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일지 1월19일

조회 수 841 추천 수 0 2020.01.20 11:18:46

대구 샘터교회 주간일지

2020119, 주현 후 2

 

1) 아포칼립시스- 오늘 설교 본문에 속한 고전 1:7절에는 특별한 단어가 하나 나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이라는 단어입니다. 나타나심은 헬라어 아포칼립시스라고 설교 시간에 설명했습니다. 아포칼립시스는 계시, 또는 묵시라는 뜻입니다. 단순히 나타난다는 뜻은 아닙니다. KJV은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coming)이라고 번역했고, NIV계시된’(to be revealed)라고 번역했습니다. 루터 성경은 계시’(Offenbarung)이라고 번역했습니다. 우리의 일상 용어라 할 수 있는 나타나심은 예수가 2천 년 전 그 모습 그대로 다시 온다는 뜻으로 오해받을 수 있습니다. 아포칼립시스라는 단어에서 중요한 것은 새로움(novum)입니다. 완전한 새로움이라서 이전 것은 모두 지나갔다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멋지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들도 다 지나갑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이 시작되는 사건입니다. 그런 순간이 언제 어떻게 시작할지, 정말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2) 일정 변경- 주보에 실린 내용 중에서 2020년부터 달라진 일정을 여기서 다시 알려드립니다.

교인 간담회- 석 달에 한 번씩 열리던 교인 간담회가 1월에는 교인총회로, 7월에는 교인 간담회로 두 번 열립니다. 중간에 급히 의논할 일이 생기면 임시 교인 간담회가 열릴 수 있습니다.

운영위원 회의- 매월 마지막 주일에 열리던 운영위원 회의가 첫 주일로 변경되었습니다. 이전까지는 마지막 주일 이전 주일까지 재정 지출을 끝냈는데, 이제는 마지막 주일에도 지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신학공부- 매월 첫 주일 오후 2:00-4:00에 열리던 신학공부 시간이 줄어들어 2:00-3:00에 열립니다. 22일에는 에티엔트 트로크메의 초기 기독교의 형성11바울 후예들의 소생을 공부할 차례입니다. 이런 공부를 통해서 우리는 기독교 신앙 공동체의 뿌리를 깊이 있게 알 수 있습니다.

성가대 연습- 매월 첫 주일과 둘째 주일에 모였던 성가대 연습이 매월 둘째 주일과 넷째 주일로 변경되었습니다. 성가대에 참가하기 원하는 분은 총무 박정연 집사에게 문의하십시오.

 

3) 교회 간판- 일주일 만에 좋다가 말았습니다.” 교회 간판을 떼라는 요구를 건물주에게서 받았다고 운영위원장이 저에게 말씀하시더군요. 교회 간판이 건물주의 안목에 미달했나 봅니다. 오늘 임시 운영위원 회의를 열어서 일단 간판을 떼기로 했다고 합니다. 운영위원들이 다시 준비해서 건물주 마음에 드는 간판을 제작할 것으로 보입니다. 사실 간판이 없어도 기존 신자들에게는 큰 문제가 없습니다. 다만 처음 우리 교회를 찾아오시는 분들이 교회를 찾는 데 어려움이 있습니다. 근처까지 왔다가 교회를 찾을 수 없어서 그냥 돌아가는 일도 있었습니다. 대구 샘터교회는 노숙자 영성으로 살아갑니다. 월세를 내는 지하에서 예배를 드리고, 교단에 가입하지도 않았고, 주일학교와 중고 담당 전담 교역자도 없고, 당회도 없고, 십일조와 각종 감사헌금과 절기 헌금도 없고, ‘경배와 찬양도 없고(아니 아주 드물고), 새벽기도회도 없고, 심방도 없고. 이렇게 없는 거만 많습니다. 그런 데다가 간판도 없네요. 개인이나 교회나 마찬가지인데, 최소한 일용할 양식만 있다면 없는 게 많을수록 더 자유로워진다는 사실을 알만한 분들은 다 알 겁니다. 우리 교회에 처음 나오신 분들은 좀 이상한데, 혹시 이단 아닌가?’ 하고 생각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저는 속으로 우리가 정통인데.’합니다. 곧 떼어낼 간판을 한번 보십시오. 기념으로 사진을 찍어 놓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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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루디아- 오늘 여 교우 모임인 루디아회가 월례회로 모였습니다. 2020년 들어서 첫 번 모임인 탓인지 늦은 오후 5시까지 이야기를 나누더군요. 저는 1층 카페에서 몇몇 교우들과 대화를 하면서 기다리다가 5시 가까이 돼서야 지하로 내려갔습니다. 그때까지 왁자지껄하면서 대화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루디아에 관한 주제만이 아니라 교회 전반에 관해서도 열린 토론이 전개되었나 봅니다. 집으로 오면서 집사람에게 들으니 회원들이 돌아가면서 2020년 기도 제목을 나눴다고 합니다. 어떤 회원은 신경질을 줄이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두 가지 좋은 소식도 들었습니다. 회원 2명이 늘었습니다. *, *옥 회원입니다. 올해 부활절에는 루디아회에서 특별 이벤트가 진행될 예정입니다. 기대되는 그 내용은 당분간 비밀입니다.

