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10일 깨달음(3)

조회 수 1635 추천 수 12 2008.01.09 23:19:39
2008년 1월10일 깨달음(3)

무리를 다시 불러 이르시되 너희는 다 내 말을 듣고 깨달으라. (막 7:14)

지난 이틀 동안의 묵상 내용을 읽고 다음과 같이 따지고 싶은 분이 있겠지요. 당신의 주장에 따르면 결국 신학 공부를 많이 해야만 성서를 깨우칠 수 있단 말이냐? 신학공부가 깨우침에 이르는 유일한 길은 아니지만 아주 중요한 길인 것만은 분명합니다.
예를 들어서 바둑의 깊은 수읽기에 들어가려면 정석을 정확하게 배워야 합니다. 정석을 배우지 않거나 설렁설렁 대충 배워도 바둑을 둘 수는 있지만, 그런 이들은 모두 아마추어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친구들과 점심 내기 바둑을 둘 수는 있겠지만 프로 기사들처럼 바둑을 길을 뚫고 나갈 수는 없습니다. 바둑의 깊이는 정석 공부가 우선이며 필수입니다. 더 나아가서 대국 현장에서 벌어지는 온갖 변화까지 공부하고 실전 경험을 해야겠지요.  
성서읽기에도 역시 신학은 바둑에서 정석공부와 마찬가지로 필수입니다. 신학공부라고 해서 신학대학교에서 석사, 박사 공부를 해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성서를 읽을 수 있는 최소한의 신학적 오리엔테이션이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신학공부가 없는 사람은 성서의 깨우침으로 들어갈 수 있는 길은 전혀 없다는 말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본인이 성서를 직접적으로 해석할 능력이 없을 때는 전문가들에게 도움을 받으면 됩니다. 성서만이 아니라 기독교 신앙 전체에도 이런 지도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이는 프로 기사가 해설해준다면 아마추어 동호인도 세계기왕전 결승 대국을 따라갈 수 있는 것과 비슷합니다.
마지막 질문은 아래와 같습니다. 신학공부도 없었고, 현재 옆에서 도와줄 전문가도 없다면 성서를 읽지 말아야 하는지, 깨우침이 전혀 일어날 수 없는지 하는 것입니다. 그럴 리가 있나요. 여기서 필요한 것은 깨어 있는 겸손한 영성입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낮춘다면 우리는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낮춘다는 말은 고정관념이나 선입관에 묶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레벨:4]arizonasun

2008.01.10 00:52:22

안녕하세요 목사님,
용기를 내어 회원가입을 하고 그것도 부족해(^^) 글까지 적어 봅니다. 겸손한 영성에 관한 목사님의 말씀에 뜻을 같이 합니다. 또한 자신을 낮춤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알기에 하나님의 은혜를 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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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2]자유의꿈

2008.01.10 01:11:24

신학은 모든 그리스도인의 의무라며 만인신학자직을 언급한 몰트만과
평신도들은 이미 신학자들이라며 당신의 신학을 하라는 존 캅이 떠오릅니다.

[레벨:0]엉클캐빈

2008.01.10 10:47:12

저희 교회는 목사님의 설교에 대해 왈가 왈부하는 것 자체를 불경하게 생각하는 분들이 많다보니 평신도들의 성경공부를 곱지 않게 생각하는 분위기의 교회가 몇몇 있는 것 같습니다. 평신도들의 개인적인 모임도 경계의 눈을 놓지 않는다는 소문이 있습니다.(공산당도 아니고.....) 성경을 연구하는 것 자체가 목사님과 교회에 대한 도전쯤으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라서 정목사님께서 사역하시는 교회 성도님들이 부럽기만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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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2008.01.10 10:49:33

