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일지 6월14일

조회 수 1209 추천 수 0 2020.06.15 21:00:51

대구 샘터교회 주간일지

2020614, 성령강림 후 둘째 주일

 

1) 하나님의 전능- 개인적인 이야기입니다. 저는 설교자로 평생을 살았습니다. 십여 년 전에는 설교 비평으로 악명이 높았습니다. 이제 담임 목사직과 설교자 역할을 내려놓아도 충분한 70세에 가까이 갑니다. 이 나이가 되니 성경과 신학과 영성의 세계가 조금 더 선명해집니다. 이전에 알았다고 생각했던 것이 사실은 충분하지 못했다는 의미입니다. 한편으로는 기쁘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허탈하기도 합니다. 앞으로 10년이 지나면 지금의 내가 여전히 부족했다고 느끼겠지요. 하나님 안에서는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어린아이라는 말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어쨌든지 이런 과정에서 허탈보다는 기쁨이 더 커서 다행입니다. “못하실 일이 없는 하나님이라는 오늘 설교도 10년 전보다 훨씬 더 깊어진 설교였습니다. 교우들은 어떻게 들었는지 모르겠으나 저 스스로 그렇게 느낍니다. 자신의 설교는 자신이 가장 잘 압니다. 예배를 대하는 느낌과 태도 역시 세월의 무게와 더불어 더 묵직하게 다가온다는 게 다행입니다. 오늘 설교한 것처럼 하나님의 전능을 실제로 누리면서 살아가도록 앞으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내 영혼의 눈만 밝아지면 말로만이 아니라 실제 삶에서 그 일이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2) 공간 경험- 오늘도 온라인과 오프라인 예배가 병행되었습니다. 우리 교회만이 아니라 대한민국 대다수 교회가 이런 방식으로 예배를 진행합니다. 코로나19 사태가 잠잠해져도 온라인 라이브 예배는 계속될 겁니다. 그 이유는 교우 여러분이 다 알기에 여기에 반복하지 않겠습니다. 문제는 온라인 예배가 신학적으로 정당하냐, 하는 질문입니다. 신학교 예배학 교수들이 이 문제를 아직 진지하게 다루지 않습니다. 이게 뜨거운 감자이기 때문입니다. 온라인 예배를 정당화하면 모이는 예배는 급격하게 축소되고 더 나아가서 교회 공동체의 구심력이 급속하게 해체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이 문제는 사이버 교회가 가능하냐, 하는 질문까지 이어집니다. 저는 일단 두 가지 사실만 간단히 짚겠습니다. 하나는 온라인 예배와 사이버 교회의 신학적 정당성 여부와 관계없이 교회는 그런 미래를 수용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입니다. “옛날에는 매 주일 교회에서 모였다는군.”이라는 말을 우리 믿음의 후손들이 하게 되겠지요. 다른 하나는 온라인 예배로는 현장 예배의 영적 역동성을 담보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현장 예배의 영적 역동성은 공간 경험에서 주어집니다. 온라인에서는 실질적인 공간 경험이 불가능합니다. 화상으로 대화하는 것과 직접 만나서 대화하는 걸 비교해보면 그 차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온라인 예배가 오프라인 예배를 완전히 대체하기는 불가능하다는 사실과 그런 미래는 숙명이라는 사실이 충돌합니다. 이 딜레마를 교회가 헤쳐나갈 수 있을까요? 그렇다면 그 방법은 무엇일까요?

 

3) 예배 준비- 아침에 예배당에 들어가니 이미 여러 교인이 청소를 대략 끝낸 상태였습니다. 다른 때보다 예배 준비위원이 일찍 모였나 봅니다. 6월 담당 운영위원인 김*현 집사, 둘째 주일 예배 준비 담당인 이*(안내) 집사, *용 집사 이*배 집사, *선 집사, *선 집사입니다. 저희 부부가 들어가는 똑같은 시간에 운영위원장 정*진 장로 부부도 들어왔습니다. 이어서 예배 라이브 방송 담당 이*희 집사 부부와 딸, 그리고 예배 사회자 류*규 집사와 아들이 들어왔습니다. 오는 621일 주일 예배 준비는 은*(안내) 집사, *섭 집사, *진 장로, *숙 집사, *자 집사이고, 예배 사회자는 박*연 집자, 성경봉독은 신*혜 집사, 반주는 이*혜 집사입니다. 모두 예배 공동체라는 대구샘터교회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서 연대하는 믿음의 동지들입니다. 주님의 평화가!

