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일지 3월15일

조회 수 1732 추천 수 0 2020.03.15 20:27:32

대구 샘터교회 주간일지

2020315, 사순절 셋째 주일

 

1) 하나님 신뢰- 오늘 설교의 주제는 이스라엘 백성이 물 부족으로 인해서 불신앙에 떨어진 것에 대한 경고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신뢰가 흔들리는 현상은 이스라엘 역사에서 반복되었고, 선지자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그런 모습을 날카롭게 비판했습니다. 선지자들의 모든 설교는 이 하나의 주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생존의 불안은 이스라엘 백성만이 아니라 인류 전체에 해당합니다. 문명의 힘으로 현대인들이 고대인과 같은 차원에서 불안해하지는 않으나 근본적으로는 다를 게 없습니다. 오늘날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어떻게 생존의 위기로 인한 불안을 극복할 수 있을까요? 이 질문의 대답을 저는 설교에서 충분하게 제시하지 못했습니다. 한편의 설교에 모든 걸 담아낼 수도 없습니다. 많은 설교가 서로 보충하면서 전체 방향을 제시할 것입니다. 단적으로 하나님이 누군지를 충분하게 인식하고 신뢰하는 것이 최선의 길입니다. 르비딤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물 부족 상태를 조금만 참고 기다렸다면 문제가 해결되었을 겁니다. 그들이 원하는 수준에서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은 자신의 방법으로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를 무사히 횡단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셨을 겁니다. 문제는 어려움을 버텨낼 믿음이 턱없이 부족했다는 데에 있습니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2) 온라인 예배- 텅 빈 예배실에서 드리는 예배가 오늘로 네 번째입니다. 아무리 하나님만 바라보면서 예배를 인도한다지만 분위기가 별로 좋지 않은 것만은 분명합니다. 함께 모이는 예배에서는 설교를 받아들이는 교우들의 마음이 설교자에게 전달됩니다. 찬송가를 부를 때도 옆 사람의 목소리까지 들을 수 있으니 영적인 울림이 커집니다. 밥 먹기와 비교해볼 수 있습니다. 혼자서 쓸쓸하게 밥을 먹기보다는 가까운 사람과 친밀감을 나누면서 밥을 먹는 게 훨씬 즐겁지 않습니까. 코로나19 사태가 하루빨리 종식되어서 함께 모여서 예배를 드릴 수 있었으면 합니다. 지금까지 아프리카 티브이를 통해서 예배 실황을 방송했습니다. 앞으로는 유튜브를 사용하게 될 겁니다. 유튜브가 여러 가지 점에서 더 편리하기 때문입니다. 촬영 담당 이*희 집사가 전문가에게 조언을 받아서 준비 중입니다. 웹캠(노트북에 연결하는 카메라)을 하나 구매하면 된다고 합니다. 노트북은 일단 이 집사 개인 것을 사용해보고, 자리를 잡으면 교회용으로 하나 장만해야겠습니다. 제가 쓰던 것은 사양이 오래되어서 어떨지 모르겠는데, 나중에 교회에 가져가서 실험해보겠습니다. 혹시 교우 중에서 쓸만한 노트북을 기증할 분이 있으면 기증해주세요.

 

3) 마스크- 요즘 마스크 대란이고 합니다. 배급제가 시행되었어도 혼란은 아직 완전히 가시지 않았습니다. 3주 전에 저와 제 아내는 북안면 소재 약국에서 15백 원 하는 마스크를 2개씩 준비했습니다. 지금까지 그걸 사용하는 중입니다. 잠깐씩 외출할 때만 쓰기에 재사용하고 있습니다. 지난 화요일 아침 일찍 우리 동네 이장이 우리 집을 찾아왔습니다. 평소에 이런 일은 별로 없었습니다. 궁금한 마음에 빨리 현관문을 열고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여기 면에서 나온 마스크가 있습니다. 목사님과 사모님 겁니다. 65세 이상 된 분들에게 나눠드리는 겁니다.” 검은 비닐봉지에서 2개가 든 마스크 꾸러미를 꺼내서 저에게 내밀더군요. “우리 집사람은 아직 65세가 아닌데요. 58 개띠입니다.” 이후로 몇 마디 더 나누다가 마스크 1개만 저에게 전달하고 돌아갔습니다. 사실 이런 시골에 사는 분들은 마스크가 필요 없긴 한데, 하나도 없으면 뭔가 불안하니까 약국으로 사러 나갈 수도 없고 해서 민원이 있었나 봅니다. 저는 일전에 마스크 없이 농협에 들렀다가 직원에게서 마스크 1개를 선물로 받았습니다. 지금 4개나 됩니다. 봉지를 뜯지 않은 것도 있으니 필요한 분은 말씀하세요.

