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일지 9월20일

조회 수 1329 추천 수 0 2020.09.21 21:23:49

대구 샘터교회 주간일지

2020920, 창조절 3

 

1) 부르주아 오늘(920) 설교 중에 부르주아라는 단어가 나왔습니다. 오랜만에 들은 단어일 겁니다. 유산자 계급을 가리키는 단어인데, 일반적으로는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됩니다. 제 말은 교회가 중산층 이상의 기득권 계급에 호응할 때 부르주아 성격을 띤다는 뜻이었습니다. 낱말 뜻으로만 본다면 물론 나쁜 의미는 아닙니다. 정신적인 부분만이 아니라 물질적으로도 풍요롭게 살려는 건 인간의 자연스러운 갈망입니다. 예수 믿고 잘살게 되었다는 말을 종종 듣기도 합니다. 제가 예로 들었는데, 서울의 강남에 있는 중대형 교회 신자들은 중산층 이상입니다. 그 지역에 기독교인의 비율이 다른 지역보다 훨씬 높습니다. 대략 30%는 기독교인입니다. 국회의원 중에도 기독교인의 숫자가 다른 종교에 비해서 큽니다. 착한지 아닌지, 인격적인지 아닌지를 접어두고 일단 기득권 세력이기에 status quo, 현실 유지경향이 아주 강합니다. 이런 태도가 바로 부르주아의 속성입니다. 이런 이들에게는 믿음과 더불어서 고난도 받는다.”라는 바울의 발언이 불편하게 들린다고 설교에 말했습니다. 복음의 본질에서 멀어진다는 증거입니다. 이렇게 설교하는 저도 사실은 부르주아 계급에 속합니다. 지식인의 전형적인 변명처럼 들리겠으나, 다만 거기에 어떤 문제가 있다는 사실만은 분명하게 인식하고 살아갈 뿐입니다. 바울에게는 미안한 마음으로!

 

2) 중보기도- 오늘 주보에 중보기도 제목이 아래처럼 실렸습니다. 기독교인으로 살아가는 데에 중보기도는 필수항목입니다. 우리의 중보기도가 얼마나 효과가 있겠냐, 하는 회의가 들을 수는 있겠으나 기독교인은 그런 효과에 대해서 아예 질문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한계를 넘어서는 문제는 하나님께 맡기고 신앙의 선배들이 옳다고 확신하여 간 그 길을 따라갈 뿐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는다면 중보기도는 우리 모두를 살리는 가장 중요한 종교의식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1) 코로나19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치료받는 이들