 

4) 제습기- 주일 아침까지 비가 내렸습니다. 가뭄이 해결되었습니다. 작은 정원과 텃밭을 가꾸는 저로서는 흐뭇한 순간이었습니다. 비가 오고 더위가 겹치니 대구샘터교회가 예배당으로 사용하는 지하실에 습기가 많아졌습니다. 오늘부터 제습기를 틀었습니다. 예배당에 두 대, 친교실에 한 대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혁 집사가 몇 년 전에 설치한 겁니다. 물이 제습기 통에 어느 정도 차면 지상으로 배수되도록 펌프장치도 되어있습니다. 그 이후로 여름이 되어도 아무 걱정 없이 쾌적하게 예배할 수 있었습니다. 그 이전에는 여름 내도록 습도도 높고, 따라서 곰팡이에서 나는 냄새도 크게 불편했습니다. 제습기는 앞으로 24시간 가동됩니다. 예배 위원 중에서 한 분이 설교 시간에만 제습기를 잠시 멈춰주면 고맙겠습니다.

 

5) 더치페이- 예배 마치고 돌아갈 분들은 돌아가고, 뒷정리할 분들은 정리한 다음에 8명이 남았습니다. 1층 카페에 모여서 그냥 집으로 가나, 간단하게나마 점심을 함께 먹냐, 하고 의논하다가 더치페이로 점심을 먹게 되었습니다. 모이는 예배가 다시 시작된 510일 이전 주일부터 대충 여섯 번에 걸쳐서 소규모로 점심을 사 먹었습니다. 그때는 한 사람이 내는 방식으로 돌아갔습니다. 저도 한 번 냈습니다. 이렇게 개인이 몰아서 내기보다는 각자 자기 먹은 값을 내는 게 좋겠다는 생각으로 이번 주일에 처음 실행했습니다. 다음 주일도 그렇게 진행합니다. 예배 후에 그냥 돌아가기 섭섭한 분들은 자기 점심값을 준비해서 참가하십시오. 그동안은 인근의 칼국수 집에서 먹었는데, 오늘은 교회당 건물 1층 무드 카페에서 먹었습니다. 카페이긴 하지만 경양식도 먹을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파스타를 먹었습니다. 몇 가지 종류가 되는데, 이름은 기억하지 못하겠습니다. 가장 일반적인 파스타는 크림을 소스로 한 겁니다. (, )아메리카노 커피 포함하여 1만 원입니다. 어떤 집사가 서비스로 피자 한 판을 샀습니다. 여덟 조각이라서 한 조각씩 딱 맞게 나눠 먹을 수 있었습니다. 피자 한 판에 얼마 하는지 다음에 알아봐야겠습니다. 맛있네요.

 

6) 결혼 주례- 지난 토요일 오전 11시에 정*, *언 청년의 결혼식이 대전에 열렸습니다. 주례를 맡은 저는 동대구역에서 오전 911분 기차를 타고 올라갔습니다. 저 외에 교회에서는 김*, *, *나 청년 교우가 동참했습니다. 세 분은 운영위원으로도 수고하는 김*현 집사 차를 타고 왔다고 합니다. 내려올 때는 저도 그 차에 함께 탔습니다. 시간에 크게 쫓기지 않고 청년들과 시간을 함께 보낼 기회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원래는 내려오는 기차도 예약했었거든요. 오랜만에 이런 결혼식에 참석하니 제가 젊어진 느낌이었고, 저 마음 깊은 곳에서 어떤 향수도 솟아나는 기분이었습니다. 한동대학교 합창단이 와서 축가를 불렀습니다. 녹화되었다면 나중에라도 한 번 더 듣고 싶은 합창이었습니다. 주례사가 궁금하신가요? 핵심은 둘이 하나가 되려고 너무 애를 쓰지 말고 적당한 거리를 둔 채 한 방향을 향해서 친구처럼 사는 게 좋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말 그대로 소울(soulmate)이자 도반으로 사는 겁니다. 결혼식 식당은 정말 축제 분위기가 나더군요. 모두 마스크를 벗고 대화를 나누면서 음식을 나눠 먹을 수 있었습니다. 음식이 고급이었습니다. 저는 원래 소식하니까 그런 뷔페식당에서는 기를 펴지 못합니다. 그래도 골고루 맛있게 먹었습니다. 두 사람은 현풍에 살림집을 마련했습니다. 웬만큼 정리되면 두 사람을 교회에서 한 번 보게 될 겁니다. 신부의 얼굴에 환한 웃음꽃이 지지 않아서 옆에서 보는 우리도 마음이 훈훈해졌습니다. 주님 안에서 사랑이 넘치고 행복한 가정이 되기를 바랍니다.

