독자들은 지금 시련을 겪는 중이다. 그들에게 위로가 필요하다. 6b절에서 기뻐하라.’라고 말한다. 8b절에도 이를 반복했다. 기쁨은 신앙의 특징이다. 사람들은 기쁜 일들을 찾는다. 집을 사고, 결혼하고, 아이 낳고, 출세하는 일들이 기쁨의 이유다. 문제는 그 모든 기쁨의 이유가 될만한 일들은 두 가지 속성으로 인해서 참된 기쁨의 이유가 되지 못한다. 하나는 기쁨의 일들이 반복해서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이고, 다른 하나는 그런 일들은 곧 시시해진다는 사실이다. 자기가 원하는 사람과 결혼하기만 하면 세상을 다 얻은 정도로 기뻐하겠지만 실제로 결혼하면 시시해진다. 베드로 사도가 말하는 기쁨은 기쁨의 조건에 의해서 달라지는 게 아니다. 어린아이가 어머니 품에 안겨 있듯이 기독교인이 하나님의 품에 안겨 있다는 사실이 기쁨의 이유다. 이를 존재의 기쁨이라고 말해도 된다.

기독교인이 기뻐해야 할 존재론적 이유는 7절이 말하는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공동번역은 칭찬과 영광과 영예라고 표현했다. 앞의 두 가지는 같고 뒤의 한 가지만 약간 다르다. 헬라어 에파이노스, 독사, 티메에 해당한다. KJV은 이를 praise and honour and glory라고 번역했다. 비슷한 의미이다. 다만 헬라어 독사는 일반적으로 영광에 해당하는데, KJV은 두 번째와 세 번째의 순서를 바꾼 것이다. 어쨌든지 기독교인들이 기뻐해야 할 이유가 높임을 받는다는 데에 있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세 단어 중에서 독사가 가장 중요하다. 헬라어 독사는 히브리어 카봇에 해당한다. 하나님의 영광이 온 땅에 가득하고, 예수에게서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났다. 이런 영광이 우리에게 주어진다는 말은 우리가 하나님에게 온전히 받아들여진다는 뜻이다. 이런 설명이 실감 나지 않을 수 있다. 우리는 기껏해야 세상에서 칭찬받고 명예를 얻고 영광 얻는 데에만 익숙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에게 칭찬받는다는 게 무슨 뜻인가?

하나님의 칭찬이 어떤 것인지는 구체적인 내용은 아무도 모른다. 그것은 오직 하나님의 배타적인 판단에 속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진흙과 토기이고 하나님은 토기장이이다. 24, 25장에는 세상 마지막 때와 그 심판에 관한 이야기가 집중적으로 나온다.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줄 나가 누구냐 주인이 올 때에 그 종이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이 복이 있으리로다.”(24:45, 46). 마지막 때의 판단은 일상에서 얼마나 성실했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뜻이다. 더 엄중한 이야기는 마 25:31-46절에 나온다. 복 받은 자로 판단된 사람들과 저주받은 자로 판단된 사람들이 자기가 왜 그런 판단을 받았는지 알지 못한다. 그 판단은 하나님만 안다. 이 대목에서 중요한 점은 지극히 작은 자에게 행한 것이 바로 인자이신 예수에게 행한 것이라는 사실이다. 달란트 비유(25:14-30)에 유명한 말씀이 나온다.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를 받아 각각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를 남기 사람에게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25:21, 23)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칭찬은 세상에서 존경받았느냐 하는 사실과 상관없이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서 얼마나 성실하게 살았느냐 하는 사실로 결정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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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5]김혜식

2019.09.15 07:21:44

20대 초반에, 저는 하나의 이념을 발견했었습니다. 하박국 선지자의 말처럼, 돈을 벌건 못벌건, 결혼을 하건 못하건 간에 여호와로 말미암아 기뻐할 수 있겠다는 이념을 발견하고 기뻐했는데, 어리석게도 이 이념을 왜곡되게 사용해서 현실의 의무를 내팽게치는게 사용했었지요. 그러면서 보편적인 것에서 떨어져나가므로 인한 불안과 소외, 주눅듦을 차곡차곡 쌓았고, 태산처럼 쌓아 놓다 보니 아직도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네요.

그러면서도 내가 살 길이 존재를 추구하는 것으로 집중이 되는 것 같아서 좋기는 한데, 아직도 내가 존재를 감당 못하니 터져버릴 것 같아 위태롭다는 것을 경험합니다.