arisonasun 님,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멀리 사시는군요.
영육 간에 건강하시고,
행복한 한 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사이버 공간에서나마
자주 만나뵐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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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5일 게으른 영혼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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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4일 귀신 들린 딸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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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2일 은폐와 노출(5)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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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2월2일 은폐와 노출(5) 예수께서 일어나사 거기를 떠나 두로 지방으로 가서 한 집에 들어가 아무도 모르게 하시려 하나 숨길 수 없더라. (막 7:23) 유대교 신자들은 우리가 오늘 메시아로 믿고 있는 예수님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유대교인들과 우리 기독교인들이 구약성서를 똑같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면서도 예수님의 정체에 대해서 서로 다르게 생각한다는 것은 매우 심각한 문제입니다. 초기 기독교인들에게 성서는 오직 구약뿐이었습니다. 그들은 유대교가 경전으로 결정한 그것을 아무 수정 없이 그대로 받아들였습니...

2월1일 은폐와 노출(4)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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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2월1일 은폐와 노출(4) 예수께서 일어나사 거기를 떠나 두로 지방으로 가서 한 집에 들어가 아무도 모르게 하시려 하나 숨길 수 없더라. (막 7:23) 어제 묵상의 마지막 단어는 ‘은폐의 생명 사건’이었습니다. 우리가 은폐라는 말의 의미를 정확하게 이해하지 않으면 기독교 신앙의 근본을 놓치게 됩니다. 예컨대 예수님이 비유로 말씀하신 ‘하나님 나라’의 핵심도 은폐성에 있습니다. 그 나라는 모든 사람들이 알아볼 수 있게 확 드러나 있는 게 아니라 숨어 있습니다. 따라서 볼 수 있는 눈이 있어야만 볼 수 있으며, 들을 귀가 있...

1월31일 은폐와 노출(3)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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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월31일 은폐와 노출(3) 예수께서 일어나사 거기를 떠나 두로 지방으로 가서 한 집에 들어가 아무도 모르게 하시려 하나 숨길 수 없더라. (막 7:23) 메시아 성의 은폐와 부활이 어떤 관계에 있을까요? 이건 아주 명백한 사실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그 당시 모든 사람들이 확인할 수 있는, 마치 신문기자가 취재할 수도 있는 그런 사건이 결코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 현현은 일부의 사람들에게만 경험된 것입니다. 그들은 바로 예수를 추종하던 이들, 또는 앞으로 그렇게 될 이들이었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에 이들에 대한 ...

1월29일 은폐와 노출(2)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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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월29일 은폐와 노출(2) 예수께서 일어나사 거기를 떠나 두로 지방으로 가서 한 집에 들어가 아무도 모르게 하시려 하나 숨길 수 없더라. (막 7:23) “예수는 그리스도다.”는 명제야말로 기독교 신앙의 요체입니다. 그리스도는 기름부음을 받은 자라는 뜻의 히브리어 ‘메시아’의 헬라어역입니다. 실질적인 의미는 구세주입니다. 기독교의 운명이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이 명제가 옳은지를 우리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예수가 메시이라는 사실의 증거는 무엇일까요? 예수님의 공생애에서 우리는 이런 증거를 찾을 수 있을...

1월28일 은폐와 노출(1)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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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월28일 은폐와 노출(1) 예수께서 일어나사 거기를 떠나 두로 지방으로 가서 한 집에 들어가 아무도 모르게 하시려 하나 숨길 수 없더라. (막 7:23) 손 씻는 정결의식에 관한 뜨거운 논쟁이 지나간 후에 예수님은 두로 지방으로 자리를 옮기셨습니다. 두로는 갈릴리 호수에서 북서 방향으로 지중해에 면해 있는 마을로, 거리상으로도 상당히 멀리 떨어진 곳입니다. 특히 그곳은 이방인들이 사는 지역입니다. 주로 갈릴리와 유대 지역에서 활동하시던 예수님이 두로 지방까지 올라오시는 것은 아주 드문 일입니다. 외형적인 정결의식...

