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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8월5일- 신성모독 (2)

  • 2006-08-05
  • 조회 수 1726

2006년 8월5일 신성모독 (2) 이 사람이 어찌 이렇게 말하는가. 신성모독이로다. 오직 하나님 한 분 외에는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 (막 2:7) 서기관들과 바리새인, 제사장 등 이스라엘의 종교 지도자들이 예수님의 언행에서 신성모독을 느낀 이유는 자신들이 절대적인 대상으로 생각하던 하나님을 예수님이 상대화 한다고 판단했다는 데에 있습니다. 그들이 야훼 하나님의 이름을 부를 수 없다고 여길 정도로 하나님의 신성을 절대화 하고 있었으니까 하나님을 아주 가까운 호칭인 ‘아빠’로 부른 예수님의 태도를 용납할 수 없었겠지요...

8월4일- 신성모독 (1)

  • 2006-08-04
  • 조회 수 1650

2006년 8월4일 신성모독 (1) 이 사람이 어찌 이렇게 말하는가. 신성모독이로다. 오직 하나님 한 분 외에는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 (막 2:7)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서기관들은 예수님을 이상한 사람으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의 눈에 예수님의 언행은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으로 보인 것이지요. 지금 우리와 달리 예수님을 평범한 유대 청년으로, 또는 젊은 랍비 정도로 생각한 서기관들의 눈에 예수님이 이상하게 보인 것은 당연합니다. 예수님의 이 발언은 그 당시에 신성모독이라는 평가를 받기에...

8월3일- 서기관 (2) [2]

  • 2006-08-04
  • 조회 수 1603

2006년 8월3일 서기관 (2) 어떤 서기관들이 거기 앉아서 마음에 생각하기를 (막 2:6) 서기관은 종교 전문가들입니다. 전통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꿰뚫고 있고, 현재 벌어지는 종교 현상을 명확하게 분석할 수 있는 이 사람들은 그 당시에 율법에 관한한 최고의 권위를 확보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그 당시에 서기관 이외의 종교 전문가들도 있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이 그중의 한 집단입니다. 복음서에서 예수님과 가장 큰 충돌을 빚은 이들로 묘사되고 있는 이들은 발군의 실력으로 율법을 실천적 삶에 담아내고 있었습니다. 이에 반해서 서...

8월2일- 서기관 (1) [1]

  • 2006-08-02
  • 조회 수 1436

2006년 8월2일 서기관 (1) 어떤 서기관들이 거기 앉아서 마음에 생각하기를 (막 2:6) 여러분은 중풍병자 이야기의 주인공이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복음서를 비롯한 신약성서 전체가 예수님을 주인공으로 하니까 일단 예수님이라는 대답은 빼놓고 생각합시다. 중풍병자를 데리고 온 네 명이 바로 주인공일까요? 물론 예수님은 그들의 믿음을 주목하셨으니까 그럴 만도 합니다. 많은 설교자들도 이 네 명을 주인공으로 삼아 우리도 그 네 명처럼 고통당한 사람들과 영적 마비된 사람들을 주님에게 데리고 와야 한다고 설교할 겁니다. 저도 ...

8월1일- 죄 (5) [2]

  • 2006-08-02
  • 조회 수 1745

2006년 8월1일 죄 (5)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작은 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막 2:5) 본문에서 예수님은 중풍병자에게 죄 사함을 받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이 사람의 죄가 용서받았을까요? 이 사람이 온전한 몸으로 돌아갔다는 사실을 놓고 본다면 이 사람의 죄가 용서받은 건 맞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병이 치유되었다는 사실이 곧 사죄의 유일한 증거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이 사람이 나중에 흉악범으로 변했을지도 모르며, 아니면 삶의 의미를 잃어...

7월31일- 죄 (4)

  • 2006-07-31
  • 조회 수 1683

2006년 7월31일 죄 (4)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작은 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막 2:5) 많은 지성인들이 그리스도교를 꺼림칙하게 생각하는 가장 큰 이유는 그리스도교가 죄를 강조한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옳습니다. 그리스도교는 그 바탕에 죄에 대한 깊은 통찰을 깔고 있습니다. 이런 통찰은 갑자기 위에서 내려온 게 아니라 귀납적인 것입니다. 성서의 전승에 참여한 그 사람들은 인간 삶에 뿌리를 박고 있는 한 현실을 보았는데, 그것이 곧 죄입니다. 성서 기자는 그 죄의 현실을 선악과와...

7월30일- 죄 (3)

  • 2006-07-30
  • 조회 수 1496

2006년 7월30일 죄 (3)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작은 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막 2:5) 본문에 나오는 ‘죄’는 헬라어 ‘하마르티아’의 번역입니다. 그 단어는 “빗나가게 한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이 제시한 목표로부터 벗어난다는 뜻이겠지요. 성서의 차원에서 죄는 단지 도덕적인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죄가 무엇인지를 알려면 결국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게 중요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의 뜻이 실증적으로 주어지는 게 아니라는 데에 있습니다. 이 대목에서 십계명을 ...

