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샘터교회 주간일지

2021110, 주현절 후 1

 

1) 하나님의 아들- 이번 설교 본문(1:4-11)에 따르면 예수님의 세례 장면에서 특별한 현상이 일어났습니다. 하늘이 갈라지고, 성령이 비둘기 모양으로 내려왔고, 하늘로부터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라는 소리가 울렸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사람처럼 자식을 둘 수 있다는 말이 아니라는 것은 누구나 압니다. 그렇다면 저 명제가 무슨 뜻일까요? 저 명제에 기독교의 모든 것이 달려 있다고 해도 과하지 않습니다. 일단, 우리가 완전한 답은 모릅니다. 다만 그 답에 가까이 갈 수 있을 뿐입니다. 가까이 가는 그 과정이 중요합니다. 그 과정에 이미 구원이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말은 하나님에게서만 가능한 구원 사건이 그에게서 발생했다는 사실에 대한 언어적 진술입니다. 그 구원의 실체가 우리에게 다 드러난 게 아니라서 완전한 답을 모른다고 말한 건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불확실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진술의 깊이 안으로 점점 더 끌려들어 가야만 구원의 실체를 경험할 수 있을 겁니다.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불릴 수밖에 없는, 그렇게 불려야 하는 분이십니다.

 

2) 비대면 예배- 비대면 예배 기간이 길어지고 있습니다. 지난 2020년 성탄절부터 시작해서 벌써 네 번이나 비대면만으로 예배를 드렸습니다. 오는 17일도 비대면입니다. 이런 비대면 시대에도 기독교 신앙이 온전하게 유지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예를 들어서 여기 연인 관계인 두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전혀 만나지 않고 영상만으로 사랑을 이어갈 수 있을까요? 이게 가능하다면 앞으로 인공지능과도 가상 공간을 통한 연인 관계가 가능하다는 말이 되겠지요. 저는 이런 관계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인간 종이 아니라 새로운 종으로 진화한다면 문제가 안 되겠지만요. 제가 어떻게 생각하든지 상관없이 이런 비대면 시대는 앞으로 더 가속할 것입니다. 교회가 아무리 버텨봐야 그 시대의 출현을 막을 수 없습니다. 현실적인 대안은 대면과 비대면의 병행입니다. 말은 편하게 병행이라고 하지만 그런 교회 공동체가 역동성을 확보하려면 상당한 진통이 예상됩니다. 그래도 어떻게 하겠어요. 버텨내면서 돌파할 수 있는 길을 찾아야겠지요. 하나님이 창조주이시며, 교회가 하나님의 백성이 분명하다면 돌파할 수 있는 길이 열리지 않겠습니까. 우리 교회도 124일 때부터는 대면과 비대면 예배를 병행합니다. 그나저나 이런 코로나19와 같은 일들이 자주 일어나면, 100년 후의 교회 모습은 어떻게 될지 염려가 되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합니다.

 

3) 마스크- 오늘 영상으로 예배에 접속하신 분들은 눈치챘겠지만, 성경 봉독자와 사회자는 마스크를 착용했습니다. 처음으로 그렇게 했습니다. 마스크를 끼면 말소리가 분명하지 않기도 하고, 우리 교회 예배 상황으로 볼 때 비말 전파의 걱정이 없다고 생각했기에 그동안 착용하지 않았습니다. 사회자는 마이크를 따로 사용하더라도 설교자와 성경 봉독자는 같은 마이크를 사용하니까 마스크를 끼는 게 유튜브로 접속하는 이들에게도 편안해 보인다는 어느 집사의 의견을 따랐습니다. 오늘 예배 유튜브 영상을 나중에 확인해 보니 마스크를 꼈는데도 봉독자와 사회자 말소리가 아주 분명하게 들렸습니다. 코로나19 상황이 많이 좋아질 때까지 이런 상태로 예배를 드리겠습니다. 그림을 한 번 보세요.

