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일지 11월15일

조회 수 5027 추천 수 0 2020.11.17 17:52:03

대구 샘터교회 주간일지

20201115, 창조절 11

 

1) 불난 집- 오늘 설교에서 불난 집을 비유로 들었습니다. 이런 비유는 상투적이긴 합니다만, 그래도 적절하다고 생각해서 말씀드린 겁니다. 우리가 불난 집에 갇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과 불난 집에서 조는 사람은 바울이 말하는 예수 재림 신앙의 깊이를 따라갈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인정하지 않는 것과 조는 것은 사실 같습니다. 인정하지 않기에 졸고, 졸기에 인정하지 않습니다. 불난 집이라는 사정이 무엇인지를 전혀 인식하지 못하거나 약간 인식해도 회피하는 겁니다. 우리는 모두 죽습니다. 언제 죽을지 모릅니다. 곧 죽는다고 말해도 됩니다. 그걸 피할 길이 없습니다. 이게 불난 집이 가리키는 우리의 실존입니다. 실제적인 죽음까지 가지 않아도 우리가 자신의 힘으로 피할 수 없는 불난 집에 머문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근거는 많습니다. 교만이 그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교만하지 말아야겠다고 마음먹어도 잘되지 않습니다. 자신이 교만하다는 사실일 느껴질 때마다 절망합니다. 그렇지 않은 듯이 자기를 합리화하거나 그게 심각하지 않은 문제로 여길 수도 있겠지요. 다 미봉책입니다.

 

2) 추수감사절- 오늘은 2020년 추수감사절이었습니다. 예년과 같은 축제 기분은 나지 않았습니다. 다른 교회도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너무 썰렁하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는지 성 권사, 정 집사가 어울려서 호박떡을 가져왔고, 이 권사가 귤을 준비하셨네요. 떡과 귤은 궁합이 잘 맞습니다. 떡 한 번 먹고 귤 한 조각을 먹으면 입안이 깔끔해집니다. *예 집사가 예배 시간에 논밭에 오곡백과라는 찬송가를 바이올린으로 연주했습니다. 현의 떨림이 새롭게 전달되었습니다. 귀가 밝은 분들은 눈치챘겠지만 2절부터 반주 외에 바이올린 소리만 두 개가 나왔습니다. 멜로디와 알토가 나온 겁니다. 먼저 알토를 넣어 녹음하고, 그걸 틀면서 실제로 할 때는 멜로디를 연주하면 이렇게 두 가지 음이 들립니다. 추수감사절 분위기를 한껏 돋운 것은 꽃장식이었습니다. 화려한 장식이 강단을 가득 채웠습니다. 마음이 듬뿍 담긴 예술 작품이더군요. 오래 머릿속으로 구상하고 하루는 나가서 재료를 구입하고 다시 그것들을 집에서 소품으로 만들고, 주일에 교회에 나와서 전체를 꾸몄습니다. 거기에 들어간 재료도 다양합니다. 제가 처음 본 것들도 있더군요. 예배 전과 후에 보니 여러 교우가 그 앞에서 모여서 감상하면서 스마트폰에 담더군요. 여기 사진을 올리니 한 번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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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잘 지내셨나요?- 모든 모임이 끝나고 남은 몇몇 교우들과 칼국수를 먹고 카페에서 차 한 잔 마셨습니다. 마스크 쓰는 일은 잊지 않았습니다. 카페에서 제가 한 가지 물었습니다. “코로나19 사태가 벌어진 뒤에 9개월 만에 처음으로 오늘 대면 예배에 참석한 교우들이 있습니다. 3명인데, 다 아는 분이 있으면 말씀해보세요.” 청도의 이 집사와 경산의 박 집사는 알아맞히더군요. 거창의 김*슬 청년은 알아보지 못했나 봅니다. 마스크를 쓰니까 직접 말을 섞지 않으면 분간하기 어렵습니다. 특히 청년들은 더 그렇습니다. 저는 예배 전에 잠깐 인사를 나눴기에 알아봤지요. 모두 잘 지내셨나요?” 반가웠습니다. 오랜만에 봤는데도 인사만 나눴을 뿐이지 이야기를 나누지 못해서 섭섭했습니다. 코로나 사태 이후로 아직 한 번도 대면 예배에 오지 못한 교우가 몇몇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서 다들 잘 지낼 줄로 믿습니다. 교회에서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사는 송 집사가 예배 끝나고 카페로 찾아왔습니다. 이렇게라도 한번 보겠다고 말입니다. 남편과 식당을 운영하기에 예배 참석이 어렵습니다. “목사님, 죄송합니다.”라고 하시네요. 무슨, 죄송할 게 있겠어요. 다행히 손님은 크게 줄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런 비상시국에는 서로 이해하면서 도울 때는 서로 돕고, 버텨내는 게 최선입니다. 멀리 보면서 주님의 평안을 놓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 그리고 재정부장 김 집사가 넉 달 가까이 주말 특수 교육을 다 끝내고 오늘 대면 예배에 왔습니다. 언제 시간이 나면 그동안 배운 인공지능에 관해서 설명을 들어야겠습니다. 수고 많았습니다.

