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일지 11월22일

조회 수 4426 추천 수 0 2020.11.23 16:21:01

대구 샘터교회 주간일지

20201122, 창조절 12

 

1) 캐셔- 예배 후에 집에서 둘째 딸과 대화하는 중에 자신이 오늘 들었던 설교 내용 중에 내심 찔리는 대목이 있었다고 말합니다. 마트 캐셔(계산원) 이야기입니다. 본인도 캐셔를 인격체로 대하지 못하고 그냥 계산해 주는 기계처럼 대했다네요. 그래서 설교에 나온 것처럼 그가 서툴게 처리하면 짜증이 났다는 겁니다. 지극히 작은 자를 인격체로 대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유대계 철학자인 마틴 부버(M. Buber)나와 너(Ich und Du)라는 책에서 이런 문제를 정확하게 짚었습니다. 현대인은 사람을 순전히 대상, 그것으로만 대하면서 산다고 합니다. 회복해야 할 관점은 입니다. 대상이 사물로서의 그것이 아니라 인격으로서의 로 자리매김해야 한다는 겁니다. 이런 관점이 바로 설교에서 강조한 파루시아 개념의 실제입니다. 하나님의 임재라는 관점에서는 지극히 작은 자와 지극히 큰 자가 다르지 않습니다. 모두가 소중한 입니다. 사람만이 아니라 소나무와 나비도 다 소중한 가 될 수 있을 겁니다. 이렇게 대할 수만 있다면 세상은 그에게 신비가 가득한 하나님의 창조물로 다가오겠지요. 그런 세계 경험이 곧 영생에 들어간다는 의미입니다.

 

2) 교회력- 오늘은 2019~2020년 교회력 마지막 주일이었습니다. 2019121일 대림절 첫째 주일을 시작해서 이제 52주의 교회력이 끝난 것입니다. 2020~2021년 새로운 교회력이 다음 주일인 1129일의 대림절 첫째 주일로 시작합니다. 교회력은 대림절부터 시작해서 성탄절, 주현절, 사순절, 부활절, 성령강림절, 창조절로 이어집니다. 전체가 일곱 절기입니다. 대림절부터 부활절까지는 주로 성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주제로 하는 절기입니다. 6개월간 지속합니다. 성령강림절은 성령을 주제로 하는 절기로서 보통 6~8월에 해당합니다. 3개월간 지속합니다. 창조절은 성부를 주제로 하는 절기로서 보통 9월에서 11월까지 이어집니다. 개신교 교인들은 교회력(church calendar)를 무시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예전예배를 대하는 태도와 비슷합니다. 개신교 교인들이 교회력이나 예전을 로마가톨릭교회나 정교회의 종교적 특징이라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실존적으로 예수를 믿고 구원받는다는 사실에 집중하다 보니 교회력의 중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겁니다. 이건 완전히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어도 건강하다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 일종의 편식이니까요. , 다음 주일은 대림절 첫째 주일입니다. 기다려보십시오.

 

3) 유튜브- 우리 교회의 유튜브 방송을 시청하는 분들이 느린 속도이지만 늘고 있습니다. 처음 시작한 지난여름만 하더라도 구독자가 80명 내외였는데, 지금은 209명입니다. 조회 수도 크게 늘었습니다. 유튜브 예배 방송담당자는 이*희 집사입니다. 한두 번이 아니라 매주 이 일을 감당한다는 게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내년에는 누군가 나서서 일을 분담해주었으면 합니다. 여기에는 인터넷 기기를 만질 줄 아는 능력이 필요하니까 아무나 할 수도 없겠지요. 누가 자기를 도와주면 좋을지는 이*희 집사가 가장 잘 알 테니, 제가 한번 물어보겠습니다. 서로 형, 동생 하면서 지내는 이*영 교우가 있긴 합니다. 서로 마음을 합해서 일을 적절하게 나눠서 할 수 있으면 최선이라고 저는 생각하는데, 본인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군요. 코로나19 사태로 인해서 교회에서도 비대면이 뉴노멀’(New Normal)로 자리를 잡게 될 것으로 보입니다. 코로나 사태가 끝나도 그 경향은 여전하겠지요. 앞으로 우리 교회의 유튜브 방송이 좀 더 품격 높은 방송으로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꾸준히 준비해나가는 게 좋겠습니다.

 

