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어록(204) 9:7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예수는 시각장애인에게 이상하게 보이는 의식을 집행한다. 흙을 침으로 이겨서 그 사람의 눈에 바른다. 이런 장면은 복음서에 드물다. 고대인들의 일반적인 생각처럼 예수도 침과 흙이 치유 효과를 낸다고 생각했기에 이런 퍼포먼스를 실행한 것인지, 아니면 이 사람에게 플라시보 효과를 내려 했던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예수의 평소 모습으로만 본다면 그의 눈에 손을 얹고 하나님을 향해서 불쌍히 여겨달라.”는 기도를 드렸어야만 한다. 예수는 이 사람에게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고 말씀하셨다. 씻는 행위도 간접적으로나마 치유 효과가 있다. 이 사람은 예수 말씀에 따라서 실로암에 가서 씻고 밝은 눈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여기서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진 것인지, 우리에게 많은 걸 생각하게 만드는 진술이다.

어쨌든지 요한복음을 기록한 사람에 따르면 시각장애인이었던 이 사람이 예수를 만나서 눈이 밝아졌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그게 실제 육체의 눈이 밝아졌다는 뜻인지, 영혼의 눈이 밝아졌다는 뜻인지는 독자들이 판단하시라. 다시, 이 대목에서 정말 중요한 사실은 예수를 통해서 우리는 실체적인 진실을, 또는 생명의 근원을, 즉 하나님을 밝히 보게 된다는 것이다. 이 세상에 이보다 더 밝은 눈이 어디 있겠는가. 나도 궁극의 진리를 볼 수 있도록 눈이 밝아졌으면 한다. 죽음이 오기 전까지 삶의 전체 과정은 영혼의 눈이 밝아지는 학습의 순간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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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어록(212) 요 10:4 앞서 가면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 고로 따라오되 …

  • 2019-12-10
  • 조회 수 1125

예수 어록(212) 요 10:4 자기 양을 다 내놓은 후에 앞서 가면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 고로 따라오되 … 본문의 묘사가 한편의 동화처럼 전개된다. 양치기는 양의 문을 열고 앞서 풀밭과 시냇가로 걸어간다. 그 양치기는 노래를 부르거나 피리, 또는 휘파람을 불었을 것이다. 하늘은 푸르고 구름은 멋진 모양을 그리는 중이다. 새도 날고 나비와 벌이 양치기 주변을 오갔을지 모른다. 어디선가 꽃향기가 날아온다. 양은 양치기의 음성을 알기에 뒤를 따른다. 양치기와 양은 말 그대로 혼연일체가 되어 삶을 풍성하게 누린다. 예수를...

주간일지 12월8일 대림절 2주 file [2]

  • 2019-12-09
  • 조회 수 1238

대구 샘터교회 주간일지 2019년 12월8일, 대림절 2주 1) 불 심판- 목사가 자신의 설교에 은혜를 받는다는 게 이상해 보이지만, 저는 가끔 그런 일을 경험합니다. 오늘(12월8일)이 그런 날입니다. 알곡은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신다는 말씀이 얼마나 위로가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런 점에서 성경이 말하는 심판은 복음입니다. 우리에게 더 할 나위 없는 복된 소식입니다. 심판을 복음으로 들을 수 있다니, 얼마나 은혜로운 설교입니까. 더군다나 우리를 심판할 분이 예수 그리스도라는 사실이 얼마나 다행...

예수 어록(211) 요 10:3 문지기는 그를 위하여 문을 열고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 2019-12-07
  • 조회 수 1351

예수 어록(211) 요 10:3 문지기는 그를 위하여 문을 열고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 양은 우리에서 보호받는다. 그 양의 우리는 하나님이다. 양치기는 양을 위해서 문을 여닫는다. 아침에 문을 열고 초장과 물가로 인도하고 저녁에 다시 문을 열어 양을 우리에 넣고 문을 닫는다. 양은 목자의 음성을 알기에 목자가 하라는 대로 하고, 목자도 자기 양을 알기에 최선의 방식으로 양을 지킨다. 예수만이 양의 이름을 일일이 부르는 양치기처럼 우리의 생명을 지키는 자라는 뜻...