 

4) 코로나19- 코로나19 바이러스 창궐로 전세계가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비교적 안정적으로 관리하고 있습니다. 정부 당국이 적절하게 대책을 세워나간다는 사실과 협조해야 한다는 국민의 의식 수준이 높다는 사실이 한몫하는 것 같습니다. 그 외에도 우리가 다 파악할 수 없는 이유가 있겠지요. 이렇게 관리되다가도 어느 순간에 유럽이나 미국처럼 대폭발 수준으로 확진자가 늘어날 수도 있긴 합니다. 요즘처럼 미래가 불확실한 시대도 없습니다. 전쟁과 같은 시대입니다. 완벽하게 바이러스를 잡고, 동시에 경제도 살리는 길은 현재로서는 없습니다. 적당하게 관리하는 게 최선입니다. 우리나라만 잘한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닙니다. 그건 그렇고 오늘 예배를 드리면서 모이는 예배 자체가 방역에 큰 위험이 되는 건 아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좌우, 앞뒤 거리를 띄우고 앉았습니다. 마스크를 썼습니다. 비말이 튀도록 고함을 지르지도 않았습니다. 교회당을 버스나 지하철 객실로 보면 상대적으로 안전한 게 아닐까요. 요즘 제가 버스와 지하철을 타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으나 출퇴근할 때 승객들이 예배당에서처럼 거리를 두고 앉지는 않을 겁니다. 예배당보다 대중교통이 위험성이 더 높다고 봐야겠지요. 문제는 예배 이후의 소모임입니다. 식사하거나 차를 마시면서 마스크를 어쩔 수 없이 벗게 되는 경우입니다. 교회당 안에서 소모임은 코로나 사태가 끝날 때까지 자제해야겠습니다. 예배 후 식당이나 카페 방문도 완전히 금지해야 하는지는 정말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여기 방역 단계에 따른 조치 아내지침 표를 올리지 참고하세요. 현재 대구는 1단계인데, 우리 교회는 1.5단계를 지키고 있습니다. 보통 때는 6명이 앉는 자리에 1명이나 2명이 앉아서 예배를 드리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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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서울샘터교회- 대구 샘터교회의 자매 교회라 할 수 있는 서울 샘터교회는 그야말로 노숙자와 비슷한 처지에 있습니다. 예배처소를 매번 대여해서 사용합니다. 대구 샘터교회처럼 월세로 공간을 얻으면 좋겠으나 재정적인 부담이 너무 커서 어렵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 사용하는 공간을 월세나 전세로 구하는 게 가성비 차원에서도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코로나19 사태가 터진 올해 2월 중순부터 지금까지 여러 가지 이유로 대면 예배를 드리지 못했습니다. 얼마 전에 적절한 장소를 찾았다고 합니다. 일단 1122일과 29일에 예배를 드립니다. 12월은 다른 사정으로 모이지 못합니다. 한 달간 쉬었다가 내년 20211월부터 월 2회를 대면 예배로 드린다고 합니다. 일단 다른 주일에는 대구 샘터교회의 유튜브 예배에 참석합니다. 어느 정도 안정되면 매 주일이 모이겠지요. 자세한 내용은 서울 샘터교회 홈페이지 “202010월 월간보고”(http://dabia.net/xe/church_seoul_private/1027396#0)를 참고하십시오.

