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일지 4월26일

조회 수 1620 추천 수 0 2020.04.26 21:04:51

대구 샘터교회 주간일지

2020426, 부활절 셋째 주일

 

1) 눈이 밝아짐- 한 제자의 이름이 글로바라 불리는 두 제자가 예루살렘에서 엠마오로 가다가 부활의 예수를 만났다는 특별한 이야기를 오늘 설교의 본문으로 읽었습니다. 누가복음 기자는 이야기를 담백하면서도 따뜻한 느낌을 주는 방식으로 이끌어갔습니다. 이런 이야기는 읽을 때마다 새로운 감동이 밀려옵니다. 제자들의 눈이 밝아져서 부활의 주를 알아보게 되었다고 합니다. 도대체 눈이 밝아졌다는 말이 무슨 뜻일까요? 우리에게 잘 통하는 말로 바꾸면 영적인 눈이 밝아진 것입니다. 영적인 눈이 어떻게 하면 밝아질 수 있을까요? 이런 질문은 계속 이어집니다. 아무도 궁극적인 대답은 알지 못합니다. 진리는 오리무중이라는 뜻이 아니라 우리의 일반적인 인식을 뛰어넘을 정도로 깊다는 뜻입니다. 그 깊이를 보려면 영혼의 눈이 밝아야 합니다. 설교에서 짚은 것처럼 사과에서 지난 이른 봄의 사과꽃과 벌과 비와 햇살과 안개와 벌레를 볼 줄 아는 시인처럼 예수를 살아있는 자로, 즉 사랑의 능력으로 깨닫는 사람은, 따라서 죄와 죽음에서 해방되어서 두려워하지 않고 찬양하듯이 삶을 살아가는 사람은 눈이 밝아진 제자입니다.

 

2) 모이는 예배- 많은 교회가 오늘부터 모이는 예배를 드립니다. 우리 교회는 정부의 권고에 따라서 55일까지 온라인 예배로 드립니다. 510일에는 모이는 예배가 가능할 것으로 보입니다. 그사이에 비상상황이 일어나지 않는 걸 전제하고 말입니다. 오늘은 운영위원 중심으로 몇몇 교우들이 더 모여서 전체 열한 명이 모여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오전에 교회당에 도착해보니 세 분이 미리 와서 청소하고 계시더군요. 오랜만에 먼지를 씻어낸 셈입니다. 속이 다 시원했습니다. 거리 두기 방식으로 몇 명이 모일 수 있는지 검토해봤습니다. 예배실에는 30여 명이 가능하고, 친교실에는 10여 명이 가능합니다. 전체로 40명은 거리 두기 방식으로 모일 수 있습니다. 때에 따라서 강단이 보이지 않지만, 소리는 들을 수 있는 자리에 앉을 수도 있고, 가족끼리는 거리 두기를 하지 않아도 됩니다. 이런 전반적인 상황을 생각하면 교우들이 격주로 참석하면 충분할 것으로 보입니다. 어린이와 학생 모임은 당분간 진행하기 어렵습니다. 운영위원회에서 충분히 의논해서 구체적인 참석 방식을 가능한 한 빨리 교우들에게 전달하기로 했습니다. 마스크를 모두 지참하기 바랍니다. 510일 주일부터는 원래 예배 위원들이 순서를 감당하기 바랍니다.

 

3) 수요 성경공부- 수요공부를 유튜브 온라인으로 진행합니다. 매주 수요일 밤 9:00-10:00에 진행합니다. 시청을 원하는 분들은 유튜브에 들어가서 정용섭채널을 선택하여 들어오셔서 일단 구독을 눌러주십시오. Google에 로그인하면 라이브로 채팅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질문하고 저의 대답을 들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이번 수요일에는 예레미야 8장을 공부합니다. 월요일 밤(9)에 시험 방송을 해볼 예정이니 들어올 분들은 들어와 보세요.

