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9일 귀신들린 사람 (5)

조회 수 1604 추천 수 38 2007.04.09 08:06:43
2007년 4월9일 귀신들린 사람 (5)

이는 여러 번 고랑과 쇠사슬에 매였어도 쇠사슬을 끊고 고랑을 깨뜨렸음이러라. 그리하여 아무도 그를 제어할 힘이 없는지라.(막 5:4)

본문에서 귀신들린 사람이 쇠사슬을 끊어버렸다는 대목에서 저는 웬일인지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라는 영화가 생각나는군요. 너무 오래 전에 본 영화래서 기억이 가물가물합니다. 디테일은 전혀 잡히지 않고 굻은 선만 잡힙니다. 정신병원에서 일어난 에피소드입니다. 주인공이 왜 정신병원에 들어갔는지는 모르겠고, 그곳에서 고분고분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몇 번 경고를 받다가 결국 뇌수술을 받습니다. 그 과정에서 그는 친구를 사귑니다. 그 친구도 정신 병원에 있는 환자입니다. 덩치가 아주 큰 그 친구는 벙어리로 소문이 났습니다. 아무도 그가 말하는 걸 들은 사람이 없습니다. 그는 이 주인공 앞에서만 입을 엽니다. 주인공이 강제로 뇌수술을 받고 나온 걸 본 이 친구는 커다란 의자를 들어 던져서 쇠창살을 부습니다. 그리고 탈출하지요.
저는 한국교회 신자들이 이렇게 쇠사슬을 끊고 자유를 향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끊임없이 길들여지고 있습니다. 무엇이 신앙인지 모른 채 습관적으로 신앙생활을 합니다. 말 한마디 잘못하면 믿음이 없다는 핀잔을 듣고, 심지어는 “교회에 그만 나와라.”는 말도 듣습니다. 물론 문제를 일으키는 신자들이 없는 건 아니지만 대개는 마지못해, 또는 솔선해서 정신병원의 규칙을 따르고 있는 이들이 훨씬 많은 게 아닐는지요.
문제는 그들이 쇠사슬에 묶여 있다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모일 때마다 죄를 회개하고, 헌금을 드려야하고, 무언가 교회를 위해서 일을 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받으면서도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깁니다. 문제의식이 있어도 그런 쇠사슬의 구조에서 벗어난다는 사실 앞에서의 두려움 때문에 감히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합니다. 무의식적으로는 그런 구조가 제공하는 안정감이 일정한 역할을 하는 거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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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28]정성훈

2007.04.09 08:58:27

보이지 않는 쇠사슬 비유가 너무나도 적당하군요

[레벨:23]브니엘남

2007.04.09 14:00:06

율법의 속박아래 눌림당한 유대인들과 같네요.
아마 모든 종교는 다 그렇다고 여겨집니다.
속박아래 있는 사람이 자유를 찾아가는 과정이 신앙인 것 같네요.
교회 지도자들의 몽매함이여.
소경이 어찌 소경을 인도하리오.
그런데 실은 교인들이 아니라도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은 다 자기만의 쇠사슬에 매여 있는 것 같습니다.

[레벨:1]용환필

2007.04.09 11:58:37

제가 하는 일이 사람들을 더욱 쇠사슬에 묶이게 하는 일은 아닌지 늘 두렵습니다.

[레벨:28]첫날처럼

2007.04.09 18:03:37

유대교를 극복하고 그리스도의 가르침으로의 패러다임 쉬프트가 지금 이 시대에도 꼭 필요한 것임을 절실히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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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이길용

2007.04.09 18:18:01

브니일남님/ 율법이 속박하고 있다기 보다는 율법에 대한 이스라엘인들의 생각이 그들을 더 속박했다고 봐야겠죠. 성서에서 언급되는 율법은 토라(Torah)를 의미하고, 토라는 구약들 중 첫번재 다섯권의 책(창, 출, 레, 민, 신)을 말합니다. 유대인들 역시 토라를 다섯권의 독립된 책이라기 보다는 하나의 경계로 묶어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즉 토라, 야웨가 자신들에게 준 훈계로서 말이지요. 만약 유대인들이 토라의 본의를 제대로 파악하고 있었다면 절대 율법의 속박 아래 놓이지 않았겠지요. 많은 이들이 율법을 법(law)으로 파악하는데, 성서에서 말하는 율법은 근대적 의미의 법이라기 보다는 인류에게 간섭하시는 야웨의 의지입니다.