 

7) 이모저모- 구미에 사는 이*민 집사가 큰아들 세현이와 함께 코로나19 사태 이후로 처음으로 예배에 나왔습니다. 가족이 다 잘 있다고 합니다. *규 집사 큰아들 서진도 오랜만에 봤고, *근 집사의 둘째 아들 영도도 오랜만이었습니다. 서진이와 영도는 예배 후에 스마트폰으로 서로 게임을 잠시 하더군요. 그러고 보니 오늘 주일학교 어린이가 4명이나 나왔네요. 아니 5명입니다. 아빠 박*준 집사를 따라서 하민이나 왔습니다. 제가 하민이에게 엄마는 어디 가셨니?” 하고 묻자 아프세요.”라고 답합니다. *희 집사가 몸살인가 봅니다. 포항에 거주하는 정*은 집사도 몸살로 결근하면서 며칠 앓았다고 합니다. 1층 카페 이야기입니다. 카페 사장이 토요일에 출판 기념회를 열었더군요. 가족의 우애를 주제로 한 책이라고 합니다. 제가 축하의 말을 전했습니다. 오늘 점심을 어떻게 할까 하다가 그분에게 점심 식사 되냐고 묻자 원래는 식당 주모가 음식을 만드는데 오늘은 휴무라서 자신이 대신 만들겠다고 하더군요. “저도 한 음식 합니다.” 정식 식당은 아니지만, 음식 재료만은 이탈리아 식당에서 사용하는 최고급을 사용한다고 합니다. 오늘 예배에는 등록하지 않은 세 분이 손님으로 참석했습니다. 한 분은 몇 달간 계속 나오시는 분입니다. 보통은 아내와 함께 오는데 오늘은 혼자 오셨습니다. 이분이 오늘 두 사람을 데리고 오셨습니다. 아마 친척으로 보이는데, 두 달쯤 전에도 한 번 오셨던 것으로 제가 기억합니다. 오늘 예배는 참석 숫자가 다른 주일에 비해 적어서 편안하고 널찍하게 앉아서 예배할 수 있었습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으로 예배에 참석한 모든 분에게 주님의 평화가!

 

8) 심방- 청도 자연 요양병원에 머물면서 항암 치료 중인 김*연 집사를 금요일 619일에 정용섭 목사 부부와 운영위원장 정*진 장로 부부가 찾아가기로 했습니다. 삶의 미학을 알고 생명의 중심에서 하나님을 향해서 나아가는 사람은 어떤 형편에서도 영혼의 풍요로움을 느끼는 법입니다. 김 집사를 찾아가는 저의 마음은 그래서 즐겁습니다. 잘 다녀오겠습니다.

 

9) 헌금: 908,000(오프라인58,000원 온라인 850,000, 등록 교인 외- *경, 강*란)

    농협 301-0243-3251-71(대구 샘터교회)


[레벨:23]브니엘남

2020.06.16 06:28:12

목사님, 청도 자연 요양병원에 가시면 저희 집에 한 번 들리십시요. 경치가 좋습니다. 비슬산에서 가장 경치가 좋은 곳입니다. 계곡 옆에 있습니다. 병원 앞으로 보면 별마루 팬션으로 들어가는 길이 있습니다. 그 길로 계속 올라가면 팬션을 지나 마지막 집이 나옵니다. 오른 쪽에 있는 집이 저의 집입니다. 황토방과 집 두 채가 있는 곳입니다. 들어가셔서 차 한잔 하고 가십시요. 가셔서 연락 주시면 집 번호를 알려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병원에 가기 바로 전에 용천사란 절이 있습니다. 절과 병원 중간의 오른 쪽에 산으로 올라가는 길이 있습니다. 거기로 차를 타고 끝까지 올라가 자연치유센터를 멋지게 단장하고 있습니다. 거기도 구경하고 가십시요. 언제 한 번 주일 오후에 저희 집으로 오십시요. 저는 예배가 끝나면 항상 갑니다. 거기 오시면 식사 대접하겠습니다.

profile

[레벨:100]정용섭

2020.06.16 20:55:48

비슬산은 저의 젊은 시절 향수가 서린 산입니다.