 

4) 설교 준비- 저는 평생 설교자로 살았고, 지금도 설교자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제 익숙해져서 큰 준비를 하지 않아도 설교할 수 있을 때가 되었는데도 여전히 매번 진땀을 흘리듯이 설교를 준비하고 예배 시에 선포합니다. 하나님 말씀 앞에 선다는 건 진땀 나는 일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겠지요. 목요일에 주보를 준비하면서 설교할 성경 본문을 읽고 묵상합니다. 시간이 있을 때는 목요일에 설교의 기초를 세웁니다. 기초는 집 지을 때 만드는 설계도와 같습니다. 집은 설계도대로만 지으면 되지만 설교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처음 생각했던 방향이 설교문을 작성할 때 조금씩 달라지기도 하고, 크게 달라질 때도 있습니다. 금요일은 온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서 200자 원고지 36장 분량의 원고를 작성합니다. 토요일에는 그 원고를 몇 번에 걸쳐서 수정합니다. 보통 3~4번 정도는 반복해서 읽고 교정합니다. 듣는 분들은 별 대단한 설교도 아닌데, 그렇게 신경 쓰냐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당사자의 부담감은 큽니다. 토요일 오후 3시쯤에 출력까지 다 끝내고 저의 설교 원고를 원하는 분들에게 메일로 보냅니다. 설교를 구상하고 쓰고 교정하는 과정에서 앞이 딱 막히는 순간도 있습니다. 너무 뻔한 말을 하는 건 아닌가, 어려운 현실을 살아가는 교우들에게 너무 고상한 말로 들리지는 않을지, 나 자신에게 충분히 소화되지 않은 말을 하는 건 아닌지, 복잡한 생각이 들 때도 많습니다. 설교 준비와 설교 실행은 또 다른 문제입니다. 설교자의 짐을 벗으면 행복할까요? 행복하지는 않아도 홀가분하기는 하겠지요.

 

5) 온라인 예배- 오늘 온라인 예배가 이전과 달라진 점을 발견하셨는지요.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예배에 몇 교우가 더 참석하셔서 전체적으로 예배 분위기가 살아났을 겁니다. 회중의 찬송가 소리도 전달되었을 거고요. 저도 완전히 텅 빈 자리를 보고 설교하는 때보다 오늘의 느낌이 더 좋았습니다. 유튜브와 아프리카TV 양 채널로 방송이 안정적으로 나갔습니다. 담당자 이*희 집사가 요즘 억수로 고생합니다. 고맙습니다. 유튜브에서 다운로드를 받아 설교 부분만 끊어내서 대구성서아카데미 사이트 설교 메뉴에 올렸습니다. 거기에 보니 영상의 선명도가 크게 떨어졌습니다. 특별한 방송 장비 없이 순전히 스마트폰만으로 방송하기에 어쩔 수 없는 건지, 아니면 화질을 높일 방법이 있는지 연구해봐야겠습니다. 사실은 설교자의 얼굴이 선명하게 보이지 않아도 소리만 잘 전달되면 충분하긴 합니다.

 

6) 칼라 주보- 오랜만에 오늘 칼라 주보가 나왔습니다. 표지에 실린 튤립 사진이 기가 막힐 정도로 예쁘네요. 흔한 표현이긴 하지만 창조주 하나님의 손길은 놀랍고 신비롭습니다. 사진을 다시 올려볼 테니 한번 보십시오. 코로나19 사태로 축 처졌던 마음에 생기가 돌게 될 겁니다. 주보 담당자 정*향 집사에게 감사드립니다.

     4월26일.PNG

 

7) 왈츠- 예배를 마치고 뒷정리를 한 다음 1층으로 올라와서 마당에 나가니 어디선가 멋진 클래식 연주 소리가 들리는 겁니다. 알고 봤더니 1층 무드(MOOD) 카페의 실외 스피커에서 나오는 소리였습니다. 곡 이름은 모르겠으나 왈츠라는 사실만은 확실히 알겠습니다. 주로 오스트리아 수도 비인(Wien)을 대표하는 춤곡이 왈츠입니다. 저의 집사람이 커피 원두를 볶고 있는 사장에게 말을 붙이니 요즘 클래식 음악이 점점 더 마음에 들어서 자주 튼다고 말씀하시네요. 왈츠 곡에 맞춰서 춤이라도 추고 싶은 기분이 들더군요. 카페 분위기가 어떤지 궁금하신 분들이 있을 겁니다. 대구의 코로나19 증상이 많이 좋아진 탓인지 카페 분위기도 한결 좋아졌습니다. 출입문 바깥에 화사한 꽃을 심은 큰 화분이 몇 개 놓였습니다. 카메라가 있으면 사진을 찍고 싶었습니다. 기억만 할 수 있으면 오는 주일에 찍어보겠습니다. 카페 사장도 무슨 좋은 일이 있는지 훨씬 더 친근하게 대하십니다. 교우들과 함께 카페에서 차를 마시면서 담소를 나누던 시절이 그립군요. 모든 건 지나갑니다. 다시 돌아오는 순간도 있으나 돌아오지 못하는 순간도 있습니다. 모든 순간을 귀하게 여겼으면 합니다.

