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어록(283) 13:17

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

 

위 구절에 나오는 복이 있으리라.”(마카리오이)는 단어는 마 5:3절 이하에 여덟 번이나, 정확히 말하면 아홉 번이나 반복해서 나온다. 우리가 보통 팔복이라고 부르는 대목이다. 여기서 거론되는 복 있는 사람은 우리가 생각하는 복의 기준에서 한참 멀다. 가난하고 애통하고 온유하고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 등등이다. 세상에서 불행한 사람이 행복하니 무조건 불행하게 사는 게 좋다는 뜻은 아니다. 원하지 않는다고 해서 불행이 찾아오지 않거나 원한다고 해서 행복이 찾아오는 게 아니다. 성경이 말하려는 핵심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만 참된 복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이런 말씀은 전복적인 힘이 있다. 행복에 관한 우리의 고정관념을 허물기 때문이다. 그렇다. 예수의 말씀은 늘 우리의 생각을 근본에서부터 뒤흔든다. 그 생각에서 돌아서는 게 회심이다.

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이라는 문장에서 이것은바로 앞 구절에서 언급된 내용이다. 하나님만이 크신 분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살아가는 사람은 어떤 상황에 놓이든지 복이 있을 것이다. 이 말씀의 깊이로 들어가려면 하나님이 주시는 복이 자기의 실제 삶에서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건성으로가 아니라 실질적으로 볼 줄 알아야 한다.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그 나라를 향해서 돌아서라는 예수의 선포가 이런 복과 연결된다. 우리의 형편이 아무리 어려워도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사실을 안다면 그는 복을 받은 사람이다. 예를 들어 티베트의 가난한 유목민처럼 살아도 영혼의 준비만 되었다면 복이 있겠지만, 연봉 10억 원을 받는 사람이라도 영혼의 준비가 미비하다면 복에서 멀어질 것이다. 이런 말이 종교적 덕담으로 들리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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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어록(298) 요 14:2 내 아버지의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 2020-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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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어록(298) 요 14:2 내 아버지의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위 구절에 매우 흥미로운 표현이 나온다. “내 아버지의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내 아버지의 집은 하늘나라다. 어떤 이는 죽어서 가게 될 천당 비슷한 개념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이 구절에서 내가 주목하는 지점은 “거할 곳이 많다.”라는 사실이다. 많다는 말은 양적인 차원이 아니다. 144,000명이 들어갈 장소가 아니다. 고대인들이 그런 숫자에 민감하긴 했으나 그것은 상징이다. 성...

예수 어록(297) 요 14:1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 2020-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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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장 예수 어록(297) 요 14:1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이제 14장이 시작된다. 17장 마지막 절인 26절까지 다른 언급은 일절 없이 예수의 발언만 계속된다. 14:5절에는 도마의 한 마디가, 8절에는 빌립의 한 마디가, 그리고 22절에 유다의 한 마디가 나올 뿐이다. 도마와 빌립의 발언을 제외하고 자그마치 절로만 계산해서 115절이나 된다. 요한복음의 신학적 특징이 확연하게 드러나는 대목이다. 예수의 체포 사건을 다루는 18장부터는 서사가 빠른 속도로 진행된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

예수 어록(296) 요 13:38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 2020-04-02
  • 조회 수 1635

예수 어록(296) 요 13:38 네가 나를 위하여 네 목숨을 버리겠느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나를 따라올 수 없다.”라는 예수의 말을 듣고 베드로는 당당하게 나선다. “주를 위하여 내 목숨을 버리겠나이다.” 결과적으로는 자기 말대로 그가 순교했지만, 그 이전에 그는 예수를 부정한다. 바로 오늘 밤에 이런 일이 발생한다. 닭 울기 전에 베드로는 예수를 세 번에 걸쳐서 부인할 것이다. 이 사건은 초기 기독교에 잘 알려진 것으로 보인다. 요한복음만이 아니라 공관복음이 이...

예수 어록(295) 요 13:36 후에는 따라오리라.

