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20일 무리와 제자(2)

조회 수 1715 추천 수 7 2008.01.19 23:04:29
2008년 1월20일 무리와 제자(2)

무리를 떠나 집으로 들어가시니 제자들이 그 비유를 묻자온대 (막 7:17)

예수님이 무리와 헤어져 집으로 들어가시자 제자들은 예수님에게 바로 앞에서 받은 가르침에 대해서 질문했습니다. 밖과 안이라는 비유가 가리키는 게 무엇이냐고 말입니다. 이들이 실제로 몰라서 이렇게 물었을까요, 아니면 자신들이 알고 있는 걸 확인해보기 위해서 이렇게 물었을까요?
그런데 이 대목에서 더 근본적인 문제는 밖과 안이라는 비유가 그렇게 이해하기 어렵지 않은 내용이라는 사실입니다. 이미 앞에서 정결의식 문제로 논란이 있었고, 고르반이 거론되었으니까 생각이 조금만 있는 사람이라고 하면 밖에서 안으로 들어가는 것과 안에서 밖으로 나오는 게 무엇인지 충분히 눈치 챌 수 있는 게 아닐까요? 그런데도 그들은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처럼 질문합니다. 이런 사태는 삶의 지평이 다를 때 사유의 지평도 다르다는 사실을 가리키는 것 같습니다.
제자들을 포함한 그 당시 모든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의 지평은 율법이었습니다. 율법의 눈으로 세상과 자기의 삶을 이해했습니다. 이런 사람은 율법 너머의 것을 아무리 설명해줘도, 마치 낫 놓고 기억자를 모르듯이 모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현상을 오늘에도 똑같이 발견합니다. 레드컴플렉스에 빠진 사람은 무슨 말로도 그것 너머의 세상과 삶을 설명해줘도 이해하지 못합니다. 더 정확하게 말해서, 그들은 이해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예수천당, 불신지옥’ 패러다임에 빠진 분들은 하나님의 구원론적 구원 주권을 전혀 이해하지 못합니다. 소귀에 경위기와 비슷한 일들이 벌어집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그래도 다행입니다. 모르는 걸 질문할 줄 아니까요. 그게 바로 모르면서도 아는 척한 바리새인들과의 차이겠지요. 제자들처럼 자신이 모른다는 걸 알고 인정하는 데서부터 참된 신앙의 길이 조금씩 열리는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레벨:0]불꽃남자

2008.01.20 00:53:54

교회 내에서도 그렇고, 사회 속에서도,,
"아는 척" 에 대한 보여주기식 자신의 명예를 내세우는 사람 보다는,,
모르지만, 무식하면 용기 있다는 말 처럼,,무식해서 용기있게 질문할 수 아는 사람이 멋진것 같네요.
제자들은 알면서 그 아는 것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검증 받기 위해 물었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사유는 틀에 갖힌게 아니니까,,다양한 관점으로 볼 수 있을것 같네요.
패러다임과 딜레마가 팽배한 이 시대에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한 진리는 영원하길~!!

[레벨:0]셀러드

2008.01.20 02:00:30

목사님 글과 설교를 들으면서 우물안 개구리임을 발견합니다. 십자가와 우주 그리고 삶이 연결된 사유의 지평을 넓힐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 감사합니다.

[레벨:2]둘로스

2008.01.20 07:01:24

예수 천국..맞지 않는가요? 진정한 의미에서 예수님을 중심에 모시면 천국이 임하는 것 아닙니까? 예수님의 삶과 인격이 무시되는 곳도 천국이 될 수가 있나요? 천국처럼 보이긴 하겠지만 일시적이고 한시적이라 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있는 곳에 자유함이 있습니다.
'레드 컴플렉스'인지 모르겠지만 저의 할아버님은 6.25때 공산군에 의해서 돌아가셨습니다. 그는 민간인이었습니다. 종교적인 이유도 아닙니다. 사상이 주는 폐해와 위험성에 대해서 역사적인 경험이 있는 자라면 말이 아닌 실제를 가지고 이야기 합니다. 왜 그렇게 정치인들이 색깔론을 들먹일까요? 그것은 공허한 이론이 아닌 삶의 실제이기 때문에 이용하는 것입니다. 그 실제를 경험한 자들에겐 충격요법이 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약발이 떨어질 것입니다. 실제가 사라지기 때문이지요.
지금도 연변에서, 두만강 어귀에서 정치적, 종교적, 경제적 자유를 위해 월중하는 북녁동포들의 현실을 체험해 보기만 해도 우리의 이야기는 달라질 것입니다. 그들의 인권과 자유를 돕는 거의 대부분의 사역자들은 죄송하지만 '예수 천국'을 믿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방식을 우리가 다 알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저는 그들을 통해서 주님의 나라가 임하고 있다고 믿습니다.