 

4) 카페- 교우들이 4주간이나 교회에 오지 못해서 교회가 세 들어 사는 건물의 분위기가 어떻게 변했는지 궁금할 겁니다. 크게 달라진 건 없습니다. 지난 9일부터 카페는 문을 열었습니다. 오늘 예배 마치고 들어가 보니 손님이 한 사람도 없더군요. 집사람이 거기서 핸드메이드빵을 몇 개 샀습니다. 주일 오후마다 함께 둘러앉아서 담소를 나누던 라운드테이블도 여전히 그곳에 있었습니다. 햇살 좋은 쪽의 몇몇 테이블도 여전합니다. 어떤 분들이 거기 앉았는지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제가 교우들과 함께 거기서 커피를 마시던 장면도 순에 선합니다. 저는 주로 에스프레소를 마셨지요. 우리 교회 남자 교우들도 종종 사용하던 2층 미장원은 오늘도 문을 닫았습니다. 그 미장원의 단골은 울산의 석 집사입니다. 애견 센터는 하루도 쉬지 않고 지금도 계속해서 문을 열었습니다. 사장에게 직접 묻지 않았지만, 문을 닫고 싶긴 하겠지만 실제로 닫기는 힘들 겁니다. 강아지들을 하루라도 돌보지 않을 수 없으니까요. 그리고 다른 이들의 강아지도 위탁받지 않았겠습니까. 애견 센터 손님이 확 준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코로나19 사태가 폭발적으로 불거지기 전에는 제가 주일 아침 교회당 주차장에 들어서면 강아지를 데리고 애견 센터를 방문하는 사람들이 눈에 자주 띄었는데, 지금은 거의 보이지 않습니다. 유리로 된 전시 박스 안에서 재롱을 부리던 강아지들의 숫자도 크게 줄었습니다. 오늘은 한 마리만 보이더군요. 지하 교회당 층계에 오래전에 배달된 생수통 세 개가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공급처에 일단 배달하지 말라고 재정부장이 말을 해둔 것 같습니다. 또 궁금한 거 없으신가요? 무엇보다도 담임 목사 부부가 건강하게 잘 지내는지 궁금하게 생각할 교우들이 많으시겠군요. , 아무런 어려움 없이 편안히 잘 지내고 있습니다. 속히 얼굴을 맞대고 만날 날을 기다릴 뿐입니다. 샬롬!

 

5) 헌금: 1,130,000(315일 낮 1시까지 통장 이체)

농협 301-0243-3251-71(대구 샘터교회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주간일지 4월5일 file [6]

  • 2020-04-05
  • 조회 수 1837

대구 샘터교회 주간일지 2020년 4월5일, 사순절 여섯째 (종려) 주일 1) 주의 손- 지난 주일의 설교에 이어서 오늘 설교의 주제도 ‘주의 손’이었습니다. 주의 손은 ‘주의 능력’을 가리킵니다. 시편 기자는 “나의 앞날이 주의 손에 있다.”라고 고백합니다. 자신의 앞날이 하나님의 능력 안에 있다는 뜻입니다. 정말 강력한 발언입니다. 우리말 성경이 ‘나의 앞날’이라고 번역한 단어를 영어와 독일어 성경은 ‘나의 시간’이라고 번역했습니다. 비슷한 뜻이긴 하지만 뉘앙스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My times are in thy hand.” 이 문장...

예수 어록(298) 요 14:2 내 아버지의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 2020-04-04
  • 조회 수 1766

예수 어록(298) 요 14:2 내 아버지의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위 구절에 매우 흥미로운 표현이 나온다. “내 아버지의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내 아버지의 집은 하늘나라다. 어떤 이는 죽어서 가게 될 천당 비슷한 개념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이 구절에서 내가 주목하는 지점은 “거할 곳이 많다.”라는 사실이다. 많다는 말은 양적인 차원이 아니다. 144,000명이 들어갈 장소가 아니다. 고대인들이 그런 숫자에 민감하긴 했으나 그것은 상징이다. 성...