  • 2020-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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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어록(295) 요 13:36 내가 가는 곳에 네가 지금은 따라올 수 없으나 후에는 따라오리라. 요 13:33절에서 예수는 제자들에게 “내가 가는 곳”에 올 수 없다고 말한 바 있다. 베드로는 요 13:36(a)절에서 예수에게 묻는다.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우리가 어디선가 들은 질문이다. 영화 “쿼바디스”에서 베드로는 네로의 박해를 잠시 피하려고 로마를 빠져나가는 중에 예수를 만난다. 그는 “주님, 어디로 가십니까?”라고 묻는다. 예수는 베드로가 십자가를 피해서 떠난 로마로 들어간다고 말한다. 베드로는 자신의 잘못을 회개...

예수 어록(294) 요 13:35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 2020-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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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어록(294) 요 13:35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소위 ‘사랑 장’이라고 일컬어지는 고전 13장에서 1-3절이 인상적이다. 루터 성경을 번역해서 여기 싣는다. 내가 사람의 말을 잘하고 천사의 노래를 멋지게 부른다고 해도 사랑이 없다면 나는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일 것입니다. 또 내가 예언을 말할 줄 알고 모든 비밀과 지식이 뛰어나며 산을 옮길만한 큰 믿음이 있어도 사랑이 없다면 나는 사실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리고 내 소유를 가난한 이들에게 나눠주고 내 ...

예수 어록(293) 요 13:34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 2020-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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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어록(293) 요 13:34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요한복음에서 가장 잘 알려졌으면서도 가장 중요한 구절을 하나 손에 꼽으라고 한다면 요 13:34절을 택할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나는 이 구절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손가락에 꼽힐만하다고는 생각한다. 예수가 제자들에게 준 ‘새 계명’은 사랑이다. 예수 부활 이후를 다룬 요 21장 15절 이하에서 예수는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세 번이나 질문한다. 눅 10:25 이하에는 소위...

주간일지 3월29일

  • 2020-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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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샘터교회 주간일지 2020년 3월29일, 사순절 다섯째 주일 1) The hand of the Lord- 겔 37:1(a)절의 우리말 성경은 “여호와께서 권능으로 내게 임재하시고 … ”입니다. 영어 성경이나 독일어 성경은 “주님의 손이 내게 임했다.”라고 번역했습니다. NIV(뉴 인터내셔날 버전)을 인용합니다. “The hand of the LORD was upon me.” Lord(주)는 히브리어 야웨의 번역입니다. 저는 오늘 설교 현장에서 ‘주의 손 … ’이라는 문장을 다시 읽으면서 강렬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에스겔이 창조의 능력을 화염처럼 경험했다는 뜻입니다. 그런 ...

예수 어록(292) 요 13:33 내가 가는 곳에 올 수 없다

  • 2020-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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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어록(292) 요 13:33 작은 자들아 내가 아직 잠시 너희와 함께 있겠노라 너희가 나를 찾을 것이나 일찍이 내가 유대인들에게 너희는 내가 가는 곳에 올 수 없다고 말한 것과 같이 지금 너희에게도 이르노라. 이미 유대인에게 말했듯이 지금 예수는 다시 제자들에게 “너희는 내가 가는 곳에 올 수 없다.”라고 말한다. 이 말은 자신이 죽는다는 뜻으로 들린다. 일반적으로 사람들도 유언을 남길 때 혼자 떠난다거나 다시 만날 수 없게 되었다고 말한다. 본문은 단순히 죽는다는 말이 아니다. 예수는 자신이 아빠 아버지라고 부른 ...

예수 어록(291) 요 13:32 하나님도 자기로 말미암아 그에게 영광을 주시리니

  • 2020-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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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어록(291) 요 13:32 만일 하나님이 그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셨으면 하나님도 자기로 말미암아 그에게 영광을 주시리니 곧 주시리라. ‘영광’은 관념적인 용어다. 그게 뭔지 손에 잡히지 않는다. 사랑도 사실은 관념적이다. 사랑은 계량화에서 벗어난다는 뜻이다. 영광이 관념적이라고 해서 실질적이지 않다는 말은 아니다. 거꾸로 보는 게 옳다. 실질(reality)은 실체가 아니라 관념에 더 가깝다고 말이다. 영광이 관념적이지만 하나님을 이해하는 데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하나님이 하나님으로 드러나는 순간이나 현상이 바...