어찌됐든, 내 삶의 역사가 이렇고 계속 이 길을 간다는 것은 세상에서 아무런 명예도 돈도 안되고, 가족과 친척들에게 현재로서는 민폐만 되고 오해와 조롱과 비난을 받는데 그럼에도 존재를 추구하는 것이 저에게는 운명처럼 다가오고, 다른 일을 하는 것은 나를 잃어버리는 것 같아서 불완전하고 비틀거리지만 계속 가보려고 합니다. 

저도 주님이 나타나실 때, 칭찬과 존귀와 영광을 받았으면 참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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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2019.09.15 20:28:27

예, 김혜식 님이 기대하는 대로

벼락같이 생명 완성이 이루어지는 주님의 재림 때에

주님의 칭찬이 주어지기를 바랍니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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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5]김혜식

2019.09.17 07:16:06

사랑과 격려를 해주시니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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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 22:10 new

  • 2024-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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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93 22:10 또 내게 말하되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인봉하지 말라 때가 가까우니라 요한은 두루마리를 ‘인봉하지 말라.’라는 말을 듣습니다. 인봉이라는 단어는 계 5:1절에도 나옵니다. 거기에는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편에 있는 두루마리가 나옵니다. 그 두루마리는 인봉되었습니다. 아무도 그 두루마리의 인봉을 열지 못합니다. 어린 양만이 그 인봉된 두루마리를 풀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 22:10절에서 언급된 두루마리는 인봉되면 안 됩니다. 이유는 ‘때가 가까이’ 왔기 때문입니다....

계 22:9

  • 2024-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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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92 22:9 그가 내게 말하기를 나는 너와 네 형제 선지자들과 또 이 두루마리의 말을 지키는 자들과 함께 된 종이니 그리하지 말고 하나님께 경배하라 하더라 천사는 요한에게 자신을 경배하지 말라고 말립니다. 천사 자신은 요한과 마찬가지로 경배받을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을 경배할 종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놀라운 신출귀몰의 능력이 있는 사람이나 지성이나 도덕성에서 존경받을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경배받을 수 없습니다. 그런 이들에 대한 경배는 우상숭배니까요. 천사는 하나님의 뜻을 ...

계 22:8

  • 2024-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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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91 22:8 이것들을 보고 들은 자는 나 요한이니 내가 듣고 볼 때에 이 일을 내게 보이던 천사의 발 앞에 경배하려고 엎드렸더니 글을 쓴 이가 요한이라는 사실은 여기 계 22:8절만이 아니라 계 1:1, 2, 4절 등등에도 나옵니다. 요한이라는 이름은, 요즘도 영어 이름으로 ‘존’이 흔하듯이, 당시에도 흔해서 실제로 그가 누군지는 정확하게 알 길이 없습니다. 소아시아 지역에서 그리스도교 지도자로 활동하던 사람이라는 사실 정도만 분명합니다. 그는 ‘보고 들은 자’라고 했습니다. 보고 듣는 행위...

계 22:7 [2]

  • 2024-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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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90 22:7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으리라 하더라 ‘내가 속히 온다.’라는 문장에서 주어가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로 추정되기는 하나 문맥으로만 보면 정확하지 않습니다. 요한은 지금 일곱 천사 중의 한 천사에게서 말을 듣고 그가 보여주는 환상을 따라가는 중입니다. 이런 문맥에서만 본다면 속히 올 자는 천사입니다. 그러나 요한계시록 전체 관점과 그리스도교 신앙의 맥락에서 본다면 속히 올 자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어느 쪽이 맞을까요? ...

계 22:6 [1]

  • 2024-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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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89 22:6 또 그가 내게 말하기를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된지라 주 곧 선지자들의 영의 하나님이 그의 종들에게 반드시 속히 되어질 일을 보이시려고 그의 천사를 보내셨도다 6절부터 21절까지는 요한계시록의 마지막 단락입니다. 우리말 성경에는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라는 표제가 달렸습니다. 앞에서 묘사된 모든 묵시적 미래가 예수의 오심으로 실현된다는 뜻이겠지요. ‘선지자들의 영의 하나님’이 천사를 보내셨다고 합니다. 그냥 하나님이라도 해도 괜찮았을 텐데 선지자들의 영이라는 표현을 ...

계 22:5

  • 2024-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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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88 22:5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 데 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그들에게 비치심이라 그들이 세세토록 왕 노릇 하리로다 새 하늘과 새 땅으로 불리면서 거룩한 성이자 새 예루살렘으로 불리는 그곳에는 밤이 없다고 합니다. 빛이 필요 없을 정도로 하나님의 빛이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밤이 없다는 말은 두려움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고, 악이 준동하지 못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주 하나님’이라고 할 때 ‘주’는 그리스어 Κύριος(Lord)이고, ‘하나님’은 Θεὸς(God)입니다. 퀴리오스라는 ...