4) 운영위원회- 2020년에는 코로나19 비상사태라서 운영위원 회의가 몇 번 열리지 못했습니다. 원래는 매달 한 번씩 정기 회의가 있고, 임시 회의도 열렸습니다. 위원장 정*, 예배부장 김*, 교육부장 양*, 봉사부장 이*, 나눔선교부장 박*, 어린이청소년부장 신*, 사무관리부장 홍*, 재정부장 김*근입니다. 그리고 담임 목사는 당연직입니다. 위원장은 세례 교인으로 교회에 등록한 지 5년 이상 된 교인 중에서 선출하는데, 운영위원회에서 추천하고 교인총회에서 인준받습니다. 올해는 봉사부, 교육부, 어린이청소년부가 활동을 전혀 할 수 없었습니다. 내년에도 이런 상황이 이어지리라 예상합니다. 126일과 27일에 운영위원 회의가 열립니다. 2021년도 교인총회를 준비하는 회의입니다. 이 어려운 시기를 함께 헤쳐나가는 운영위원 모두에게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5) 떠나는 분들- 2020년에는 새로운 교인으로 등록한 가정이 딱 한 가정입니다. 코로나19 바이러스 1차 확산이 시작하기 바로 전 주일인 29일이었습니다. 전 가족이 예배에 꾸준히 나오고 있습니다. 지금은 새로운 교인이 오기보다는 오히려 잠적하는 기존 교인들이 더 많습니다. ‘자의반타의반으로 교회를 떠나는 분들이 계십니다. 사정도 여러 가지입니다. 다른 교회를 찾아서 가면 다행이지만 교회 생활 자체를 포기하는 분도 있어서 안타깝습니다. 많은 분이 계신 건 아니고, 아주 소수의 분이 그렇습니다. 너무 염려하지는 않아도 됩니다. 내년에는 생활 근거지를 외국이나, 국내라고 하더라도 먼 지역으로 옮길 분들이 계십니다. 그중에 청년들도 끼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두를 선하게 인도하시겠지요. 그건 그렇고, 교회 생활은 순전히 신앙만으로 이뤄지지는 않습니다. 교인들끼리의 친교도 중요한 요인입니다. 코로나 사태로 인해서 친교의 기회가 거의 없어졌습니다. 자주 나오는 분들 사이에서만 친교 시간을 조금씩 나누는 실정입니다.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많은 분이 이제는 이따금 교회에 나와도 낯선 교회에 간 듯한 느낌이 들 겁니다. 그러다 보면 교회를 향한 발걸음이 더 뜸해지겠지요. 유튜브를 통해서 예배에 참석할 수 있다는 사실이 이런 현상을 더 가속합니다. 유튜브 예배 방송은 양날의 검과 같습니다. 비대면 시대에 필요한 도구이면서 교회 생활을 외면하게 하는 요인이기도 합니다. 어떤 형태의 교회 생활이 바람직하고 현실성이 있는 건지는 시간을 두고 더 지켜봐야겠습니다. 아직은 뾰족한 답이 없습니다. 말이 옆으로 흘렀군요. 어쩔 수 없이 교회 생활을 그만둘 수밖에 없는 교인들에게 주님의 평화가 늘 함께하기를 바랍니다.

 

6) 헌금- 113주차(1122) 2,770,000(오프 580,000/ 2,190,000/ 등록 교인 외: *, *)/ 농협 301-0243-3251-71(대구 샘터교회)


[레벨:17]시골뜨기

2020.11.23 19:16:19

헌금 합계가 2,770,000원입니다.

[레벨:4]영파

2020.11.24 11:09:29

존경하는 목사님,

2019-2020 한 해 동안의 영적여정에서 말할 수 없는 빚을 졌습니다.

고맙습니다.


주간일지 2번 교회력 가운데

'52의 교회력이'는 '52주일의 교회력이'로,

'창조절은 성자를 주제로'는 '창조절은 성부를 주제로'로

수정해야 할 것 같습니다. 샬롬!


여수에서 송 혁 올림

profile

[레벨:100]정용섭

2020.11.24 20:18:31

와, 송 목사님이시군요.

작년 10월말 여수에서 2박3일 동안 함께 지낸 시간이 기억에 생생합니다.

코로나19 사태도 언젠가는 여하한 방식으로 지나갈 터이니

이제 우리가 가야 할 새로운 교회력 안으로 깊이 들어가봅시다.

짚어주신 내용은 고쳐놓겠습니다.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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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81 21:25 낮에 성문들을 도무지 닫지 아니하리니 거기에는 밤이 없음이라 25절 문장이 약간 이상합니다. 거룩한 성에는 밤이 없어서 낮에 성문을 닫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성문은 보통 밤에 닫지 않습니까. 낮에는 원래 열어두는 거고요. 밤에도 성문을 잠그지 않는다고 해야 자연스러운 표현인데, 위 구절은 자연스러운 문장이 아닙니다. 아예 문이 필요 없겠지요. 그래서 <새번역> 성경은 “그 도성에는 밤이 없으므로, 온종일 대문을 닫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번역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려는 ...

계 21:24 [2]

  • 2024-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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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80 21:24 만국이 그 빛 가운데로 다니고 땅의 왕들이 자기 영광을 가지고 그리로 들어가리라 24절의 표현은 장엄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모든 나라와 모든 왕이 각각의 영광 가운데서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으로 들어간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도 거룩한 성에 들어간다는 말이냐, 하는 질문은 여기서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이미 심판받을 자는 심판받고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계 21:8)에 던져질 자들은 모두 던져진 이후의 일이니까요. 거룩한 성에 들어갈 자들에게 ‘자기...