예수 어록(290) 요 13:31 지금 인자가 영광을 받았고

  • 2020-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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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어록(290) 요 13:31 지금 인자가 영광을 받았고 하나님도 인자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셨도다. 유다는 빵 조각을 받자마자 곧 밖으로 나갔다. 다른 제자들은 유다가 예수 공동체의 재정을 맡고 있었기에 공적인 업무로 나간 줄로 알았다. 요한복음 기자는 유다가 밖으로 나갔을 때는 밤이었다는 사실을 짚는다(요 13:30). 밤은 어두움을 가리키고, 낮은 요한복음의 핵심 개념인 빛을 가리킨다. 사탄은 어두움을 친구삼아 활동한다. 유다가 제자 공동체를 떠난 뒤로 예수의 고별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요 13:36-38절에 유다...

예수 어록(289) 요 13:27 네가 하는 일을 속히 하라.

  • 2020-03-25
  • 조회 수 1058

예수 어록(289) 요 13:27 네가 하는 일을 속히 하라. 요한복음 기자는 27(a)절에서 빵 한 조각을 받아든 유다에게 사탄이 들어갔다고 묘사한다. 이미 예수를 배신하기로 작정했던 유다가 자기 생각을 행동으로 옮겼다는 뜻이다. 예수는 유다에게 이른다. “네가 하는 일을 속히 하라.” 선문답처럼 들린다. 28절에 따르면 그 식탁에 앉은 제자 중에서 예수의 발언이 무슨 뜻인지 아는 자가 하나도 없었다. 이어서 29절에 따르면 유월절 축제에 필요한 물건을 구매하라거나 가난한 자들에게 도움을 주라는 말로 생각한 제자들이 있었다...

예수 어록(288) 요 13:26 내가 떡 한 조각을 적셔다 주는 자가 그니라.

  • 2020-03-24
  • 조회 수 1295

예수 어록(288) 요 13:26 내가 떡 한 조각을 적셔다 주는 자가 그니라. “너희 중 하나가 나를 팔리라.”는 예수의 말을 듣고 제자들 사이에 궁금증이 폭발했다. 베드로는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누운”(23절) 제자에게 예수 발언의 대상이 누군지를 묻게 했다.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누웠다는 말은 당시 유대의 식사 습관에 관련된다. 밥상 앞에 반듯하게 앉는 게 아니라 비스듬하게 누운 자세를 취하기에 옆 사람이 가슴에 안긴 듯이 보일 수 있다. 이 제자는 예수가 사랑하는 자였다고 한다. 2세기 기독교 문헌에는 이 제자가 요한...

예수 어록(287) 요 13:21 너희 중 하나가 나를 팔리라.

  • 2020-03-23
  • 조회 수 1104

예수 어록(287) 요 13:21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 하나가 나를 팔리라. 예수는 제자들에게 “너희 중 하나가 나를 팔리라.”라고 말씀하신다. 이 순간에 마음이 얼마나 복잡했겠는가. 본문은 예수의 “심령이 괴로워” 했다고 표현한다. 가룟 유다의 배신은 요 18장에서 실행되는데, 이에 앞서 요 13장에서 예고된 것이다. 유다의 예수 배신 문제는 불가사의에 속한다. 예수가 사람을 잘못 본 것인지, 이미 그럴 줄 알았는데도 제자로 받아준 것인지, 복음서 기자들이 배신이라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다른 속사정...

주간일지 3월22일 file [3]

  • 2020-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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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샘터교회 주간일지 2020년 3월22일, 사순절 넷째 주일 1) 심판- ‘심판’이라는 단어는 뭔가 위협적으로 들립니다. 그건 오해입니다. 심판은 구원과 같은 의미입니다. 오늘 본문 요 9:39절에서 예수는 “세상을 심판하기 위해서 왔다.”라고 말씀하셨지만 요 12:47절에서는 “내가 온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함이 아니요 세상을 구원하려 함이로라.”라고 말씀하셨다는 데서 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심판은 구원이고 구원은 곧 심판입니다. 그래서 예수는 “보지 못하는 자들을 보게 하는 것”이 심판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의 ...

