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설교문

조회 수 7163 추천 수 0 2019.12.31 17:00:29

대구 인권위, 에큐메니컬 주관 가난한 사람들이 드리는 기도와 인권상 시상식설교

20191230일 오후 6:00, 대한성공회 서대구교회 애은성당

 

제목: 복 있는 자와 화 있는 자

(6:20-26)

 

누가복음 기자는 마태복음의 팔복”(5:1-12)과는 약간 다른 방식으로 가난과 복의 관계를(6:20-26) 전한다. 마태복음의 심령이 가난한 자라는 표현보다는 누가복음의 가난한 자라는 표현이 훨씬 강력한 표현이다. 오늘 한국교회는 성경 문자주의에 사로잡혀 있으면서도 오늘 본문만은 눈에 들어오지 않은 척 외면한다. 이 본문이 불편한 진실을 말하기 때문이다. 성경 해석에 관해서 일관성을 유지하지 못하는 한국교회는 비겁하다. 이 말씀이 옳다면 부자 교회는 화를 당하고 가난한 교회는 복이 임할 것이다. 오늘 우리는 교회에서 가난한 자는 하나님 나라를 얻을 것이기에 행복한 사람입니다.”라고 용감하게 전할 수 있을까? 이 말씀에 근거가 있을까?

21세기 천박한 자본주의 체제 아래서 가난한 사람은 죄인이고, 버림받은 사람들이다. 구제의 대상은 되지만 행복의 주체는 되지 못한다.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는 말씀이 대개는 공허하게 들리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본문을 우리가 하나님의 살아있는 말씀으로 믿는다면 가난한 자들에게 하나님이 어떻게 경험되는지를 살펴서 전해야 한다. 나는 여기서 두 가지 관점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실천의 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영성의 문제다.

우선 실천 문제다. 가난한 자는 물질로 인해서 인간의 품위를 잃는다. 우리가 현실에서 경험하는 세상은 이런 방식으로 작동하다. 이들이 인간으로서의 품위를 찾을 수 있도록 우리는 저항하고 연대해야 한다. 인간으로 태어났다면 최소한 생존에 필요한 것들은 공급받아야 하지 않겠는가. 대한민국은 이미 절대 빈곤을 벗어났다. 마음만 먹으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사람들이 인간의 품위를 회복할 수 있는 물적인 토대가 갖춰졌다. 문제는 일종의 막장 유사 종교로 나타나는 자본주의에 묶여 있다는 데에 있다. 자본주의는 구약 선지자들이 줄곧 경계했던 바알숭배와 동일한 개념이다. 대한민국교회가 선지자들의 전통을 이어받는다고 말만 하지 자본주의라는 귀신 앞에서 꼼짝 못 하고 있다. 예수의 축귀 능력이 절실히 필요한 시대다. 우리가 저항하고 연대한다고 해서 이런 문제가 일시에 해결되지 않겠으나 그 길이 최선이니 믿고그 길을 가야 한다. 그런 삶의 태도야말로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실제로 믿는 사람의 태도가 아니겠는가.

다른 하나는 영성 문제다. 이게 사실은 더 중요하다. 가난 영성이 갖춰져야만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구도정진의 태도로 저항하고 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는 말은 하나님 외에는 기댈 곳이 없는 사람만이 하나님을 찾는다는 뜻이다. 거꾸로 부자들은 이미 위로를 받았기에 화가 미칠 것이다. 기댈 곳이 많은 사람은 하나님을 찾지 않기에 자신이 기대던 대상과 더불어서 허무에 떨어진다는 뜻이다. 한국의 부자 교회가 겉으로는 하나님을 찾는 것처럼 보이니 실제로는 하나님에게 관심이 없다는 사실은 우리가 다 안다. 하나님 이름으로 세속적인 욕망을 실현하고 있을 뿐이다. 어느 신학자의 말처럼 기독교인은 세례 받은 이방인으로 산다.”라고 볼 수 있다. 형식적으로는 기독교인이나 실제 삶에는 세속 이념에 떨어진 이방인이다.

하나님밖에는 기댈 곳이 없는 사람이 행복하다는 말이 설득력이 있으려면 가난하기에 오히려 삶(생명)을 풍성하게 누린다는 사실을 경험할 수 있어야 한다. 이렇게 생각해보자. 돈이 많아야만 누릴 수 있는 삶과 가난해도 누릴 수 있는 삶을 살펴보자. 돈이 많아야만 누릴 수 있는 삶은 큰 집, 해외여행, 돈을 보고 모여드는 친구들, 호텔 뷔페 등등이다. 가난해도 누릴 수 있는 삶은 하늘을 나는 새 바라보기, 자유롭게 걷기, 어린아이 웃음소리에 귀 기울이기, 성경 읽기, 외로운 사람의 친구 되어주기 등등,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여기서 정말 중요한 사실은 가난해도 누릴 수 있는 삶이 실제로 참된 삶이라는 것이다.