예수 어록(297) 요 14:1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 2020-04-03
  • 조회 수 1593

14장 예수 어록(297) 요 14:1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이제 14장이 시작된다. 17장 마지막 절인 26절까지 다른 언급은 일절 없이 예수의 발언만 계속된다. 14:5절에는 도마의 한 마디가, 8절에는 빌립의 한 마디가, 그리고 22절에 유다의 한 마디가 나올 뿐이다. 도마와 빌립의 발언을 제외하고 자그마치 절로만 계산해서 115절이나 된다. 요한복음의 신학적 특징이 확연하게 드러나는 대목이다. 예수의 체포 사건을 다루는 18장부터는 서사가 빠른 속도로 진행된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

예수 어록(296) 요 13:38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 2020-04-02
  • 조회 수 1636

예수 어록(296) 요 13:38 네가 나를 위하여 네 목숨을 버리겠느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나를 따라올 수 없다.”라는 예수의 말을 듣고 베드로는 당당하게 나선다. “주를 위하여 내 목숨을 버리겠나이다.” 결과적으로는 자기 말대로 그가 순교했지만, 그 이전에 그는 예수를 부정한다. 바로 오늘 밤에 이런 일이 발생한다. 닭 울기 전에 베드로는 예수를 세 번에 걸쳐서 부인할 것이다. 이 사건은 초기 기독교에 잘 알려진 것으로 보인다. 요한복음만이 아니라 공관복음이 이...

예수 어록(295) 요 13:36 후에는 따라오리라.

  • 2020-04-01
  • 조회 수 1473

예수 어록(295) 요 13:36 내가 가는 곳에 네가 지금은 따라올 수 없으나 후에는 따라오리라. 요 13:33절에서 예수는 제자들에게 “내가 가는 곳”에 올 수 없다고 말한 바 있다. 베드로는 요 13:36(a)절에서 예수에게 묻는다.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우리가 어디선가 들은 질문이다. 영화 “쿼바디스”에서 베드로는 네로의 박해를 잠시 피하려고 로마를 빠져나가는 중에 예수를 만난다. 그는 “주님, 어디로 가십니까?”라고 묻는다. 예수는 베드로가 십자가를 피해서 떠난 로마로 들어간다고 말한다. 베드로는 자신의 잘못을 회개...

예수 어록(294) 요 13:35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 2020-03-31
  • 조회 수 1073

예수 어록(294) 요 13:35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소위 ‘사랑 장’이라고 일컬어지는 고전 13장에서 1-3절이 인상적이다. 루터 성경을 번역해서 여기 싣는다. 내가 사람의 말을 잘하고 천사의 노래를 멋지게 부른다고 해도 사랑이 없다면 나는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일 것입니다. 또 내가 예언을 말할 줄 알고 모든 비밀과 지식이 뛰어나며 산을 옮길만한 큰 믿음이 있어도 사랑이 없다면 나는 사실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리고 내 소유를 가난한 이들에게 나눠주고 내 ...

예수 어록(293) 요 13:34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 2020-03-30
  • 조회 수 1310

예수 어록(293) 요 13:34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요한복음에서 가장 잘 알려졌으면서도 가장 중요한 구절을 하나 손에 꼽으라고 한다면 요 13:34절을 택할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나는 이 구절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손가락에 꼽힐만하다고는 생각한다. 예수가 제자들에게 준 ‘새 계명’은 사랑이다. 예수 부활 이후를 다룬 요 21장 15절 이하에서 예수는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세 번이나 질문한다. 눅 10:25 이하에는 소위...

주간일지 3월29일

  • 2020-03-29
  • 조회 수 1613

대구 샘터교회 주간일지 2020년 3월29일, 사순절 다섯째 주일 1) The hand of the Lord- 겔 37:1(a)절의 우리말 성경은 “여호와께서 권능으로 내게 임재하시고 … ”입니다. 영어 성경이나 독일어 성경은 “주님의 손이 내게 임했다.”라고 번역했습니다. NIV(뉴 인터내셔날 버전)을 인용합니다. “The hand of the LORD was upon me.” Lord(주)는 히브리어 야웨의 번역입니다. 저는 오늘 설교 현장에서 ‘주의 손 … ’이라는 문장을 다시 읽으면서 강렬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에스겔이 창조의 능력을 화염처럼 경험했다는 뜻입니다. 그런 ...

예수 어록(292) 요 13:33 내가 가는 곳에 올 수 없다

  • 2020-03-28
  • 조회 수 975

예수 어록(292) 요 13:33 작은 자들아 내가 아직 잠시 너희와 함께 있겠노라 너희가 나를 찾을 것이나 일찍이 내가 유대인들에게 너희는 내가 가는 곳에 올 수 없다고 말한 것과 같이 지금 너희에게도 이르노라. 이미 유대인에게 말했듯이 지금 예수는 다시 제자들에게 “너희는 내가 가는 곳에 올 수 없다.”라고 말한다. 이 말은 자신이 죽는다는 뜻으로 들린다. 일반적으로 사람들도 유언을 남길 때 혼자 떠난다거나 다시 만날 수 없게 되었다고 말한다. 본문은 단순히 죽는다는 말이 아니다. 예수는 자신이 아빠 아버지라고 부른 ...