예수 어록(286) 요 13:20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

  • 2020-03-21
  • 조회 수 1161

예수 어록(286) 요 13:20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보낸 자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는 하나님이다. 예수는 그를 “아빠 아버지”라고 불렀다. 예수를 믿는다는 말은 예수를 보내신 하나님을 믿는다는 뜻이다. 즉 우리는 하나님이 예수에게 자신을 드러내셨기에 예수를 통해서 하나님을 경험하는 것이다. 예수를 통해서 하나님을 경험한다는 말은 예수에게서 궁극적인 생명을 경험한다는 뜻이다. 예수를 잘 믿고 하나님을 ...

예수 어록(285) 요 13:19 지금부터 일이 일어나기 전에 미리 너희에게 일러 둠은

  • 2020-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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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어록(285) 요 13:19 지금부터 일이 일어나기 전에 미리 너희에게 일러 둠은 일이 일어날 때에 내가 그인 줄 너희가 믿게 하려 함이로라. “일이 일어나기 전”에 그 일을 미리 알 수만 있다면 막상 그 일이 일어나도 크게 당황하지 않을 것이다. 예수의 십자가 죽음은 제자들이 전혀 예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자기들이 따르던 선생이 십자가 처형을 받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다면 당연히 제자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십자가 처형은 그것 자체로 비참할 뿐만 아니라 세상과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는 운명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

예수 어록(284) 요 13:18 내 떡을 먹는 자가 내게 발꿈치를 들었다

  • 2020-03-19
  • 조회 수 4989

예수 어록(284) 요 13:18 내가 너희 모두를 가리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나는 내가 택한 자들이 누구인지 앎이라 그러나 내 떡을 먹는 자가 내게 발꿈치를 들었다 한 성경을 응하게 하려는 것이니라. “내 떡을 먹는 자가 내게 발꿈치를 들었다.”라는 문장은 시편 41:9절의 인용이다. 그 구절의 전체 내용은 다음과 같다. “내가 신뢰하여 내 떡을 나눠 먹던 나의 가까운 친구도 나를 대적하여 그의 발꿈치를 들었나이다.” 예수의 이 발언은 제자 중에 배신자가 나올 것이라는 예고다. “내게 발꿈치를 들었다.”라는 문장은 고대 유대...

예수 어록(283) 요 13:17 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

  • 2020-03-18
  • 조회 수 1192

예수 어록(283) 요 13:17 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 위 구절에 나오는 “복이 있으리라.”(마카리오이)는 단어는 마 5:3절 이하에 여덟 번이나, 정확히 말하면 아홉 번이나 반복해서 나온다. 우리가 보통 ‘팔복’이라고 부르는 대목이다. 여기서 거론되는 복 있는 사람은 우리가 생각하는 복의 기준에서 한참 멀다. 가난하고 애통하고 온유하고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 등등이다. 세상에서 불행한 사람이 행복하니 무조건 불행하게 사는 게 좋다는 뜻은 아니다. 원하지 않는다고 해서 불행이 찾아오지 않거나 원한다고 ...

예수 어록(282) 요 13:16 보냄을 받은 자가 보낸 자보다 크지 못하나니

  • 2020-03-17
  • 조회 수 1273

예수 어록(282) 요 13:16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종이 주인보다 크지 못하고 보냄을 받은 자가 보낸 자보다 크지 못하나니 요 13:16절에 해당한 헬라어 성경은 이렇게 시작한다. “아멘 아멘 레고 휘민” 헬라어 어순을 그대로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진실로 진실로 나는 말합니다 당신들에게.” 우리가 기도 마지막에 붙이는 ‘아멘’은 그 기도의 내용을 ‘진실로!’(truly)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아멘’이 반복된 이유는 강조하려는 데에 있다. 예수가 강조하는 것은 보냄을 받은 자기보다 보내신 아버지 하나님이 더 ...

예수 어록(281) 요 13:15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 2020-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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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어록(281) 요 13:15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예수는 위 구절에서 ‘본’을 보였다고 말했다. 이런 표현은 예수가 자신의 입으로 발언한 것으로 보기에는 어색하다. 요한복음 공동체의 신앙고백이라고 보는 게 옳다. 이 구절만이 아니라 요한복음에 나오는 유난히 긴 연설은 앞에서 짚은 것처럼 예수가 직접 발언한 게 아니라, 그 근원이 예수에게서 유래할 수는 있으나 전체적으로 볼 때 후대 예수 공동체에서 선포된 설교라고 봐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예수가 마치 초등학생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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