 01102.PNG

 성경 봉독을 처음으로 하는 이*남 집사입니다. 침착하게 또박또박 잘 읽었습니다. 현풍에서 오느라고 수고 많았습니다. 동생 차를 빌려서 운전했다고 하는군요. 마스크 공장에 일하러 다니는 중입니다.


01101.png

사회자 서*규 집사입니다. 나중에 예배 유튜브에서 들어보니 찬송가를 이끌어가더군요. 그렇게 찬송가를 잘 부르는지 몰랐습니다. 예배 진행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설교자는 왜 마스크를 끼지 않느냐고요? 제 발음이 워낙 흐릿해서 마스크를 썼다가는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듣지 못할 겁니다.

 

4) 교인총회- 요즘 우리는 재난 영화와 같은 상황에서 삽니다. 모든 일상이 코로나19와 맞물려서 돌아갑니다. 교회의 행정 사무에서 가장 중요한 교인총회도 예년처럼 진행할 수가 없습니다. 일단 일정이 13일에서 31일도 두 번에 걸쳐서 미워졌습니다. 더 미뤄질 수는 없겠지요. 교인총회를 준비를 위해서 124일에는 운영위원 회의가 열립니다. , 신 부장은 다 참석하세요.

 

5) 사무실 집기- *현 집사가 학생들 그룹 지도할 때 사용하던 집기를 교회에 기증했습니다. 오늘 교회에 가보니 그 집기들이 우리 교회에 안성맞춤이었습니다. 종류도 여러 가지입니다. 넓은 탁자는 회의용으로 좋아 보입니다. 예배 사회자가 사용하기에 좋은 탁자도 있어서, 오늘 당장 사용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원래 쓰던 사회자용 탁자가 너무 좁아서 해결 방안을 찾던 중이었습니다. 김 집사는 지금 공부를 더 하려고 비자만 나오면 호주로 가려고 합니다. 공부도 하고 일도 해야겠지요. 준비 잘해서 잘 다녀오기 바랍니다. 호주로 가도 우리 교회 온라인 신자입니다. 교회 밴드에 그 나라 소식을 가끔 보내주세요. 온라인 시대가 좋기는 좋네요. 지난 12월 초에 경기도로 이사한 양*경 집사도 그쪽에서 교회를 정할 때까지 우리 교회 온라인 신자로 남기로 했습니다. 비대면이 뉴노멀로 자리하게 될 미래는 교회 형태 역시 오프라인과 온라인이 병행하게 되겠지요.

 

6) 헌금- 12주차(110) 360,000/ 농협 301-0243-3251-71(대구 샘터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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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아들(막 1:1), 3월20일 [15]

  • 2006-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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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3월20일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막 1:1) <하나님의 아들> 마가복음 기자는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진술로부터 복음서 쓰기를 시작합니다. 그런데 이런 설명은 우리를 여러 가지 면에서 곤란하게 만듭니다. 우선 하나님에게 아들이 있다는 말 자체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영으로 존재하는 성서의 하나님이 인간의 욕망을 그대로 재현하는 헬라 신화의 여러 신들처럼 자식을 두었다는 건 언어도단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말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으며, 더 나아가서...

하나님의 아들(막 1:1), 3월20일 [9]

  • 2006-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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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3월20일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막 1:1) <하나님의 아들> 마가복음 기자는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진술로부터 복음서 쓰기를 시작합니다. 그런데 이런 설명은 우리를 여러 가지 면에서 곤란하게 만듭니다. 우선 하나님에게 아들이 있다는 말 자체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영으로 존재하는 성서의 하나님이 인간의 욕망을 그대로 재현하는 헬라 신화의 여러 신들처럼 자식을 두었다는 건 언어도단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말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으며, 더 나아가서...