7월28일- 죄 (2)

  • 2006-07-28
  • 조회 수 1673

2006년 7월28일 죄 (2)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작은 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막 2:5) 예수님에 중풍병자에게 “죄” 사함을 받았다고 말씀한 이유는 유대인들이 장애와 난치병과 같은 불행을 죄의 결과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선천성 시각장애인을 보고 그의 불행이 본인의 죄냐 부모의 죄냐 하고 물은 제자들도(요 9:2) 그런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입니다. 욥기서에서도 비슷한 구도로 설명되어 있는 유대인들의 생각은 그렇게 터무니없는 건 아닙니다. 이런 생각은 기본적으로 인간이 인간...

7월27일- 죄 (1) [3]

  • 2006-07-27
  • 조회 수 1695

2006년 7월27일 죄 (1)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작은 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막 2:5) 예수님이 공생애 중에 죄 많은 여인을 향해서 사죄를 선포한 경우는 있지만(눅 7:48) 장애나 난치병을 고치실 때는 “깨끗함을 받으라.”든지 “네 손을 내 밀라.”는 명령을 내리실 뿐이지 사죄를 선포하지는 않으셨습니다. 이 사죄선포는 아마 초기 그리스도교가 예수 그리스도를 완전히 메시아로 신앙고백을 한 이후에 발생한 전승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학자들의 설명에 따르면 사죄 선포는 메시아의 업무...

7월26일- 그들의 믿음 [5]

  • 2006-07-26
  • 조회 수 1721

2006년 7월26일 그들의 믿음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작은 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막 2:5) 본문에 따르면 예수님은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의 운명에 개입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지붕에 구멍을 내면서까지 중풍병자를 예수님에게 데리고 온 사람들의 행동이 바로 믿음이라는 것일까요? 그럴 수도 있습니다. 불행을 당한 사람들에게 측은지심을 느낄 뿐만 아니라 나름으로 그런 불행에 동참하는 것만큼 아름다운 행동은 없습니다. 그런 행동은 인간 치유라는 하나님의 구원에 동참하는...

7월25일- 구멍 난 지붕

  • 2006-07-25
  • 조회 수 2312

2006년 7월25일 구멍 난 지붕 무리들 때문에 예수께 데려갈 수 없으므로 그 계신 곳의 지붕을 뜯어 구멍을 내고 중풍병자가 누운 상을 달아내리니 (막 2:4) 중풍병자를 들것으로 옮겨온 네 사람은 예수님에게 가까이 갈 수가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거처하신 그곳은 그야말로 만원사례입니다. 정작 필요한 사람에게 자리를 내 줄 수 없으니 사람들이 많다고 늘 좋은 것은 아니군요. 이 사람들은 지붕 뒤로 올라갔습니다. 마가의 설명에 따르면 이들은 지붕을 뜯어내고 중풍병자가 누운 상을 달아냈다고 하네요. 유대인들의 집이 그렇게 순식...

7월24일 중풍병자

  • 2006-07-25
  • 조회 수 1913

2006년 7월24일 중풍병자 사람들이 한 중풍병자를 네 사람에게 메워 가지고 예수께로 올새 (막 2:3) 중풍병자 치유 이야기가 3절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들것에 실려 온 이 사람의 이름은 없습니다. 본문의 중풍병자에게도 원래 이름이야 왜 없었겠습니까? 그러나 이 이야기에서 그 이름이 별로 중요하지 않기 때문에 마가가 생략한 것 뿐입니다.이름은 그 사람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가장 중요한 사건이기 때문에 이름이 밖으로 드러나지 않는다는 건 비극입니다. 개똥이, 쇠똥이 같은 이름으로 불리던 옛날에 비해서 오늘은 아무리 ...

7월23일- “도” [2]

  • 2006-07-23
  • 조회 수 1643

2006년 7월23일 “도” 많은 사람이 모여서 문 앞까지도 들어설 자리가 없게 되었는데, 예수께서 그들에게 도를 말씀하시더니. (막 2:2) 본문 막 2:1-12절은 그 유명한 중풍병자 치유 사건입니다. 마가복음에서 지금까지 진행된 예수님의 공생애는 이런 특별한 사건과만 연루되어 있습니다. 이런 진행에서 볼 때 예수님이 사람들에게 “도를 말씀”하셨다는 진술은 자연스럽지 않습니다. 신약학자들은 이 진술을 마가의 편집이라고 설명합니다. 즉 중풍평자 치유 전승에 없던 구절을 마가신학의 필요에 따라서 여기에 삽입했다는 것이다. 평신...

7월21일- 많은 사람 [2]

  • 2006-07-21
  • 조회 수 1549

2006년 7월21일 많은 사람 많은 사람이 모여서 문 앞까지도 들어설 자리가 없게 되었는데, 예수께서 그들에게 도를 말씀하시더니. (막 2:2)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습니다. 마가는 문밖 마당에도 입추의 여지가 없었다고 설명합니다. 1:32-34절에도 많은 사람이 모였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번에는 두 번째 방문인 탓인지 더 많은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예수님 주변에 사람들이 많이 모였다는 표현은 마가복음의 특징인데, 예수님에게 무언가 기대하고 있는 사람들이, 예수님에게 호기심을 느끼고 있던 사람들이 많았다...