현풍제일교회 옥탑방 서재에서 산 정상을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브니엘남 님의 주말 주택은 그렇지 않아도 한번 가봐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친절하게 안내해주시니 고맙기는 한데,

주인 없는 집에 들어가기는 좀 그렇고,

기회 봐서 예배 후 방문하는 게 좋겠습니다.

가을 단풍도 좋지요?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예수 어록(362) 요 16:10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 2020-06-27
  • 조회 수 1639

예수 어록(362) 요 16:10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 의라는 주제가 여기에 다시 나온다. 의(義)는 구약에서도 핵심적인 주제다. 예를 들어 시편 기자는 이렇게 기도했다. “무릇 의인들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들의 길은 망하리로다.”(시 1:6). 율법과 토라가 가리키는 내용 역시 의다. 더 정확하게는 하나님 앞에서의 의다. 의로운 사람은 의롭게 살기에 하나님에게 인정받는다는 것이다. 구약이 말하는 율법 중심의 의는 신약 시대에 복음 중심의 의로 확장되었다. 구...

예수 어록(361) 요 16:9 죄에 대하여라 함은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 2020-06-26
  • 조회 수 2938

예수 어록(361) 요 16:9 죄에 대하여라 함은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예수를 믿지 않는 것이 죄라고 말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인가? 가장 간단하고 가장 직접적인 대답은 구원과 관계된다. 예수를 믿지 않으면 구원을 받지 못하기에 믿음 없음이 곧 죄다. 이런 주장을 세상은 인정하지 않는다. 예수가 스스로 이렇게 발언했다면 사람들은 예수를 정신적으로 정상적이지 않은 사람이라고 판단할 것이다. 이 명제는 예수를 통해서 구원을 경험한 사람의 신앙고백이지 뉴스 보도로 나갈 객관적인 사실이 아니다. 이 둘 사이에 긴...

예수 어록(360) 요 16:8 그가 와서 ...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 2020-06-25
  • 조회 수 1016

예수 어록(360) 요 16:8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요한복음을 기록한 사람의 관심은 교회에만 있는 게 아니라 세상에도 있다. 아니 세상에 관한 관심이 더 크다고 봐야 한다. 하나님은 “교회”를 사랑하셔서가 아니라 “세상”을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주셨다고 분명하게 언급했다(요 3:16).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는 표현도 세상과의 관계를 전제하는 말이다. 기독교 신앙은 세상과 분리된 하나님을 말하지 않는다. 칼 바르트의 표현을 따르면 하나님은 세상 너머에서 고독하게 존재...

예수 어록(359) 요 16:7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 2020-06-24
  • 조회 수 1302

예수 어록(359) 요 16:7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리 요 16:7은 요한복음의 특징을 가장 두드러지게 표현하는 구절의 하나다. 이 한 구절을 깊이 있게 해석하려면 A4 용지 10장은 필요할지 모르겠다. 실상, 예수의 떠나심, 제자들의 유익, 예수와 보혜사의 관계 등등은 기독교 신앙의 많은 내용을 함축하고 있다. 간단히 살펴보자. 우선 우리말 성경의 ‘실상’이라는 단어는...

예수 어록(358) 요 16:6 너희 마음에 근심이 가득하였도다. [3]

  • 2020-06-23
  • 조회 수 1451

예수 어록(358) 요 16:6 도리어 내가 이 말을 하므로 너희 마음에 근심이 가득하였도다. 일반적으로 사람은 표면적인 현상에 휘둘리기가 쉽다. 지금 당장 배가 고픈지 아닌지, 실연을 당했는지 아닌지, 교회가 성장하는지 아닌지, 자녀들의 입시와 취업이 잘되는지 아닌지 등등, 이런 일로 인해서 근심하기도 하고 안심하기도 한다. 이런 방식의 삶은 평범한 우리에게 어쩔 수 없다. 해결의 끝이 안 보인다. 한 가지 근심거리가 해결되면 다른 근심거리가 생기니 평생 근심을 떨치지 못하는 것이다. 인생 과정을 통해서 근심 가운데...