예수 어록(291) 요 13:32 하나님도 자기로 말미암아 그에게 영광을 주시리니

  • 2020-03-27
  • 조회 수 973

예수 어록(291) 요 13:32 만일 하나님이 그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셨으면 하나님도 자기로 말미암아 그에게 영광을 주시리니 곧 주시리라. ‘영광’은 관념적인 용어다. 그게 뭔지 손에 잡히지 않는다. 사랑도 사실은 관념적이다. 사랑은 계량화에서 벗어난다는 뜻이다. 영광이 관념적이라고 해서 실질적이지 않다는 말은 아니다. 거꾸로 보는 게 옳다. 실질(reality)은 실체가 아니라 관념에 더 가깝다고 말이다. 영광이 관념적이지만 하나님을 이해하는 데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하나님이 하나님으로 드러나는 순간이나 현상이 바...

예수 어록(290) 요 13:31 지금 인자가 영광을 받았고

  • 2020-03-26
  • 조회 수 3697

예수 어록(290) 요 13:31 지금 인자가 영광을 받았고 하나님도 인자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셨도다. 유다는 빵 조각을 받자마자 곧 밖으로 나갔다. 다른 제자들은 유다가 예수 공동체의 재정을 맡고 있었기에 공적인 업무로 나간 줄로 알았다. 요한복음 기자는 유다가 밖으로 나갔을 때는 밤이었다는 사실을 짚는다(요 13:30). 밤은 어두움을 가리키고, 낮은 요한복음의 핵심 개념인 빛을 가리킨다. 사탄은 어두움을 친구삼아 활동한다. 유다가 제자 공동체를 떠난 뒤로 예수의 고별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요 13:36-38절에 유다...

예수 어록(289) 요 13:27 네가 하는 일을 속히 하라.

  • 2020-03-25
  • 조회 수 1060

예수 어록(289) 요 13:27 네가 하는 일을 속히 하라. 요한복음 기자는 27(a)절에서 빵 한 조각을 받아든 유다에게 사탄이 들어갔다고 묘사한다. 이미 예수를 배신하기로 작정했던 유다가 자기 생각을 행동으로 옮겼다는 뜻이다. 예수는 유다에게 이른다. “네가 하는 일을 속히 하라.” 선문답처럼 들린다. 28절에 따르면 그 식탁에 앉은 제자 중에서 예수의 발언이 무슨 뜻인지 아는 자가 하나도 없었다. 이어서 29절에 따르면 유월절 축제에 필요한 물건을 구매하라거나 가난한 자들에게 도움을 주라는 말로 생각한 제자들이 있었다...

예수 어록(288) 요 13:26 내가 떡 한 조각을 적셔다 주는 자가 그니라.

  • 2020-03-24
  • 조회 수 1296

예수 어록(288) 요 13:26 내가 떡 한 조각을 적셔다 주는 자가 그니라. “너희 중 하나가 나를 팔리라.”는 예수의 말을 듣고 제자들 사이에 궁금증이 폭발했다. 베드로는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누운”(23절) 제자에게 예수 발언의 대상이 누군지를 묻게 했다.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누웠다는 말은 당시 유대의 식사 습관에 관련된다. 밥상 앞에 반듯하게 앉는 게 아니라 비스듬하게 누운 자세를 취하기에 옆 사람이 가슴에 안긴 듯이 보일 수 있다. 이 제자는 예수가 사랑하는 자였다고 한다. 2세기 기독교 문헌에는 이 제자가 요한...

예수 어록(287) 요 13:21 너희 중 하나가 나를 팔리라.

  • 2020-03-23
  • 조회 수 1104

예수 어록(287) 요 13:21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 하나가 나를 팔리라. 예수는 제자들에게 “너희 중 하나가 나를 팔리라.”라고 말씀하신다. 이 순간에 마음이 얼마나 복잡했겠는가. 본문은 예수의 “심령이 괴로워” 했다고 표현한다. 가룟 유다의 배신은 요 18장에서 실행되는데, 이에 앞서 요 13장에서 예고된 것이다. 유다의 예수 배신 문제는 불가사의에 속한다. 예수가 사람을 잘못 본 것인지, 이미 그럴 줄 알았는데도 제자로 받아준 것인지, 복음서 기자들이 배신이라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다른 속사정...