 

5) 예배 라이브 방송- 오늘 아프리카 TV로 보내는 예배 라이브 방송 담당 이*희 집사 가족이 예배에 오지 못하는 바람에 이*영 교우가 대신 방송을 맡았습니다. 이 집사가 미리 부탁하면서 방법까지 상세하게 알려줘서 방송에 아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두 사람은 형 동생 하면서 지내는 절친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수고했습니다. 예배 방송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소수지만 있습니다. 특히 병원에 입원해 있는 교우들에게 도움이 됩니다. 대장암 수술을 마치고 오늘 예배에 참석한 김*연 집사도 병원에서 예배 방송을 들어서 좋았다고 합니다. 우리의 작은 일들이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는 데에 좋은 도구가 되기를 바랍니다.

 

6) 앰프- 요즘 스피커 소리가 좋습니다. 앰프 기계는 옛날 거 그대로인데 이렇게 소리가 안정적으로 좋아진 이유가 뭘까요? 일전에 한 번 말씀드렸습니다. 다비안 중의 한 분이 자기가 나가는 교회의 방송 담당 전문가를 데리고 와서 우리 교회 오디오 시스템을 전반적으로 점검해주었습니다. 이제는 파울링도 없고, 소리가 갑자기 작아지거나 찍찍대는 소리도 나지 않습니다. 저도 편안하게 설교할 수 있어서 좋습니다. 사회자 목소리도 전달이 잘 됩니다. 도와주신 박*수 집사에게 다시 감사드립니다.

 

7) 손님- 오늘도 손님으로 방문하신 분들이 계십니다. 손님들은 늘 눈에 뜨이는데, 교회에 정착하는 분들은 많지 않습니다. 어떤 교회인가, 하고 보러 왔다가 별로 마음이 들지 않아서 발길을 끊는가 봅니다. (농담입니다.) 손님으로만 오셔도 좋습니다. 개인적인 일로 대구에 왔다가 예배나 참석해보자 하는 분들도 있겠지요. 한 가족은 예배 후에 그냥 돌아가셨고, 다른 한 가족은 저와 같이 식사를 하고 1층 카페에서 대화를 나누다가 돌아가셨습니다. 이 부부는 대구 어느 교회에 다니는 분들로 우리 교회 예배에 가끔 오십니다. 대구 성서아카데미에 종종 꼭지글이나 대글도 답니다. 그분의 닉네임을 말씀드리면 알만한 분들은 알 겁니다. 저보고 시간 될 때 토요일 오후에 테니스 한 게임 하자고 하시던데, 그런 기회가 왔으면 좋겠습니다. 반가웠습니다.

