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19일 세례요한과 바리새인

조회 수 2084 추천 수 34 2006.09.19 13:58:17
2006년 9월19일 세례요한과 바리새인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들이 금식하고 있는지라. 사람들이 예수께 와서 말하되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의 제자들은 금식하는데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아니하나이까? (막 2:18)

오늘 본문의 문장은 약간 부정확합니다. 앞부분에서는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들이 금식하고 있다고 했는데, 뒷부분에서는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의 제자들이 금식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바리새인이 금식한다는 말인가요, 아니면 바리새인의 제자들이 금식한다는 말인가요?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요한은 금식하지 않고 제자들만 금식한다는 말인가요? 요한복음 기자가 언급하고 있는 제자들이라는 단어는 여기서 결정적으로 중요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것보다는 요한과 바리새인들이, 그리고 그들이 실천하고 있는 금식이 관건이겠지요.
요한복음 기자가 여기서 요한과 바리새인들의 신앙행태를 비슷한 것으로 제시하는 게 재미있습니다. 여기서 요한은 세례 요한을 가리킵니다. 세례 요한과 바리새인들 사이에는 비슷한 점이 많습니다. 그들은 오늘 본문의 주제인 금식을 주기적으로 행했습니다. 금욕적이고 도덕적이라는 점에서 양자는 비슷했습니다. 전반적으로 볼 때 요한과 바리새인은 매우 강한 종교적인 성향을 보였다는 점에서 일치합니다.
그런데 복음서 기자들이 요한을 대하는 입장과 바리새인을 대한 입장이 크게 다릅니다. 요한에 대해서는 한 번도 부정적인 입장을 보인 적이 없습니다. 그런 정도가 아니라 요한은 예수님의 길을 준비한 사람으로 언급됩니다. 출생설화와 출가, 세례, 그리고 예수의 초기 사역에서 세례 요한은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이에 반해서 바리새인들은 늘 예수님과 적대적인 인물로 묘사됩니다. 그들은 복음서에서 위선적인 종교인의 대표자처럼 그려집니다. 복음서 기자들에게 바리새인에 대한 선입견이 있었다는 말인가요? 세례 요한과 바리새인에 대한 복음서 기자들의 평가가 왜 이렇게 다를까요?
이에 대한 대답은 매우 복잡할 것 같습니다. 조금 더 전문적으로 이런 문제를 다루려면 신학 석사 학위 논문을 쓸 정도의 노력이 필요하겠지요. 우리는 범위를 줄여서 상식적으로 몇 가지 관점만 따라가는 것으로 만족해야겠습니다.
초기 그리스도교 역사에서 바리새인들의 반대가 가장 강력하고 노골적이었다는 사실이 이에 대한 가장 가까운 대답입니다. 유대교의 율법 전통을 고수한 이들이 바리새인들이었다고 한다면 그들은 당연히 전혀 새로운 패러다임의 종교, 즉 은총에 중심을 둔 그리스도교 공동체를 위협적인 존재로 생각했겠지요. 이런 충돌이 예수님의 공생애에 관한 해석에도 영향을 끼쳤다고 보아야 합니다.
요한과 바리새인들의 종교적인 태도가 표면적으로는 비슷했지만 실제로는 전혀 달랐다는 게 또 하나의 대답입니다. 요한은 하나님의 뜻을 선포하기 위한 하나의 방식으로 금욕적인 삶을 살았지만 바리새인들은 금욕적인 삶 자체를 목적으로 했습니다.
어쨌든지 금식으로 상징되는 금욕적인 삶도 두 가지로 구분되는 것 같습니다. 하나는 그것 자체가 종교적인 업적으로 드러나는 바리새인들의 삶이며, 다른 하나는 하나님을 향한 신앙의 열매로 맺어지는 요한의 삶입니다. 기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자기의 신앙을 드러내는 기도가 있고, 하나님을 향한 신앙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기도가 있습니다. 봉사 활동도 마찬가지이겠지요.
그런데 이 두 가지 삶은 일단 표면적으로 비슷하기 때문에 분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위선과 선의 겉모양이 비슷하듯이 경건의 모양은 누구에게나 비슷하게 나타나기 마련입니다. 틀린 게 있다면 경건의 능력이겠지요. 오늘 우리의 삶에서 이런 부분을 누가 구분할 수 있겠습니까? 자기 자신은 알 것이며, 역사가 흐른 다음에 판단을 받겠지요. 자신을 철저하게 무익한 종으로 여기는 죄인의 영적인 상태가 하나님과 일치하는 첩경인 것만은 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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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0월18일 안식일과 인자 (4) 이러므로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 (막 2:28) 이제야 우리는 “안식일과 인자”라는 주제를 실제로 묵상할 수 있는 자리에 섰습니다. 인자가 안식일의 주인이라는 말씀은 당연히 예수 그리스도가 주일의 주인이라는 뜻으로 새길 수 있습니다. 당연한 말처럼 들리지만 실제로 이런 일들은 우리 주변에서 그렇게 흔하지 않습니다. 사람끼리 즐겁게 지내는 것이 오늘 우리가 지키고 있는 주일의 모습이 아닐까요? 브레넌 매닝의 아래와 같은 진술은 바로 우리에게 그대로 적용됩니다. “그럼에도 나는 ...