1월27일 내면의 변화 [2]

  • 2008-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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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월27일 내면의 변화 이 모든 악한 것이 다 속에서 나와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막 7:23) 우리가 수치스럽게 생각하는 모든 악한 것들은 우리 안에서 나옵니다. 우리의 인격이 고상해지거나 교양이 풍부해도 악한 생각을 극복하지 못합니다. 종교적인 경건도 역시 그런 능력이 없기는 매 한가지입니다. 어떤 교계 지도자는 한국교회 신자들이 변하지 않는다고 통탄해 하셨습니다. 제자훈련을 그렇게 열정적으로 시켰는데도 아무런 변화가 없으니 얼마나 안타까웠겠습니까? 신앙훈련으로 사람의 마음이 변하리라는 건 순진한 생...

1월26일 악한 생각의 목록 [4] [1]

  • 2008-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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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월26일 악한 생각의 목록 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둑질과 살인과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질투와 비방과 교만과 우매함이니 (막 7:21,22) 악한 생각의 목록이 어디서 온 것일까요? 예수님이 이런 목록을 일일이 거론하신 것인지, 아니면 마가의 전승에 속한 것인지 제가 지금 단정적으로 말할 입장이 못 됩니다. 서로 연관되어 있다고 봐야겠지요. 전체가 열 두 항목입니다. 음란, 도둑질, 살인, 간음, 탐욕, 악독, 속임, 음탕, 질투, 비방, 교만, 우매함. 모든 항목이 부끄러운...

1월25일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 [1]

  • 2008-01-24
  • 조회 수 1829

2008년 1월25일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 또 이르시되 사람에게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막 7:19) 예수님은 제자들의 질문에 따라서 이미 앞에서 말씀하신 내용을 다시 풀어서 설명하는 중입니다. 이렇게 반복하는 것은 말에서나 글쓰기에서나 별로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반복을 지겨워하니까요. 예수님이나 이를 보도하고 있는 마가가 이를 모를 리가 없습니다. 오늘 이 텍스트를 읽는 우리와 달리 그 당시 사람들에게 이 문제가 아주 중요하거나, 또는 그들이 이 문제를 전혀 눈치 채지 못하고 있기에 이렇게 반...

1월22일 깨끗한 음식 [4]

  • 2008-01-21
  • 조회 수 1894

2008년 1월22일 깨끗한 음식 이는 마음으로 들어가지 아니하고 배로 들어가 뒤로 나감이라. 이러므로 모든 음식물을 깨끗하다 하시니라. (막 7:19) 사람들은 정한 음식과 부정한 음식을 구분하는 데 온 신경을 썼지만, 예수님은 그런 생각 자체를 해체하십니다. 모든 음식은 깨끗하다고 말입니다. 이것은 이미 15절에서 주신 말씀인데, 19절에서 다시 반복됩니다. 제자들의 질문 때문이라고 하지만 이렇게 비슷한 이야기가 반복되면 글의 긴장감이 떨어지기 마련입니다. 이런 글쓰기의 문제를 모를 까닭이 없는 마가복음 기자가 이렇게 반...

1월21일 무리와 제자(3) [1]

  • 2008-01-20
  • 조회 수 1387

2008년 1월21일 무리와 제자(3)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도 이렇게 깨달음이 없느냐. 무엇이든지 밖에서 들어가는 것이 능히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함을 알지 못하느냐? (막 7:18)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도 이렇게 깨달음이 없느냐?” 하고 되물으십니다. 이건 책망이 아니라 오히려 친근함의 표시에 가까워 보입니다. 그렇지만 친근함의 표시라고 하더라도 제자들의 입장에서는 진지하게 반성해야 할 말씀입니다. 그것은 곧 제자들에게 깨달음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제자들이라고 한다면 무리들과는 뭔가 달라도 달라야 하는데, 단지 솔...

1월20일 무리와 제자(2) [5]

  • 2008-01-19
  • 조회 수 1714

2008년 1월20일 무리와 제자(2) 무리를 떠나 집으로 들어가시니 제자들이 그 비유를 묻자온대 (막 7:17) 예수님이 무리와 헤어져 집으로 들어가시자 제자들은 예수님에게 바로 앞에서 받은 가르침에 대해서 질문했습니다. 밖과 안이라는 비유가 가리키는 게 무엇이냐고 말입니다. 이들이 실제로 몰라서 이렇게 물었을까요, 아니면 자신들이 알고 있는 걸 확인해보기 위해서 이렇게 물었을까요? 그런데 이 대목에서 더 근본적인 문제는 밖과 안이라는 비유가 그렇게 이해하기 어렵지 않은 내용이라는 사실입니다. 이미 앞에서 정결의식 문제...