 

8) 설날- 24()부터 27()까지 설날 연휴입니다. *수 집사가 집으로 돌아가면서 목사님, 오는 주일에는 제가 교회에 나오지 못합니다. 아들 며느리 가족과 함께 괌으로 여행을 갑니다.”라고 하시더군요. 멋진 여행이 되기를 바란다고 대답했습니다. 이번 설날 연휴에 이런 비슷한 계획을 짠 교우들이 있겠지요. *영 교우는 디지털 아트작품 사진을 찍으러 제주도에 간다고 합니다. 한라산에는 눈이 쌓여 있을까요? 우리 가족은 방콕입니다. 나이가 들수록 방콕에 친숙해져야 합니다. 영원히 방콕 해야 할 순간이 가까이 오기 때문입니다. 예배 후 늘 환한 모습의 김 아무개 청년이 목사님, 설날 연휴에도 예배가 있나요?”라고 저에게 묻더군요. 저는 웃으면서 물론이지.”라고 대답했습니다. 식사 친교 시간에 어떤 집사가 다음 주일 예배 후 식사가 있나요?”라고 묻자 봉사부장이 , 그대로 진행됩니다.”라고 대답하시더군요. 설날 연휴, 모두 행복하게 지내십시오. 예배는 있습니다.

 

9) 예배 참석인원: 76/ 헌금: 1,090,000(통장 15만 원 포함)

농협 301-0243-3251-71(대구 샘터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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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어록(247) 요 11:26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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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어록(247) 요 11:26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영원히 죽지 않는다.”라는 말을 실제로 죽지 않는다는 뜻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 문장도 결국은 해석에 달려 있다. 이 문장만이 아니라 성경의 모든 문장은 해석의 과정을 거쳐야만 한다. 성경만이 아니라 모든 텍스트는 해석이 필요하다. 텍스트만이 아니라 그림과 사진과 악보와 기보, 그리고 작은 사물까지 해석을 통해서 그 존재가 드러난다. 여기 마당에 나뒹구는 참나무 낙엽을 보자. 지난여름에 녹색이었던...

예수 어록(246) 요 11:25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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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어록(246) 요 11:25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마르다는 “네 오라비가 다시 살아나리라.”라는 예수의 말을 듣고 “마지막 날 부활 때에는 다시 살아날 줄을 내가 아나이다.”(요 11:24)라고 반응한다. 유대인들에게 부활 신앙은 일반적인 게 아니었다. 사두개인들은 부활을 부정했고, 바리새인들은 인정했다. 행 23:6절에 따르면 산헤드린 공회에서 심문을 받던 바울은 자신이 바리새인과 똑같이 죽은 자의 부활을 희망한다고 말한다. 공회 구성들 사이에 논란이 벌어졌다. 사두개인은 부활도 없고 ...

예수 어록(245) 요 11:23 네 오라비가 다시 살아나리라

  • 2020-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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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어록(245) 요 11:23 네 오라비가 다시 살아나리라 예수는 나사로 세 남매가 사는 베다니 집에 도착했다. 나사로는 이미 죽어서 무덤에 안장된 지 나흘이나 되었다고 한다. 무덤에 안장된 지 나흘이라면 죽은 지는 더 오래되었을 것이다. 장례식이 이미 끝났는지 아닌지는 본문만으로 확인하기 어렵다. 조문객이 많았다는 19절의 설명이 정확하다면 아직 장례가 진행되거나 끝났다고 하더라도 그리 오래되지는 않은 탓에 초상집 특유의 슬픔이 밤안개처럼 집을 가득 채웠을 것이다. 요즘은 가정집에서 장례를 치르는 이들이 ...

예수 어록(244) 요 11:15 믿게 하려 함이라

  • 2020-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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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어록(244) 요 11:15 내가 거기 있지 아니한 것을 너희를 위하여 기뻐하노니 이는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그에게로 가자 복음서는 예수의 일대기를 사실에 근거해서 기록한 문헌이라기보다는 기독교인들이 예수를 바로 “믿게 하려고” 기록한 문헌이다. 예수는 생명을 주는 존재라는 사실을 믿게 하려는 것이다. 나사로가 죽은 지 이미 나흘이나 되었다. 나흘 동안 예수가 그 현장에 없었다는 사실은 여기서 중요하다. 죽은 사람을 살릴 수 있는 예수의 능력이 확증되기 때문이다. 나사로 이야기에서 핵심은 나사로가 ...

