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일지 1월26일

조회 수 1002 추천 수 0 2020.01.27 14:07:21

대구 샘터교회 주간일지

2020126, 주현 후 3

 

1) 하나님의 현존- 언제부터인가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라는 예수의 첫 선포가 저의 영혼을 가득 채웠습니다. 예수의 이 메시지가 거짓이 아니라면 지금 우리는 하나님을 이 현실에서 경험할 수 있어야만 합니다. 저 메시지는 하나님의 현존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은 어느 한 장소에 구체적인 형체를 지니고 존재하지 않기에 하나님의 현존을 느끼기가 간단하지 않습니다. “언어가 나에게 왔다.”라고 말하는 시인들의 언어 경험과 비슷합니다. 우리가 기독교인이 아니라면 신경 쓰지 않고 살아도 괜찮겠지만 기독교인이라면 하나님의 현존을 구하고 사색하고 씨름하고 붙들고 외치면서 살아야겠지요. 저 역시 목사이기 전에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앞으로 남은 삶을 온전히 하나님의 현존에 쏟으면서 살아야겠습니다.

 

2) 교회 간판- 오늘 교회에 들어가다 보니 교회 간판이 달라졌습니다. *현 권사가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간판집 기술자를 불러서 해결했나 봅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세련된 작품이 되었군요. 저렇게 만드니 안쪽으로 채광이 잘 됩니다. 다만 작은 실수가 나왔습니다. 교회 이름에 대구가 빠졌습니다. 대구 샘터교회가 졸지에 <샘터교회>가 되었습니다. 사실은 16년 전 처음 교회가 시작할 때 이름이 <샘터교회>였고, 5년 뒤 서울 샘터교회가 시작하면서 우리도 대구를 앞에 붙였습니다. 이번 기회에 아예 교회 이름을 <샘터교회>로 바꿀까요? 아니면 나중에라도 대구라는 글자를 넣어야겠습니다. 교회가 지하에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게 표기되었으니 그냥 두어도 괜찮기는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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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사회자석- 우리 교회 예배는 일반 신자가 사회를 보는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예배 전반을 총괄하는 역할입니다. 사회자에게는 마이크 상태와 앞에 놓인 탁자가 역할을 감당하는 데에 중요합니다. 마이크 문제는 언제부터인가 아주 좋아졌는데, 제가 보기에 탁자는 시원치가 않습니다. 주보와 찬송가를 함께 놓기에는 탁자가 너무 좁아서 사회자가 불편해 보입니다. 그런데 요즘 사회를 보는 박*연 집사는 아무런 불편이 없다고 하네요. 괜찮으면 됐습니다. 사회자가 사용하는 마이크 스텐드가 두 주일 전에 망가졌는데, 오늘 보니 새로운 것으로 교체 설치되었습니다. 문제를 해결해주신 교우에게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4) 133- 설교 후 찬송가 133하나님의 말씀으로는 주현절에 부르는 찬송가입니다. 이 가사는 프루덴티우스(348-413)가 썼습니다. 정말 오래된 가사입니다. 곡조는 11세기 상투스에서 왔습니다. 이를 1940년에 더글라스가 편곡했습니다. 대중적이지 않은 찬송가인 탓인지 오늘 우리는 서툴게 불렀습니다. 주보가 금요일 저녁에 교회 홈페이지에 돌아가니 집에서 확인해보고 낯선 찬송가는 미리 연습해보기 바랍니다. 1절을 읽어보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 세상이 창조되지/ 그는 알파와 오메가 처음이요 끝이시라/

지난날과 장래 일을/ 모두 주관하시네/ 존귀 영광 주의 권세 영원하신 승리를 영원토록 영원토록 아멘

 

