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일지 5월10일

조회 수 1896 추천 수 0 2020.05.11 21:06:37

대구 샘터교회 주간일지

2020510, 부활절 다섯째 주일

 

1) 원더풀 라이트- “원더풀 라이프라는 영화가 있다고 합니다. 미리 알았으면 설교문 작성하기 전에 한번 봐두었을 텐데요. 오늘 설교에서 짚었지만, 베드로 사도가 말하는 기이한 빛을 NIV 성경은 원더풀 라이트라고 번역했고, 루터 성경은 분더바레 리히트라고 번역했습니다. 영어 원더풀과 독어 분더바는 비슷한 뜻입니다. 우리말 성경의 기이한은 약간의 부정적인 뉘앙스가 있어서 틀렸다고 말할 수는 없으나 바람직한 번역은 아닙니다. 차라리 놀라운이라거나 환상적인이라고 번역하는 게 낫지요. 어쨌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생명을 경험한 사람은 자신의 삶을 원더풀이라고 외칠 수 있어야 합니다. 모두가 원더풀하게 살아가도록 돕기 위해서라도 최저 생계비는 나라가 책임져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일용할 양식이 확보되지 않으면 아무리 마음을 열려고 해도 잘 안 되기 때문입니다. 이런 점에서 베드로 사도가 말하는 원더풀 라이트신앙을 실질적인 삶의 내용으로 아는 기독교인이라면 이런 복지 제도를 끌어낼 수 있도록 투쟁해야 하지 않겠는지요.

 

2) 모이는 예배- 오늘(510) 거의 석 달 만에 모이는 예배가 진행되었습니다. 등록 교인 외 4명 포함하여 서른 명 가까이 모였습니다. 첫 예배가 복잡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다른 교우들을 배려하겠다는 마음이 서로 통했는지 오히려 너무 적게 참석해서 적적했습니다. 시니어 신자들은 운영위원장 외에는 다 빠지셨네요. 제가 보기에는 적당하게 띄어 앉기를 하더라도 40명 이상은 충분히 앉을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모임 수칙을 그대로, 그러나 재미있게 다 지켰습니다. 체온, 손 소독, 공간 소독, 참석자 명단 작성, 마스크 쓰기 등등입니다. 명단 작성과 손 소독제를 작은 걸상에 올려놓아서 사용하기가 약간 불편했습니다. 물품을 올려놓을 작은 탁자를 준비하는 게 좋겠습니다. 안내자는 예배 참석자들이 앞에서부터 앉도록 안내하면 좋겠습니다. 다른 교우들의 체온은 대개 36.5도에 가까웠는데, 저의 체온은 36도였습니다. 제가 차가운 사람인가 봅니다. 전체적으로 오늘 준비가 잘 되었습니다. 수고하신 분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교우 여러분, 코로나19 사태가 여전히 진행 중이니 조심한 일은 최대한 조심하면서 평상심은 잃지 말고 지내십시오. 예배 참석은 일단 격주를 기준으로 하지만 교우들의 참석 추이를 보면서 좀 더 자주 나올 분들은 나와도 좋습니다. 예배실 문을 열어놓으면 친교실 자리에서 넉넉하게 예배드릴 만합니다.

 

3) 소독- 예배 전에 제가 화장실에 다녀오면서 층계를 내려오다가 유(U)턴하는 위치에서 미끄러져서 발을 헛디딜 뻔했습니다. 아마 소독제를 바닥에 뿌려서 그런지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공간 소독은 예배 전이 아니라 예배 후에 하는 게 좋겠습니다. 다른 이유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어쨌든지 사람들이 발을 딛는 부분은 미끄러지지 않도록 후속 조치를 해야겠습니다. 사실 우리 교회당은 평소에 사람들이 왕래하지 않는 장소라서 소독이 필요 없긴 합니다. 만에 하나 어떤 이의 코로나바이러스가 떨어졌다고 하더라도 일주일 후에는 살아남지 못할 테니까요. 우리가 이전처럼 함께 식사 친교까지 참여할 수 있는 날이 오기는 올까요? “포스트 코로나19” 사태를 교회도 피하지 못하겠지요. 거리 두기와 비대면이 일상으로 자리 잡게 될 때 교회 형태는 과연 어떻게 변하게 될까요? 대형교회당은 쓸모없는 시대가 올 것이라는 사실만은 분명해 보입니다.