주간일지 6월21일 file

  • 2020-06-22
  • 조회 수 1168

대구 샘터교회 주간일지 2020년 6월21일, 성령강림 후 셋째 주일 1) 두려움- “두려워하지 말라!”라는 설교 제목은 아주 흔한 겁니다. 흔해도 중요한 주제이기에 설교자는 그걸 피할 수 없습니다. 21세기 첨단 과학과 물질적인 풍요와 호화롭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수준의 삶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의식과 무의식을 두려움이 지배한다고 말해도 잘못은 아닙니다. 그걸 피하거나 외면하려고 온갖 노력을 다하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이 문제는 단순히 기독교 신앙생활을 잘할 수 있느냐 아니냐 하는 차원이 아니라 삶의 실제적...

예수 어록(357) 요 16:5 지금 내가 나를 보내신 이에게로 가는데 [3]

  • 2020-06-20
  • 조회 수 2617

예수 어록(357) 요 16:5 지금 내가 나를 보내신 이에게로 가는데 너희 중에서 나더러 어디로 가는지 묻는 자가 없고 예수는 “내가 나를 보내신 이”에게로 간다는 사실을 여기서 다시 확인한다. 예수를 보내신 이는 예수가 아버지라고 부른 이이다. 가장 단순하게 생각하면 예수가 죽는다는 뜻이다. 죽음이 하나님에게로 가는 것이라는 말은 우리가 흔하게 들었다. 같은 말을 하지만 내용은 천차만별이다. 하나님을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서 그 내용은 달라진다. 우리가 죽음을 통해서 간다고 생각하는 그 하나님을 다 아는 사람...

예수 어록(356) 요 16:4 너희에게 이 말을 한 것은 너희로 그 때를 당하면

  • 2020-06-19
  • 조회 수 1181

예수 어록(356) 요 16:4 오직 너희에게 이 말을 한 것은 너희로 그 때를 당하면 내가 너희에게 말한 이것을 기억나게 하려 함이요 처음부터 이 말을 하지 아니한 것은 내가 너희와 함께 있었음이라. 우리의 일상생활에서도 모든 일은 “때”가 있다는 말이 있다. 우리가 인생을 거치면서 몸으로 경험하는 말이다. 때가 오지 않으면 아무리 노력해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사람들은 이런 때를 운이라고 여긴다. 운이 좋으면 좋은 일이 일어나고 운이 나쁘면 당연히 나쁜 일이 일어난다고 생각한다. 기독교인 역시 하나님의 “때”...

예수 어록(355) 요 16:3 아버지와 나를 알지 못함이라.

  • 2020-06-18
  • 조회 수 833

예수 어록(355) 요 16:3 그들이 이런 일을 할 것은 아버지와 나를 알지 못함이라. 기독교 박해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으나 근본에서는 하나님과 예수에 대한 무지에서 나온다. 박해는 아니라고 하더라도 기독교를 부정하는 일도 무지나 오해에서 벌어진다. 요즘도 기독교를 무시하거나 부정하는 발언을 종종 만날 수 있다. 그들은 신을 믿지 않는다는 사실을 자랑스럽다는 듯이 외친다. 기독교인들이 불안한 심리와 유아적 심리를 신에게 투사시킨다는 비판이자 비난이다. 자신들은 심리적으로 안정적이고, 자연과학적인 인식론에...

예수 어록(354) 요 16:2 사람들이 너희를 출교할 뿐 아니라

  • 2020-06-17
  • 조회 수 822

예수 어록(354) 요 16:2 사람들이 너희를 출교할 뿐 아니라 때가 이르면 무릇 너희를 죽이는 자가 생각하기를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라 하리라. 요 16:2절은 요한복음 공동체가 처한 상황을 사실적으로 묘사한다. 당시 기독교인들은 극심한 박해를 받았다. 하나는 출교이고, 다른 하나는 순교다. 출교는 물론 유대교로부터 쫓겨나는 일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회당 출입 금지다. 상당한 수준으로 관계를 유지하던 유대교 회당과의 관계가 단절되는 일은 오랜 시간에 걸쳐서 일어났다. 지역적으로도 차이가 있었다. 결정적인 ...