2) 환자 치료에 헌신하는 의료진들

3) 방역 정책을 세우고 실행하는 공무원들

4) 생업에 타격을 입은 소상공인들과 자영업자들

5) 구조조정으로 일자리를 잃은 이들

6) 교회 활동의 제약으로 어려움을 겪는 작은 교회

7) 요양원이나 정신병원에 격리된 노약자들

8) 비대면의 일상화로 인해서 심리적인 불안감에 떨어진 이들

3) 꽃꽂이- 코로나19 방역 2단계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코로나바이러스 문제가 1, 2년 안에 완전히 해결되기는 힘들겠으나 단계만이라도 1로 떨어졌으면 합니다. 대구 지역은 1로 낮춰도 충분해 보이는데, 방역 당국은 여러 가지를 고려하여 수도권이나 비수도권을 똑같이 2단계로 유지하나 봅니다. 현재 단계에서는 교회의 소모임이 안 되고, 50명 이상 실내 모임도 안 되고, 50명 이내라고 하더라도 1평당 1명씩만 모일 수 있습니다. 마스크도 계속 착용해야 합니다. 우리도 이렇게 모이다 보니 예배 분위기가 썰렁합니다. 설교단에 꽃이 올라와서 그나마 썰렁한 분위기를 조금 보충해주는 것 같습니다. 유튜브 예배 방송에서 캡처한 꽃 사진을 올립니다. 소박하게 보이지만, 찬찬히 뜯어보면 모양과 색깔이 찬란합니다. 우주가 저기에 담겨 있다고 해도 과장이 아닙니다. 코로나 비상시국에 매주 봉사의 손길로 수고하는 고*선 집사에게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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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설교단 마이크- 이왕 설교단 이야기가 나와서 조금 더 보충합니다. 일반 신자들은 별다른 느낌이 없겠지만 설교단 앞에 자주 서는 저에게는 특별한 느낌으로 다가오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게 다 재미있는 일입니다. 오늘 설교 중에 스피커 소리가 약간 작게 들렸나 봅니다. 몇몇 분들이 그렇게 말씀하시더군요. 다른 분에게 물어보자 괜찮았다고 하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성경을 읽은 신*혜 집사 목소리는 쩌렁쩌렁해서 아무 문제가 없었어요. 저는 신 집사에 비해서 성량이 반밖에 안 되니까 입을 마이크에 가까이 대고 설교해야 합니다. 그런 부분에서는 제가 무신경합니다. 일상에서 하는 말의 톤과 설교에의 말에 아무 차이가 없습니다. 앞으로 잘 들리도록 신경 써 보겠습니다. 앉은 자리에 따라서 소리 전달이 다르다는 점도 한 요인일 겁니다. 스피커가 앞쪽에 두 대만 있습니다. 소리가 아주 크게, 그리고 또렷하게 나지 않으면 사각지대에 앉은 분들은 소리가 작게 들립니다. 설교자의 왼편에 달린 등을 보시는지요. 강단 장식을 겸해서 달아놓은 건데, 설교단에 가까이 갈 때 자칫하면 머리에 부딪힙니다. 제가 매번 설교단을 조금씩 움직여서 부딪히지 않게 하기는 하는데, 별로 깔끔하지가 않더군요. 예배당의 천장이 낮아서 저런 등이 어울리지 않는다는 걸 제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5) 창고- 오늘도 역시 교회당에 들어서자 몇몇 교우들이 예배 준비로 분주하더군요. 누가 일일이 말하지 않아도 각각 알아서 처리합니다. 우리 교회 예배당에는 창고가 두 개입니다. 알고 계셨는지요. 한 개는 지하 철문을 열고 들어가서 계단을 내려가는 즉시 오른편에 있습니다. 아주 작은 창고입니다. 창고랄 것도 없어 보이긴 합니다. 층계 아래 공간입니다. 전깃불이 없어서 어둡습니다. 거기에 주로 청소 물품을 보관합니다. 몇 주 전에 포도주병이 터져서 바닥에 축축했습니다. 오늘은 은 집사가 작심하고 그곳을 깨끗하게 청소했습니다. 다음 주에 가면 완전히 말라 있겠지요. 다른 한 개는 예배실 뒤편에 있습니다. 그 창고는 건물주가 주로 사용하는 공간입니다만 우리도 큰 물품을 그곳에 놓습니다. 아주 넓은 창고입니다. 몇 주 전에 배관이 터진 탓인지 물이 많이 고였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오늘 보니 깨끗하게 정리되었더군요. 그 창고는 예배실의 공기 통로입니다. 주일 오전에 환풍기를 틀면 공기가 그곳을 통해서 빠져나갑니다. 우리가 쾌적하게 예배를 드리는 데에 없어서는 안 될 공간이지요. 이제 해결되었으니, 됐습니다. 모두 수고했습니다. 그리고 예배실의 공기가 빠져나가는 또 다른 통로가 있는데, 혹시 아시는지요? 비밀 통로입니다.

 