예수 어록(243) 요 11:14 나사로가 죽었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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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어록(243) 요 11:14 나사로가 죽었느니라. “나사로는 잠들었다.”라는 예수의 말을 제자들은 실제로 잠들었다는 뜻으로 받아들인 것 같다. 똑같은 말이라도 알아듣는 사람이 있고 거꾸로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예수는 제자들의 오해를 풀어준다. “나사로는 죽었다.” 모든 사람은 죽는다. 언젠가 “정용섭은 죽었다.”는 말을 사람들이 하게 될 것이다. 죽는 방식도 각양각색이다. 노환, 질병, 사고 등으로 죽는다. 똑같은 장소에 있다가도 한 사람은 살고 다른 한 사람은 죽는다. 네팔 안나푸르나 트레킹에 나선 일행 중...

주간일지 1월26일 f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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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샘터교회 주간일지 2020년 1월26일, 주현 후 3주 1) 하나님의 현존- 언제부터인가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라는 예수의 첫 선포가 저의 영혼을 가득 채웠습니다. 예수의 이 메시지가 거짓이 아니라면 지금 우리는 하나님을 이 현실에서 경험할 수 있어야만 합니다. 저 메시지는 ‘하나님의 현존’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은 어느 한 장소에 구체적인 형체를 지니고 존재하지 않기에 하나님의 현존을 느끼기가 간단하지 않습니다. “언어가 나에게 왔다.”라고 말하는 시인들의 언어 경험과 비슷합니다. 우리가 기독교인이 아니...

예수 어록(242) 요 11:11 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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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어록(242) 요 11:11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도다 그러나 내가 깨우러 가노라. 이제 예수는 나사로에 관해서 직접 말한다. 잠든 나사로를 깨우러 가자고 한다. 나사로는 잠든 게 아니라 실제로는 죽었다. 사실은 잠과 죽음은 일상이 무너진다는 점에서 비슷한 생리 현상이다. 어쨌든지 여기서 그를 깨운다는 말은 살린다는 뜻이다. 그렇다. 예수는 우리를 깨우고 살리는 자다. 예수의 공생애 마지막 대목에서 예수는 세 명의 제자, 즉 베드로와 안드레와 야고보를 데리고 겟세마네 동산에 올라갔다. 예수는 그들에게 “내 ...

예수 어록(241) 요 11:10 실족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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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어록(241) 요 11:10 밤에 다니면 빛이 그 사람 안에 없는 고로 실족하느니라. 실족은 발을 잘못 딛는다는 뜻이다. 실족은 실족으로 끝나지 않고 큰 사고로 이어지는 경우도 종종 있다. 등산 중에 실족하여 중상을 입거나 심지어는 추락사하는 일도 있다. 젊었을 때는 실족하지 않을 상황에서도 늙으면 쉽게 실족한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잠시 하겠다. 별로 실감하지 못하다간 최근에는 나이가 들었다는 사실을 더 실감하게 되었다. 집안에서 문이나 벽에 살짝 부딪혀도 몸이 크게 충격을 받는다. 발을 조금 잘못 디뎌서 중심을...

예수 어록(240) 요 11:9 낮이 열두 시간이 아니냐 [4]

  • 2020-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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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어록(240) 요 11:9 낮이 열두 시간이 아니냐 사람이 낮에 다니면 이 세상의 빛을 보므로 실족하지 아니하고 유대로 다시 가겠다는 예수의 발언을 들은 제자들이 그 위험성을 지적하자 예수는 “낮이 열두 시간이 아니냐.”라는 문장으로 대답했다. 낮이 늘 열두 시간은 아니다. 동지 때는 열 시간이 안 될 수도 있고, 하지 때는 열네 시간이 더 될 때도 있다. 대략 낮과 밤은 반으로 나뉜다. 여기서 낮은 하나님의 빛 안에서 살아간다는 사실에 대한 종교적 메타포다. 빛은 생명의 근원이다. 빛이 있을 때는 길을 잃지 않는다. ...

예수 어록(239) 요 11:7 유대로 다시 가자.