계 22:4

  • 2024-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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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87 22:4 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 그의 이름도 그들의 이마에 있으리라 하나님과 어린 양을 섬기는 종들은 하나님의 얼굴을 볼 것이라(4절) 했습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본다는 게 무슨 뜻일까요? 하나님의 얼굴은 하나님의 영광을 다른 방식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그걸 문학적으로 무엇이라 말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모세가 시내 산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달라고 하자 하나님께서는 “네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니 나를 보고 살 자가 없음이니라.”(출 33:20)라고 말씀하셨고, 이어서 출 33...

계 22:3 [2]

  • 2024-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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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86 22:3 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그 어린 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에 있으리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요한은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을 절대적인 생명의 세계로 묘사하려고 온갖 묵시적 상상력을 동원합니다. 이미 앞에서 그런 이야기는 수도 없이 나왔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아무런 생각 없이 반복해서 읽다 보면 하나님을 옥황상제나 임금 이미지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보좌도 임금이 앉는 최고급 의자 이미지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착각입니다. 성경 문장은 메타포(은유)이...

계 22:2

  • 2024-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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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85 22:2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열매를 맺되 달마다 그 열매를 맺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치료하기 위하여 있더라 생명 나무가 하나의 품종인지, 아니면 서로 다른 열매를 맺는 나무를 포괄하는 이름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열두 가지 열매를 맺는다고 합니다. 우리는 그곳에서 생명 나무 열매를 먹고 살겠지요. 매력적입니다. 과일만으로도 영양 공급이 충분할 테니까 말입니다. 육식을 즐기는 분들은 에덴동산도 그렇고 여기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

계 22:1

  • 2024-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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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84 22:1 또 그가 수정 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와서 우리는 이제 요한계시록 마지막 22장까지 왔습니다. 22장에서도 요한은 일곱 천사 중의 한 천사를 통해서 묵시적 환상을 경험합니다. 생명수의 강은 창 2:10-14절 내용과 연결됩니다. 창세기가 전하는 에덴동산에는 생명 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만이 아니라 여러 줄기의 강이 나옵니다. 첫째 줄기의 강은 비손이고, 둘째는 기혼이며, 셋째는 힛데겔이고, 넷째는 유브라데입니다. 창세기...

계 21:27

  • 2024-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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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83 21:27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가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 들어가리라 27절에 다시 생명책 이야기가 나옵니다. 생명책에는 구원받을 자의 이름이 기록되었습니다. 생명책에 이름이 적히지 못한 자들은 이 세상의 악한 권력을 섬기는 자들입니다. 계 13:8절입니다.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이름이 기록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그 짐승에게 경배하리라.” 그들은 구원에서 영원히 제외...

계 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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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82 21:26 사람들이 만국의 영광과 존귀를 가지고 그리로 들어가겠고 26절은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에서 모든 사람이 영광스럽고 존귀한 존재가 된다는 뜻이겠지요. 영광(δόξα, glory)은 요한계시록에 흔하게 나오는 단어입니다. 요한계시록만이 아니라 성경 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가리켜서 영광이라고 말합니다. 사람에게는 붙일 수 없는 개념입니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은 완전히 변화된 세상이라서 사람도 영광스러운 존재가 됩니다. 영광...

계 21:25

  • 2024-04-19
  • 조회 수 267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81 21:25 낮에 성문들을 도무지 닫지 아니하리니 거기에는 밤이 없음이라 25절 문장이 약간 이상합니다. 거룩한 성에는 밤이 없어서 낮에 성문을 닫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성문은 보통 밤에 닫지 않습니까. 낮에는 원래 열어두는 거고요. 밤에도 성문을 잠그지 않는다고 해야 자연스러운 표현인데, 위 구절은 자연스러운 문장이 아닙니다. 아예 문이 필요 없겠지요. 그래서 <새번역> 성경은 “그 도성에는 밤이 없으므로, 온종일 대문을 닫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번역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려는 ...

계 21:24 [2]

  • 2024-04-18
  • 조회 수 294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80 21:24 만국이 그 빛 가운데로 다니고 땅의 왕들이 자기 영광을 가지고 그리로 들어가리라 24절의 표현은 장엄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모든 나라와 모든 왕이 각각의 영광 가운데서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으로 들어간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도 거룩한 성에 들어간다는 말이냐, 하는 질문은 여기서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이미 심판받을 자는 심판받고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계 21:8)에 던져질 자들은 모두 던져진 이후의 일이니까요. 거룩한 성에 들어갈 자들에게 ‘자기...