6) 서울 샘터교회- 대구 샘터교회의 자매 교회인 서울 샘터교회는 지금 대면 예배를 전혀 드리지 못하고 온라인으로만 예배를 드립니다. 원래는 약간 무리해서라도 8월 마지막 주일부터 대면 예배를 시작하려고 했으나 재확산으로 그것도 접었습니다. 8월 재정보고가 홈페이지에 실렸습니다. 캡처한 화면을 여기에 올립니다. 당분간 월 1백만 원씩 구제 선교비로 나간다고 하는군요. 수고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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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이모저모- *주 집사가 허리 디스크 수술 후 처음 현장예배에 참석했습니다. 코로나19 재확산 바로 전 주일에 오고 싶어 했었습니다. *경 장로는 이십일 가까이 족저근막염으로 고생하셨다고 합니다. 지금은 많이 좋아졌습니다. 합천의 두 김 집사 부부도 한 달 만에 예배에 참석했습니다. 현장에 오니 온라인예배와 느낌이 완전히 달랐다고 말하는군요. 그렇겠지요. 9월 예배 담당은 나눔선교부장 박*현 권사입니다. 주일 아침 일찍 교회에 나와서 예배 진행에 필요한 일들을 점검합니다. 예배가 진행되는 동안에도 친교실에 머물면서 필요한 업무를 처리합니다. 오늘 제 체온도 쟀습니다. 36.4도이던가요. 박 권사는 우리 교회 여자 교인 중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쪽에 속합니다. 그 또래가 몇 분 계십니다. 저와 나이가 비슷하지요. 광고 시간에 찬송가 349장을 악보대로 불러야 한다고 제가 말했습니다. 제 찬송가 악보와 교인들이 부르는 찬송가의 악보에 차이가 있었나 봅니다. 집에 와서 확인해보니 제 찬송가의 악보가 잘못된 겁니다. 이런 일이 어떻게 벌어질 수 있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군요. 캡처했으니 한번 확인해보세요. 위의 악보가 제 찬송가입니다. 9월 하순입니다. 어려운 일도 없지 않겠으나, 다시 없을 이 계절을 기쁨 충만하게 보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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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헌금: 93주차(920) 2,010,000(오프 410,000/ 1,600,000/ 등록 교인 외- *)

농협 301-0243-3251-71(대구 샘터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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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85 22:2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열매를 맺되 달마다 그 열매를 맺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치료하기 위하여 있더라 생명 나무가 하나의 품종인지, 아니면 서로 다른 열매를 맺는 나무를 포괄하는 이름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열두 가지 열매를 맺는다고 합니다. 우리는 그곳에서 생명 나무 열매를 먹고 살겠지요. 매력적입니다. 과일만으로도 영양 공급이 충분할 테니까 말입니다. 육식을 즐기는 분들은 에덴동산도 그렇고 여기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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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84 22:1 또 그가 수정 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와서 우리는 이제 요한계시록 마지막 22장까지 왔습니다. 22장에서도 요한은 일곱 천사 중의 한 천사를 통해서 묵시적 환상을 경험합니다. 생명수의 강은 창 2:10-14절 내용과 연결됩니다. 창세기가 전하는 에덴동산에는 생명 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만이 아니라 여러 줄기의 강이 나옵니다. 첫째 줄기의 강은 비손이고, 둘째는 기혼이며, 셋째는 힛데겔이고, 넷째는 유브라데입니다. 창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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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82 21:26 사람들이 만국의 영광과 존귀를 가지고 그리로 들어가겠고 26절은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에서 모든 사람이 영광스럽고 존귀한 존재가 된다는 뜻이겠지요. 영광(δόξα, glory)은 요한계시록에 흔하게 나오는 단어입니다. 요한계시록만이 아니라 성경 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가리켜서 영광이라고 말합니다. 사람에게는 붙일 수 없는 개념입니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은 완전히 변화된 세상이라서 사람도 영광스러운 존재가 됩니다. 영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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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81 21:25 낮에 성문들을 도무지 닫지 아니하리니 거기에는 밤이 없음이라 25절 문장이 약간 이상합니다. 거룩한 성에는 밤이 없어서 낮에 성문을 닫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성문은 보통 밤에 닫지 않습니까. 낮에는 원래 열어두는 거고요. 밤에도 성문을 잠그지 않는다고 해야 자연스러운 표현인데, 위 구절은 자연스러운 문장이 아닙니다. 아예 문이 필요 없겠지요. 그래서 <새번역> 성경은 “그 도성에는 밤이 없으므로, 온종일 대문을 닫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번역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려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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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78 21:22 성 안에서 내가 성전을 보지 못하였으니 이는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 양이 그 성전이심이라 22절에는 아주 특별한 내용이 나옵니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에 성전이 없다는 겁니다. 성전 하나쯤 있어야 거룩한 성이 빛나 보일 텐데 말입니다. 예루살렘이 하나님의 도성이라 할 수 있는 이유도 거기에 성전이 있기 때문이 아닙니까. 종교 건물이 없는 곳을 거룩하다고 이름 붙일 수는 없는 법이지요. 그러나 요한이 본 거룩한 성은 그것 자체로 완벽하기에 성전은 없어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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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77 21:21 그 열두 문은 열두 진주니 각 문마다 한 개의 진주로 되어 있고 성의 길은 맑은 유리 같은 정금이더라 12절에서 언급된 열두 문이 21절에서 다시 소개됩니다. 각각의 문마다 한 개의 진주로 되어있습니다. 진주 한 알이 박혀 있다는 뜻인지 아니면 문 전체가 진주로 되어있다는 것인지 분명하지는 않습니다. 문을 만들만한 크기의 진주는 세상에 없습니다. 문이 진주 모양을 했다는 뜻인가요? 그냥 편하게 진주로 된 문이라고 생각하면 되겠지요. 문에 이어지는 길이 나옵니다. 길은 ‘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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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76 21:20 다섯째는 홍바노요 여섯째는 홍보석이요 일곱째는 황옥이요 여덟째는 녹옥이요 아홉째는 담황옥이요 열째는 비취옥이요 열한째는 청옥이요 열두째는 자수정이라 다섯째부터 열두째까지 당시의 모든 보석이 열거됩니다. <새번역> 성경으로 다시 읽어보겠습니다. “다섯째는 홍마노요, 여섯째는 홍옥수요, 일곱째는 황보석이요, 여덟째는 녹주석이요, 아홉째는 황옥이요, 열째는 녹옥수요, 열한째는 청옥이요, 열두째는 자수정이었습니다.” 이름만 들어도 눈이 휘둥그레지는 보석들이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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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75 21:19 그 성의 성곽의 기초석은 각색 보석으로 꾸몄는데 첫째 기초석은 벽옥이요 둘째는 남보석이요 셋째는 옥수요 넷째는 녹보석이요 열두 사도의 이름이 각각 기록된 열두 기초석도 보석으로 꾸며졌다고 합니다. 19절에는 네 가지가 나옵니다. 벽옥, 남보석(사파이어), 옥수, 녹보석(비취옥)입니다. 옥수(玉髓)는 낯선 단어인데, 보석의 일종으로 보면 됩니다. 정말 휘황찬란한 모습으로 묘사되었습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렸다시피 요한은 자기가 살아가면서 본 것 중에서, 그리고 상상할 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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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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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74 21:18 그 성곽은 벽옥으로 쌓였고 그 성은 정금인데 맑은 유리 같더라 18절에 다시 벽옥과 정금(순금)이 나옵니다. 요한이 어디서 이런 건축물을 실제로 본 적이 있을까요? 사람은 건축물에 대한 욕망이 에로스처럼 강합니다. 더 크고, 더 아름답고, 더 빛나는 건축물을 향한 욕망 말입니다. 그런 건축물을 통해서 자기의 이름을 빛내고, 더 근본에서는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려고 합니다. 가끔은 사랑하는 아내나 연인을 위해서 천문학적 비용이 들어가는 건축물을 짓기도 합니다. 성경에 나오...