5) 강정 외- 식사 메뉴에 디저트로 강정이 나왔습니다. 집에서 많이들 드셨겠지만 이렇게 교회에서 함께 먹으니 맛이 색달랐습니다. 주메뉴로는 짜장이 나왔습니다. 설날에 쉬지 못하고 짜장을 만드느라 수고하신 교우에게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오늘 예배에 빠진 분들이 많았고, 예배에 나왔어도 빨리 돌아가신 분들이 많아서 짜장이 제법 남아서 조금씩 나눠 집으로 가져갔습니다. 우리 집에도 왔군요. 교회 마당에 주차하는데, 입구 쪽에 대형 트럭이 있어서 이상하게 생각하는 중에 홍*숙 집사가 마당을 가로질러 밖으로 나오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오늘 남쪽 마산인가 어딘가에서 친척 모임이 있어서 반찬만 일단 갖다 놓고 예배는 참석할 수 없다는 겁니다. 즐겁게 잘 다녀오라고 했습니다. 그 순간에 홍 집사가 트럭 운전석에 올라타더군요. 남편이 트럭을 운전하는지, 다른 어떤 특별한 사정이 있는지 나중에 물어봐야겠습니다. 바쁜 와중에도 반찬을 챙겨주신 홍 집사에게도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6) 목사 가운- 올해 들어서 저는 목사 가운을 입지 않고 예배를 인도합니다. 제 책상 옆 옷걸이에 여전히 가운에 걸려있었습니다. 예배 후 가운을 예배실 강단 왼편 다용도실로 옮겨서 걸었습니다. 그 자리 옷걸이에 걸려있던 아주 오래된 검은 색 목사 가운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이곳 실밥이 보일 정도로 낡았습니다. 제가 19803월 목사 안수를 받을 때 친구 목사 장모가 자기 사위와 저에게 목사 안수 기념으로 준 가운입니다. 40년 전입니다. 앞으로 가운을 계속 입지 않을 터이니 40년 된 가운은 기념으로 제가 집으로 가져가야겠습니다.

 

7) 다담뜰 한식뷔페- 김 아무개 집사가 예배 후에 목사님, 교회에서 놀다 가시는지, 그냥 가야 하는지요.”라고 물었습니다. 연휴이니 느긋하게 친교를 나누었으면 좋겠다는 의미였습니다. 여러 교우가 1층 카페로 모였습니다. 네 팀입니다. 중간에 돌아갈 분들은 돌아가고, 남은 교우들은 5시까지 담소를 나누면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어떤 집사가 오늘 저녁밥을 함께 먹고 축구 경기 시청도 함께하는 게 어떨까요? 누구네 집으로 갈까요?”라고 바람을 잡았습니다. 분위기가 그런 쪽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저의 의향을 묻더군요. “두 시간이나 함께 축구를 시청하는 건 지루하지 않나요? 그것보다는 어디 가서 설날 떡국이나 함께 먹읍시다. 나는 아직 못 먹었거든요.”라고 대답했습니다. *남 집사가 오늘 저녁은 제가 살 테니까, 가요. 경산 다담뜰 한식뷔페가 괜찮아요.” 합니다. 5시 반부터 7시까지 9명이 다담뜰 뷔페에서 맛나게 배불리 먹고 설날 연휴의 여유를 만끽했습니다. 저는 보통 배부르게 먹지 않는데, 이번만은 세 접시를 먹었더니 포만감이 장난이 아니더군요. 소화제를 먹지 않아도 소화는 잘됐습니다. 9명 식사비를 내느라 고생하신 송 집사님.

 

8) 예배 준비실- 제가 예배 시작하기 전에 잠시 머물면서 준비하는 공간은 1층에 있습니다. 부엌 바로 옆에 붙어 있습니다. 그 안에는 고풍스러운 둥근 탁자가 가운데 놓여 있고, 의자는 여덟 개나 놓여 있습니다. 거기서 30분 정도 머뭅니다. 설교 구성을 다시 생각하고, 아주 짧게 스트레칭을 하고, 교우 전화번호부에 실린 이름을 봅니다. 아픈 이, 멀리 여행을 떠난 이, 시험(?)에 들린 이, 아이들 등등, 예배에 참석하든지 못하든지 모두 예배 영성에 접할 수 있도록 마음속으로 기도드립니다. 예배 준비실을 사용할 수 있도록 도와주신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9) 예배 참석인원: 66, 헌금: 2,480,000(통장 57만 원 포함, 헌금에 참여한 타교인- *정 님)

농협 301-0243-3251-71(대구 샘터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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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어록(264) 요 12:31 이제 이 세상에 대한 심판이 이르렀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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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어록(264) 요 12:31 이제 이 세상에 대한 심판이 이르렀으니 이 세상의 임금이 쫓겨나리라 세상에 대한 ‘심판’이 이르렀다는 말은 예수의 죽음이 이르렀다는 뜻이다. 예수의 죽음이 세상에 대한 심판인 이유는 예수가 심판의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예수를 믿는 자는 생명을 얻고 예수를 거부하는 자는 생명에서 배제된다. 이런 말을 도그마(고정된 교리)로만 이해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교회 안에 속한 사람이나 밖에 속한 사람이나 마찬가지다. 교회 안에 속한 사람은 밖에 속한 사람을 구원에서 배제된 사람으로 단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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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어록(263) 요 12:30 이 소리가 난 것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요 너희를 위한 것이니라 “아버지여,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옵소서”라는 예수의 기도가 끝나자 하늘에서 “내가 이미 영광스럽게 하였고 또다시 영광스럽게 하리라.”라는 소리가 났다고 한다. 복음서에는 예수와 관련해서 하늘에서 소리가 났다는 표현이 가끔 나온다. 예수가 세례받을 때 하늘로부터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라는 소리가 났다(마 3:17). 예수 변모 사건에서도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