가난 영성을 말하는 당신은 실제로 지금 가난한 자가 되고 싶냐, 하고 물을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나는 영성이 부족하여 자발적인 가난을 택하지는 못한다. 가난하여 불편한 것들에서 놓여나지 못했다. 이 지긋지긋한 자본주의라는 귀신에서 놓임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가난하게 될까 미리 걱정하지 않는다. 그런 순간이 온다고 해도, 아니 그런 순간이 와야만 눈에 보이는 삶이 전개되리라는 사실을 알고 희망하기 때문이다.

지금 여기서 부자로 사는 사람이나 가난하게 사는 사람이나 언젠가는 모두 가난한 자가 된다. 모든 소유가 박탈당하는 죽음의 순간이 바로 그때다. 그 시간이 그리 많이 남지 않았다. 그 순간이 오면 부자들에게는 화가 임할 것이다. 아니 이미 화가 임했다. 부의 운명에 떨어지기 때문이다. 가난한 자들은 그 순간을 이미 경험했으므로 복이 있을 것이다. 아니 이미 복이 임했다. 하나님을 절실하게 찾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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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예식 기도문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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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18일(금) *내일 대구샘터교회 남청년이 구미에서 결혼한다. 신부가 경북 구미에 살기 때문이다. 관례대로 신부측 교회의 담임 목사님이 주례를 감당하시고, 나는 기도를 맡았다. <매일 기도하라>에 이미 쓴 결혼 기도문을 기초로 해서 다시 살을 붙였다. 혹시 결혼예식에 기도할 기회가 있는 분은 내 허락을 미리 받지 않아도 이 기도문을 사용하실 수 있다. 오석원, 윤성희 결혼예식 기도 주님, 꽃처럼 아름다운 신부 윤성희 자매와 늘 푸른 나무처럼 듬직한 신랑 오석원 형제가 지금 여기 부부가 되기 위해서 하나님과 많은 증인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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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16일 오순절 마가 다락방 어제 성령강림절 설교 본문은 행 2:1절 이하에 나오는 오순절 마가 다락방 이야기였다. 바람, 불, 방언 현상에 대한 설명은 간단하나마 설교 시간에 했으니, 오늘은 다른 이야기를 하자. 120명이 오순절에 마가의 다락방에 모였다는 말은 100% 정확한 거는 아니다. 120명은 행 1:15절에 근거한 것이고, 마가의 다락방은 행 1:13절과 행 12:12절에 근거한 것이다. 마가의 다락방이 아무리 커도 120명이 들어가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당시에 교회에 모이는 숫자는 들쑥날쑥하지 않았겠는가. 장소도 경우...

예수 그리스도 (막 1:1), 3월21일 [5]

  • 2006-03-21
  • 조회 수 10608

2006년 3월21일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막 1:1)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본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표현이 어떤 사본에는 생략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루터는 1절 말씀을 이렇게 번역했군요. “이 책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복음의 시작입니다.” 이렇게 사본에 따라서 성서의 내용이 아주 일부분이기는 하지만 들쑥날쑥 한다는 사실에 대해서, 현재 발견된 수천 개에 이르는 사본 중에서 동일한 게 전혀 없다는 사실에 대해서 오늘 우리가 자세하게 언급할 필요는 없겠지요. 다만 누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막1:1), 3월22일 [2]

  • 2006-03-22
  • 조회 수 10569

2006년 3월22일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막 1:1)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신약성서의 앞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네 복음서는 예수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부분적으로 예수님의 출생설화와 열두 살 때의 에피소드가 나오기는 하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예수님이 출가한 후 갈릴리에서 사마리아를 거쳐 예루살렘에 이르러 체포당하고 십자가 처형을 당한, 소위 공생애가 핵심입니다. 그 기간은 짧게 잡으면 1년여, 길게 잡으면 2년여가 됩니다. 다른 종교창시자나 성인들과 비교할 때 전체 삶도 짧았을 뿐만 아니라 활동...