[레벨:0]엉클캐빈

2008.01.22 11:17:25

예수 천국이 맞습니다만 우리 나라에서 전철이나 광장에서 선포되는 예수 천국, 불신 지옥은 그 안에 생명이 없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가 많습니다. 예수님의 삶과 인격을 나타내지 못하는 지금의 한국 교회가 그것을 조장하고 있다고 봅니다. 정말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이 맞는데... 대한민국의 기독교는 그것이 사실인 것을 증명해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 문제인 것 같습니다. 그야말로 삶에서 예수님의 향기가 나지 않는다면...많은 분들이 외치는 예수 천국, 불신 지옥은 고린도 전서 13장의 표현대로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꾕가리로 전락하게 될런지도 모르겠습니다. 연변에서 목숨걸고 탈북자들의 인권과 자유를 돕는 분들에게 하나님의 평강이 넘치기를 기도합니다.

[레벨:2]둘로스

2008.01.22 21:39:22

전철이나 광장에서 선포하는 분들을 보면 저도 괴롭습니다. 저는 그들이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자들도 아니며 그들이 복음을 가진 정상적인 행동을 한다고 옹호하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그들을 자꾸 언급하면서 한국교회의 전체로 묘사하는 듯한 이미지는 방송국에서 정기적으로 시청률을 올리기 위해서 사용하는 전형적인 방법이 아닌가해서 방법론적으로 너무 나간다 싶어서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한국기독교가 잘하고 있는 것을 세상이 알아준 때가 어디 있었나 싶습니다. 다들 달콤한 열매만 얻어갔을 뿐이지요. 좋은 것은 드러나지 않고 빛뒤에 있는 그림자는 크게 보일뿐입니다. 그리고 독약은 많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목회자의 실수가 엄청난 파장을 일으키듯이 교회의 어두움은 전체로 보이기 마련입니다. 이 의미가 한국교회를 싸잡아서 옹호하는 것으로 보지 마십시오. 저도 강단에서 피튀기면서 종교생활에서 청산해야 구원이 있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특정한 인물과 교회의 일을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것처럼 이야기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좋은 교회 더러더러 많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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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25일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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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월25일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 또 이르시되 사람에게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막 7:19) 예수님은 제자들의 질문에 따라서 이미 앞에서 말씀하신 내용을 다시 풀어서 설명하는 중입니다. 이렇게 반복하는 것은 말에서나 글쓰기에서나 별로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반복을 지겨워하니까요. 예수님이나 이를 보도하고 있는 마가가 이를 모를 리가 없습니다. 오늘 이 텍스트를 읽는 우리와 달리 그 당시 사람들에게 이 문제가 아주 중요하거나, 또는 그들이 이 문제를 전혀 눈치 채지 못하고 있기에 이렇게 반...

1월22일 깨끗한 음식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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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월22일 깨끗한 음식 이는 마음으로 들어가지 아니하고 배로 들어가 뒤로 나감이라. 이러므로 모든 음식물을 깨끗하다 하시니라. (막 7:19) 사람들은 정한 음식과 부정한 음식을 구분하는 데 온 신경을 썼지만, 예수님은 그런 생각 자체를 해체하십니다. 모든 음식은 깨끗하다고 말입니다. 이것은 이미 15절에서 주신 말씀인데, 19절에서 다시 반복됩니다. 제자들의 질문 때문이라고 하지만 이렇게 비슷한 이야기가 반복되면 글의 긴장감이 떨어지기 마련입니다. 이런 글쓰기의 문제를 모를 까닭이 없는 마가복음 기자가 이렇게 반...