예수 어록(210) 요 10:2 문으로 들어가는 이는 양의 목자라

  • 2019-12-06
  • 조회 수 1029

예수 어록(210) 요 10:2 문으로 들어가는 이는 양의 목자라 목자는 문으로 들어간다. 예수만이 양과 목자를 연결하는 통로다. 누구든지 하나님이 말씀을 전하는 사람이라면 예수를 근거로 삼아야 한다. 어떤 이가 참된 목자인지 아닌지를 알려면 예수와의 관계를 확인해야 한다. 예수와 관계없이 하나님 말씀을 전하는 자는 양의 목자가 아니라 도적이다. 원래 목자는 하나님이지만 이 구절에서는 목자를 예수라고 볼 수도 있긴 하다. 11절에서는 예수가 선한 목자로 나온다. 어쨌든지 예수만이 양의 생명을 책임질 수 있는 존재라...

예수 어록(209) 요 10:1 다른 데로 넘어가는 자는 절도며 강도요

  • 2019-12-05
  • 조회 수 1124

10장 예수 어록(209) 요 10:1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문을 통하지 아니하고 다른 데로 넘어가는 자는 절도며 강도요 10장 1절부터 21절까지 다시 긴 연설이 시작한다. 주제는 양과 목자의 관계다. 유대인들의 가장 중요한 하나님 표상에는 목자 상이 있다. 구약성경 곳곳에 나온다. 대표적으로 시편 23편이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고대 유대인들의 삶이 늘 풍족하지는 않았지만, 하나님과의 관계가 돈독하기만 하면 모든 삶의 조건이 풍족하게 느껴졌다. 하나님을 믿지 못하면 불...

예수 어록(208) 요 9:41 너희가 맹인이 되었더라면 죄가 없으려니와

  • 2019-12-04
  • 조회 수 1435

예수 어록(208) 요 9:41 너희가 맹인이 되었더라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대로 있느니라. 예수의 말을 듣던 바리새인들이 40절에서 자신들도 시각장애인에 속하느냐고 예수에게 반문한다. 기분이 나빠서 그렇게 반문하는 것인지, 아니면 정말 궁금해서 질문하는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두 가지 가능성이 다 있다. 예수의 대답은 정곡을 찌른다. 당신들이 본다고 하니 오히려 죄가 그대로 있다는 것이다. 대답이 약간 특이하다. 시각장애인이냐, 하고 물었는데, 죄가 없다거나 있다고 대답한다. 이 대답은 이 ...

예수 어록(207) 요 9:39 내가 심판하러 이 세상에 왔으니 [2]

  • 2019-12-03
  • 조회 수 1462

예수 어록(207) 요 9:39 내가 심판하러 이 세상에 왔으니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맹인이 되게 하려 함이라. 제자들은 예수를 인자로 인식하고 믿었다. 인자 외에도 하나님의 아들이라거나 그리스도라는 표현도 있다. 인자는 묵시문학에서 온 개념으로, 세상 마지막 때 심판할 자를 가리킨다. 제자들은 무슨 근거로 예수를 마지막 때에 올 심판자라고 믿었나? 어떤 이들은 예수를 옥황상제 비슷한 존재로 여긴다. 예수를 믿는 자는 살기 쾌적한 천국으로 보내고, 믿지 않는 자는 유황불에 던진다는 식이다. 이런 ...

예수 어록(206) 요 9:37 네가 그를 보았거니와

  • 2019-12-02
  • 조회 수 905

예수 어록(206) 요 9:37 네가 그를 보았거니와 지금 너와 말하는 자가 그이니라. 전에 시각장애인이었던 이 사람은 인자가 누군지 알려달라고 했다. 예수가 그에게 한 대답이 바로 요 9:37절이다. 문장이 일반적이지는 않다. 일반적인 문장이라면 단순히 “내가 바로 인자다.”라거나 “아니다.”라고 하면 된다. 예수는 우회적으로 대답한다. 이런 표현이 당시 아람어나 그리스어 문장의 문학적인 특징인지는 모르겠지만 깔끔하게 들리지는 않는다. 이와 비슷한 방식의 대화가 요 18:28절 이하에도 나온다. 예수가 로마 총독 빌라도 법...

주간일지 12월1일 대림절 1주

  • 2019-12-01
  • 조회 수 1187

대구 샘터교회 주간일지 2019년 12월1일, 대림절 1주 1) 칼과 창- 오늘 설교 본문을 기록한 이사야 선지자는 우리가 오래, 그리고 깊이 간직해야 할 메시지를 선포했습니다. 하나님이 마지막 때에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라고 말입니다. 사람이 더는 싸우지 않고 전쟁 연습도 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이런 일이 벌어지는 때를 사람이 만들어낼 수 없고 하나님이 실행하십니다. 이 말씀을 믿는 사람들은 이제 세상에서 평화 연습을 해야 합니다. 평화 연습을 하는 사람만이 하나님께서 이루실 평화의 나...