원당일기(70)- 창 file

  • 2020-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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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책상 앞에 앉아서 보냅니다. 건강에는 나쁘지요. 그래서 생각날 때마다 스트레칭을 합니다. 책상이 창 바로 옆에 놓여 있어서 창을 바라보는 시간도 상당히 깁니다. 제 방의 창이 마음에 듭니다. 오늘 하루 종일 설교 준비하다가 오후에 찍은 사진인데, 한번 보세요. 의자에 앉아 눈에 들어오는대로 그대로 찍은 탓에 네모 반듯하게 나오지 않았네요. 오른쪽으로 치우친 사진입니다. 밖이 밝으니 창틀이 어둡게 나왔습니다. 창 자체가 마음에 든다기보다는 창을 통해서 보는 밖을 좋아하는 거겠지요. ...

6월23일 발먼지를 털어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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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6월23일 발먼지를 털어내라. 어느 곳에서든지 너희를 영접하지 아니하고 너희 말을 듣지도 아니하거든 거기서 나갈 때에 발아래 먼지를 떨어버려 그들에게 증거를 삼으라 하시니(막 6:11) 제자들이 지켜야 할 또 하나의 규칙은 사람들에게 거부당했을 때 발먼지를 털어내는 것이었습니다. 도대체 발먼지를 어떻게 털어내라는 것일까요? 발을 땅바닥에 대고 쾅쾅 울리라는 것인지, 아니면 발을 들고 신발에 묻는 먼지를 손으로라도 털어내라는 것인지, 무엇일까요? 이것은 그 당시의 일반적인 습관, 또는 격언이었던 것 같습니다. 우...

교회 일꾼들을 위한 기도, 11월20일(화)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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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교회 공동체를 위해서 최선으로 수고와 봉사를 아끼지 않는 일꾼들을 위해서 기도드립니다. 그들은 마지막 때에 당신께서 부르신 일꾼들입니다. 청지기들입니다. 당신의 부르심을 허투루 듣지 않고 영혼을 기울여 순종하는 이들입니다. 그들의 수고와 희생이 있었기에 교회 공동체가 살아 움직일 수 있습니다. 그들의 땀은 바로 하나님의 땀입니다. 주님, 교회 일꾼들은 오직 당신만을 바라보며 살지만 다른 한편으로 사람들과 어울리기에 인간적인 갈등을 겪지 않을 수 없습니다. 때로는 사람들의 오해와 시기심으로 인해서 ...

선지자 이사야, 3월26일 [1]

  • 2006-03-26
  • 조회 수 9617

2006년 3월26일 선지자 이사야의 글에,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그가 네 길을 준비하리라. (막 1:2) <선지자 이사야> 요즘 논문을 쓰는 사람들이 각주를 달듯이 마가는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인용합니다. 왜 그랬을까요? 마가의 속을 내가 뚫어볼 수는 없지만, 아마 자신의 글을 읽어야 할 독자들이 바로 이사야 선지자에 관해서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선지자들만큼 중요한 역할을 한 집단은 없습니다. 물론 이스라엘 사람들의 삶에 직접적으로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이들은 왕이며, 종교적인...

복음 (2), 3월24일 [4]

  • 2006-03-24
  • 조회 수 9613

2006년 3월24일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막 1:1) <복음 2> 마가복음 기자가 전하는 복음(福音, 유앙겔리온)이라는 단어는 복된 소식, 기쁜 소식이라는 뜻입니다. 유대인들의 역사를 배경으로 기록된 구약성서에서 볼 때 가장 큰 기쁜 소식은 출애굽과 바벨론포로 귀환입니다. 먹고살기 힘들어 이집트 땅으로 이민 갔던 이스라엘 민족이 그곳에서 소수민족으로 당해야만 했을 고난, 그리고 전쟁에서 패배하여 인질로 잡혀갔던 바벨론 제국에서 당해야만 했을 모욕이 그들에게 얼마나 견디기 힘든 것이었는지는 긴...

선지자 이사야의 글, 3월27일 [12] [1]

  • 2006-03-27
  • 조회 수 9544

2006년 3월27일 선지자 이사야의 글에,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그가 네 길을 준비하리라. (막 1:2) 선지자 이사야의 글 마가는 지금 이사야의 글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마가가 인용하고 있는 글은 분명히 이사야에 의해서 작성된 것이지만 우리는 그것을 곧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입니다. 마가도 역시 우리와 마찬가지로 이사야의 글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우리는 여기서 매우 곤란한 문제에 봉착합니다. 성서 기자들의 글을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생각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이 바로 그 문제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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