계 21:23

  • 2024-04-17
  • 조회 수 250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79 21:23 그 성은 해나 달의 비침이 쓸 데 없으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비치고 어린 양이 그 등불이 되심이라 요한은 해가 필요 없고 달도 필요 없는 세상을 내다봅니다. 빛이 필요 없는 세상입니다. 이유는 하나님의 영광이 빛이 되고, 어린 양이 등불이 되기 때문입니다. 요한은 사 60:19-20절에서 이에 관해서 통찰을 얻은 것으로 보입니다. “다시는 낮에 해가 네 빛이 되지 아니하며 달도 네게 빛을 비추지 않을 것이요 오직 여호와가 네게 영원한 빛이 되며 네 하나님이 네 영광이 되리니 …...

계 21:22

  • 2024-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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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78 21:22 성 안에서 내가 성전을 보지 못하였으니 이는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 양이 그 성전이심이라 22절에는 아주 특별한 내용이 나옵니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에 성전이 없다는 겁니다. 성전 하나쯤 있어야 거룩한 성이 빛나 보일 텐데 말입니다. 예루살렘이 하나님의 도성이라 할 수 있는 이유도 거기에 성전이 있기 때문이 아닙니까. 종교 건물이 없는 곳을 거룩하다고 이름 붙일 수는 없는 법이지요. 그러나 요한이 본 거룩한 성은 그것 자체로 완벽하기에 성전은 없어도 ...

계 21:21 [2]

  • 2024-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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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77 21:21 그 열두 문은 열두 진주니 각 문마다 한 개의 진주로 되어 있고 성의 길은 맑은 유리 같은 정금이더라 12절에서 언급된 열두 문이 21절에서 다시 소개됩니다. 각각의 문마다 한 개의 진주로 되어있습니다. 진주 한 알이 박혀 있다는 뜻인지 아니면 문 전체가 진주로 되어있다는 것인지 분명하지는 않습니다. 문을 만들만한 크기의 진주는 세상에 없습니다. 문이 진주 모양을 했다는 뜻인가요? 그냥 편하게 진주로 된 문이라고 생각하면 되겠지요. 문에 이어지는 길이 나옵니다. 길은 ‘맑...

계 21:20

  • 2024-04-12
  • 조회 수 270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76 21:20 다섯째는 홍바노요 여섯째는 홍보석이요 일곱째는 황옥이요 여덟째는 녹옥이요 아홉째는 담황옥이요 열째는 비취옥이요 열한째는 청옥이요 열두째는 자수정이라 다섯째부터 열두째까지 당시의 모든 보석이 열거됩니다. <새번역> 성경으로 다시 읽어보겠습니다. “다섯째는 홍마노요, 여섯째는 홍옥수요, 일곱째는 황보석이요, 여덟째는 녹주석이요, 아홉째는 황옥이요, 열째는 녹옥수요, 열한째는 청옥이요, 열두째는 자수정이었습니다.” 이름만 들어도 눈이 휘둥그레지는 보석들이군요. ...

계 21:19

  • 2024-04-11
  • 조회 수 261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75 21:19 그 성의 성곽의 기초석은 각색 보석으로 꾸몄는데 첫째 기초석은 벽옥이요 둘째는 남보석이요 셋째는 옥수요 넷째는 녹보석이요 열두 사도의 이름이 각각 기록된 열두 기초석도 보석으로 꾸며졌다고 합니다. 19절에는 네 가지가 나옵니다. 벽옥, 남보석(사파이어), 옥수, 녹보석(비취옥)입니다. 옥수(玉髓)는 낯선 단어인데, 보석의 일종으로 보면 됩니다. 정말 휘황찬란한 모습으로 묘사되었습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렸다시피 요한은 자기가 살아가면서 본 것 중에서, 그리고 상상할 수 ...

계 21:18

  • 2024-04-10
  • 조회 수 271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74 21:18 그 성곽은 벽옥으로 쌓였고 그 성은 정금인데 맑은 유리 같더라 18절에 다시 벽옥과 정금(순금)이 나옵니다. 요한이 어디서 이런 건축물을 실제로 본 적이 있을까요? 사람은 건축물에 대한 욕망이 에로스처럼 강합니다. 더 크고, 더 아름답고, 더 빛나는 건축물을 향한 욕망 말입니다. 그런 건축물을 통해서 자기의 이름을 빛내고, 더 근본에서는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려고 합니다. 가끔은 사랑하는 아내나 연인을 위해서 천문학적 비용이 들어가는 건축물을 짓기도 합니다. 성경에 나오...

계 21:17

  • 2024-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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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73 21:17 그 성곽을 측량하매 백사십사 규빗이니 사람의 측량 곧 천사의 측량이라 성곽은 144 규빗이라고 합니다. 1 규빗이 대략 50cm 정도니까 72m가 되는 셈입니다. 성곽, 즉 성벽의 전체 둘레는 물론 아니고, 높이이거나 두께라고 보는 게 맞겠지요. 앞 구절에서 성체의 높이가 2,304km라고 했으니까 72m 높이의 성벽은 너무 낮아 보입니다. 144규빗은 성벽의 두께라고 보아야겠습니다. 그런 정도라고 하더라도 어마어마한 두께입니다. 옛날에는 철근 콘크리트 없이 순전히 기하학적인 기술로...

TEL : 070-4085-1227, 010-8577-1227, Email: freude10380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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