예수 그리스도 (막 1:1), 3월21일 [5]

  • 2006-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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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3월21일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막 1:1)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본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표현이 어떤 사본에는 생략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루터는 1절 말씀을 이렇게 번역했군요. “이 책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복음의 시작입니다.” 이렇게 사본에 따라서 성서의 내용이 아주 일부분이기는 하지만 들쑥날쑥 한다는 사실에 대해서, 현재 발견된 수천 개에 이르는 사본 중에서 동일한 게 전혀 없다는 사실에 대해서 오늘 우리가 자세하게 언급할 필요는 없겠지요. 다만 누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

예수 그리스도 (막 1:1), 3월21일 [4]

  • 2006-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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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3월21일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막 1:1)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본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표현이 어떤 사본에는 생략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루터는 1절 말씀을 이렇게 번역했군요. “이 책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복음의 시작입니다.” 이렇게 사본에 따라서 성서의 내용이 아주 일부분이기는 하지만 들쑥날쑥 한다는 사실에 대해서, 현재 발견된 수천 개에 이르는 사본 중에서 동일한 게 전혀 없다는 사실에 대해서 오늘 우리가 자세하게 언급할 필요는 없겠지요. 다만 누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막1:1), 3월22일 [2]

  • 2006-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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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3월22일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막 1:1)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신약성서의 앞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네 복음서는 예수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부분적으로 예수님의 출생설화와 열두 살 때의 에피소드가 나오기는 하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예수님이 출가한 후 갈릴리에서 사마리아를 거쳐 예루살렘에 이르러 체포당하고 십자가 처형을 당한, 소위 공생애가 핵심입니다. 그 기간은 짧게 잡으면 1년여, 길게 잡으면 2년여가 됩니다. 다른 종교창시자나 성인들과 비교할 때 전체 삶도 짧았을 뿐만 아니라 활동...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막1:1), 3월22일 [2]

  • 2006-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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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3월22일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막 1:1)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신약성서의 앞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네 복음서는 예수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부분적으로 예수님의 출생설화와 열두 살 때의 에피소드가 나오기는 하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예수님이 출가한 후 갈릴리에서 사마리아를 거쳐 예루살렘에 이르러 체포당하고 십자가 처형을 당한, 소위 공생애가 핵심입니다. 그 기간은 짧게 잡으면 1년여, 길게 잡으면 2년여가 됩니다. 다른 종교창시자나 성인들과 비교할 때 전체 삶도 짧았을 뿐만 아니라 활동...

복음 (1), 3월23일 [7] [2]

  • 2006-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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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3월23일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막 1:1) <복음 1> 한국에는 장로교, 감리교, 성결교, 침례교 같은 이름의 교단만 있는 게 아니라 아예 ‘복음’을 간판으로 내건 교단도 있습니다. ‘복음교회’가 그 교단입니다. 복음교회는 그렇게 보수적이지만도 않고 그렇다고 진보적이지만도 않은, 비교적 건전한 교단입니다. 복음을 간판으로 내걸지는 않았지만 복음교회보다 훨씬 더 복음이라는 단어와 밀착된 교단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성회’가 그 교단입니다. 이 하나님의 성회도 나뉘어졌기 때문에 지금 제가 정...

복음 (1), 3월23일 [6]

  • 2006-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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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3월23일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막 1:1) <복음 1> 한국에는 장로교, 감리교, 성결교, 침례교 같은 이름의 교단만 있는 게 아니라 아예 ‘복음’을 간판으로 내건 교단도 있습니다. ‘복음교회’가 그 교단입니다. 복음교회는 그렇게 보수적이지만도 않고 그렇다고 진보적이지만도 않은, 비교적 건전한 교단입니다. 복음을 간판으로 내걸지는 않았지만 복음교회보다 훨씬 더 복음이라는 단어와 밀착된 교단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성회’가 그 교단입니다. 이 하나님의 성회도 나뉘어졌기 때문에 지금 제가 정...