주간일지 2월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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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샘터교회 주간일지 2020년 2월23일, 예수 변모 주일 1) 변모- 제자 세 명과 함께 산에 오르신 예수의 모습이 변형되어 빛처럼 보였다고 하는 이야기가 오늘 설교 본문에 나옵니다. 이를 뉴스에도 나올 수 있는 객관적인 현상으로 보는 분들은 없겠지요. 시처럼 읽는 게 옳습니다. 궁극적인 차원에서 보면 세상은 온통 빛이긴 합니다. 어느 순간에 그걸 느끼기도 하고, 느끼지 못하기도 합니다. 갑자기 떠오르는군요. 코엘료의 『연금술사』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납을 금으로 만드는 비술이 연금술이 아니다. 모든 사물...

예수 어록(262) 요 12:28 아버지여,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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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어록(262) 요 12:28 아버지여,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옵소서 예수의 짧은 기도는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시기를 바란다는 말로 끝난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 … ”라는 주기도의 첫 구절을 연상시킨다.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한다거나 거룩하게 한다는 말은 아버지로 일컬어지는 하나님의 뜻이 온전하게 드러나기를 바란다는 뜻이다. 하나님의 뜻은 인간 구원이다. 본문의 문맥으로 볼 때 예수의 죽음이 인간 구원의 완성이라는 뜻이다. 요한복음 공동체가 이렇게...

예수 어록(261) 요 12:27 지금 내 마음이 괴로우니 무슨 말을 하리요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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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어록(261) 요 12:27 지금 내 마음이 괴로우니 무슨 말을 하리요 아버지여 나를 구원하여 이 때를 면하게 하여 주옵소서 그러나 내가 이를 위하여 이 때에 왔나이다. 내 ‘마음’에 달린 각주는 ‘영혼’이다. 우리말 성경에서 마음으로 번역된 헬라어는 25절에 생명으로 번역된 프시케다. 똑같은 단어인 프시케를 25절에서는 생명으로, 26절에는 마음으로 번역했다. 우리말 성경에는 번역의 일관성이 떨어지는 경우가 잦다. 25절의 프시케를 생명이라고 했다면 27절의 프시케도 생명으로 번역하는 게 옳다. 27절을 생명으로 번역하...

예수 어록(260) 요 12:26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귀히 여기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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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어록(260) 요 12:26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도 거기 있으리니 사람이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귀히 여기시리라. 위 구절을 예수의 직접적인 발언이라고 보기는 어렵고, 그렇다고 아니라고 단정할 수도 없다. 2천 년 전 텍스트를 우리가 무슨 수로 단정적으로 판단할 수 있단 말인가. 더구나 요한복음은 예수 공생애를 어느 정도 객관적으로 기술한 공관복음과 달리 그리스 철학의 관점에서 변증했다는 점에서 예수 어록의 역사적 문제를 판단하기 어렵다. 저 구절은 해석에 따...

예수 어록(259) 요 12:25 자기의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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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어록(259) 요 12:25 자기의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의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전하리라. 위 구절의 ‘생명’이라는 단어에 달린 각주에는 ‘영혼’이 나온다. 생명을 영혼으로 읽어도 된다는 뜻이다. 원래 생명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조에’다. 요 14:6절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할 때의 그 생명이 조에다. 위 구절에 나오는 단어는 self, inner life를 뜻하는 ‘프시케’다. 프시케는 보통 영혼으로 번역되는 게 맞다. 헬라어를 충실하게 따르면 프시케는 인간이 이 세상에서 ...

예수 어록(258) 요 12:24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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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어록(258) 요 12: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 ”이라는 위 경구는 요한복음 중에서 가장 잘 알려진 구절이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 ”(요 14:6)와 같은 구절도 유명하기는 하지만 교회 밖에도 잘 알려진 경구는 위 구절이다. 내 기억에 톨스토이의 소설 중에서 이 구절을 간지에 들어가는 성구로 삼은 소설도 있다. 한 알의 밀이 많은 열매를 거둔다는 말은 아주...

