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어록(354) 16:2

사람들이 너희를 출교할 뿐 아니라 때가 이르면 무릇 너희를 죽이는 자가 생각하기를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라 하리라.

 

16:2절은 요한복음 공동체가 처한 상황을 사실적으로 묘사한다. 당시 기독교인들은 극심한 박해를 받았다. 하나는 출교이고, 다른 하나는 순교다. 출교는 물론 유대교로부터 쫓겨나는 일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회당 출입 금지다. 상당한 수준으로 관계를 유지하던 유대교 회당과의 관계가 단절되는 일은 오랜 시간에 걸쳐서 일어났다. 지역적으로도 차이가 있었다. 결정적인 계기는 기원후 70년 예루살렘 성전 붕괴 후에 유대교 내부에서 벌어진 바리새파 부흥 운동이었다. 기독교가 출교당한다는 말은 유대교 체제가 제공하는 도움을 받을 수 없게 된다는 뜻이다.

기독교인의 순교는 일반 역사 문헌에도 나올 정도로 분명했다. 출교는 유대교로부터 받은 박해라면 순교는 로마로부터 받은 박해다. 예수의 십자가 죽음이 유대교 산헤드린 법정과 로마 총독의 법정에 의해서 벌어진 것처럼 초기 기독교도 양쪽에서 박해를 받았다. 로마의 모든 황제가 기독교를 박해한 건 아니다. 대표적으로는 네로와 도미티아누스 황제다. 이 두 황제가 통치하던 시절에 많은 기독교인이 순교 당했다. 순교에 이르려면 완전히 다른 차원의 영적인 세계를 볼 수 있어야 한다. 스데반은 돌에 맞아 죽는 순간에 이렇게 외쳤다.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7:56).

16:2절에 주목할만한 표현이 나온다. 박해를 가하는 자들은 자신들의 행위가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라고 주장한다는 것이다. 그들이 실제로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고, 또는 자기를 합리화하려고 변명으로 그런 말을 할 수도 있다. 어느 쪽이었든지 그들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의 일을 파괴하는 것이다. 이런 일들이 오늘날에도 일어나지 말라는 법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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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어록(362) 요 16:10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 2020-06-27
  • 조회 수 1639

예수 어록(362) 요 16:10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 의라는 주제가 여기에 다시 나온다. 의(義)는 구약에서도 핵심적인 주제다. 예를 들어 시편 기자는 이렇게 기도했다. “무릇 의인들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들의 길은 망하리로다.”(시 1:6). 율법과 토라가 가리키는 내용 역시 의다. 더 정확하게는 하나님 앞에서의 의다. 의로운 사람은 의롭게 살기에 하나님에게 인정받는다는 것이다. 구약이 말하는 율법 중심의 의는 신약 시대에 복음 중심의 의로 확장되었다. 구...

예수 어록(361) 요 16:9 죄에 대하여라 함은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 2020-06-26
  • 조회 수 2937

예수 어록(361) 요 16:9 죄에 대하여라 함은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예수를 믿지 않는 것이 죄라고 말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인가? 가장 간단하고 가장 직접적인 대답은 구원과 관계된다. 예수를 믿지 않으면 구원을 받지 못하기에 믿음 없음이 곧 죄다. 이런 주장을 세상은 인정하지 않는다. 예수가 스스로 이렇게 발언했다면 사람들은 예수를 정신적으로 정상적이지 않은 사람이라고 판단할 것이다. 이 명제는 예수를 통해서 구원을 경험한 사람의 신앙고백이지 뉴스 보도로 나갈 객관적인 사실이 아니다. 이 둘 사이에 긴...

예수 어록(360) 요 16:8 그가 와서 ...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 2020-06-25
  • 조회 수 1016

예수 어록(360) 요 16:8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요한복음을 기록한 사람의 관심은 교회에만 있는 게 아니라 세상에도 있다. 아니 세상에 관한 관심이 더 크다고 봐야 한다. 하나님은 “교회”를 사랑하셔서가 아니라 “세상”을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주셨다고 분명하게 언급했다(요 3:16).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는 표현도 세상과의 관계를 전제하는 말이다. 기독교 신앙은 세상과 분리된 하나님을 말하지 않는다. 칼 바르트의 표현을 따르면 하나님은 세상 너머에서 고독하게 존재...