복음 (2), 3월24일 [4]

  • 2006-03-24
  • 조회 수 9625

2006년 3월24일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막 1:1) <복음 2> 마가복음 기자가 전하는 복음(福音, 유앙겔리온)이라는 단어는 복된 소식, 기쁜 소식이라는 뜻입니다. 유대인들의 역사를 배경으로 기록된 구약성서에서 볼 때 가장 큰 기쁜 소식은 출애굽과 바벨론포로 귀환입니다. 먹고살기 힘들어 이집트 땅으로 이민 갔던 이스라엘 민족이 그곳에서 소수민족으로 당해야만 했을 고난, 그리고 전쟁에서 패배하여 인질로 잡혀갔던 바벨론 제국에서 당해야만 했을 모욕이 그들에게 얼마나 견디기 힘든 것이었는지는 긴...

복음 (2), 3월24일 [2]

  • 2006-03-24
  • 조회 수 4714

2006년 3월24일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막 1:1) <복음 2> 마가복음 기자가 전하는 복음(福音, 유앙겔리온)이라는 단어는 복된 소식, 기쁜 소식이라는 뜻입니다. 유대인들의 역사를 배경으로 기록된 구약성서에서 볼 때 가장 큰 기쁜 소식은 출애굽과 바벨론포로 귀환입니다. 먹고살기 힘들어 이집트 땅으로 이민 갔던 이스라엘 민족이 그곳에서 소수민족으로 당해야만 했을 고난, 그리고 전쟁에서 패배하여 인질로 잡혀갔던 바벨론 제국에서 당해야만 했을 모욕이 그들에게 얼마나 견디기 힘든 것이었는지는 긴...

복음 (3) 3월25일 [1]

  • 2006-03-26
  • 조회 수 8947

2006년 3월25일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막 1:1) <복음 3> 저는 앞서 출애굽과 포로귀환을 ‘기쁜 소식’으로 이해하는 구약의 해석이 신약에서는 더 이상 실효성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혹시 이 말에 오해가 있을까 해서 변명해야겠습니다. 우리의 억압된 삶의 구조가, 그런 것들은 대개 경제와 정치에 연관된 것인데, 해방의 구조로 바꾸는 일들이 무의미하다는 말은 아닙니다. 오늘 대한민국에서 외국인 노동자로 사는 분들이 한국 사람들과 아무런 차별이 없이 살아갈 수 있도록 이 사회구조를 바꿔나가는 일은 ...

복음 (3) 3월25일 [1]

  • 2006-03-26
  • 조회 수 4370

2006년 3월25일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막 1:1) <복음 3> 저는 앞서 출애굽과 포로귀환을 ‘기쁜 소식’으로 이해하는 구약의 해석이 신약에서는 더 이상 실효성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혹시 이 말에 오해가 있을까 해서 변명해야겠습니다. 우리의 억압된 삶의 구조가, 그런 것들은 대개 경제와 정치에 연관된 것인데, 해방의 구조로 바꾸는 일들이 무의미하다는 말은 아닙니다. 오늘 대한민국에서 외국인 노동자로 사는 분들이 한국 사람들과 아무런 차별이 없이 살아갈 수 있도록 이 사회구조를 바꿔나가는 일은 ...

선지자 이사야, 3월26일 [1]

  • 2006-03-26
  • 조회 수 9634

2006년 3월26일 선지자 이사야의 글에,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그가 네 길을 준비하리라. (막 1:2) <선지자 이사야> 요즘 논문을 쓰는 사람들이 각주를 달듯이 마가는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인용합니다. 왜 그랬을까요? 마가의 속을 내가 뚫어볼 수는 없지만, 아마 자신의 글을 읽어야 할 독자들이 바로 이사야 선지자에 관해서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선지자들만큼 중요한 역할을 한 집단은 없습니다. 물론 이스라엘 사람들의 삶에 직접적으로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이들은 왕이며, 종교적인...

선지자 이사야, 3월26일 [1]

  • 2006-03-26
  • 조회 수 4427

2006년 3월26일 선지자 이사야의 글에,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그가 네 길을 준비하리라. (막 1:2) <선지자 이사야> 요즘 논문을 쓰는 사람들이 각주를 달듯이 마가는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인용합니다. 왜 그랬을까요? 마가의 속을 내가 뚫어볼 수는 없지만, 아마 자신의 글을 읽어야 할 독자들이 바로 이사야 선지자에 관해서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선지자들만큼 중요한 역할을 한 집단은 없습니다. 물론 이스라엘 사람들의 삶에 직접적으로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이들은 왕이며, 종교적인...