계 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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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73 21:17 그 성곽을 측량하매 백사십사 규빗이니 사람의 측량 곧 천사의 측량이라 성곽은 144 규빗이라고 합니다. 1 규빗이 대략 50cm 정도니까 72m가 되는 셈입니다. 성곽, 즉 성벽의 전체 둘레는 물론 아니고, 높이이거나 두께라고 보는 게 맞겠지요. 앞 구절에서 성체의 높이가 2,304km라고 했으니까 72m 높이의 성벽은 너무 낮아 보입니다. 144규빗은 성벽의 두께라고 보아야겠습니다. 그런 정도라고 하더라도 어마어마한 두께입니다. 옛날에는 철근 콘크리트 없이 순전히 기하학적인 기술로...

계 21:16 [9]

  • 2024-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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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72 21:16 그 성은 네모가 반듯하여 길이와 너비가 같은지라 그 갈대 자로 그 성을 측량하니 만 이천 스다디온이요 길이와 너비와 높이가 같더라 거룩한 성에 대한 묘사를 따라가기가 쉽지 않습니다. 일단 위 16절을 문자 그대로 생각해봅시다. 거룩한 성은 정육면체이거나 피라미드 모양의 탑입니다. 가로와 세로와 높이가 각각 12,000 스다디온이라고 합니다. 1스다디온은 192m라고 하니(계 14:20) 자그마치 각각의 길이가 2,304km에 해당하는 크기입니다. 저런 크기의 성 앞에서는 높이가 대략 ...