 

4) 강단- 오늘 온라인 예배 영상을 보신 분들은 확인했겠지만, 화면을 크게 잡았습니다. 이전에는 설교단을 중심으로 잡았었는데 이번에는 전자 오르간이 나올 정도로 넓어졌습니다. 직접 예배에 참석하신 분들은 강단 오른편의 열린 모습을 직접 확인했을 겁니다. 원래 유치원 강당으로 사용하던 그곳에 처음 우리가 들어갔을 때 십자가만 달았지 그 어디에도 손을 대지 않았습니다. 예배실 분위기를 조성할 수 있도록 인테리어를 할만한 여유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그런 때가 온 게 아닐는지요. 53일 운영위원 회의 때 정용섭 목사와 신*국 집사가 강단 꾸미는 작업의 책임을 맡았습니다. 현재 강단 조건과 우리가 감당할만한 비용 안에서 어떻게 변화를 주는 게 좋을지, 저도 알아보고 있지만, 여러분도 생각해보고 의견을 주기 바랍니다. 누구라도 한번 와 보면 다시 와보고 싶을 정도의 영적 기품과 예술적인 미학이 드러나는 강단이 되었으면 합니다. 우리 교회에 이런 미적 감각이 뛰어난 분들이 여럿 있습니다. 어떤 작품이 나올지 기대하십시오. 오늘 예배드린 강단 모습을 한 번 보십시오.

5월10일 강단.PNG

 아래는 다른 교회의 강단 모습니다. 참고 삼아서 올렸습니다. 

강단1.PNG 강단2.PNG 강단3.PNG


5) 목사 자리- 대구 샘터교회가 예전 예배를 시작하면서, 목사는 예배 순서에서 자기가 맡은 역할이 있을 때만 강단에 올라가고, 나머지 순서에는 회중들과 같은 자리에 앉는 전통을 세웠습니다. 코로나19 사태로 라이브 온라인 예배만 드리면서 회중 없는 예배의 단점을 조금이라도 보강하려고 제가 예배 시작부터 강단에 올라갔습니다. 앞으로 계속해서 강단에 올라가서 예배를 진행할 생각입니다. 온라인 화면에 사람이 나오지 않을 때는 어딘가 허전해 보였는데, 이제 사람이 나오니 생기가 있어 보인다는 의견을 주신 교우가 있습니다. 그 의견 때문만이 아니라 종합적으로 생각해볼 때 이제는 목사 자리로 강단 위가 괜찮아 보입니다. 우리의 동영상 촬영 시스템이 예배 모습 전체를 입체적으로 담아낼 수 있으면 강단을 비워놓아도 허전해 보이지는 않겠지요. 현재 우리의 동영상 촬영 장비는 고정된 자리에 놓인 스마트폰 한 대입니다. 이를 극복할 방법을 천천히 생각해봅시다.

 

6) 마스크- 모든 교우가 마스크를 쓰고 예배드리는 상황을 누가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초현실적으로 보이는 장면이 현실이 되었습니다. 교우들이야 똑같이 강단을 향해서 앉아있으니까 느끼지 못하겠지만 설교자는 마스크를 쓴 교우들을 정면으로 바라보니까 그 분위기가 어떤지 실감할 수 있습니다. 거기 앉은 이들의 눈빛만으로 교우들이 설교를 어떻게 듣는지 느껴야 합니다. 저는 설교 시간에 교우들보다는 말씀에 집중하는 편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분들 앞에서 설교하는 게 어색합니다. 표정을 전혀 읽을 수 없거든요. 앞으로 설교 내용에 공감되면 고개를 살짝이라도 끄덕여주십시오. 어떤 분은 제 설교를 열심히 받아적습니다. 간단히 메모하는 분도 계시구요. 어쨌든지 어색하더라도 정부가 제시한 대중 모임의 수칙이니 마스크를 벗을 수는 없습니다. 반주자 자리는 목사 자리와 마찬가지로 회중들로부터 뚝 떨어져 있으니 예배 중에는 마스크를 쓰지 않아도 됩니다. 혹시라도 마스크를 챙기지 못하고 예배에 온 분을 위해서 스페어로 비치했으면 합니다. 교우 중에서 여유가 있는 분은 오는 주일에 가져오십니다.