예수 어록(353) 요 16:1 너희로 실족하지 않게 하려 함이니

  • 2020-06-16
  • 조회 수 4596

예수 어록(353) 요 16:1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실족하지 않게 하려 함이니 이제 새로운 장이 시작한다. 14장부터 17장까지 이어지는, 소위 ‘고별 연설’의 후반부가 시작된 것이다. ‘실족’하지 않기는 쉽지 않다. 실제 육체 활동에서도 발을 헛디딜 때가 있다. 나이가 들면 아무리 조심해도 이런 사고는 피할 수 없다. 실족해도 발목이나 무릎 관절을 다치지 않으려면 평소 하체 근육을 키워야 한다. 근육을 키우려면 걷기나 뛰기, 또는 자전거 타기와 같은 훈련을 꾸준히 해야 한다. 근육 키우기는 아니라고 하더라도...

주간일지 6월14일 [2]

  • 2020-06-15
  • 조회 수 1209

대구 샘터교회 주간일지 2020년 6월14일, 성령강림 후 둘째 주일 1) 하나님의 전능- 개인적인 이야기입니다. 저는 설교자로 평생을 살았습니다. 십여 년 전에는 ‘설교 비평’으로 악명이 높았습니다. 이제 담임 목사직과 설교자 역할을 내려놓아도 충분한 70세에 가까이 갑니다. 이 나이가 되니 성경과 신학과 영성의 세계가 조금 더 선명해집니다. 이전에 알았다고 생각했던 것이 사실은 충분하지 못했다는 의미입니다. 한편으로는 기쁘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허탈하기도 합니다. 앞으로 10년이 지나면 지금의 내가 여전히 부족...

예수 어록(352) 요 15:27 너희도 처음부터 나와 함께 있었으므로 증언하느니라.

  • 2020-06-13
  • 조회 수 1470

예수 어록(352) 요 15:27 너희도 처음부터 나와 함께 있었으므로 증언하느니라. 제자들의 사명은 예수 사건을 증언하는 것이다. 그게 말처럼 간단한 게 아니다. 두 가지가 필요하다. 하나는 예수에 대한 참된 경험이다. 예수 사건의 두 기둥인 십자가와 부활의 능력을 경험한 사람만이 증언할 수 있다. 예수 제자들에게는 이런 경험이 확실했기에 증언자의 자격을 갖춘 셈이다. 기독교가 단일성과 거룩성과 공공성과 더불어 사도성을 교회 정체성의 핵심 요소로 삼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오늘 우리는 사도들의 예수 경험에 근거하...

예수 어록(351) 요 15:26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언하실 것이요.

  • 2020-06-12
  • 조회 수 1246

예수 어록(351) 요 15:26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언하실 것이요. 신약성경이 가리키는 성령은 “진리의 영”이다. 무엇이 진리인가? “이것이 진리다.”라고 주장한다고 해서 그게 진리가 되는 건 아니다. 일단 진리도 여러 종류다. 자연과학적인 진리가 있고, 철학적인 진리가 있고, 종교적인 진리가 있다. 예술에도 그 나름의 진리가 작동한다. 구약 선지자들은 자신의 선포가 진리라고 확신했기에 “주 하나님이 말씀하셨다.”라는 문장을 사용할 ...

예수 어록(350) 요 15:25 그러나 이는 그들의 율법에 기록된 바

  • 2020-06-10
  • 조회 수 1127

예수 어록(350) 요 15:25 그러나 이는 그들의 율법에 기록된 바 그들이 이유 없이 나를 미워하였다 한 말을 응하게 하려 함이라. 신약성경 기자들은 종종 예수 사건을 구약에 근거해서 변증하고 해석했다. 예수 출생에 관한 이야기를 전하는 마태복음도 사 7:14을 인용했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마 1:23). 예수의 십자가 처형 사건 앞에서 제자들이 흩어질 것이라는 사실도 슥 13:7절의 성취로 보았다(마 26:31). 요한복음은 시 35:19절과 69:4절에 근거하여 예수가 무고...

예수 어록(349) 요 15:24 그들이 나와 내 아버지를 보았고 또 미워하였도다.