 

8) 헌금: 2,370,000(통장 입금 426일 낮 1230분 기준/ 외부 교인 *, *란 헌금 포함)

농협 301-0243-3251-71(대구 샘터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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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43]웃겨

2020.05.04 19:26:00

목사님께서 그렇게 설교준비를 하시는군요...!

평생 그렇게 설교를 준비해 오셨으니 자체가 구도자의 길이었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설교를 듣는 자세도 가다듬게 되네요.

지난 주에는 빨간 튤립이 사진이 눈에 확 들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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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어록(317) 요 14:23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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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어록(317) 요 14:23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 ”라는 문장은 이미 15절에 언급된 것이다. 이와 비슷한 문장은 여러 번 나왔다. 예수를 사랑하는 것과 예수 말씀을 지키는 일이 제자들에게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을 요한복음이 강조한다. 요한복음의 마지막 단락인 21장에도 같은 이야기가 나온다. 부활의 예수는 베드로에게 “나를 사랑하느냐?”라는 질문과 “내 양을 먹이라.”라는 명령을 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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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샘터교회 주간일지 2020년 4월26일, 부활절 셋째 주일 1) 눈이 밝아짐- 한 제자의 이름이 ‘글로바’라 불리는 두 제자가 예루살렘에서 엠마오로 가다가 부활의 예수를 만났다는 특별한 이야기를 오늘 설교의 본문으로 읽었습니다. 누가복음 기자는 이야기를 담백하면서도 따뜻한 느낌을 주는 방식으로 이끌어갔습니다. 이런 이야기는 읽을 때마다 새로운 감동이 밀려옵니다. 제자들의 눈이 밝아져서 부활의 주를 알아보게 되었다고 합니다. 도대체 눈이 밝아졌다는 말이 무슨 뜻일까요? 우리에게 잘 통하는 말로 바꾸면 영적인 ...

예수 어록(316) 요 14:21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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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어록(316) 요 14:21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서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기독교 신앙에서 핵심은 예수와의 일치다. 다른 말로는 예수 안에 존재하는 것이다. 앞 구절인 20절에 언급된 내용이 이를 가리킨다. 예수 안에 존재한다는 것은 예수의 계명을 지키는 데서 확인할 수 있다. 21절이 말하는 내용이다. 21절의 논리를 다시 차례대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예수의 계명을 지키는 자는 예수를 사랑하는 자다. 예수를 자랑하는...

예수 어록(315) 요 14:20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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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어록(312) 요 14:17 그는 진리의 영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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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어록(312) 요 14:17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파라클레토스”는 진리의 영이라고 했다. 진리의 영이라는 표현이 기독교 신앙을 이해하는 데 정말 중요하다. 오해도 많다는 의미이다. 진리의 영을 이해하려면 진리(알레테이아) 개념을 먼저 알아야 한다. 진리라는 단어 자체는 어렵지 않다. 진리는 참된 것을 가리킨다. 그런데 무엇이 참된 것인지, 참되다는 기준은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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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어록(311) 요 14: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보혜사”라는 특이한 단어가 나왔다. 헬라어 “파라클레토스”의 번역이다. 루터 성경의 파라클레토스 단어에는 위로하는 자, 또는 대신 기도해주는 자라는 각주가 달렸다. 우리말 성경의 보혜사(保惠師)는 지켜주고 은혜를 베풀 스승이라는 뜻이다. 뜻은 좋은데 낱말 자체의 어감은 편하게 와닿지 않는다. 요즘 이런 단어를 쓰는 사람은 없다. 차라리 위로자라고 번역하는 게 나을지 모르겠다. 우리 기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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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샘터교회 주간일지 2020년 4월19일, 부활절 둘째 주일 1) 도마 이야기- 사도 도마는 의심 많은 사람이 아니라 합리적인 사람입니다. 며칠 전에 죽었던 예수를 “보았다.”라는 제자들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다는 건 말이 안 됩니다. 물론 믿을 수도 있긴 합니다. 자신의 주체적인 생각을 모두 포기할 때만 가능합니다. 요한복음 기자는 도마를 비판하기 위해서 그를 오늘 본문의 주인공으로 삼은 게 아닙니다. 오히려 칭찬하려는 것일 수 있습니다. 그는 예수를 직접 목격한 사람과 보지 못한 사람을 연결해주는 역할을 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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