  • 2020-01-22
  • 조회 수 1529

예수 어록(239) 요 11:7 유대로 다시 가자. 예수는 나사로가 병들었다는 소식을 들은 뒤에 이틀 더 그 자리에 머물렀다. 예수가 일부러 시간을 지체했는지, 또는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특별한 사정이 있었는지는 우리가 모른다.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다. 예수는 이제 제자들에게 “유대로 다시 가자.”라고 말씀하신다. 유대는 예루살렘 인근을 가리킨다. 그 지역에 나사로 남매가 사는 베다니가 있다. 지금 예수의 제자들이 머무는 곳은 요단강 동쪽이다. 요 10:40절에 따르면 예수와 제자들은 유대인들을 피해서 “요단강 저...

예수 어록(238) 요 11:4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 2020-01-21
  • 조회 수 1561

11장 예수 어록(238) 요 11:4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이 이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 10장을 끝으로 긴 연설 방식의 예수 발언은 끝나고 11장부터 다시 서사가 시작된다. 긴 연설은 14-17장에 다시 나온다. 이 대목에서 17장은 죽음을 앞둔 예수의 기도다. 18장부터 21장까지는 공관복음서와 비슷한 구도로 예수의 수난 전승이 나온다. 이 수난 전승 외에는 요한복음과 공관복음은 여러 가지 점에서 크게 다르다. 11장에는 죽을병에 걸렸다가 다시 살아난 나사로 이야기가,...

주간일지 1월19일 file

  • 2020-01-20
  • 조회 수 841

대구 샘터교회 주간일지 2020년 1월19일, 주현 후 2주 1) 아포칼립시스- 오늘 설교 본문에 속한 고전 1:7절에는 특별한 단어가 하나 나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이라는 단어입니다. 이 ‘나타나심’은 헬라어 ‘아포칼립시스’라고 설교 시간에 설명했습니다. 아포칼립시스는 계시, 또는 묵시라는 뜻입니다. 단순히 나타난다는 뜻은 아닙니다. KJV은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coming)이라고 번역했고, NIV는 ‘계시된’(to be revealed)라고 번역했습니다. 루터 성경은 ‘계시’(Offenbarung)이라고 번역했습니다. 우리의 일상 용...

예수 어록(237) 요 10:38 나를 믿지 아니할지라도 그 일은 믿으라

  • 2020-01-18
  • 조회 수 1048

예수 어록(237) 요 10:38 내가 행하거든 나를 믿지 아니할지라도 그 일은 믿으라 그러면 너희가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음을 깨달아 알리라. 예수는 대담한 발언을 계속한다. 마음에 들지 않아서 예수 당신을 믿지 못하더라도 예수에게 나타나는 일은 믿으라고 말이다. 자신이 하나님의 일에 전적으로 의존해있지 않으면 나올 수 없는 발언이다. 예수의 행위에 나타나는 모든 일은 예수가 하나님 아버지와 하나를 이룬다는 증거다. 그 일은 창조주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이다. 즉 사람을 살리는 일이다. 예수...

예수 어록(236) 요 10:37 만일 내가 내 아버지의 일을 행하지 아니하거든

  • 2020-01-17
  • 조회 수 1089

예수 어록(236) 요 10:37 만일 내가 내 아버지의 일을 행하지 아니하거든 나를 믿지 말려니와 … 예수는 일관되게 자기의 행위, 즉 자기에게 나타난 하나님의 일을 근거로 해서 자기의 정당성을 주장한다. 예수의 행위는 성경을 바르게 가르치고, 병든 사람과 장애인을 고치고, 가난한 사람에게 복음을 전파한 것이다. 한 마디로 사람을 살리는 일이었다. 사람을 살리는 일은 곧 하나님의 일이다. 그 사실은 유대인들도 다 안다. 그 사실만으로는 예수를 비난할 수 없었기에 신성모독을 끄집어낸 것이다. 그들은 원래 삐딱한 사람들...