계 21:23

  • 2024-04-17
  • 조회 수 264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79 21:23 그 성은 해나 달의 비침이 쓸 데 없으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비치고 어린 양이 그 등불이 되심이라 요한은 해가 필요 없고 달도 필요 없는 세상을 내다봅니다. 빛이 필요 없는 세상입니다. 이유는 하나님의 영광이 빛이 되고, 어린 양이 등불이 되기 때문입니다. 요한은 사 60:19-20절에서 이에 관해서 통찰을 얻은 것으로 보입니다. “다시는 낮에 해가 네 빛이 되지 아니하며 달도 네게 빛을 비추지 않을 것이요 오직 여호와가 네게 영원한 빛이 되며 네 하나님이 네 영광이 되리니 …...

계 21:22

  • 2024-04-16
  • 조회 수 290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78 21:22 성 안에서 내가 성전을 보지 못하였으니 이는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 양이 그 성전이심이라 22절에는 아주 특별한 내용이 나옵니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에 성전이 없다는 겁니다. 성전 하나쯤 있어야 거룩한 성이 빛나 보일 텐데 말입니다. 예루살렘이 하나님의 도성이라 할 수 있는 이유도 거기에 성전이 있기 때문이 아닙니까. 종교 건물이 없는 곳을 거룩하다고 이름 붙일 수는 없는 법이지요. 그러나 요한이 본 거룩한 성은 그것 자체로 완벽하기에 성전은 없어도 ...

계 21:21 [2]

  • 2024-04-15
  • 조회 수 318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77 21:21 그 열두 문은 열두 진주니 각 문마다 한 개의 진주로 되어 있고 성의 길은 맑은 유리 같은 정금이더라 12절에서 언급된 열두 문이 21절에서 다시 소개됩니다. 각각의 문마다 한 개의 진주로 되어있습니다. 진주 한 알이 박혀 있다는 뜻인지 아니면 문 전체가 진주로 되어있다는 것인지 분명하지는 않습니다. 문을 만들만한 크기의 진주는 세상에 없습니다. 문이 진주 모양을 했다는 뜻인가요? 그냥 편하게 진주로 된 문이라고 생각하면 되겠지요. 문에 이어지는 길이 나옵니다. 길은 ‘맑...

계 21:20

  • 2024-04-12
  • 조회 수 286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76 21:20 다섯째는 홍바노요 여섯째는 홍보석이요 일곱째는 황옥이요 여덟째는 녹옥이요 아홉째는 담황옥이요 열째는 비취옥이요 열한째는 청옥이요 열두째는 자수정이라 다섯째부터 열두째까지 당시의 모든 보석이 열거됩니다. <새번역> 성경으로 다시 읽어보겠습니다. “다섯째는 홍마노요, 여섯째는 홍옥수요, 일곱째는 황보석이요, 여덟째는 녹주석이요, 아홉째는 황옥이요, 열째는 녹옥수요, 열한째는 청옥이요, 열두째는 자수정이었습니다.” 이름만 들어도 눈이 휘둥그레지는 보석들이군요. ...

계 21:19

  • 2024-04-11
  • 조회 수 273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75 21:19 그 성의 성곽의 기초석은 각색 보석으로 꾸몄는데 첫째 기초석은 벽옥이요 둘째는 남보석이요 셋째는 옥수요 넷째는 녹보석이요 열두 사도의 이름이 각각 기록된 열두 기초석도 보석으로 꾸며졌다고 합니다. 19절에는 네 가지가 나옵니다. 벽옥, 남보석(사파이어), 옥수, 녹보석(비취옥)입니다. 옥수(玉髓)는 낯선 단어인데, 보석의 일종으로 보면 됩니다. 정말 휘황찬란한 모습으로 묘사되었습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렸다시피 요한은 자기가 살아가면서 본 것 중에서, 그리고 상상할 수 ...

계 21:18

  • 2024-04-10
  • 조회 수 286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74 21:18 그 성곽은 벽옥으로 쌓였고 그 성은 정금인데 맑은 유리 같더라 18절에 다시 벽옥과 정금(순금)이 나옵니다. 요한이 어디서 이런 건축물을 실제로 본 적이 있을까요? 사람은 건축물에 대한 욕망이 에로스처럼 강합니다. 더 크고, 더 아름답고, 더 빛나는 건축물을 향한 욕망 말입니다. 그런 건축물을 통해서 자기의 이름을 빛내고, 더 근본에서는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려고 합니다. 가끔은 사랑하는 아내나 연인을 위해서 천문학적 비용이 들어가는 건축물을 짓기도 합니다. 성경에 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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