1월19일 무리와 제자(1) [3]

  • 2008-01-18
  • 조회 수 2046

2008년 1월19일 무리와 제자(1) 무리를 떠나 집으로 들어가시니 제자들이 그 비유를 묻자온대 (막 7:17) 예수님은 정결의식 문제로 바리새인들과 한바탕 논쟁을 벌인 후에 무리를 떠나서 집으로 들어가셨습니다. 그 집이 누구의 집인지는 모릅니다. 제자의 집에 들어가셨을 수도 있고, 민박집에 들어가셨을 수도 있겠지요. 그런데 글의 흐름으로 볼 때 이런 대목은 자연스럽지 못합니다. 제자들이 손을 씻지 않고 밥을 먹는 바람에 시작된 바리새인들과 논쟁이 일어난 곳이 집이었을 텐데요. 중간에(14절) 무리를 다시 불러서 말씀을 이어...

1월18일 패러독스(4) [1]

  • 2008-01-17
  • 조회 수 1528

2008년 1월18일 패러독스(4) 사람 안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 하시고 (막 7:16) 한국교회는 밖의 문제에 지나치게 치우쳐 있는 것 같습니다. 그 문제들이 모두 신앙의 이름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예컨대 해외 선교만 해도 그렇습니다. 한국교회에서 파송하는 해외 선교사의 숫자가 미국 다음으로 많다고 합니다. 제 기억으로는 일만 오륙천 명이 되는 것 같습니다. 그 숫자에는 아마 명분만 선교사이지 실제로는 현지에서 그냥 생활하는 이들도 포함되었겠지만, 엄청난 숫자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이런 선교 열풍은 ...

1월17일 패러독스(3) [5]

  • 2008-01-16
  • 조회 수 1477

2008년 1월17일 패러독스(3) 사람 안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 하시고 (막 7:165) 밖에서 사람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사람 안에서 밖으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한다는 예수님의 이 말씀은 우리의 생각을 근본적으로 뒤집습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외부의 환경조건이 자신의 운명을 지배한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가문과 우수한 두뇌와 수려한 외모를 갖고 태어나기를 바랍니다. 이런 조건이 없는 사람은 그것을 얻으려고 하고, 주어진 사람은 그것을 유지하거나 확대 재생...

1월16일 패러독스(2) [4]

  • 2008-01-15
  • 조회 수 2367

2008년 1월16일 패러독스(2) 사람 안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 하시고 (막 7:165) 사람 안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라는 주님의 말씀을 들은 바리새인들은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었을지 모르겠군요. 그들이 영적인 촉수를 겨누고 있던 목표가, 즉 어떻게 깨끗한 음식을 깨끗한 손으로 먹느냐 하는 정결의식이 중요한 게 아니라는 말을 들었으니 그들의 기분이 어땠을는지는 뻔합니다. 이게 바로 패러독스의 힘이 아닐는지요. 오늘 우리 한국교회에 주님이 오신다면 이런 일들이 많이 일어날 것 같...

1월15일 패러독스(1)

  • 2008-01-15
  • 조회 수 1388

2008년 1월15일 패러독스(1) 사람 안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 하시고 (막 7:165) 밖에서 사람에게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할 수 없다고 말씀하신 예수님은 또 하나의 다른 명제를 말씀하십니다. 사람 안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한다고 말입니다. 이런 논법을 역설적 방식으로 진리를 드러내는 ‘패러독스’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바리새인들의 관심은 자신들의 조상으로부터 대대로 지켜온 정결의식을 충실하게 지키는 것에 놓여 있었습니다. 앞에서도 언급한대로 그것은 일단 원칙적으로 개인과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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