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의 삶(3)

조회 수 1274 추천 수 0 2017.09.06 20:59:02

지금 신학생들에게는 실망스러운 말이 될지 모르겠지만 짚을 건 짚어야겠다. 한국 기독교의 교세는 이미 정점을 찍은 지 오래 되었다. 지금 상태를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잘하는 것이며, 줄어드는 걸 감수해야 한다.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대한민국은 기독교 중심으로 구성된 유럽과 달리 종교 다원 사회다. 한반도에서 기독교는 오히려 외래 종교로 간주된다. 황석영의 소설 손님을 참조하라. 외래 종교가 20% 정도의 교인 수를 확보했다면 그것만으로도 대단한 성과다. 20세기 말 한국교회는 대한민국을 기독교 국가로 만들고 싶어 했다. 더 나가서 세계 전체를 기독교 복음으로 정복하려고 했다. 그런 소박한 생각이야 가상하지만 현실적이지도 않고, 더 엄밀하게 말하면 하나님의 뜻도 아니다. 하나님은 교회만을 통해서 일하시는 게 아니지 않은가. 하나님은 기독교 교회 제도나 교리와 그들의 생각을 초월하여 존재하는 분이 아닌가. 교회 확장이 곧 하나님 나라 확장과 일치되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선교는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선교다. 선교는 하나님이 주도적으로 행하신다. ‘미쇼 데이’(Missio Dei, 하나님의 선교) 개념은 이미 1960년대 WCC에서 제시되었지만 한국교회는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전혀 눈치 채지 못하고 있다. 대한민국 사회에 자리한 종교 다원 현상을 부정하는 일에 영적인 에너지를 소비할 필요가 없다.

둘째, 더 근본적으로 오늘의 세상은 이미 종교 이후 시대가 되었다. 우리는 지금 포스트모던 시대만이 아니라 포스트 릴리전(post religion) 시대를 살고 있다. 이런 흐름은 이미 본회퍼가 옥중 서간에서 표명한 것이다. 그는 성숙한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비()종교화될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고독, 노쇠, 죽음 등등에 대한 불안에 호소하지 말고 삶의 중심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의 진단과 달리 21세기에도 여전히 종교 현상이 상당한 정도로 일어나기도 한다. 아프리카, 남아메리카에서 열광적 형태를 보이는 기독교가 크게 부흥하고 있다. 종교 형태를 띠지는 않지만 그 내면에서는 종교 현상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정치적, 경제적 메시아니즘도 21세기에 여전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 21세기 사람들은 종교 이후를 산다. 형식적으로는 종교생활을 한다고 하더라도 내용적으로는 세상 원리에 충실하게 살아간다. 멀리 않은 미래에 우리의 삶에서 인공지능이 하나님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뇌 과학도 기독교로서는 쉽지 않은 상대다. 만약 인간의 종교 현상이 뇌의 기계적 작용에 의한 것이라는 사실을 증명된다면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하나님 신앙은 더 이상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미칠 수 없을 것이다. 내 생각에 인공지능과 뇌 과학이 아무리 발전한다고 해도 하나님을 넘어설 수 없다. 나의 생각과 관계없이 문제는 대다수 현대 기독교 지성인들은 이미 이런 현대 과학에 흡수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교회에 나올 매력을 시나브로 잃게 될 것이다. 젊은 지성인들이 이미 교회를 외면하고 있다. 역사가 오래 된 교회의 구성원들은 나이 든 이들이다. 앞으로 한 세대가 흐르면 교회는 비게 될 것이다. 젊은이들의 취향에 맞춘 일부 교회에 젊은이들이 많이 모이긴 하지만 그걸 좋은 현상으로 보기 어렵다. 복음이 일종의 여흥으로 떨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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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29]최용우

2017.09.07 07:31:57

참으로 본질을 꿰뚫은 옥고입니다.

제가 전에 책 제목 두글자 쓰는것이 유행일 때

교회가 사람들에게 어떤 매력을 주어야 하는지에 대해

'매력'이라는 제목으로 책 한권 쓰려고 했었는데

정확하게 그 맥락하고 닿는군요.

신학생들에게 큰 도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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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2017.09.07 22:15:41

옥고라고 하기는 좀 그렇고

허심탄회한 글이겠지요.

큰 교회 목사들은 배가 부르니 교회의 미래를 생각하지 않고

작은 교회 목사들은 배가 고프니 교회의 미래를 생각할 여력이 없습니다.

이런 거만 보면 답답하긴 한데

하나님이 다른 방식으로 길을 열어줄 거라고 믿기에

주어진 조건 아래서 최선을 다 할 뿐입니다.

가는 데까지 가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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