주간일지 2월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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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샘터교회 주간일지 2020년 2월16일, 주현 후 6주 1) 백수- 오늘 설교 중에 총선 후보자와 백수를 비교했습니다. 총선 후보자는 표를 얻는 일에 몰두하느라 자신의 걷는 행위를 느끼지 못합니다. 그는 표만 얻을 수 있다면 지구 끝이라도 허둥지둥 달려갈 겁니다. 백수는 영적으로 준비만 되어 있다면 걷는 행위에 집중할 수 있습니다. 지구의 중력과 늦겨울 바람을 황홀하게 경험할 수 있습니다. 마음이 다른 것에 분산되지 않고 숨 쉬고 보고 듣는 일에 집중하는 겁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살아있다는 가장 명백한 증거의 ...

예수 어록(257) 요 12:23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

  • 2020-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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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어록(257) 요 12:23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 요 12:12-19절에 예수의 예루살렘 입성 이야기가 나온다. 유월절 성지순례로 예루살렘에 모인 사람들이 예수를 맞이하려고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면서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여!”라고 환호했다고 한다. 세 공관복음도 다 다루는 이야기다. 요한복음의 예수 이야기가 공관복음과 크게 차이가 나지만 예루살렘 입성에서 시작하는 수난 전승 대목에서는 상대적으로 결을 같이 하는 편이다. 예루살렘 입성 이후로 예수의 운명은 ...

예수 어록(256) 요 12:8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 2020-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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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어록(256) 요 12:8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있지 아니하리라. ‘가난한 자’는 유대교 전통에서 볼 때도 도움을 받아야 할 중요한 대상이었다. 가난한 사람이야말로 의로운 사람이라는 생각이 보편적이었다. 이런 전통과 맥을 같이 하여 예수는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눅 6:20, 마 5:3)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는 자신을 찾아온 부자 청년에게 재산을 팔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눠주고 “나를 따르라.”(마 19:21)라고 말씀하신 적도 있다. 공관복음이 다 다루고 있는 이야기다. 초기 기독교 역시 고아...

예수 어록(255) 요 12:7 그를 가만두어 나의 장례 할 날을 위하여

  • 2020-02-13
  • 조회 수 1036

12장 예수 어록(255) 요 12:7 그를 가만두어 나의 장례 할 날을 위하여 그것을 간직하게 하라 나사로를 살린 예수 언행은 44절로 끝났다. 매우 길다. 45절부터 57절까지 후속 담론이 계속된다. 유대교 지도층은 산헤드린 공회를 소집해서 예수에 얽힌 이 사안을 다뤘다. 48절에 그들의 생각이 나온다. “만일 그를 그대로 두면 모든 사람이 그를 믿을 것이요 그리고 로마인들이 와서 우리 땅과 민족을 빼앗아 가리라.” 그 내용은 두 가지다. 어떤 조처를 하지 않으면 사람들이 예수에게 몰려들 것이라는 사실이 하나이고, 이로 인...

예수 어록(254) 요 11:44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

  • 2020-02-12
  • 조회 수 1116

예수 어록(254) 요 11:44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 죽었던 나사로가 동굴 밖으로 나왔다고 한다. 손과 발이 베로 묶였고 얼굴은 수건으로 싸인 모습이다. 괴기 영화의 한 장면 같다. 요즘도 간혹 장례가 진행되는 중에 고인이 살아났다는 소식이 토픽으로 나올 때가 있다. 나사로 이야기는 이런 거와 다르다. 예수에게서 하나님의 일이 드러났다는 사실을 극적으로 설명하기 위해서 나사로 이야기가 요한복음에 자리를 잡은 것이다. 요한복음은 이 장면을 자세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강시 모습으로 비쳤을 나사로를 보고 사람들이 보...

예수 어록(253) 요 11:43 나사로야 나오라

  • 2020-02-11
  • 조회 수 933

예수 어록(253) 요 11:43 나사로야 나오라 예수는 큰소리로 외쳤다. “나사로야 나오라.” 초상집에 있던 사람 중에 아무로 예상하지 못한 퍼포먼스를 예수가 펼친 셈이다. 나는 앞 구절을 설명하면서 죽었던 나사로가 다시 살아났다는 사실 자체가 여기서 중요한 게 아니라고 말했다. 이런 일이 실제로 그 집에서 일어났는지 아닌지는 아무도 모른다. 요한복음 외의 공관복음에 나오지 않는 이야기라고 한다면 당시 기독교에 잘 알려지지 않았다는 것 역시 분명해 보인다. 요한복음 기자는 하나님과 일치를 이루었던 예수에게 당연히...