첫날처럼님/ 유대교는 기원후 3-4세기나 되어서야 형성되는 새로운 모습의 종교운동일 따름입니다. 고대 이스라엘의 종교를 곧바로 유대교라 통칭할 수는 없습니다. 즉 예수께서 활동하던 당시에 지금 우리가 알고있는 모습의 유대교는 없었습니다.

[레벨:23]브니엘남

2007.04.09 21:33:23

이길룡 목사님// 율법이 속박하고 있다기 보다는 율법에 대한 이스라엘인들의 생각이 그들을 더 속박했다.

제 생각은 조금 다릅니다. 야훼 하나님은 본래 율법이 아니라 은혜를 주셨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죄를 지으니 율법이 가입하게 되었지요(롬 5:20).

롬 5:20 율법이 가입한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넘쳤나니
여기서 "가입"이란 뜻은 "옆에서 끼어들어옴"이란 뜻입니다. 그러니 율법은 은혜에 더하여 진 것이지요. 즉 율법은 추가된 것이지요. 즉 하나님의 원래의 의도가 아닌 것이지요. 오히려 율법은 그것이 오기 전에 제시된 어떤 것. 즉 은혜와 병행하여 나중에 가입되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이미 있었음을 뜻하는 말입니다. 갈 3:19절 "그런즉 율법은 무엇이냐 범법함을 인하여 더한 것이라"는 말씀이 더욱 이것을 말해 줍니다.

그리고 제가 말한 것은 율법이 계명(출 20~23장)을 말하는 것이지 토라, 즉 모세오경을 말한 것이 아닙니다.

구약의 사람들은 그들 속에 하나님의 영, 즉 성령이 거하지 않았으므로 아마 그들은 율법의 속박에서 벗어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들의 안에 성령이 없었음으로 그들의 생각이 완고할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이것은 거듭난 그리스도인들도 은혜 안에 거하지 않으면 마찬가지이겠지만요.

그래서 예수님도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마 23:23)고 말씀하신 것이 아닐까요.

저는 이렇게 생각하는데요. 혹시 잘못된 것이 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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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이길용

2007.04.09 22:36:28

제 이름은 이길룡이 아니라 이길용입니다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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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이길용

2007.04.09 22:43:59

무슨 말씀하시는지 저는 잘 모르겠네요.

글의 전개에서 역사성이 심각히 결여되어 있는 듯 합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결말성 결론은 브니엘남님의 자의적 판단이구요.
그것에 잘못이 있는지 없는지는 따라서 '객관적인 잣대가' 작동할 구석이 별로 없어 보입니다.

[레벨:23]브니엘남

2007.04.09 23:52:14

목사님//존함을 잘못 써서 죄송합니다.

[레벨:28]첫날처럼

2007.04.10 11:50:47

제대로 모르면서 아는척 하다가 박사님의 그물망에 제가 턱 걸려부렀네용... ^^;;; 말 표현의 정오(正誤)를 떠나서 그냥 그런식의 "패턴"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이었습니다...

물론 종교도 진화한다는 걸 감안한다면 그 당시 고대 이스라엘의 종교랑 그 이후에 역사적으로 나타난 유대교는 다르겠죠...원시 기독교랑 - 예수 운동이라 해야하나요?- 지금의 기독교가 그러하듯이... 그렇다면 "고대 이스라엘의 종교"랑 "유대교"가 어떠한 차이점이 있는지 궁금증이 생기네요... 대충 바리새파의 명맥이 지금의 유대교에 이어져오고 있다는 정도밖에는 제가 몰라서...ㅋㅋ... 워낙에 아는 건 없고, 알고싶은 욕구는 강하고, 공부는 안하고 그렇습니다...

[레벨:1]아직초짜

2007.04.10 13:35:09

이길용 목사님!
"유대교는 기원후 3-4세기나 되어서야 형성되는 새로운 모습의 종교운동일 따름입니다."
혹시 <기원전>을 <기원후>로 잘못 표기한 것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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