예수 어록(205) 요 9:35 네가 인자를 믿느냐.

  • 2019-11-30
  • 조회 수 1216

예수 어록(205) 요 9:35 네가 인자를 믿느냐. 9:8-34에는 예수의 어록이 일절 등장하지 않는다. 공관복음과 달리 예수의 긴 어록 중심으로 전개되는 요한복음에 잘 나타나지 않는 대목이다. 눈이 밝아진 이 사람과 이런 일이 일어난 날이 하필 안식일이었다는 이유로 시비를 거는 바리새인들과 이 사람의 부모 사이에 벌어진 논쟁이다. 이 대목에서 요한복음이 기록된 당시에 예수 공동체가 처한 상황이 어땠는지를 암시하는 두 구절이 눈에 띈다. 하나는 22절이다. 바리새인들의 닦달을 받은 부모가 아들에게 대답을 미룰 수밖에 ...

예수 어록(204) 요 9:7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 2019-11-29
  • 조회 수 953

예수 어록(204) 요 9:7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예수는 시각장애인에게 이상하게 보이는 의식을 집행한다. 흙을 침으로 이겨서 그 사람의 눈에 바른다. 이런 장면은 복음서에 드물다. 고대인들의 일반적인 생각처럼 예수도 침과 흙이 치유 효과를 낸다고 생각했기에 이런 퍼포먼스를 실행한 것인지, 아니면 이 사람에게 플라시보 효과를 내려 했던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예수의 평소 모습으로만 본다면 그의 눈에 손을 얹고 하나님을 향해서 “불쌍히 여겨달라.”는 기도를 드렸어야만 한다. 예수는 이 사람에게 실로암 못에 가...

예수 어록(203) 요 9:5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로라.

  • 2019-11-28
  • 조회 수 1266

예수 어록(203) 요 9:5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로라. 예수는 어두운 세상을 밝히는 빛이다. 이런 말을 우리는 입에 달고 살지만 이게 실제로 무슨 뜻인지는 별로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구호로만 우리에게 승하고 신앙의 능력으로는 쇠하기 때문이다. 와 닿지 않는데 어쩌랴. 평소 신앙생활의 과정에서 기독교 신앙을 허투루 대했다는 증거가 바로 이것이다. 도대체 예수는 왜 세상의 빛인가? 그가 빛이라면 우리는 왜 여전히 어두움에 들어간 사람처럼 사는가? 이런 질문은 우리가 기독교인으로 살아가는 한 앞으...

예수 어록(202) 요 9:4 때가 아직 낮이매

  • 2019-11-27
  • 조회 수 840

예수 어록(202) 요 9:4 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밤이 오리니 그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느니라. 아직은 ‘낮’이다. 아직은 우리가 숨 쉬고 먹고 배설하고 두 발로 걷고 커피 향과 맛을 즐기고 예배를 드리며, 사랑을 나눌 수 있다. 아직은 낮이기 때문이다. 곧 ‘밤’이 온다. 밤이 오면 일할 수 없다. 숨을 쉬지 못하고 먹지도 배설하지도 못하며, 두 발로 걷지 못하고, 사랑할 수도 없다. 지금 우리는 몇 시의 인생을 사는가. 오전을 사는 사람도 있고, 오후를 사는 사람도 있고, 지금 글을 쓰...

예수 어록(201) 요 9:3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 2019-11-26
  • 조회 수 1394

9장 예수 어록(201) 요 9:3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 9장부터 새로운 단락이 시작한다. 예수와 함께 길을 가다가 시각장애인을 만난 제자들이 예수에게 누구의 죄로 인해서 이 사람이 장애인이 되었냐고 물었다. 오지랖이 넓은 제자들이다. 재난은 죄의 결과라는 주장이 고대 유대인들의 일반적인 생각이었다. 욥의 친구들도 욥에게 죄를 회개하라고 다그쳤다. 욥은 친구들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자신에게는 그런 재앙을 받을 만큼의 죄가 없다고...