선지자 이사야의 글, 3월27일 [12] [1]

  • 2006-03-27
  • 조회 수 9555

2006년 3월27일 선지자 이사야의 글에,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그가 네 길을 준비하리라. (막 1:2) 선지자 이사야의 글 마가는 지금 이사야의 글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마가가 인용하고 있는 글은 분명히 이사야에 의해서 작성된 것이지만 우리는 그것을 곧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입니다. 마가도 역시 우리와 마찬가지로 이사야의 글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우리는 여기서 매우 곤란한 문제에 봉착합니다. 성서 기자들의 글을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생각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이 바로 그 문제입...

선지자 이사야의 글, 3월27일 [10]

  • 2006-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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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3월27일 선지자 이사야의 글에,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그가 네 길을 준비하리라. (막 1:2) 선지자 이사야의 글 마가는 지금 이사야의 글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마가가 인용하고 있는 글은 분명히 이사야에 의해서 작성된 것이지만 우리는 그것을 곧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입니다. 마가도 역시 우리와 마찬가지로 이사야의 글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우리는 여기서 매우 곤란한 문제에 봉착합니다. 성서 기자들의 글을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생각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이 바로 그 문제입...

주님의 사자(使者), 3월28일 [4]

  • 2006-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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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3월28일 선지자 이사야의 글에,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그가 네 길을 준비하리라. (막 1:2) 주님의 사자(使者) 만약 마가복음이 학위 논문이었다고 한다면 불합격 처리되었을지도 모르겠네요. 왜냐하면 이사야의 글을 인용하면서 엉뚱하게 말라기서의 글을 인용했으니까 말입니다. 마가가 선지자 이사아의 글이라고 인용한 본문 2절은 말라기서 3장1절 말씀입니다. 이사야의 글은 3절에 나옵니다. 마가가 착각을 일으켰는지, 아니면 알고 있었지만 굳이 구분해서 두 사람의 원작자를 거론하는 게 번거롭다고 생각했...

주님의 사자(使者), 3월28일 [3]

  • 2006-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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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3월28일 선지자 이사야의 글에,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그가 네 길을 준비하리라. (막 1:2) 주님의 사자(使者) 만약 마가복음이 학위 논문이었다고 한다면 불합격 처리되었을지도 모르겠네요. 왜냐하면 이사야의 글을 인용하면서 엉뚱하게 말라기서의 글을 인용했으니까 말입니다. 마가가 선지자 이사아의 글이라고 인용한 본문 2절은 말라기서 3장1절 말씀입니다. 이사야의 글은 3절에 나옵니다. 마가가 착각을 일으켰는지, 아니면 알고 있었지만 굳이 구분해서 두 사람의 원작자를 거론하는 게 번거롭다고 생각했...

광야 (1), 3월29일 [1]

  • 2006-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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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3월29일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 기록된 것과 같이. (막 1:3) 광야 (1) 마가가 3절에서 인용한 글은 이사야서 40:3절 말씀입니다. 물론 이사야의 글을 문자적으로 인용한 게 아니라 약간 손질을 했습니다. 이사야서를 그대로 인용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외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하게 하라.” 마가복음은 이사야의 글을 한 절만 인용했지만 누가복음은 이 뒤로 이어지는 이사야...

광야 (1), 3월29일 [1]

  • 2006-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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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3월29일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 기록된 것과 같이. (막 1:3) 광야 (1) 마가가 3절에서 인용한 글은 이사야서 40:3절 말씀입니다. 물론 이사야의 글을 문자적으로 인용한 게 아니라 약간 손질을 했습니다. 이사야서를 그대로 인용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외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하게 하라.” 마가복음은 이사야의 글을 한 절만 인용했지만 누가복음은 이 뒤로 이어지는 이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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