예수 어록(235) 요 10:36 너희가 어찌 신성모독이라 하느냐

  • 2020-01-16
  • 조회 수 1010

예수 어록(235) 요 10:36 하물며 아버지께서 거룩하게 하사 세상에 보내신 자가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는 것으로 너희가 어찌 신성모독이라 하느냐 앞에서도 말했듯이 예수는 “나는 하나님이다.”라고 말한 적이 없다. “나와 아버지는 하나다.”라고 말하거나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다.”라고 말했을 뿐이다. 이런 표현도 듣기에 따라서 신성모독으로 비치겠지만 예수는 그럴 의도가 전혀 없었다. 두 표현 모두 예수가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전하고 하나님의 선한 일을 행한다는 의미이다. 예수가 신성을 모독했다는 유대인들의 ...

예수 어록(234) 요 10:35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을 신이라

  • 2020-01-15
  • 조회 수 1714

예수 어록(234) 요 10:35 성경은 폐하지 못하나니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을 신이라 하셨거든 … 예수는 “당신은 자칭 하나님이라고 주장한다.”라는 유대인들의 오해를 풀기 위해서 35절에서 부연하여 설명한다. 그 설명의 근거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사람이 실제로 신이 될 수 있다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신성에 가까이 간다는 뜻이다. 이게 이상한 주장이 아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존재하시고, 말씀을 통해서 사람을 만나신다. 하나님은 태초에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셨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

예수 어록(233) 요 10:34 내가 너희를 신이라 하였노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 2020-01-14
  • 조회 수 1151

예수 어록(233) 요 10:34 너희 율법에 기록된 바 내가 너희를 신이라 하였노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유대인들도 예수의 행위가 선하다는 사실은 인정한다. 예수의 행위가 아니라 ‘신성모독’을 문제로 삼은 것이다. 33절은 유대인들의 비난을 이렇게 전한다. “네가 사람이 되어 자칭 하나님이라 함이로다.” 예수는 자칭 하나님이라고 발언한 적이 없다. 하나님은 세상에 실제 인간으로 나타날 수 없다. 하나님을 본 자는 죽는다는 말이 이를 의미한다. 하나님을 대신하여 세상에 신적인 능력인 구원을 보이는 존재는 메시야, 또는 인...

주간일지 2020년 1월12일

  • 2020-01-13
  • 조회 수 1171

대구 샘터교회 주간일지 2020년 1월12일, 주현 후 1주 1) 상한 갈대- 설교를 듣는 사람보다 설교하는 사람이 성경 본문에서 더 크게 감동하는 때도 있습니다. 이번 성경 본문이 그랬습니다. 상한 갈대를 꺾지 않고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않는다는 이사야 선지자의 말씀이 왜 이리 오래 저의 영혼을 그 중심에서 위로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이 말씀대로 살아야겠다는 결단도 더 단단해졌습니다. 설교의 결론은, 너무 뻔하게 들릴지 모르겠으나, 상한 갈대나 꺼져가는 등불이 될까 미리 걱정하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미리 걱정하지 ...

예수 어록(232) 요 10:32 그 중에 어떤 일로 나를 돌로 치려 하느냐.

  • 2020-01-11
  • 조회 수 1065

예수 어록(232) 요 10:32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여러 가지 선한 일로 너희에게 보였거늘 그 중에 어떤 일로 나를 돌로 치려 하느냐. 자신이 하나님과 하나라는 예수의 발언은 거기 모였던 이들을 발칵 뒤집었다. 그럴만하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지극히 존엄한 존재로 여기기에 하나님의 이름을 대놓고 부르지도 않았다. 야훼(여호와)라거나 엘로힘(하나님), 또는 아도나이(주)나 엘 샤다이(만군의 주)도 하나님을 직접 호명하는 게 아니다. 거룩하신 분, 세상을 창조하신 분, 스스로 존재하는 분이라는 표현만이 가능하다. 예수...

예수 어록(231) 요 10:30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 2020-01-10
  • 조회 수 1143

예수 어록(231) 요 10:30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드디어 가장 위험한 발언이 나왔다.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이게 예수의 실제 발언인지는 확신이 서지 않는다. 요한복음 공동체의 신앙고백이라고 봐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이 문제는 아무도 단정적으로 말할 수는 없다. 예수가 실제 이런 자구로 말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이런 발언으로 받아들여도 좋을 만한 생각은 했을 것이다. 그 의미는 다음과 같다. 예수는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사실을 영혼 전체로 느끼고 있었다.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말은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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