주간일지 11월24일 창조절 13주

  • 2019-11-25
  • 조회 수 803

대구 샘터교회 주간일지 2019년 11월 24일, 창조절 13주 1) 흑암- 저는 설교 중에 우리의 실존이 흑암의 권세 아래 놓여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자기를 성취하는 방식으로 살아야 한다는 강요입니다. 그 방식으로는 우리 삶이 해결되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거기에 매달리게 하는 세력이 매우 강력하게 이 세상을 지배합니다. 흑암이 깊어가는 상황입니다. 다른 하나는 우리의 인식에 해당합니다. 우리는 아는 게 하나도 없습니다. 작은 사물 하나도 어디서 왔는지 모릅니다. 심지어 시간이 상대적으로 흐르고...

예수 어록(200) 요 8:58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

  • 2019-11-23
  • 조회 수 1327

예수 어록(200) 요 8:58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 예수는 유대인들의 비판 앞에서 더 파격적으로 발언한다. 자신이 아브라함보다 먼저 존재했다고 말이다. 유대들은 더는 참을 수 없었다. 59절에 따르면 그들은 유대 종교 형벌인 돌로 예수를 치려고 했다. 예수는 그 자리를 피했다. 사람이 피할 때는 피하는 게 좋다. 떳떳하다고 맞서다가는 의미 없는 피해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예수가 아브라함보다 먼저 존재했다는 말도 신학적인 수사이지 객관적인 사실은 아니다. 이런 발...

예수 어록(199) 요 8:56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 2019-11-22
  • 조회 수 2372

예수 어록(199) 요 8:56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 아브라함이 예수를 보고 즐거워하고 기뻐하였다는 56절 말씀은 유대인들의 분노를 자아낼만한 발언이다. 유대인들에게 아브라함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백성이라는 사실에 대한 명백한 증거다. 창세기에 따르면 아브라함은 하나님에게서 토지와 후손에 대한 약속을 받았다. 유대인들은 아브라함의 후손이라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꼈다. 사실은 기독교인들에게도 아브라함은 중요한 인물이다. 마태복음 기자는 첫 구절을 ...

예수 어록(198) 요 8:55 나는 그를 알고 또 그의 말씀을 지키노라.

  • 2019-11-21
  • 조회 수 914

예수 어록(198) 요 8:55 너희는 그를 알지 못하되 나는 아노니 만일 내가 알지 못한다 하면 나도 너희와 같이 거짓말쟁이가 되리라 나는 그를 알고 또 그의 말씀을 지키노라. 예수는 하나님 아버지를 “알고” 또 하나님의 “말씀”을 지킨다고 했다. 하나님을 알기에 그의 말씀을 지킨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거꾸로 지금 예수와 논쟁을 벌이는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모르기에 하나님이 말씀을 지키지 않는다. 그들은 속으로 자신들이 하나님을 가장 잘 알고 믿고 그 말씀을 실천한다고 생각했다. 그들의 눈에 예수는 하나님을 모르고 하...

예수 어록(197) 요 8:54 내게 영광을 돌리시는 이는 내 아버지시니

  • 2019-11-20
  • 조회 수 833

예수 어록(197) 요 8:54 내가 내게 영광을 돌리면 내 영광이 아무것도 아니거니와 내게 영광을 돌리시는 이는 내 아버지시니 곧 너희가 너희 하나님이라 칭하는 그이시라. 하나님 아버지가 예수에게 영광을 돌렸다는 의미의 진술이 54절로 이어진다. 영광을 돌렸다는 말은 하나님이 예수에게 생명을 주셨다는 뜻이다. 죽을병에 걸렸다가 치료되는 수준의 생명이 아니라 종말에 완성될 부활 생명이다. 종말에 완성된다는 말이 어떤 이들에게는 한가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지금 당장 먹고사는 문제만도 힘에 부치기 때문이다. 종말...

예수 어록(196) 요 8:51 내 말을 지키면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아니하리라.

  • 2019-11-19
  • 조회 수 1314

예수 어록(196) 요 8:51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내 말을 지키면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아니하리라. 예수는 51절에서 매우 파격적인 발언을 했다. “내 말을 지키면 죽음을 보지 아니하리라.” 예수가 이 문장 그대로 직접 발언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와 비슷한 뉘앙스로 발언했을 수는 있다. “저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생각합니다. 그 하나님은 창조주이시고 우리 유대인 조상을 애굽에서 벗어나서 가나안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하셨으며, 지금도 우리와 함께하시는 분이십니다. 그 하나님이 우리의 구원자라는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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