주간일지 3월22일 file [3]

  • 2020-03-22
  • 조회 수 1188

대구 샘터교회 주간일지 2020년 3월22일, 사순절 넷째 주일 1) 심판- ‘심판’이라는 단어는 뭔가 위협적으로 들립니다. 그건 오해입니다. 심판은 구원과 같은 의미입니다. 오늘 본문 요 9:39절에서 예수는 “세상을 심판하기 위해서 왔다.”라고 말씀하셨지만 요 12:47절에서는 “내가 온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함이 아니요 세상을 구원하려 함이로라.”라고 말씀하셨다는 데서 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심판은 구원이고 구원은 곧 심판입니다. 그래서 예수는 “보지 못하는 자들을 보게 하는 것”이 심판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의 ...

예수 어록(286) 요 13:20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

  • 2020-03-21
  • 조회 수 1163

예수 어록(286) 요 13:20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보낸 자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는 하나님이다. 예수는 그를 “아빠 아버지”라고 불렀다. 예수를 믿는다는 말은 예수를 보내신 하나님을 믿는다는 뜻이다. 즉 우리는 하나님이 예수에게 자신을 드러내셨기에 예수를 통해서 하나님을 경험하는 것이다. 예수를 통해서 하나님을 경험한다는 말은 예수에게서 궁극적인 생명을 경험한다는 뜻이다. 예수를 잘 믿고 하나님을 ...

예수 어록(285) 요 13:19 지금부터 일이 일어나기 전에 미리 너희에게 일러 둠은

  • 2020-03-20
  • 조회 수 824

예수 어록(285) 요 13:19 지금부터 일이 일어나기 전에 미리 너희에게 일러 둠은 일이 일어날 때에 내가 그인 줄 너희가 믿게 하려 함이로라. “일이 일어나기 전”에 그 일을 미리 알 수만 있다면 막상 그 일이 일어나도 크게 당황하지 않을 것이다. 예수의 십자가 죽음은 제자들이 전혀 예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자기들이 따르던 선생이 십자가 처형을 받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다면 당연히 제자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십자가 처형은 그것 자체로 비참할 뿐만 아니라 세상과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는 운명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

예수 어록(284) 요 13:18 내 떡을 먹는 자가 내게 발꿈치를 들었다

  • 2020-03-19
  • 조회 수 4992

예수 어록(284) 요 13:18 내가 너희 모두를 가리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나는 내가 택한 자들이 누구인지 앎이라 그러나 내 떡을 먹는 자가 내게 발꿈치를 들었다 한 성경을 응하게 하려는 것이니라. “내 떡을 먹는 자가 내게 발꿈치를 들었다.”라는 문장은 시편 41:9절의 인용이다. 그 구절의 전체 내용은 다음과 같다. “내가 신뢰하여 내 떡을 나눠 먹던 나의 가까운 친구도 나를 대적하여 그의 발꿈치를 들었나이다.” 예수의 이 발언은 제자 중에 배신자가 나올 것이라는 예고다. “내게 발꿈치를 들었다.”라는 문장은 고대 유대...

예수 어록(283) 요 13:17 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

  • 2020-03-18
  • 조회 수 1194

예수 어록(283) 요 13:17 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 위 구절에 나오는 “복이 있으리라.”(마카리오이)는 단어는 마 5:3절 이하에 여덟 번이나, 정확히 말하면 아홉 번이나 반복해서 나온다. 우리가 보통 ‘팔복’이라고 부르는 대목이다. 여기서 거론되는 복 있는 사람은 우리가 생각하는 복의 기준에서 한참 멀다. 가난하고 애통하고 온유하고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 등등이다. 세상에서 불행한 사람이 행복하니 무조건 불행하게 사는 게 좋다는 뜻은 아니다. 원하지 않는다고 해서 불행이 찾아오지 않거나 원한다고 ...

예수 어록(282) 요 13:16 보냄을 받은 자가 보낸 자보다 크지 못하나니

  • 2020-03-17
  • 조회 수 1276

예수 어록(282) 요 13:16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종이 주인보다 크지 못하고 보냄을 받은 자가 보낸 자보다 크지 못하나니 요 13:16절에 해당한 헬라어 성경은 이렇게 시작한다. “아멘 아멘 레고 휘민” 헬라어 어순을 그대로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진실로 진실로 나는 말합니다 당신들에게.” 우리가 기도 마지막에 붙이는 ‘아멘’은 그 기도의 내용을 ‘진실로!’(truly)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아멘’이 반복된 이유는 강조하려는 데에 있다. 예수가 강조하는 것은 보냄을 받은 자기보다 보내신 아버지 하나님이 더 ...

TEL : 070-4085-1227, 010-8577-1227, Email: freude103801@hanmail.net
Copyright ⓒ 2008 대구성서아카데미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