 

6) 독립유공자- *섭 집사의 부친(1914년생, 고 김*)께서 이번에 독립유공자로 선정되어서 대통령상을 받았다고 합니다. 지역 케이비에스 티브이 방송국에서 함께 독립유공자로 선정된 이들에 관한 다큐멘터리 방송을 1117일 오후 3시에 내보냈습니다. 고령 지역에서 과격하게 항일 투쟁을 하다가 투옥되는 등, 큰 고초를 당하셨다는 사실을 이번에 인정받은 겁니다. 한편으로 축하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짠한 마음도 드는군요. 나중에 자세한 내용을 직접 들어야겠습니다.

 

7) 헌금- 113주차(1115) 710,000(오프 410,000/ 300,000/ 등록 교인 외: *)

농협 301-0243-3251-71(대구 샘터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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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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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81 21:25 낮에 성문들을 도무지 닫지 아니하리니 거기에는 밤이 없음이라 25절 문장이 약간 이상합니다. 거룩한 성에는 밤이 없어서 낮에 성문을 닫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성문은 보통 밤에 닫지 않습니까. 낮에는 원래 열어두는 거고요. 밤에도 성문을 잠그지 않는다고 해야 자연스러운 표현인데, 위 구절은 자연스러운 문장이 아닙니다. 아예 문이 필요 없겠지요. 그래서 <새번역> 성경은 “그 도성에는 밤이 없으므로, 온종일 대문을 닫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번역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려는 ...

계 21:24 [2]

  • 2024-04-18
  • 조회 수 260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80 21:24 만국이 그 빛 가운데로 다니고 땅의 왕들이 자기 영광을 가지고 그리로 들어가리라 24절의 표현은 장엄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모든 나라와 모든 왕이 각각의 영광 가운데서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으로 들어간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도 거룩한 성에 들어간다는 말이냐, 하는 질문은 여기서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이미 심판받을 자는 심판받고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계 21:8)에 던져질 자들은 모두 던져진 이후의 일이니까요. 거룩한 성에 들어갈 자들에게 ‘자기...

계 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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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회 수 240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79 21:23 그 성은 해나 달의 비침이 쓸 데 없으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비치고 어린 양이 그 등불이 되심이라 요한은 해가 필요 없고 달도 필요 없는 세상을 내다봅니다. 빛이 필요 없는 세상입니다. 이유는 하나님의 영광이 빛이 되고, 어린 양이 등불이 되기 때문입니다. 요한은 사 60:19-20절에서 이에 관해서 통찰을 얻은 것으로 보입니다. “다시는 낮에 해가 네 빛이 되지 아니하며 달도 네게 빛을 비추지 않을 것이요 오직 여호와가 네게 영원한 빛이 되며 네 하나님이 네 영광이 되리니 …...

계 21:22

  • 2024-04-16
  • 조회 수 258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78 21:22 성 안에서 내가 성전을 보지 못하였으니 이는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 양이 그 성전이심이라 22절에는 아주 특별한 내용이 나옵니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에 성전이 없다는 겁니다. 성전 하나쯤 있어야 거룩한 성이 빛나 보일 텐데 말입니다. 예루살렘이 하나님의 도성이라 할 수 있는 이유도 거기에 성전이 있기 때문이 아닙니까. 종교 건물이 없는 곳을 거룩하다고 이름 붙일 수는 없는 법이지요. 그러나 요한이 본 거룩한 성은 그것 자체로 완벽하기에 성전은 없어도 ...

계 21:21 [2]

  • 2024-04-15
  • 조회 수 291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77 21:21 그 열두 문은 열두 진주니 각 문마다 한 개의 진주로 되어 있고 성의 길은 맑은 유리 같은 정금이더라 12절에서 언급된 열두 문이 21절에서 다시 소개됩니다. 각각의 문마다 한 개의 진주로 되어있습니다. 진주 한 알이 박혀 있다는 뜻인지 아니면 문 전체가 진주로 되어있다는 것인지 분명하지는 않습니다. 문을 만들만한 크기의 진주는 세상에 없습니다. 문이 진주 모양을 했다는 뜻인가요? 그냥 편하게 진주로 된 문이라고 생각하면 되겠지요. 문에 이어지는 길이 나옵니다. 길은 ‘맑...

