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일지 1월16일 주현후2주

조회 수 1025 추천 수 0 2022.01.17 11:17:03

대구 샘터교회 주간

2022116, 주현 후 2

 

1) 하나님이 기뻐하는 자- 공관복음 기자들은 예수의 세례 장면을 보도하면서 예수님을 하나님이 기뻐하는 자’(3:17, 1:11, 3:22)라고 표현했습니다. 오늘 설교 본문인 사 62:5절에 나온 하나님이 너를 기뻐하시리라.”라는 문장과 맥이 통합니다. 설교 마지막 단락에서 저는 하나님이 기뻐하는 자인 예수를 믿는 우리를 하나님이 기뻐하실 것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이 말은 곧 하나님께서 우리의 믿음을 보시고 우리가 하나님이 기뻐할 사람으로 살아갈 능력을 허락하신다는 뜻입니다. 이게 말이 될까요? 물론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믿기만 한다면, 즉 예수님의 제자로서 예수처럼 하나님 나라에 전적으로 의존해서 산다면 당연히 시온의 의예루살렘의 공의가 실현되는 일에 최선을 다하면서 살게 될 것입니다. 이방인들의 특징인 염려에 떨어지지 않고 오직 하나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해서 살아갈 수 있을 겁니다. 문제는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고 하나 실제로는 시장 원리와 자본주의 세력을 추종한다는 데에 있는 게 아닐는지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수에게 저도 조금 더 가까이 가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성령께서 도와주시기를!

 

2) 헌금- 광고 시간에 지난 교인총회의 결의 사항을 간략하게 말씀드리면서 헌금에 관해서도 보충하여 설명했습니다. 대충 다음과 같은 내용입니다. 우리 교회는 일반 교회에서 볼 수 있는 여러 가지 헌금 제도가 없습니다. 거의 모든 교회가 실행하는 십일조 헌금과 감사헌금도 없고, 절기 헌금이나 선교 헌금도 없습니다. 우리는 월정헌금 하나입니다. 이런 방식의 헌금 제도는 모험적이고 실험적인 겁니다. 이런 방식으로 교회의 재정 문제가 흔들리지 않고 유지되기는 사실상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지금까지 교회가 재정적으로 큰 어려움 없이 지냈습니다. 큰 어려움이 없다는 말은 이중적입니다. 모두가 만족할 정도로 헌금 수입이 이루어졌다는 뜻이기도 하고, 교회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별로 하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우리 교회는 헌금에 관한 부담이 없어서 좋다는 말은 자랑이 아니니까 다른 교회 신자들에게 그렇게 말하지 않는 게 좋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제자라면 헌금의 많고 적음이 문제가 아니라 자신이 감당할 무게만큼 헌금에서도 최선의 역할을 감당해야 하니까요. 작년 2021년도 한 해 헌금 결산은 85,960,000원이었습니다. 여기에는 등록 교인 외의 분들께서 동참한 헌금이 포함됩니다. 대략 15%입니다. 그걸 제외한다면 연말 결산에서 크게 부족했을 겁니다. 마이너스 결산이 되었다고 해도 사실은 큰 문제는 아닙니다. 가정 살림도 마찬가지지만, 교회도 때에 따라서 살림살이가 쪼들릴 수도 있는 거니까요. 해결방법은 간단합니다. 수입이 줄면 지출을 줄이면 됩니다. 어쨌든지 대구샘터교회의 재정 문제가 신학적으로 건강하면서도 투명하고, 동시에 내용에서도 알찬 교회로 자리를 잡아갔으면 합니다. 이 자리를 빌려서 대구샘터교회의 등록 교인이 아니면서도 헌금에 동참해주신 분들에게 다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3) 샌드위치- 오늘 김*섭 장로와 배*애 권사가 올해 처음으로 장로, 권사 호칭을 받는 기념으로 고급 샌드위치와 식혜 음료수를 가져오셨더군요. 샌드위치와 식혜가 그렇게 잘 어울리는 조합이라는 걸 이번에 새롭게 느꼈습니다.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러고 보니 2022년에는 첫 주일부터 오늘 셋째 주일까지 주일마다 먹을거리가 준비되었네요. 코로나19 이전에는 주일마다 친교 식사를 했는데, 그 시절이 아득하게 느껴집니다. 그런 시절이 다시 오기는 올까요? 1월은 릴레이 떡으로 가야 할 것 같습니다. 넷째 주일에는 정 목사 가정에서 떡을 준비해볼까 합니다. 영천에도 떡집에 있으니까 알아봐야겠네요. 혹시 마지막 주일에 자원할 분이 있으면 봉사경조부장 권*숙 집사에게 신청하세요.