 

7) 중보기도- 주보에 나갔고, 교회 밴드에도 나갔지만, 무안에 사는 김*관 집사가 뇌출혈로 53일 저녁에 쓰러졌습니다. 지금은 상황이 많이 좋아져서 중환자실에서 일반병실로 옮겼고, 혈전 제거 약물 투여와 함께 오른편 팔다리 물리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아내인 백*은 집사도 정신없이 지내다가 이제 안정감을 찾았습니다. 김 집사는 워낙 건강 체질이라 정기 건강진단에서 나온 문제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다가 이런 일을 당한 것으로 보입니다. 곧 회복되어 정상생활이 가능하겠지요. 중보기도를 부탁드립니다.

 

8) 헌금: 670,000(통장 입금 포함 510일시 30분 기준, 등록 교인 외- *, *)

농협 301-0243-3251-71(대구 샘터교회


[레벨:29]모모

2020.05.15 01:31:21

1) MIV성경을 NIV성경으로 바꿔야 할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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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77 21:21 그 열두 문은 열두 진주니 각 문마다 한 개의 진주로 되어 있고 성의 길은 맑은 유리 같은 정금이더라 12절에서 언급된 열두 문이 21절에서 다시 소개됩니다. 각각의 문마다 한 개의 진주로 되어있습니다. 진주 한 알이 박혀 있다는 뜻인지 아니면 문 전체가 진주로 되어있다는 것인지 분명하지는 않습니다. 문을 만들만한 크기의 진주는 세상에 없습니다. 문이 진주 모양을 했다는 뜻인가요? 그냥 편하게 진주로 된 문이라고 생각하면 되겠지요. 문에 이어지는 길이 나옵니다. 길은 ‘맑...

계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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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76 21:20 다섯째는 홍바노요 여섯째는 홍보석이요 일곱째는 황옥이요 여덟째는 녹옥이요 아홉째는 담황옥이요 열째는 비취옥이요 열한째는 청옥이요 열두째는 자수정이라 다섯째부터 열두째까지 당시의 모든 보석이 열거됩니다. <새번역> 성경으로 다시 읽어보겠습니다. “다섯째는 홍마노요, 여섯째는 홍옥수요, 일곱째는 황보석이요, 여덟째는 녹주석이요, 아홉째는 황옥이요, 열째는 녹옥수요, 열한째는 청옥이요, 열두째는 자수정이었습니다.” 이름만 들어도 눈이 휘둥그레지는 보석들이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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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75 21:19 그 성의 성곽의 기초석은 각색 보석으로 꾸몄는데 첫째 기초석은 벽옥이요 둘째는 남보석이요 셋째는 옥수요 넷째는 녹보석이요 열두 사도의 이름이 각각 기록된 열두 기초석도 보석으로 꾸며졌다고 합니다. 19절에는 네 가지가 나옵니다. 벽옥, 남보석(사파이어), 옥수, 녹보석(비취옥)입니다. 옥수(玉髓)는 낯선 단어인데, 보석의 일종으로 보면 됩니다. 정말 휘황찬란한 모습으로 묘사되었습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렸다시피 요한은 자기가 살아가면서 본 것 중에서, 그리고 상상할 수 ...

계 2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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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74 21:18 그 성곽은 벽옥으로 쌓였고 그 성은 정금인데 맑은 유리 같더라 18절에 다시 벽옥과 정금(순금)이 나옵니다. 요한이 어디서 이런 건축물을 실제로 본 적이 있을까요? 사람은 건축물에 대한 욕망이 에로스처럼 강합니다. 더 크고, 더 아름답고, 더 빛나는 건축물을 향한 욕망 말입니다. 그런 건축물을 통해서 자기의 이름을 빛내고, 더 근본에서는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려고 합니다. 가끔은 사랑하는 아내나 연인을 위해서 천문학적 비용이 들어가는 건축물을 짓기도 합니다. 성경에 나오...

계 21:17

  • 2024-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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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73 21:17 그 성곽을 측량하매 백사십사 규빗이니 사람의 측량 곧 천사의 측량이라 성곽은 144 규빗이라고 합니다. 1 규빗이 대략 50cm 정도니까 72m가 되는 셈입니다. 성곽, 즉 성벽의 전체 둘레는 물론 아니고, 높이이거나 두께라고 보는 게 맞겠지요. 앞 구절에서 성체의 높이가 2,304km라고 했으니까 72m 높이의 성벽은 너무 낮아 보입니다. 144규빗은 성벽의 두께라고 보아야겠습니다. 그런 정도라고 하더라도 어마어마한 두께입니다. 옛날에는 철근 콘크리트 없이 순전히 기하학적인 기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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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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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72 21:16 그 성은 네모가 반듯하여 길이와 너비가 같은지라 그 갈대 자로 그 성을 측량하니 만 이천 스다디온이요 길이와 너비와 높이가 같더라 거룩한 성에 대한 묘사를 따라가기가 쉽지 않습니다. 일단 위 16절을 문자 그대로 생각해봅시다. 거룩한 성은 정육면체이거나 피라미드 모양의 탑입니다. 가로와 세로와 높이가 각각 12,000 스다디온이라고 합니다. 1스다디온은 192m라고 하니(계 14:20) 자그마치 각각의 길이가 2,304km에 해당하는 크기입니다. 저런 크기의 성 앞에서는 높이가 대략 ...