예수 어록(359) 요 16:7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 2020-06-24
  • 조회 수 1301

예수 어록(359) 요 16:7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리 요 16:7은 요한복음의 특징을 가장 두드러지게 표현하는 구절의 하나다. 이 한 구절을 깊이 있게 해석하려면 A4 용지 10장은 필요할지 모르겠다. 실상, 예수의 떠나심, 제자들의 유익, 예수와 보혜사의 관계 등등은 기독교 신앙의 많은 내용을 함축하고 있다. 간단히 살펴보자. 우선 우리말 성경의 ‘실상’이라는 단어는...

예수 어록(358) 요 16:6 너희 마음에 근심이 가득하였도다. [3]

  • 2020-06-23
  • 조회 수 1450

예수 어록(358) 요 16:6 도리어 내가 이 말을 하므로 너희 마음에 근심이 가득하였도다. 일반적으로 사람은 표면적인 현상에 휘둘리기가 쉽다. 지금 당장 배가 고픈지 아닌지, 실연을 당했는지 아닌지, 교회가 성장하는지 아닌지, 자녀들의 입시와 취업이 잘되는지 아닌지 등등, 이런 일로 인해서 근심하기도 하고 안심하기도 한다. 이런 방식의 삶은 평범한 우리에게 어쩔 수 없다. 해결의 끝이 안 보인다. 한 가지 근심거리가 해결되면 다른 근심거리가 생기니 평생 근심을 떨치지 못하는 것이다. 인생 과정을 통해서 근심 가운데...

주간일지 6월21일 file

  • 2020-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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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샘터교회 주간일지 2020년 6월21일, 성령강림 후 셋째 주일 1) 두려움- “두려워하지 말라!”라는 설교 제목은 아주 흔한 겁니다. 흔해도 중요한 주제이기에 설교자는 그걸 피할 수 없습니다. 21세기 첨단 과학과 물질적인 풍요와 호화롭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수준의 삶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의식과 무의식을 두려움이 지배한다고 말해도 잘못은 아닙니다. 그걸 피하거나 외면하려고 온갖 노력을 다하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이 문제는 단순히 기독교 신앙생활을 잘할 수 있느냐 아니냐 하는 차원이 아니라 삶의 실제적...

예수 어록(357) 요 16:5 지금 내가 나를 보내신 이에게로 가는데 [3]

  • 2020-06-20
  • 조회 수 2616

예수 어록(357) 요 16:5 지금 내가 나를 보내신 이에게로 가는데 너희 중에서 나더러 어디로 가는지 묻는 자가 없고 예수는 “내가 나를 보내신 이”에게로 간다는 사실을 여기서 다시 확인한다. 예수를 보내신 이는 예수가 아버지라고 부른 이이다. 가장 단순하게 생각하면 예수가 죽는다는 뜻이다. 죽음이 하나님에게로 가는 것이라는 말은 우리가 흔하게 들었다. 같은 말을 하지만 내용은 천차만별이다. 하나님을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서 그 내용은 달라진다. 우리가 죽음을 통해서 간다고 생각하는 그 하나님을 다 아는 사람...

예수 어록(356) 요 16:4 너희에게 이 말을 한 것은 너희로 그 때를 당하면

  • 2020-06-19
  • 조회 수 1181

예수 어록(356) 요 16:4 오직 너희에게 이 말을 한 것은 너희로 그 때를 당하면 내가 너희에게 말한 이것을 기억나게 하려 함이요 처음부터 이 말을 하지 아니한 것은 내가 너희와 함께 있었음이라. 우리의 일상생활에서도 모든 일은 “때”가 있다는 말이 있다. 우리가 인생을 거치면서 몸으로 경험하는 말이다. 때가 오지 않으면 아무리 노력해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사람들은 이런 때를 운이라고 여긴다. 운이 좋으면 좋은 일이 일어나고 운이 나쁘면 당연히 나쁜 일이 일어난다고 생각한다. 기독교인 역시 하나님의 “때”...

예수 어록(355) 요 16:3 아버지와 나를 알지 못함이라.

  • 2020-06-18
  • 조회 수 833

예수 어록(355) 요 16:3 그들이 이런 일을 할 것은 아버지와 나를 알지 못함이라. 기독교 박해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으나 근본에서는 하나님과 예수에 대한 무지에서 나온다. 박해는 아니라고 하더라도 기독교를 부정하는 일도 무지나 오해에서 벌어진다. 요즘도 기독교를 무시하거나 부정하는 발언을 종종 만날 수 있다. 그들은 신을 믿지 않는다는 사실을 자랑스럽다는 듯이 외친다. 기독교인들이 불안한 심리와 유아적 심리를 신에게 투사시킨다는 비판이자 비난이다. 자신들은 심리적으로 안정적이고, 자연과학적인 인식론에...