 

4) - 주간일지를 올리는 오늘 117일은 음력으로 1215일입니다. 보름달을 볼 수 있습니다. 정월 대보름은 215일이 되겠습니다. 어제 1214일도 운치가 넘치는 달이 떴는데, 오늘은 더 좋을 것이고, 내일과 모레는 더 좋을 겁니다. 달이 없는 지구를 생각해보셨나요? 또는 달이 두 개인 지구를 생각해보셨나요? 모든 가능성이 열려 있었으나 하나의 지구와 하나의 달로 결정되었습니다. 겨울 달밤에 논밭 길을 걷는다면 특별한 느낌이 있을 겁니다. 저는 오늘과 내일, 그리고 며칠에 걸쳐서 달빛 아래 집 마당이라도 걸어볼까 합니다. 지난 늦가을에 집을 한 바퀴 도는 길을 만들었습니다. 울퉁불퉁하던 집 뒤꼍 좁은 길을 편편하게 만들고, 그 위에 야자 매트를 깔았습니다. 걷기가 편해졌습니다. 한 바퀴 돌면 100정도 되지 않을까 합니다. 나이가 더 들어 멀리 나가지 못하더라도 이 길을 올레길 삼아서 불교 신자들이 탑돌이 하듯이 돌아볼 계획입니다. , 며칠 동안 달 구경할 때이니, 어쩌면 이게 우리에게 마지막 순간일지도 모르니 실컷 구경하세요. 우주 마술쇼를 보는 겁니다. 공짜로!

 

5) 겨울 추위- 116일 주일은 잠깐 따뜻했는데, 다시 월요일부터 추워진다고 합니다. 코로나19도 있고, 추운 날씨라서 모두 감기에 조심해야겠습니다. 제가 사는 영천 원당은 대구보다 평균 2~3도가 낮습니다. 여름에는 시원해서 좋지만 겨울에는 불편한 게 많습니다. 시골에는 도시가스가 들어오지 않으니 난방에도 어려움이 있습니다. 제 방은 보통 17~18도입니다. 평소에 방에서도 두꺼운 옷을 입고 지냅니다. 그래도 그럭저럭 지낼만하고, 실외 수도가 얼지 않았고, 이런저런 겨울철의 묘미가 있어서 좋기도 합니다. 여기 처음 이사 온 해 겨울에 수도계량기가 얼어서 고생한 후로는 매년 겨울 오기 전에 보온 조치를 합니다. 여기까지는 좋은데 추울 때 가장 아쉬운 건 테니스 운동을 하기가 어렵다는 겁니다. 저는 일주일에 두 번 테니스 구장에 나갑니다. 보통 월요일과 목요일 저녁 시간입니다. 지난 목요일인 13일에는 얼마나 춥고 바람이 불던지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엄지발가락이 얼어서 감각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동호회원들도 거의 나오지 않았고요. 이번 주간에는 전체적으로 기온이 떨어진다고 하니 테니스 운동을 아예 쉬어야겠습니다. 모두 건강하게 잘 지내시고, 오는 주일에 대면이나 비대면 예배에서 만나겠습니다. , 오늘부터 방역 기준이 약간 달라지더군요. 6명까지 사적 모임이 가능합니다. 종교시설은 접종 완료자 중심으로 좌석 수의 70% 현장 예배 참석이 가능합니다. 대구샘터 교우들은 대다수가 3차 접종 완료자이니 현장 예배 참석을 편하게 해도 좋습니다.