  • 2020-06-09
  • 조회 수 1332

예수 어록(349) 요 15:24 내가 아무도 못한 일을 그들 중에서 하지 아니하였더라면 그들에게 죄가 없었으려니와 지금은 그들이 나와 내 아버지를 보았고 또 미워하였도다. “그들이 나와 내 아버지를 보았고 또 미워하였도다.”라는 번역은 자연스럽지 않다. 공동번역과 새번역, 그리고 루터 성경과 NIV 번역이 더 정확하다. 새번역을 보자. “내가 다른 아무도 하지 못한 일을 그들 가운데서 하지 않았더라면, 그들에게 죄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그들이 내가 한 일을 보고 나서도, 나와 내 아버지를 미워하였다.” 넓게 보면...

주간일지 6월7일 file

  • 2020-06-08
  • 조회 수 3850

대구 샘터교회 주간일지 2020년 6월7일, 삼위일체 주일 1) 삼위일체- 6월7일 설교 제목은 “삼위일체이신 하나님”이었습니다. 이런 제목으로 설교하기는 만만치 않습니다. 잘못하면 관념적으로 흘러서 무슨 말인지 전달되지 않거나, 너무 밋밋한 설교가 되고 맙니다. 삼위일체 교리의 시작은 예수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입니다. 예수가 유대의 뛰어난 선지자 중의 한 사람이냐, 아니면 신(神)이냐 하는 질문이 그것입니다. 초기 기독교가 찾은 대답은 “참된 인간이며, 동시에 참된 신이다.”입니다. 베레 호모, 베레 데우스! 참된 신이...

예수 어록(348) 요 15:23 나를 미워하는 자는 또 내 아버지를 미워하느니라.

  • 2020-06-06
  • 조회 수 1211

예수 어록(348) 요 15:23 나를 미워하는 자는 또 내 아버지를 미워하느니라. “나를 미워하는 자”를 파렴치하거나 비인격적인 사람으로 보면 곤란하다. 오히려 세상에서 품위가 넘치고 고상하다고 인정받는 개연성이 높은 사람이다. 당시 상황으로 본다면 간접적으로 정통 유대인을 가리키지만, 전체적으로는 로마 문명권에서 살던 교양인 전체를 가리킨다. 초기 기독교는 로마 문명에 의해서 무시당했다. 그들이 볼 때 기독교인은 무신론자에 가깝다. 목수나 농부로 살았던 유대인 한 남자를 그리스도로 믿는다는 게 그들에게는 언...

예수 어록(347) 요 15:22 지금은 그 죄를 핑계할 수 없느니라.

  • 2020-06-05
  • 조회 수 1102

예수 어록(347) 요 15:22 내가 와서 그들에게 말하지 아니하였더라면 죄가 없었으려니와 지금은 그 죄를 핑계할 수 없느니라. 세상이 핑계할 수 없는 죄는 21절에서 보았듯이 하나님을 알지 못한 것이다. 예수 이전에는 하나님을 바르게 알지 못할 수 있었을지 모르나 예수 이후에는 핑계를 댈 수 없다는 것이다. 예수에게서 하나님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요한복음을 비롯한 신약성경 기자들과 오늘 우리까지 포함해서 모든 기독교인은 예수를 통해서 하나님을 바르게 알게 되었다고 생각하며 그렇게 믿는다. 이는 곧 예수가 하나님...

예수 어록(346) 요 15:21 이는 나를 보내신 이를 알지 못함이라.

  • 2020-06-04
  • 조회 수 1267

예수 어록(346) 요 15:21 그러나 사람들이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이 모든 일을 너희에게 하리니 이는 나를 보내신 이를 알지 못함이라. “사람들이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라는 표현은 제자들이 예수의 이름으로 행한다는 뜻으로 들린다. 예수의 이름으로 행하기에 세상 사람들이 그걸 문제 삼아서 제자들을 박해하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 기독교인이 박해받지 않는 이유는 좋은 세상에 살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우리가 예수의 이름으로 살지 못하기 때문이라고도 볼 수 있다. 박해가 없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할 게 아니라 부끄럽게 생각...

TEL : 070-4085-1227, 010-8577-1227, Email: freude103801@hanmail.net
Copyright ⓒ 2008 대구성서아카데미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