10월17일 안식일과 인자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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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회 수 1764

2006년 10월17일 안식일과 인자 (3) 이러므로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 (막 2:28) 어제 큐티에서 계속되는 이야기입니다. 인간의 죄에 대해서 언급하는 신약성서도 물론 많이 있습니다. 로마서와 갈라디아서가 이를 대표합니다. 그 이외의 서신에도 그 당시의 부도덕성을 경고하거나, 또는 예수의 십자가가 우리를 죄에서 용서받을 수 있는 길이라는 구절이 등장합니다. 그러나 신약성서는 그런 문제를 죄 숙명주의, 또는 십자가 결정론으로 몰아가지 않습니다. 즉 십자가 사건의 실체가 아직 우리에게 완전히 밝혀진 건 아닙니다. ...

10월16일 안식일과 인자 (2)

  • 2006-10-16
  • 조회 수 1560

2006년 10월16일 안식일과 인자 (2) 이러므로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 (막 2:28) 어제의 큐티에서 우리는 십자가와 부활의 실체가 역사 과정을 통해서 탈(脫)은폐되었으며, 그런 과정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진리(알레테이아)는 그런 성격이 있습니다. 한번 드러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역사와 더불어 그 실체가 계속해서 드러납니다. 그래야만 진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도 역시 아직 완전하게 드러난 게 아닙니다. 이런 말이 조금 의아하게 생각되는 분들도 있겠군요. 다시 생각해 봅...

10월15일 안식일과 인자 (1)

  • 2006-10-15
  • 조회 수 1978

2006년 10월15일 안식일과 인자 (1) 이러므로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 (막 2:28) 23절부터 시작된 안식일에 관한 담론이 이제 28절에서 그리스도론으로 일단락되었습니다. 여기서 인자는 유대인들의 묵시사상이 가리키는 메시아 상의 하나입니다. 복음서는 그 인자가 바로 예수님이라고 전제합니다. 그렇다면 결국 본문 28절은 예수님이 안식일의 주인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이 이 28절을 직접 말씀했을 개연성은 별로 높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마가복음 기자가 창작했다는 말일까요? 이런 대목에서 우리의 성서읽기가 참...

10월14일 안식일과 사람 (3)

  • 2006-10-14
  • 조회 수 1605

2006년 10월14일 안식일과 사람 (3) 또 이르시되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 (막 2:27) 예수님이 본문에서 안식일을 해체한 것이 아니긴 하지만, 그리고 우리가 이 말씀에서 안식일과 사람을 대립적으로 다루지 말아야 하지만,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서 존재한다는 그 명제가 우리의 신앙생활을 규정하는 시금석이라는 사실만은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교회의 모든 행위들은 기본적으로 사람을 살리는 쪽으로 운영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어려운 점은 무엇이 사람을 살리...

10월13일 안식일과 사람 (2)

  • 2006-10-13
  • 조회 수 1635

2006년 10월13일 안식일과 사람 (2) 또 이르시되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 (막 2:27) 안식일과 사람, 무엇이 더 중요합니까? 무엇이 신앙의 중심축입니까? 물론 예수님의 이 말씀에 의하면 당연히 사람이겠지요. 그러나 그게 그렇게 간단한 이야기는 아닙니다. 이런 게 바로 성서읽기에서 우리가 만나는 어려움이며, 동시에 우리가 반드시 유지해야 할 긴장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서 존재한다는 이 말씀은 어떤 구체적인 상황을 전제하고 있습니다. 그 상황은 ...

10월12일 안식일과 사람 (1)

  • 2006-10-12
  • 조회 수 1953

2006년 10월12일 안식일과 사람 (1) 또 이르시되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 (막 2:27) 오늘 본문은 보기에 따라서 혁명적인 선언입니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라니요. 그리고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니요. 이 말씀은 그 당시에 사람들이 관습적으로 알고 있는 종교와 인간관계를 완전히 재구성하고 있습니다. 절대규범인 안식일을 상대화하는 이런 진술은 신앙의 본질을 꿰뚫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위험한 것이기도 했습니다. 진리의 성격은...