예수 어록(354) 요 16:2 사람들이 너희를 출교할 뿐 아니라

  • 2020-06-17
  • 조회 수 822

예수 어록(354) 요 16:2 사람들이 너희를 출교할 뿐 아니라 때가 이르면 무릇 너희를 죽이는 자가 생각하기를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라 하리라. 요 16:2절은 요한복음 공동체가 처한 상황을 사실적으로 묘사한다. 당시 기독교인들은 극심한 박해를 받았다. 하나는 출교이고, 다른 하나는 순교다. 출교는 물론 유대교로부터 쫓겨나는 일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회당 출입 금지다. 상당한 수준으로 관계를 유지하던 유대교 회당과의 관계가 단절되는 일은 오랜 시간에 걸쳐서 일어났다. 지역적으로도 차이가 있었다. 결정적인 ...

예수 어록(353) 요 16:1 너희로 실족하지 않게 하려 함이니

  • 2020-06-16
  • 조회 수 4595

예수 어록(353) 요 16:1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실족하지 않게 하려 함이니 이제 새로운 장이 시작한다. 14장부터 17장까지 이어지는, 소위 ‘고별 연설’의 후반부가 시작된 것이다. ‘실족’하지 않기는 쉽지 않다. 실제 육체 활동에서도 발을 헛디딜 때가 있다. 나이가 들면 아무리 조심해도 이런 사고는 피할 수 없다. 실족해도 발목이나 무릎 관절을 다치지 않으려면 평소 하체 근육을 키워야 한다. 근육을 키우려면 걷기나 뛰기, 또는 자전거 타기와 같은 훈련을 꾸준히 해야 한다. 근육 키우기는 아니라고 하더라도...

주간일지 6월14일 [2]

  • 2020-06-15
  • 조회 수 1208

대구 샘터교회 주간일지 2020년 6월14일, 성령강림 후 둘째 주일 1) 하나님의 전능- 개인적인 이야기입니다. 저는 설교자로 평생을 살았습니다. 십여 년 전에는 ‘설교 비평’으로 악명이 높았습니다. 이제 담임 목사직과 설교자 역할을 내려놓아도 충분한 70세에 가까이 갑니다. 이 나이가 되니 성경과 신학과 영성의 세계가 조금 더 선명해집니다. 이전에 알았다고 생각했던 것이 사실은 충분하지 못했다는 의미입니다. 한편으로는 기쁘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허탈하기도 합니다. 앞으로 10년이 지나면 지금의 내가 여전히 부족...

예수 어록(352) 요 15:27 너희도 처음부터 나와 함께 있었으므로 증언하느니라.

  • 2020-06-13
  • 조회 수 1470

예수 어록(352) 요 15:27 너희도 처음부터 나와 함께 있었으므로 증언하느니라. 제자들의 사명은 예수 사건을 증언하는 것이다. 그게 말처럼 간단한 게 아니다. 두 가지가 필요하다. 하나는 예수에 대한 참된 경험이다. 예수 사건의 두 기둥인 십자가와 부활의 능력을 경험한 사람만이 증언할 수 있다. 예수 제자들에게는 이런 경험이 확실했기에 증언자의 자격을 갖춘 셈이다. 기독교가 단일성과 거룩성과 공공성과 더불어 사도성을 교회 정체성의 핵심 요소로 삼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오늘 우리는 사도들의 예수 경험에 근거하...

예수 어록(351) 요 15:26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언하실 것이요.

  • 2020-06-12
  • 조회 수 1246

예수 어록(351) 요 15:26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언하실 것이요. 신약성경이 가리키는 성령은 “진리의 영”이다. 무엇이 진리인가? “이것이 진리다.”라고 주장한다고 해서 그게 진리가 되는 건 아니다. 일단 진리도 여러 종류다. 자연과학적인 진리가 있고, 철학적인 진리가 있고, 종교적인 진리가 있다. 예술에도 그 나름의 진리가 작동한다. 구약 선지자들은 자신의 선포가 진리라고 확신했기에 “주 하나님이 말씀하셨다.”라는 문장을 사용할 ...

예수 어록(350) 요 15:25 그러나 이는 그들의 율법에 기록된 바

  • 2020-06-10
  • 조회 수 1127

예수 어록(350) 요 15:25 그러나 이는 그들의 율법에 기록된 바 그들이 이유 없이 나를 미워하였다 한 말을 응하게 하려 함이라. 신약성경 기자들은 종종 예수 사건을 구약에 근거해서 변증하고 해석했다. 예수 출생에 관한 이야기를 전하는 마태복음도 사 7:14을 인용했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마 1:23). 예수의 십자가 처형 사건 앞에서 제자들이 흩어질 것이라는 사실도 슥 13:7절의 성취로 보았다(마 26:31). 요한복음은 시 35:19절과 69:4절에 근거하여 예수가 무고...