7월20일- 집에 계신 예수

  • 2006-07-20
  • 조회 수 1773

2006년 7월20일 집에 계신 예수 수 일 후에 예수께서 다시 가버나움에 들어가시니 집에 계시다는 소문이 들린지라. (막 2:1) 예수님이 ‘다시’ 가버나움으로 들어가셨다는 표현은 예수님의 가버나움 출입이 비교적 잦았다는 사실을 암시하는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머문 집이 시몬과 안드레의 집(막 1:29)이었는지는 정확하지 않습니다. 그럴 가능성도 있지만 우리가 알지 못하는 어떤 한 사람의 집일 수도 있습니다. 복음서에는 그런 익명의 사람들이 제법 나옵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나귀를 제공한 주인도 그중의 한 사...

7월19일- 가버나움 [2]

  • 2006-07-19
  • 조회 수 1939

2006년 7월19일 가버나움 수 일 후에 예수께서 다시 가버나움에 들어가시니 집에 계시다는 소문이 들린지라. (막 2:1) 나병환자 치유사건 이후로 외딴 곳에 머물러 계시던 예수님은 다시 가버나움으로 들어가셨습니다. 몰려들던 사람들이 모두 물러간 것인지, 아니면 제사장들을 중심으로 한 종교 지도자들이 시비를 걸지 않는다는 확신이 섰는지, 또는 예수님의 고유한 영적인 시각으로 어떤 때를 감지하신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예수님이 사람들의 마을로 들어가는데 큰 어려움이 없게 된 것만은 분명합니다. 그렇습니다. 복음서 기자들...

7월18일- 민중 (5) -민중과 한국교회- [5]

  • 2006-07-18
  • 조회 수 1969

2006년 7월18일 민중 (5) -민중과 한국교회- 그러나 그 사람이 나가서 이 일을 많이 전파하여 널리 퍼지게 하니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는 드러나게 동네에 들어가지 못하시고 오직 바깥 한적한 곳에 계셨으니 사방에서 사람들이 그에게로 나아오더라. (막 1:45) 세계 신학계에서 민중신학은 “Minjung Theology”라는 고유명사로 불립니다. 대한민국이라는 “삶의 자리”에서 시작된 민중신학은 아직 청년입니다. 앞으로 성숙한 어른으로 자랄지 아니면 열정 청년으로 끝날지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습니다. 여기에는 아무래도 한국교회와의 연...

7월17일- 민중 (4) -주체성- [3]

  • 2006-07-17
  • 조회 수 1710

2006년 7월17일 민중 (4) -주체성- 그러나 그 사람이 나가서 이 일을 많이 전파하여 널리 퍼지게 하니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는 드러나게 동네에 들어가지 못하시고 오직 바깥 한적한 곳에 계셨으니 사방에서 사람들이 그에게로 나아오더라. (막 1:45) 나는 민중 신학자들에게 연대감을 느끼고 있지만 그들에게 민중이 이데올로기로 작용하는 경우가 있는 게 아닐까 하는 궁금증이 들 때도 있습니다. 여전히 나는 민중 신학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다는 전제에서 이렇게 질문하고 싶습니다. 민중은 구원의 객체인가, 주체인가? 물론 이런 ...

7월16일- 민중 (3) -정체성- [1]

  • 2006-07-16
  • 조회 수 1684

2006년 7월16일 민중 (3) -정체성- 그러나 그 사람이 나가서 이 일을 많이 전파하여 널리 퍼지게 하니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는 드러나게 동네에 들어가지 못하시고 오직 바깥 한적한 곳에 계셨으니 사방에서 사람들이 그에게로 나아오더라. (막 1:45) 민중신학이 말하는 민중은 누구일까요? 한국의 대표적 신학이라 할 민중신학의 역사가 최소한 40년은 흘렀지만 민중에 대한 개념 정리는 여전히 모호합니다. 나름으로 개념규정이 나오기는 했지만 아직은 논란의 여지가 많습니다. 제가 아는 한 그렇습니다. 상식적으로만 말한다면 이 사...

7월15일 민중 (2) -당파성- [1]

  • 2006-07-15
  • 조회 수 1952

2006년 7월15일 민중 (2) -당파성- 그러나 그 사람이 나가서 이 일을 많이 전파하여 널리 퍼지게 하니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는 드러나게 동네에 들어가지 못하시고 오직 바깥 한적한 곳에 계셨으니 사방에서 사람들이 그에게로 나아오더라. (막 1:45) 민중신학과 해방신학은 기본적으로 하나님이 박해받는 계층을 향해서 당파성(Parteilichkeit)을 갖고 있다는 사실로부터 시작됩니다. 기존의 신학에서는 하나님의 사랑을 보편적인 것으로 여겼지만 민중신학에서는 그것을 편파적인 것으로 여겼습니다. 철저한 패러다임 쉬프트가 일어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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