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터(1)

조회 수 1204 추천 수 0 2017.10.03 20:3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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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터(1)

 

루터(1483-1546)는 젊은 시절 금욕적인 생활을 몸에 익혔다. 스물두 살이 된 1505년 엄격하기로 유명한 아우구스티누스수도회 수도사가 되었다. 수도사의 삶은 인간의 모든 욕망을 억제함으로써 영혼의 평화를 유지하려는 것이다. 잠도 적게 자고, 먹기도 적게 먹고, 사회적인 관계도 최소화하고, 당연히 성욕도 최대한 억제한다. 일반적인 사람에게는 불가능한 삶이다. 예술, 문학, 과학연구, 종교 등에 완전히 빠진 사람에게만 가능하다.

루터는 수도사가 되기 전 1501년에 에어푸어트 대학교에 들어가서 1505년 문학석사 학위를 받았다. 비텐베르크에 있는 아우구스티투스 수도원 안에서 산 건 그렇게 오래 되지 않는다. 1511년에 그의 멘토라 할 수 있는 아우구스티누스 수도회 독일 관구장인 슈타우피츠의 추천으로 임지를 비텐베르크 대학교로 옮겼다. 루터에게는 수도원보다는 대학교가 더 어울린다고 슈타우피츠가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루터의 20대 인생의 갈림길에서 슈타우피츠의 영향력은 절대적이었다. 그가 없었다면 루터의 인생도 달라졌을 것이며, 종교개혁의 역사도 달라졌을 것이다.

비텐베르크 대학교에 와서도 루터는 여전히 아우구스티누스 수도사 신분이었다. 1517년 이후 교황청과의 갈등을 빚으면서 목숨이 경각에 달렸으니 다른 것은 아예 생각할 겨를이 없었을 것이다. 마흔두 살이 되던 1525년에 그는 자신보다 16세 어린 카타리나 폰 보라와 결혼해서 33녀를 두었다. 루터의 결혼에 얽힌 에피소드다. 어느 수녀원에 속한 수녀들이 신부나 수녀들도 결혼해야 한다는 루터의 말을 듣고 수녀원을 나와서 결혼하고 살았다. 한 여자만 결혼하지 않고 있다가 루터를 찾아와서 당신이 아니면 아무와도 결혼하지 않겠다.’고 해서 루터는 어쩔 수 없이 그 여자와 결혼했다고 한다. 그 여자가 바로 폰 보라다. 신부이자 수도사였던 마흔두 살의 루터와 수녀였던 스무 여섯 살의 보라가 결혼한 것이다. 보라의 생활력은 유달리 강했다. 나중에 말하겠지만 양주장을 경영하던 친정집에서 술 빚는 방법을 많이 배운 덕분으로 남편 루터를 위해서 맥주를 많이 만들었다고 한다. 루터의 후손들은 지금 라이프찌히에서 남서쪽으로 멀리 않은 짜이츠(Zeitz)라는 마을에 모여 산다고 한다. 주로 남자 후손이다. 여자들은 다른 곳으로 출가하지 않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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