주간일지 2월9일 file

  • 2020-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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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샘터교회 주간일지 2020년 2월9일, 주현 후 5주 1) 사람- “십자가에 못 박힌 이”라는 제목으로 오늘(2월9일) 저는 설교했습니다. 예수를 십자가 처형으로 몰아간 유대교 권력자들의 생각과 예수의 생각이 어떻게 다른지를 설명하면서 짚은 단어가 ‘사람’입니다. 유대교 권력자들에게는 종교 이데올로기와 체제가 중요했지만, 예수에게는 사람이 중요했습니다. 안식을 위해서 사람이 존재하는 게 아니라 사람을 위해서 안식일이 존재한다거나 하나님의 사랑이 율법을 뛰어넘어 모든 사람에게 임한다고 말씀하신 데서 이를 알 수...

예수 어록(252) 요 11:42 나를 보내신 것을 그들로 믿게 하려 함이니이다

  • 2020-02-08
  • 조회 수 1155

예수 어록(252) 요 11:42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그러나 이 말씀하옵는 것은 둘러선 무리를 위함이니 곧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그들로 믿게 하려 함이니이다 나사로 이야기의 핵심은 사람이 죽었다가 살아났다는 게 아니라 예수와 하나님의 특별한 관계를 주변 사람들이 믿게 하려는 것이다. 하나님의 일이 예수에게 나타났다는 사실이 바로 그 관계를 가리킨다. 예수에게 나타난 하나님의 일은 인간 구원이다. 그 인간 구원은 하나님의 현존을 통해서 우리에게 경험된다. 하나님은 세상을 무로부터 창...

예수 어록(251) 요 11:41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 2020-02-07
  • 조회 수 1082

예수 어록(251) 요 11:41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사람들이 무덤 입구의 돌을 옮기자 예수는 기도를 드렸다.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정확히 말하면 간구하는 기도는 아니고 감사의 기도다. 또는 기도라기보다는 감사 찬양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런 찬양이 가장 높은 수준의 기도가 아니겠는가. 이런 찬양에는 간구가 이미 성취되거나 선취(先取)되었다는 사실이 암시된다. 예수는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치면서 하나님이 우리의 필요를 이미 아신다고 말씀했다(마 6:8). 그 말은 우...

예수 어록(250) 요 11:40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 2020-02-06
  • 조회 수 1256

예수 어록(250) 요 11:40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다시 마르다가 등장해서 돌을 옮겨 놓으라는 예수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이 이렇게 말한다. “주여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요 11:39). 죽음은 박테리아를 통해서 인간 몸을 매우 빠르게 본래 자연 상태로 돌린다. 우리 몸이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가는 건 마땅하다. 죽음이 임박하지 않았을 때 미리 흙으로 돌아가는 준비를 하는 사람은 지혜롭다. 그리스 사람들은 인간을 포함한 만물의 본질을 물, ...

예수 어록(249) 요 11:39 돌을 옮겨 놓으라

  • 2020-02-05
  • 조회 수 1196

예수 어록(249) 요 11:39 돌을 옮겨 놓으라 예수는 나사로 시신이 안장된 무덤 앞에 섰다. 무덤 입구는 돌로 막혀 있다. 예수는 사람들에게 “돌을 옮겨 놓으라.”라고 말씀하신다. 돌은 죽음과 생명을 가로막는 장애물이다. 죽은 자는 이 장애물로 인해서 생명의 세계로 나올 수 없다. 거기에 모였던 많은 사람은 무덤 입구를 막은 돌을 옮겨 놓을 생각을 하지 못했다. 옮겨 놓을 수도 없었고, 옮겨 놓을 필요도 없었다. 그들에게 죽은 자는 그렇게 영원히 동굴에 머물러 있어야만 했다. 예수는 이 장애물을 무의미하게 만들 수 있는...

예수 어록(248) 요 11:34 그를 어디 두었느냐 [1]

  • 2020-02-04
  • 조회 수 1216

예수 어록(248) 요 11:34 그를 어디 두었느냐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는다.”라는 예수의 말을 들은 마르다는 요 11:27절에서 놀라운 고백을 한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 이 고백은 마 16:16절이 전하는 베드로의 고백과 사실상 똑같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요한복음 기자에게 나사로, 마르다, 마리아 세 남매의 비중이 베드로 못지않게 크다는 의미이다. 마르다는 동생 마리아를 부른다. 예수는 여전히 동구밖에 머물러 계셨다.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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