 

6) 곶감 팔아주기- 우리 교회에서 후원하는 <토기장이의 집>이 직접 만든 곶감을 팝니다. 기독교 신앙 안에서 생태 중심적 지역 살리기 운동을 펼치는 토기장이의 집은 농사를 크게 짓지 못해서 살림살이가 늘 쪼들립니다. 최소한 일용할 양식이 공급되어야만 그 운동의 지속성이 유지될 수 있습니다. 곶감 팔기는 일용할 양식을 위한 작은 수익사업입니다. 교우 여러분의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대구성서아카데미에 올라온 안내에 링크하겠습니다. http://dabia.net/xe/free/1047583#7

 

7) 아픈 이를 위한 기도- 주님, 교우 중에서 아픈 이들이 있습니다. 늙어 몸이 노쇠하여 아픈 이들도 있고, 뜻하지 않게 병이 들어서 아픈 이들이 있습니다. 집에서 몸조리하면서 조용히 지내기도 하고, 병원 출입을 하기도 합니다. 가족의 도움을 받는 이들도 있고, 혼자 버티는 이들도 있습니다. 아무리 옆에서 돌봐주는 사람이 있다고 하더라도 결국에는 본인이 몽땅 감당해야 할 짐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외로운 인생길에서 지금 더 외로운 순간을 맞은 이들입니다. 주님, 그들의 아픔과 외로움을 헤아려주십시오. 가능하면 속히 쾌차했으면 합니다. 조금 더 아파야 할 상황이라면 그 과정을 잘 감당하도록 힘을 주십시오. 지금 젊고 건강한 교우들도 사실은 곧 모두 늙어 노쇠할 것이며 병들 것입니다. 현재 아픈 사람만이 아니라 우리가 모두 잠재적으로 아픈 사람들입니다. 몸만이 아니라 마음이 아프거나 영혼이 병든 이들도 있습니다. 그들까지 돌보시고 지켜주십시오. 당신만이 늙고 병들고 아픈, 그리고 앞으로 그렇게 될 모든 사람의 진정한 위로자이며 선한 친구라는 사실을 진심으로 믿습니다. 예수 이름으로 아멘!

 

8) 헌금- 116: 950,000(온라인 350,000, 현장 600,000)/ 온라인 통장: 농협 301-0243-3251-71(대구 샘터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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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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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80 21:24 만국이 그 빛 가운데로 다니고 땅의 왕들이 자기 영광을 가지고 그리로 들어가리라 24절의 표현은 장엄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모든 나라와 모든 왕이 각각의 영광 가운데서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으로 들어간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도 거룩한 성에 들어간다는 말이냐, 하는 질문은 여기서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이미 심판받을 자는 심판받고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계 21:8)에 던져질 자들은 모두 던져진 이후의 일이니까요. 거룩한 성에 들어갈 자들에게 ‘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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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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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78 21:22 성 안에서 내가 성전을 보지 못하였으니 이는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 양이 그 성전이심이라 22절에는 아주 특별한 내용이 나옵니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에 성전이 없다는 겁니다. 성전 하나쯤 있어야 거룩한 성이 빛나 보일 텐데 말입니다. 예루살렘이 하나님의 도성이라 할 수 있는 이유도 거기에 성전이 있기 때문이 아닙니까. 종교 건물이 없는 곳을 거룩하다고 이름 붙일 수는 없는 법이지요. 그러나 요한이 본 거룩한 성은 그것 자체로 완벽하기에 성전은 없어도 ...

계 21:2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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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77 21:21 그 열두 문은 열두 진주니 각 문마다 한 개의 진주로 되어 있고 성의 길은 맑은 유리 같은 정금이더라 12절에서 언급된 열두 문이 21절에서 다시 소개됩니다. 각각의 문마다 한 개의 진주로 되어있습니다. 진주 한 알이 박혀 있다는 뜻인지 아니면 문 전체가 진주로 되어있다는 것인지 분명하지는 않습니다. 문을 만들만한 크기의 진주는 세상에 없습니다. 문이 진주 모양을 했다는 뜻인가요? 그냥 편하게 진주로 된 문이라고 생각하면 되겠지요. 문에 이어지는 길이 나옵니다. 길은 ‘맑...

