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어록(111) 6:26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군중들이 예수를 찾아 나섰다. 그들은 오병이어 사건이 일어난 다음에 예수를 왕으로 추대하려고 모의 작당했던 이들이다(6:15). 오병이어와 같은 초자연적인 사건을 일으킬 수 있는 인물이야말로 자신들의 왕이요 메시야라고 그들은 생각했다. 예수는 그들을 피해서 제자들과 함께 호수를 건너 가버나움으로 왔다. 군중들이 가버나움까지 예수를 찾아온 것이다. 그들은 예수를 만나 이렇게 말한다. “랍비여 언제 여기 오셨나이까?” 예수의 답변이 바로 위 구절 26절이다.

유대 군중들이 예수를 찾은 이유는 표적에 관심이 있어서가 아니라 떡을 먹고 배가 불렀기 때문이라고 예수는 말했다. 예수의 이 발언만 놓고 본다면 유대 군중들의 영적인 수준이 형편없어 보인다. 먹는 문제에만 매달리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먹는 문제에만 매달리는 사람들은 아니다. 그들은 예수에게서 발생한 오병이어를 표적으로 보았다. 예수가 배부른 까닭이라고 비판한 이유는 그들이 표적의 근본적인 의미를 몰랐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 세상의 문제들을 해결하는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개입을 표적으로 보았다. 오병이어는 바로 그런 사건이었다. 반면에 예수에게 표적은 그런 초자연적인 기적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 사건 자체다. 예수에게서 그런 사건이 일어났기에 궁극적으로는 예수가 바로 표적이다. 예수의 죽음과 부활이, 그의 하나님 나라 선포가 표적인 것이다.

오늘 우리는 어디서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표적을 경험하는가? 기독교인들 중에서 그 표적의 차원의 깊이를 제대로 아는 사람들이 있고 여전히 유대인들처럼 낮고 좁고 표면적으로 아는 사람들이 있다. 예수를 믿고 복을 받아서 다른 사람보다 더 잘사는 것을 표적으로 여기거나 조금 세련된 방식으로 종교적인 교양에 떨어진 사람들이 후자에 속한다. 이게 일반적이다. 종교적인 열정이 남달랐던 예수 당시의 유대 군중들처럼 기독교 신앙의 연조가 오래 된 이들도 여기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구원 표적을 자신들의 고정된 틀로만 생각하기 때문이다. 많은 기독교인들이 성경 문자주의라는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레벨:18]은나라

2019.05.15 07:14:30

그 틀을 깬다는게..
하늘의 별따기보다 더 어려운것 같습니다. 인간의 힘과 노력으로는 택도 없는거 같구요.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으로만 가능할거 같아요.
감사한 은총이죠.ㅎ

저는 문자주의 에서는 조금 벗어났다고 보지만, 제안에는 여전히 나만의 어떤틀은 남아있는거 같아요.
그틀 또한 하나님의 일이겠지요?

예수의 표적과 유대인들의 표적의 차이점을 더 깊이있게 이해하게 되었어요.감사드립니다.
세상문제의 초자연적인 하나님 개입과
구원사건의 하나님 개입..

[레벨:18]부스러기은혜

2019.05.15 08:46:43

김수환 추기경이 그랬다지요
세상에서 가장 어렵고 긴 여행은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가는 여행이다.. 라고
사랑이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가는데 70년이 걸렸다...라고

어쩜 그보다 더 어렵고 긴 여행은
교리와 관념에 갇혀있는 구원관, 메시아관의 틀을 깨뜨리고
십자가 부활 하나님 나라에 눈이 뜨여지는것이 아닐런지요

그 틀을 과연 하나님이 깨뜨려주실지
아님 평생
J를 왕으로 옹립하려다가 십자가에 매달고서야 소천하게 될지...
우리 운명의 종국은 어쩜 하나님도 모르시겠구나 싶군요
우리 구원이 닫힌 구원이 아니요 열린 구원이라면요

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
profile

[레벨:100]정용섭

2019.05.15 20:22:01

은나라 님, 잘 지내시겠지요.

그 '틀'이라는 거 말입니다. 

그게 어쩌면 죄일지 모릅니다. 

왜냐하면 그 틀로만 세상과 인간과 역사를 재단함으로써 

그 틀 밖과의 소통을 끊어내기 때문입니다. 

진화의 영향, 유전적인 영향, 자라는 환경과 교육,

그리고 자신의 선택 등등의 영향으로 우리는 틀 안으로 자꾸 (기어)들어갑니다.

그것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긴 합니다. 

그런 틀로부터 조금이라도 자유를 얻으려면 

하나님 경험이 최선입니다.

이런 하나님 경험도 어떤 틀에 의해서 영향을 받기는 하지만요. 

산다는 것과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 다 어렵지만 

갈 때까지 가보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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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30일- 예수가 오신 이유?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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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2일- 귀신 축출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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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7월2일 귀신 축출 이에 온 갈릴리에 다니시며 그들의 여러 회당에서 전도하시고 또 귀신들을 내쫓으시더라. (막 1:39) 마가복음 기자는 여기서 다시 한 번 더 예수님의 활동을 요약했습니다. 예수님이 갈릴리의 여러 회당에서 설교하셨으며, 귀신을 축출하셨다고 말입니다. 설교는 말이고 축귀는 행위입니다. 설교는 하나님의 나라를 언어로 해명하는 것이라면 축귀는 사건으로 증명하는 것입니다. 무엇이 더 중요할까요? 이 양자는 비교의 대상이 아닙니다. 언어와 사건은 서로 결합되어 있습니다. 언어는 본질적으로 사건이고,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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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3일- 나병환자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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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7월3일 나병환자 한 나병환자가 예수께 와서 꿇어 엎드려 간구하여 이르되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막 1:40) 우리는 마가복음 기자가 40-15절에서 보도한 나병환자 이야기에서 많은 것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한 나병환자가 예수께 도움을 청했고, 예수님은 그를 고치시고 유대교의 규례에 따라서 제사장에게 보냈습니다. 그 사람이 제사장에게 실제로 갔는지에 대해서 본문은 말이 없고, 대신 나병환자였던 사람이 자기에게 벌어진 일을 사람들에게 전했다고 합니다. 우리는 당분간 이 이야기를 중심으로 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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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4일- 예수님의 연민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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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7월4일 예수님의 연민 예수께서 불쌍히 여기사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이르시되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시니 (막 1:41) 나병환자를 보시고 예수님은 ‘불쌍히’ 여기셨다고 합니다. 불쌍히 여긴다는 것은 연민을 느낀다는 뜻입니다. 아주 어려운 형편에 처한 사람을 볼 때 그런 연민을 느끼는 건 모든 사람들의 보편적인 마음입니다. 그런 연민이 강한 사람도 있고, 약한 사람도 있지만 그걸 느끼지 않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사람의 마음에서 작용하는 이런 연민은 아담과 이브의 타락 이후에도 여전히 남아있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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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5일- 예수님의 터치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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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7월5일 예수님의 터치 예수께서 불쌍히 여기사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이르시되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시니 (막 1:41) 예수님은 나병환자에게 손을 내밀어 대셨다고 합니다. 손을 잡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어깨에 손을 올리셨을지도, 아니면 등을 두드렸을지도 모릅니다. 어쨌든지 예수님에게 그에게 손을 대셨다는 건 예수님이 그와 한 마음이 되었다는 징표이겠지요. 열병 걸린 베드로의 장모를 고치실 때는 손을 잡았습니다. 어떤 때는 진흙을 이겨 시간 장애인의 눈에 바른 적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7월5일- 예수님의 터치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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