계 21:15 [2]

  • 2024-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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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71 21:15 내게 말하는 자가 그 성과 그 문들과 성곽을 측량하려고 금 갈대자를 가졌더라 요한에게 말하는 자는 앞서 계 21:9절에 나왔듯이 일곱 천사 중의 한 천사입니다. 그 천사가 성과 문과 성벽을 측량하려고 합니다. 보통 자가 아니라 금으로 된 자막대기입니다. 요한은 거룩한 성이 얼마나 고귀한지를 이런 방식으로 표현하는 중입니다. 그 어떤 미사여구를 사용해도 재창조될 새 예루살렘을 정확하게 묘사할 수는 없습니다. 애벌레는 아무리 노력해도 나비의 세계를 정확하게 경험할 수 없...

계 21:14 [2]

  • 2024-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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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70 21:14 그 성의 성곽에는 열두 기초석이 있고 그 위에는 어린 양의 열두 사도의 열두 이름이 있더라 12절에는 성곽에 열두 문이 나오는데, 여기 14절에는 성곽에 열두 기초 석이 나옵니다. 열두 문에는 열두 지파 이름이 기록되었고, 여기 기초석(주춧돌)에는 열두 사도의 이름이 기록되었다고 합니다.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 전통이 새 이스라엘인 교회 공동체의 열두 사도에게 이어졌다는 뜻으로 봐도 좋겠지요. 이런 표현은 상징입니다. 열두 지파나 열두 사도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니까요. ...

계 21:13 [2]

  • 2024-04-03
  • 조회 수 125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69 21:13 동쪽에 세 문, 북쪽에 세 문, 남쪽에 세 문, 서쪽에 세 문이니 열두 문이 동서남북 사방에 나뉘어 있습니다. 이런 분류가 무슨 뜻인지 정확하게는 모르겠는데, 거룩한 성이 사방으로 통한다는 뜻이 아닐는지요. 주님의 몸이며 거룩한 성이면서 새 예루살렘인 교회는 사방을 향해서 닫혀 있는 게 아니라 활짝 열려있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교회는 초기부터 문을 걸어 잠그고 자기들끼리만 소통하는 밀의 종교가 아니라 땅끝까지 이르러 증인이 되려는 보편 종교의 길을 걸었...

계 21:12 [4]

  • 2024-04-02
  • 조회 수 165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68 21:12 크고 높은 성곽이 있고 열두 문이 있는데 문에 열두 천사가 있고 그 문들 위에 이름을 썼으니 이스라엘 자손 열두 지파의 이름들이라 새 예루살렘인 거룩한 성에 대한 설명이 약간 복잡해집니다. 묵시적 상상력에서 표상된 그림같이 멋진 성입니다. 판타지 애니메이션 영화에 나올만한 모습입니다. 크고 높은 성곽에 열두 문이 있다고 합니다. 성곽은 성벽을 가리킵니다. 열두 개는 많기는 합니다. 일반적으로 볼 때 성을 들락거리는 성문은 숫자가 적을수록 좋습니다. 관리하기에 편하...

계 21:1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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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67 21:11 하나님의 영광이 있어 그 성의 빛이 지극히 귀한 보석 같고 벽옥과 수정 같이 맑더라 11절부터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묘사됩니다. 앞에서 저는 ‘어린 양의 아내’라는 표현을 근거로 본문이 말하는 새 예루살렘이 교회를 의미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11절 이하에 나오는 묘사는 천국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입니다. 요한이 이 대목에서 교회를 염두에 둔 것인지, 아니면 최후의 심판 이후에 재창조된 새 하늘과 새 땅을 묘사한 것인지 분명하지가 않습니다. 혹은 종말 이후의 세...

계 21:10

  • 2024-03-29
  • 조회 수 123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66 21:10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니 요한은 성령의 이끌림을 받아서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갔다고 합니다. 겔 40:2에서도 에스겔은 높은 산에 올라가서 이상한 성읍 형상을 봅니다. “하나님의 이상 중에 나를 데리고 이스라엘 땅에 이르러 나를 매우 높은 산 위에 내려놓으시는데 거기에서 남으로 향하여 성읍 형상 같은 것이 있더라.” 높은 산은 영적인 경험이 일어나기에 적당한 장소입니다. 아브라함(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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