계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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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76 21:20 다섯째는 홍바노요 여섯째는 홍보석이요 일곱째는 황옥이요 여덟째는 녹옥이요 아홉째는 담황옥이요 열째는 비취옥이요 열한째는 청옥이요 열두째는 자수정이라 다섯째부터 열두째까지 당시의 모든 보석이 열거됩니다. <새번역> 성경으로 다시 읽어보겠습니다. “다섯째는 홍마노요, 여섯째는 홍옥수요, 일곱째는 황보석이요, 여덟째는 녹주석이요, 아홉째는 황옥이요, 열째는 녹옥수요, 열한째는 청옥이요, 열두째는 자수정이었습니다.” 이름만 들어도 눈이 휘둥그레지는 보석들이군요. ...

계 21:19

  • 2024-04-11
  • 조회 수 234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75 21:19 그 성의 성곽의 기초석은 각색 보석으로 꾸몄는데 첫째 기초석은 벽옥이요 둘째는 남보석이요 셋째는 옥수요 넷째는 녹보석이요 열두 사도의 이름이 각각 기록된 열두 기초석도 보석으로 꾸며졌다고 합니다. 19절에는 네 가지가 나옵니다. 벽옥, 남보석(사파이어), 옥수, 녹보석(비취옥)입니다. 옥수(玉髓)는 낯선 단어인데, 보석의 일종으로 보면 됩니다. 정말 휘황찬란한 모습으로 묘사되었습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렸다시피 요한은 자기가 살아가면서 본 것 중에서, 그리고 상상할 수 ...

계 21:18

  • 2024-04-10
  • 조회 수 247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74 21:18 그 성곽은 벽옥으로 쌓였고 그 성은 정금인데 맑은 유리 같더라 18절에 다시 벽옥과 정금(순금)이 나옵니다. 요한이 어디서 이런 건축물을 실제로 본 적이 있을까요? 사람은 건축물에 대한 욕망이 에로스처럼 강합니다. 더 크고, 더 아름답고, 더 빛나는 건축물을 향한 욕망 말입니다. 그런 건축물을 통해서 자기의 이름을 빛내고, 더 근본에서는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려고 합니다. 가끔은 사랑하는 아내나 연인을 위해서 천문학적 비용이 들어가는 건축물을 짓기도 합니다. 성경에 나오...

계 21:17

  • 2024-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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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73 21:17 그 성곽을 측량하매 백사십사 규빗이니 사람의 측량 곧 천사의 측량이라 성곽은 144 규빗이라고 합니다. 1 규빗이 대략 50cm 정도니까 72m가 되는 셈입니다. 성곽, 즉 성벽의 전체 둘레는 물론 아니고, 높이이거나 두께라고 보는 게 맞겠지요. 앞 구절에서 성체의 높이가 2,304km라고 했으니까 72m 높이의 성벽은 너무 낮아 보입니다. 144규빗은 성벽의 두께라고 보아야겠습니다. 그런 정도라고 하더라도 어마어마한 두께입니다. 옛날에는 철근 콘크리트 없이 순전히 기하학적인 기술로...

계 21:16 [9]

  • 2024-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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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72 21:16 그 성은 네모가 반듯하여 길이와 너비가 같은지라 그 갈대 자로 그 성을 측량하니 만 이천 스다디온이요 길이와 너비와 높이가 같더라 거룩한 성에 대한 묘사를 따라가기가 쉽지 않습니다. 일단 위 16절을 문자 그대로 생각해봅시다. 거룩한 성은 정육면체이거나 피라미드 모양의 탑입니다. 가로와 세로와 높이가 각각 12,000 스다디온이라고 합니다. 1스다디온은 192m라고 하니(계 14:20) 자그마치 각각의 길이가 2,304km에 해당하는 크기입니다. 저런 크기의 성 앞에서는 높이가 대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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