1월21일 무리와 제자(3)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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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회 수 1387

2008년 1월21일 무리와 제자(3)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도 이렇게 깨달음이 없느냐. 무엇이든지 밖에서 들어가는 것이 능히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함을 알지 못하느냐? (막 7:18)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도 이렇게 깨달음이 없느냐?” 하고 되물으십니다. 이건 책망이 아니라 오히려 친근함의 표시에 가까워 보입니다. 그렇지만 친근함의 표시라고 하더라도 제자들의 입장에서는 진지하게 반성해야 할 말씀입니다. 그것은 곧 제자들에게 깨달음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제자들이라고 한다면 무리들과는 뭔가 달라도 달라야 하는데, 단지 솔...

1월20일 무리와 제자(2)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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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19일 무리와 제자(1)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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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월19일 무리와 제자(1) 무리를 떠나 집으로 들어가시니 제자들이 그 비유를 묻자온대 (막 7:17) 예수님은 정결의식 문제로 바리새인들과 한바탕 논쟁을 벌인 후에 무리를 떠나서 집으로 들어가셨습니다. 그 집이 누구의 집인지는 모릅니다. 제자의 집에 들어가셨을 수도 있고, 민박집에 들어가셨을 수도 있겠지요. 그런데 글의 흐름으로 볼 때 이런 대목은 자연스럽지 못합니다. 제자들이 손을 씻지 않고 밥을 먹는 바람에 시작된 바리새인들과 논쟁이 일어난 곳이 집이었을 텐데요. 중간에(14절) 무리를 다시 불러서 말씀을 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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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8-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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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월18일 패러독스(4) 사람 안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 하시고 (막 7:16) 한국교회는 밖의 문제에 지나치게 치우쳐 있는 것 같습니다. 그 문제들이 모두 신앙의 이름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예컨대 해외 선교만 해도 그렇습니다. 한국교회에서 파송하는 해외 선교사의 숫자가 미국 다음으로 많다고 합니다. 제 기억으로는 일만 오륙천 명이 되는 것 같습니다. 그 숫자에는 아마 명분만 선교사이지 실제로는 현지에서 그냥 생활하는 이들도 포함되었겠지만, 엄청난 숫자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이런 선교 열풍은 ...

1월17일 패러독스(3) [5]

  • 2008-01-16
  • 조회 수 1477

2008년 1월17일 패러독스(3) 사람 안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 하시고 (막 7:165) 밖에서 사람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사람 안에서 밖으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한다는 예수님의 이 말씀은 우리의 생각을 근본적으로 뒤집습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외부의 환경조건이 자신의 운명을 지배한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가문과 우수한 두뇌와 수려한 외모를 갖고 태어나기를 바랍니다. 이런 조건이 없는 사람은 그것을 얻으려고 하고, 주어진 사람은 그것을 유지하거나 확대 재생...

1월16일 패러독스(2) [4]

  • 2008-01-15
  • 조회 수 2367

2008년 1월16일 패러독스(2) 사람 안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 하시고 (막 7:165) 사람 안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라는 주님의 말씀을 들은 바리새인들은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었을지 모르겠군요. 그들이 영적인 촉수를 겨누고 있던 목표가, 즉 어떻게 깨끗한 음식을 깨끗한 손으로 먹느냐 하는 정결의식이 중요한 게 아니라는 말을 들었으니 그들의 기분이 어땠을는지는 뻔합니다. 이게 바로 패러독스의 힘이 아닐는지요. 오늘 우리 한국교회에 주님이 오신다면 이런 일들이 많이 일어날 것 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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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8-01-15
  • 조회 수 1388

2008년 1월15일 패러독스(1) 사람 안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 하시고 (막 7:165) 밖에서 사람에게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할 수 없다고 말씀하신 예수님은 또 하나의 다른 명제를 말씀하십니다. 사람 안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한다고 말입니다. 이런 논법을 역설적 방식으로 진리를 드러내는 ‘패러독스’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바리새인들의 관심은 자신들의 조상으로부터 대대로 지켜온 정결의식을 충실하게 지키는 것에 놓여 있었습니다. 앞에서도 언급한대로 그것은 일단 원칙적으로 개인과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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