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 21:5

조회 수 328 추천 수 0 2024.03.22 20:44:12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61

21:5

보좌에 앉으신 이가 이르시되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고 또 이르시되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 하시고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장엄한 문장입니다.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이가 하나님 외에 누가 있겠습니까. 만물은 140억 년 전 빅뱅 이후 지금까지 전개된 우주 전체를 가리킵니다. 철학과 물리학의 대상도 이 만물입니다. 초기 그리스 철학자들은 만물의 본질을 물, , 공기, 흙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일리가 있습니다만 그것으로 만물의 실체가 다 드러나는 게 아닙니다. 현대 물리학은 양자를 만물의 본질이라고 말합니다. 그것으로도 충분한 대답이 못됩니다. 지금 나타난 만물의 물리적 현상을 정확하게 규명한다고 해도 왜 그래야만 하는지는 풀리지 않습니다. 세상은 왜 존재해야만 할까요? 왜 이런 방식으로 존재하는 것일까요? 인간은 왜 이런 방식으로 존재하게 된 것일까요? 물음은 계속됩니다. 성경은 만물이 존재하게 된 이유가 하나님에게 있다고 봅니다. 따라서 세상을 새롭게 할 수 있는 이도 하나님일 뿐입니다.

이런 설명이 그리스도교적인 관점일 뿐이지 자연과학의 관점에서는 크게 부족하다고 여길 분들이 계실 겁니다. 자연과학의 관점이 늘 옳은 것이 아니고 최종적인 답변도 아닙니다. 여러 관점 중의 하나입니다. 자연과학의 관점을 무시해도 좋다는 게 아니라 그것을 절대화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예를 들어서 의학을 생각해보십시오. 인간의 몸과 병의 관계에 관한 의학의 관점은 중요하기는 하나 절대적이지는 않습니다. 현대인에게 자주 나타나는 암만해도 그렇습니다. 암이 발병했다고 해서 암 절제 수술을 받는 게 옳은지 아닌지는 확률로만 말할 수 있을 뿐입니다. 혈압 수치도 절대적인 건 아니라 평균치입니다. 개인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 만물을 창조했다는 성경의 증언을 자연과학이 독점적으로 판단할 수는 없다는 뜻입니다. 다만 그리스도교의 창조론이 자연과학의 관점에서도 옳은 것이라는 사실을 신학은 꾸준하게 변증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만물을 새롭게 한다는 게 무슨 뜻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더 근본적으로 새롭다.’라는 게 무슨 뜻일까요? 요한계시록은 묵시적 상상력을 동원해서 하나님께서 재창조하실 미래에 관해서 보도하는 초기 그리스도교 문헌입니다. 모양을 바꾸는 게 아닙니다. 무늬를 새롭게 하는 게 아닙니다. 그 어느 것도 옛것이 그대로 남아있을 수 없을 정도로 달라지는 변화를 가리킵니다. 로마 제국의 질서는 완전히 무너지는 세상입니다. 불순물이 전혀 끼어들지 않는 생명 충만한 세상입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개념으로는 부활, 또는 영생입니다. 그게 구체적으로 어떤 상태인지를 자연과학의 수치나 지표로 증명할 수는 없습니다. 이렇게는 말할 수 있습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능력 안으로 들어가는 신앙 경험이라고 말입니다. 아버지 하나님의 창조 능력과 아들 하나님의 구원 능력과 영 하나님의 생명 능력에 어느 정도로 긴밀하게 접속해 있느냐가 여기서 핵심이겠지요. 그래서 우리는 깨어서 기도하는 태도로 일상을 살아내야 합니다. 일상에 쫓겨서 그렇게 살기가 쉽지는 않겠지만요.


[레벨:9]소유와존재

2024.03.24 13:31:48

막연하게 합리적인 것이 옳은 것이라고 치부하며 살아왔던 지난날을 돌아보게 됩니다.

합리적이기만 하면 옳은 것이라고 생각하여 다른 이들을 합리적이라는 이유로 윽박?지르듯 열을 냈던 일들이 떠오릅니다.


"그리스도교의 창조론이 자연과학의 관점에서도 옳은 것이라는 사실을 신학은 꾸준하게 변증해야 합니다."


목사님의 표현을 빌자면 앞으로의 삶은 앞으로의 일상은 깨어서 기도하는 태도로 살아내도록 노력해야 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profile

[레벨:100]정용섭

2024.03.25 19:12:38

그렇습니다. 그런 깨어서 기도하는 태도로 사는 것이 '재가수도자'의 삶이에요.

빠른 시일 안에 높은 경지에 오르지는 못하겠지만 중단하지만 않는다면

우리의 영혼이 깊어지고 풍성해질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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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아들(막 1:1), 3월20일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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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 (막 1:1), 3월21일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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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1), 3월23일 [7]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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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1), 3월23일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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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2), 3월24일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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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2), 3월24일 [2]

  • 2006-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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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3) 3월25일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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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3월25일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막 1:1) <복음 3> 저는 앞서 출애굽과 포로귀환을 ‘기쁜 소식’으로 이해하는 구약의 해석이 신약에서는 더 이상 실효성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혹시 이 말에 오해가 있을까 해서 변명해야겠습니다. 우리의 억압된 삶의 구조가, 그런 것들은 대개 경제와 정치에 연관된 것인데, 해방의 구조로 바꾸는 일들이 무의미하다는 말은 아닙니다. 오늘 대한민국에서 외국인 노동자로 사는 분들이 한국 사람들과 아무런 차별이 없이 살아갈 수 있도록 이 사회구조를 바꿔나가는 일은 ...

복음 (3) 3월25일 [1]

  • 2006-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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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지자 이사야, 3월26일 [1]

  • 2006-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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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3월26일 선지자 이사야의 글에,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그가 네 길을 준비하리라. (막 1:2) <선지자 이사야> 요즘 논문을 쓰는 사람들이 각주를 달듯이 마가는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인용합니다. 왜 그랬을까요? 마가의 속을 내가 뚫어볼 수는 없지만, 아마 자신의 글을 읽어야 할 독자들이 바로 이사야 선지자에 관해서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선지자들만큼 중요한 역할을 한 집단은 없습니다. 물론 이스라엘 사람들의 삶에 직접적으로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이들은 왕이며, 종교적인...

선지자 이사야, 3월26일 [1]

  • 2006-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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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지자 이사야의 글, 3월27일 [12]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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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3월27일 선지자 이사야의 글에,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그가 네 길을 준비하리라. (막 1:2) 선지자 이사야의 글 마가는 지금 이사야의 글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마가가 인용하고 있는 글은 분명히 이사야에 의해서 작성된 것이지만 우리는 그것을 곧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입니다. 마가도 역시 우리와 마찬가지로 이사야의 글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우리는 여기서 매우 곤란한 문제에 봉착합니다. 성서 기자들의 글을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생각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이 바로 그 문제입...

선지자 이사야의 글, 3월27일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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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사자(使者), 3월28일 [4]

  • 2006-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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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사자(使者), 3월28일 [3]

  • 2006-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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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 (1), 3월29일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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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3월29일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 기록된 것과 같이. (막 1:3) 광야 (1) 마가가 3절에서 인용한 글은 이사야서 40:3절 말씀입니다. 물론 이사야의 글을 문자적으로 인용한 게 아니라 약간 손질을 했습니다. 이사야서를 그대로 인용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외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하게 하라.” 마가복음은 이사야의 글을 한 절만 인용했지만 누가복음은 이 뒤로 이어지는 이사야...

광야 (1), 3월29일 [1]

  • 2006-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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