계 21:20

  • 2024-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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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76 21:20 다섯째는 홍바노요 여섯째는 홍보석이요 일곱째는 황옥이요 여덟째는 녹옥이요 아홉째는 담황옥이요 열째는 비취옥이요 열한째는 청옥이요 열두째는 자수정이라 다섯째부터 열두째까지 당시의 모든 보석이 열거됩니다. <새번역> 성경으로 다시 읽어보겠습니다. “다섯째는 홍마노요, 여섯째는 홍옥수요, 일곱째는 황보석이요, 여덟째는 녹주석이요, 아홉째는 황옥이요, 열째는 녹옥수요, 열한째는 청옥이요, 열두째는 자수정이었습니다.” 이름만 들어도 눈이 휘둥그레지는 보석들이군요. ...

계 21:19

  • 2024-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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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75 21:19 그 성의 성곽의 기초석은 각색 보석으로 꾸몄는데 첫째 기초석은 벽옥이요 둘째는 남보석이요 셋째는 옥수요 넷째는 녹보석이요 열두 사도의 이름이 각각 기록된 열두 기초석도 보석으로 꾸며졌다고 합니다. 19절에는 네 가지가 나옵니다. 벽옥, 남보석(사파이어), 옥수, 녹보석(비취옥)입니다. 옥수(玉髓)는 낯선 단어인데, 보석의 일종으로 보면 됩니다. 정말 휘황찬란한 모습으로 묘사되었습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렸다시피 요한은 자기가 살아가면서 본 것 중에서, 그리고 상상할 수 ...

계 21:18

  • 2024-04-10
  • 조회 수 254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74 21:18 그 성곽은 벽옥으로 쌓였고 그 성은 정금인데 맑은 유리 같더라 18절에 다시 벽옥과 정금(순금)이 나옵니다. 요한이 어디서 이런 건축물을 실제로 본 적이 있을까요? 사람은 건축물에 대한 욕망이 에로스처럼 강합니다. 더 크고, 더 아름답고, 더 빛나는 건축물을 향한 욕망 말입니다. 그런 건축물을 통해서 자기의 이름을 빛내고, 더 근본에서는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려고 합니다. 가끔은 사랑하는 아내나 연인을 위해서 천문학적 비용이 들어가는 건축물을 짓기도 합니다. 성경에 나오...

계 21:17

  • 2024-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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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73 21:17 그 성곽을 측량하매 백사십사 규빗이니 사람의 측량 곧 천사의 측량이라 성곽은 144 규빗이라고 합니다. 1 규빗이 대략 50cm 정도니까 72m가 되는 셈입니다. 성곽, 즉 성벽의 전체 둘레는 물론 아니고, 높이이거나 두께라고 보는 게 맞겠지요. 앞 구절에서 성체의 높이가 2,304km라고 했으니까 72m 높이의 성벽은 너무 낮아 보입니다. 144규빗은 성벽의 두께라고 보아야겠습니다. 그런 정도라고 하더라도 어마어마한 두께입니다. 옛날에는 철근 콘크리트 없이 순전히 기하학적인 기술로...

계 21:16 [9]

  • 2024-04-08
  • 조회 수 401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72 21:16 그 성은 네모가 반듯하여 길이와 너비가 같은지라 그 갈대 자로 그 성을 측량하니 만 이천 스다디온이요 길이와 너비와 높이가 같더라 거룩한 성에 대한 묘사를 따라가기가 쉽지 않습니다. 일단 위 16절을 문자 그대로 생각해봅시다. 거룩한 성은 정육면체이거나 피라미드 모양의 탑입니다. 가로와 세로와 높이가 각각 12,000 스다디온이라고 합니다. 1스다디온은 192m라고 하니(계 14:20) 자그마치 각각의 길이가 2,304km에 해당하는 크기입니다. 저런 크기의 성 앞에서는 높이가 대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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