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5일, 목
루터(3)
루터의 『갈라디아서 해설』은 1535년에 출판되었고, 우리나라 번역서는 2003년(루터신학대학교출판부)에 나왔다. 상하권으로 되어 있는데, 전체가 대략 1천3백여 쪽이다. 갈라디아서는 전체가 6장에 불과한 짧은 성경인데, 루터의 해설은 무지막지하게 양이 많다. 루터는 원래 말이 많은 사람이다. 부인이 하숙을 운영해서 제자들과 함께 밥을 먹는 시간이 많았는데, 식탁에서도 많은 말을 했다. 제자들이 그걸 받아 적었다가 책을 냈다. 그게 『식탁 담화』다. 이런 책을 완독, 숙독한다면 단순히 갈라디아서만 공부하는 게 아니라 종교개혁신학 전반을 공부하는 것이다. 복음적 설교가 무엇인지도 깨닫게 될 것이다. 신학생들과 젊은 설교자들의 일독을 권한다.
루터가 갈라디아서를 이렇게 길게 해설할 수 있었던 이유는 세상, 인간, 기독교 역사, 성경의 세계 등등을 심층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모든 사안의 핵심은 무엇인가를 볼 수 있는 눈, 무엇인가를 들을 수 있은 귀다. 렘브란트 그림을 잘 모르는 사람은 해설을 할 수가 없다. 자기가 알고 있는 것만큼만 말할 수 있을 뿐이다. 렘브란트 그림만이 아니라 미술의 역사, 철학과 미학, 정치와 고고학 등, 인문학적인 깊이를 알고 있으면서 삶에 대한 열정이 뜨거운 사람은 남이 따라가지 못하는 어떤 것들을 말로 표현하게 된다. 일종의 영적인 내공이 바로 그것이다.
예를 들어 루터는 갈 3:19절 한 구절을 25쪽 정도의 분량으로 해설했다. 내용의 깊이도 깊이지만 글쓰기의 능력도 출중하다. 따라서 읽다보면 막힘없이 앞으로 끌고 나가는 힘을 느끼게 된다. 논리적인 글쓰기가 아니라면 그런 힘이 나올 수 없다. 우리가 갈 3:19절 대목만 함께 읽어도 재미있을 것 같다. 앞 대목에서 한 부분만 간단히 인용하겠다.
사람이 율법과 행위 없이 의롭다 함을 얻는다고 우리가 가르칠 때 다음과 같은 질문이 필연적으로 뒤따른다. “만일 율법이 의롭게 하지 못한다면 왜 그것을 주셨는가?” 다시 말하면, “그것이 생명을 주지 못한다면 왜 하나님은 율법으로 우리를 찌르고 짐을 지우시는가? 한 시간밖에 일하지 않은 사람들을 하루종일, 그리고 뜨거운 햇빛 아래서 허덕이며 일을 참아낸 우리와 같게 한다면 왜 우리가 소고하고 애태워야 하는가(마 20:12)?” 복음으로 선포한 은혜가 오자마자, 이 엄청난 불평이 일어난다. ... 중략... 이런 식으로 오늘 교황주의자들이 중얼거린다. “수도원 생활을 20년, 30년, 40년 했는데 우리에게 잘 한 일이 무엇인가? 순결, 가난, 그리고 순종을 서약하는 일, 기도시간에 성경봉독한 것, 미사를 드리는 일, 금식과 기도와 매질로 우리의 몸을 괴롭힌 일들 -만일 남편이나 아내, 군주, 공무원, 선생과 학생들, 상인이나 자루를 지고 다니는 종들, 집안을 쓰는 여종들이 우리들과 동일한 뿐 아니라 더 낫고 더 값지다면 우리에게 해준 것이 무엇인가?” 그러므로 이것은 어려운 질문이다. 이성은 갑자기 멈춘다. 왜냐하면 이성은 율법 외에 아무 것도 모르기 때문이다. ...(449쪽)
오늘의 독자들에게도 설득력이 있는 설교처럼 읽힌다. 루터가 살아서 직접 말하는 느낌이 전달되지 않는가. 앞으로 루터가 어떤 대답을 할지가 기대된다. 답이 간단하지가 않다. 논리적으로 생각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는 기독교 영성의 깊이를 맛볼 수 있겠지만 즉답을 원하는 사람들에게는 혼란만 가중시킬 것이다. 그게 정말 궁금하면 이 책을 직접 읽으시라.
어디에도 없던데..요.(서점쪽에는 없었어요.)
큰 도서관에서 찾아볼수 있을까요?
아님, 정목사님의 묵상글을 쭈욱 기다려야 할까요?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