예수 어록(349) 요 15:24 그들이 나와 내 아버지를 보았고 또 미워하였도다.

  • 2020-06-09
  • 조회 수 1332

예수 어록(349) 요 15:24 내가 아무도 못한 일을 그들 중에서 하지 아니하였더라면 그들에게 죄가 없었으려니와 지금은 그들이 나와 내 아버지를 보았고 또 미워하였도다. “그들이 나와 내 아버지를 보았고 또 미워하였도다.”라는 번역은 자연스럽지 않다. 공동번역과 새번역, 그리고 루터 성경과 NIV 번역이 더 정확하다. 새번역을 보자. “내가 다른 아무도 하지 못한 일을 그들 가운데서 하지 않았더라면, 그들에게 죄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그들이 내가 한 일을 보고 나서도, 나와 내 아버지를 미워하였다.” 넓게 보면...

주간일지 6월7일 file

  • 2020-06-08
  • 조회 수 3850

대구 샘터교회 주간일지 2020년 6월7일, 삼위일체 주일 1) 삼위일체- 6월7일 설교 제목은 “삼위일체이신 하나님”이었습니다. 이런 제목으로 설교하기는 만만치 않습니다. 잘못하면 관념적으로 흘러서 무슨 말인지 전달되지 않거나, 너무 밋밋한 설교가 되고 맙니다. 삼위일체 교리의 시작은 예수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입니다. 예수가 유대의 뛰어난 선지자 중의 한 사람이냐, 아니면 신(神)이냐 하는 질문이 그것입니다. 초기 기독교가 찾은 대답은 “참된 인간이며, 동시에 참된 신이다.”입니다. 베레 호모, 베레 데우스! 참된 신이...

예수 어록(348) 요 15:23 나를 미워하는 자는 또 내 아버지를 미워하느니라.

  • 2020-06-06
  • 조회 수 1211

예수 어록(348) 요 15:23 나를 미워하는 자는 또 내 아버지를 미워하느니라. “나를 미워하는 자”를 파렴치하거나 비인격적인 사람으로 보면 곤란하다. 오히려 세상에서 품위가 넘치고 고상하다고 인정받는 개연성이 높은 사람이다. 당시 상황으로 본다면 간접적으로 정통 유대인을 가리키지만, 전체적으로는 로마 문명권에서 살던 교양인 전체를 가리킨다. 초기 기독교는 로마 문명에 의해서 무시당했다. 그들이 볼 때 기독교인은 무신론자에 가깝다. 목수나 농부로 살았던 유대인 한 남자를 그리스도로 믿는다는 게 그들에게는 언...

예수 어록(347) 요 15:22 지금은 그 죄를 핑계할 수 없느니라.

  • 2020-06-05
  • 조회 수 1101

예수 어록(347) 요 15:22 내가 와서 그들에게 말하지 아니하였더라면 죄가 없었으려니와 지금은 그 죄를 핑계할 수 없느니라. 세상이 핑계할 수 없는 죄는 21절에서 보았듯이 하나님을 알지 못한 것이다. 예수 이전에는 하나님을 바르게 알지 못할 수 있었을지 모르나 예수 이후에는 핑계를 댈 수 없다는 것이다. 예수에게서 하나님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요한복음을 비롯한 신약성경 기자들과 오늘 우리까지 포함해서 모든 기독교인은 예수를 통해서 하나님을 바르게 알게 되었다고 생각하며 그렇게 믿는다. 이는 곧 예수가 하나님...

예수 어록(346) 요 15:21 이는 나를 보내신 이를 알지 못함이라.

  • 2020-06-04
  • 조회 수 1266

예수 어록(346) 요 15:21 그러나 사람들이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이 모든 일을 너희에게 하리니 이는 나를 보내신 이를 알지 못함이라. “사람들이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라는 표현은 제자들이 예수의 이름으로 행한다는 뜻으로 들린다. 예수의 이름으로 행하기에 세상 사람들이 그걸 문제 삼아서 제자들을 박해하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 기독교인이 박해받지 않는 이유는 좋은 세상에 살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우리가 예수의 이름으로 살지 못하기 때문이라고도 볼 수 있다. 박해가 없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할 게 아니라 부끄럽게 생각...

TEL : 070-4085-1227, 010-8577-1227, Email: freude10380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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