10월11일 진설병 [8]

  • 2006-10-12
  • 조회 수 1968

2006년 10월11일 진설병 그가 아비아달 대제사장 때에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서 제사장 외에는 먹어서는 안 되는 진설병을 먹고 함께 한 자들에게도 주지 아니하였느냐? (막 2:26) 예수님은 사무엘상 21장1-6절의 다윗 이야기를 인용했습니다. 망명생활을 시작하게 된 다윗은 놉의 제사장 아히멜렉에게서 먹을 걸 요청했습니다. 아히멜렉은 마침 일반적인 빵은 없고 제단에 올린 떡, 즉 진설병만 있다고 대답했습니다. 그거라도 달라는 다윗에게 아히멜렉은 진설병을 주었습니다. 제사장만 먹을 수 있던 진설병을 다윗에게 내준 이유는 그 ...

10월10일 읽지 못하였느냐?

  • 2006-10-10
  • 조회 수 2148

2006년 10월10일 읽지 못하였느냐? 예수께서 이르시되 다윗이 자기와 및 함께 한 자들이 먹을 것이 없어 시장할 때에 한 일을 읽지 못하였느냐. (막 2:25) 예수님께서 구약성서에 나오는 이야기를 거론하면서 “읽지 못하였느냐?” 하고 물으신 걸 보면 당신 자신은 글을 읽을 줄 아셨던 것 같습니다. 현장에서 간음하다 붙잡힌 여자를 바리새인들이 예수님 앞으로 끌고 와서 “어떻게 처리할까요?” 하고 물었을 때 땅바닥에 무언가를 쓰고 계셨다는 요한복음의 진술도 이에 대한 근거 자료가 됩니다. 그러나 소위 ‘예수 세미나’에 속한 사람...

10월9일 안식일 (5)

  • 2006-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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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0월9일 안식일 (5) 바리새인들이 예수께 말하되 보시오 저들이 어찌하여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나이까. (막 2:24) 구약성서의 안식일은 안식년과 희년 사상의 단초입니다. 이들 개념은 모두 인간의 해방, 자유, 평화를 지향하고 있으며, 더 나아가 생태적인 평화까지 아우르고 있습니다. 구약성서가 이런 개념을 발전시킨 가장 큰 이유는 인간의 사회화 과정을 통해서 인간 삶의 구조가 근본적으로 왜곡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왜곡된 삶을 하나님이 창조한 원래의 뜻에 따라 새롭게 구성해내자는 게 바로 이런 개념들의 ...

10월8일 안식일 (4) [7]

  • 2006-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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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0월8일 안식일 (4) 바리새인들이 예수께 말하되 보시오 저들이 어찌하여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나이까. (막 2:24) 초기 그리스도교는 오랫동안 안식일(토요일)을 지켰습니다. 훗날 태양신을 섬기던 로마 제국의 문화와 조우하는 과정에서 시나브로 주일(일요일)을 예배드리는 날로 결정하게 된 것입니다. 여기에는 물론 예수님의 부활이 일요일이었다는 사실과 아울러 로마제국이 일요일을 거룩하게 지켰다는 사실이 중요한 변수였습니다. 어쨌든지 예배모임이 토요일이냐, 일요일이냐 하는 것은 문화적인 요소이기 때문에 별...

10월7일 안식일 (3) [1]

  • 2006-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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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0월7일 안식일 (3) 바리새인들이 예수께 말하되 보시오 저들이 어찌하여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나이까. (막 2:24) 안식일의 기본 개념은 악한 노동으로부터의 해방을 통한 ‘쉼’입니다. 이 말은 곧 인간이 쉴 줄을 모른다는 뜻이겠지요. 쉬지 못하는 이유는 실낙원 이후의 현실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삶이 노동을 통해서만 유지된다는 사실에 놓여 있습니다. 에덴동산에서는 기초적인 생존 조건들이 보장되었지만 실낙원에서는 아무 것도 보장된 것이 없었습니다. 이런 궁극적인 생존의 문제는 인간이 어찌해볼 도리가 없는 차...

10월6일 안식일 (2) [5]

  • 2006-10-06
  • 조회 수 1451

2006년 10월6일 안식일 (2) 바리새인들이 예수께 말하되 보시오 저들이 어찌하여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나이까. (막 2:24) 우리는 어제 안식일의 역사적 뿌리가 창조사건과 출애굽사건이라는 점을 확인했습니다. 창조, 생명, 해방, 자유 등이 여기서 중심 개념들입니다. 이러한 안식일 개념에 노동의 금지 조항이 자리 잡게 된 이유는 인간 역사에서 노동이 몰고 온 삶의 파괴에 기인합니다. 안식일에 일하지 말라는 성서의 계명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 생각해보십시오. 지주나 기업주들은 일하지 말라는 이 명령에 해당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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