계 21:15 [2]

  • 2024-04-05
  • 조회 수 163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71 21:15 내게 말하는 자가 그 성과 그 문들과 성곽을 측량하려고 금 갈대자를 가졌더라 요한에게 말하는 자는 앞서 계 21:9절에 나왔듯이 일곱 천사 중의 한 천사입니다. 그 천사가 성과 문과 성벽을 측량하려고 합니다. 보통 자가 아니라 금으로 된 자막대기입니다. 요한은 거룩한 성이 얼마나 고귀한지를 이런 방식으로 표현하는 중입니다. 그 어떤 미사여구를 사용해도 재창조될 새 예루살렘을 정확하게 묘사할 수는 없습니다. 애벌레는 아무리 노력해도 나비의 세계를 정확하게 경험할 수 없...

계 21:14 [2]

  • 2024-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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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70 21:14 그 성의 성곽에는 열두 기초석이 있고 그 위에는 어린 양의 열두 사도의 열두 이름이 있더라 12절에는 성곽에 열두 문이 나오는데, 여기 14절에는 성곽에 열두 기초 석이 나옵니다. 열두 문에는 열두 지파 이름이 기록되었고, 여기 기초석(주춧돌)에는 열두 사도의 이름이 기록되었다고 합니다.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 전통이 새 이스라엘인 교회 공동체의 열두 사도에게 이어졌다는 뜻으로 봐도 좋겠지요. 이런 표현은 상징입니다. 열두 지파나 열두 사도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니까요. ...

계 21:13 [2]

  • 2024-04-03
  • 조회 수 125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69 21:13 동쪽에 세 문, 북쪽에 세 문, 남쪽에 세 문, 서쪽에 세 문이니 열두 문이 동서남북 사방에 나뉘어 있습니다. 이런 분류가 무슨 뜻인지 정확하게는 모르겠는데, 거룩한 성이 사방으로 통한다는 뜻이 아닐는지요. 주님의 몸이며 거룩한 성이면서 새 예루살렘인 교회는 사방을 향해서 닫혀 있는 게 아니라 활짝 열려있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교회는 초기부터 문을 걸어 잠그고 자기들끼리만 소통하는 밀의 종교가 아니라 땅끝까지 이르러 증인이 되려는 보편 종교의 길을 걸었...

계 21:12 [4]

  • 2024-04-02
  • 조회 수 167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68 21:12 크고 높은 성곽이 있고 열두 문이 있는데 문에 열두 천사가 있고 그 문들 위에 이름을 썼으니 이스라엘 자손 열두 지파의 이름들이라 새 예루살렘인 거룩한 성에 대한 설명이 약간 복잡해집니다. 묵시적 상상력에서 표상된 그림같이 멋진 성입니다. 판타지 애니메이션 영화에 나올만한 모습입니다. 크고 높은 성곽에 열두 문이 있다고 합니다. 성곽은 성벽을 가리킵니다. 열두 개는 많기는 합니다. 일반적으로 볼 때 성을 들락거리는 성문은 숫자가 적을수록 좋습니다. 관리하기에 편하...

계 21:11 [2]

  • 2024-04-01
  • 조회 수 139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67 21:11 하나님의 영광이 있어 그 성의 빛이 지극히 귀한 보석 같고 벽옥과 수정 같이 맑더라 11절부터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묘사됩니다. 앞에서 저는 ‘어린 양의 아내’라는 표현을 근거로 본문이 말하는 새 예루살렘이 교회를 의미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11절 이하에 나오는 묘사는 천국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입니다. 요한이 이 대목에서 교회를 염두에 둔 것인지, 아니면 최후의 심판 이후에 재창조된 새 하늘과 새 땅을 묘사한 것인지 분명하지가 않습니다. 혹은 종말 이후의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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