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의 삶(4)

조회 수 1461 추천 수 0 2017.09.07 22:12:11

한국교회에서 목회자의 수요와 공급은 이미 오래 전에 불균형을 이루었다. 한 마디로 목사가 너무 많다. 공급 과잉 현상이 더 강화되고 있다. 교단이 목사를 경쟁하듯이 배출한 결과다. 이런 상태에서는 마치 의자놀이처럼 목회 현장에서 점점 많은 누군가는 도태된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일도 벌어진다. 좁은 웅덩이에 너무 많은 물고기가 모여 있으면 모두 질식사 하지 않겠는가. 대형교회 목사들은 사닥다리 걷어차기 놀이를 하고 있다. 자리를 잡지 못한 목사들은 소명감을 잃게 될 것이고, 목사의 품위도 실종되며 생존을 위한 이전투구를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이게 눈에 뻔히 보이는데도 이를 바꿔야겠다는 노력이 별로 많이 보이지 않는다. 그릇 속의 미지근한 물에 들어있던 개구리가 물이 천천히 끓는데도 뛰쳐나오지 못하다가 결국 죽는 경우와 비슷하다. 로마가톨릭교회는 수요와 공급을 적절하게 제어하고 있다. 본받아야 한다. 내가 보기에 교단은 자신들이 목사 안수를 준 이들에게 일자리를 책임지고 제공해야 한다. 일자리가 없다면 목사 안수를 주지 말던지. 현재와 같은 상황만 본다면 교단은 목사 안수로 장사를 하는 거라는 오해를 받을 수밖에 없다. 목회자 수급의 임계점이 넘어섰으니 교회 성장에 대한 막연한 기대나 허상은 내려놓고 공급을 혁신적으로 줄여나가는 수밖에 없다. 목사 안수 정원도 줄이고 신학생 정원도 파격적으로 줄여야 한다. 소수의 정예 요원을 키운다는 생각으로 고품질의 목사를 배출하는 게 한국교회의 미래를 내다볼 때 옳다. 반론도 가능하다. 통일 이후 북한 선교를 대비하자거나 목사 배출이 결국 교단 성장의 견인차라거나, 심지어는 목사 안수를 받아서 열심히 목회를 하면 하나님이 다 먹여 살린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런 주장에 대해서 왈가왈부하지 않겠다. 그런 주장들이 실제로 신앙적인 것인지, 그리고 현실적인 것인지를 진지하게 생각했으면 한다.

이왕 말이 나온 김에 교회의 본질이 한국교회에서 어떻게 왜곡되고 있는지를 짚어야겠다. 이것은 목사 수급과도 직접 연결된다. 니케아-콘스탄티노플 공의회 이후로 교회는 교회의 본질을 네 가지로 생각했다. 보편성, 단일성, 거룩성, 사도성이 그것이다. 여기서 보편성은 요즘 자주 거론되는 교회의 공공성과 비슷한 개념이다. 한국교회는 이와 정반대의 길을 걸어왔고, 그런 현상이 가속화된다. 공적 차원은 축소되고 사적 차원이 강화되었다. 교회가 프랜차이즈 자영업처럼 운용된다. 개교회주의가 이를 웅변적으로 보여준다. 개별 교회의 빈익빈부익부, 목사 사례비의 빈익빈부익부 현상이 우리나라 교회보다 더 심한 나라는 전 세계 어디를 봐도 없다. 같은 노회와 같은 교단에 속한 목사이면서 어떤 이는 일억 원 이상의 연봉을 받고 어떤 이는 2,3천만 원의 연봉을 받는 일이 한국교회에서 일어난다. 그 이하의 연봉을 받는 교역자들도 수두룩하다. 이런 교역자들이 실제로 영적인 동질감을 느낄 수 있겠는가. 로마가톨릭교회의 사제들은 모두가 동일 연봉을 받는다. 바울은 고전 12:12-31절에서 몸-지체 교회론을 언급했다. 교회 신자들은 모두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한 몸이라는 것이다. 이런 교회론은 교역자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모든 목사들은 하나의 몸이다. 이게 분명하다면 연봉의 차이는 빨리 줄여나가야 한다. 이런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이유는 자신들이 목회를 하면서도 교회의 본질이 무엇인지 모른다는 의미다. 교회의 본질만 모르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도 모르고, 세례의 능력도 모르고, 하나님 나라도 모른다. 모르는 목사들이 더 큰 목소리를 내는 게 한국교회 현실이다.

이런 대목에서 신학대학 교수들의 침묵은 직무 유기다. 신학생 정원을 줄여야 한다는 목소리를 신학대학교 교수들에게서 들어보지 못했다. 신학생들의 등록금으로 자신들의 높은 연봉이 보장되기 때문이라는 말을 들어도 변명의 여지가 없다. 나는 신학대학교 교수들의 연봉이 일반 교회 목회자 평균 연봉과 비슷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연봉에 연연해하면서 신학적으로 소신 있는 발언을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어떤 이는 아무리 소신 있는 발언을 하고 싶어도 교수로서의 신분 보장이 불안정하기 때문에 어쩔 없다고 말할 것이다. 총회나 노회에서 신학대학 교수들을 종교 재판하는 방식으로 감시하는 일이 허다하니 그런 사정이 이해가 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이 신학자로 특별한 소명을 받았다는 사실을 전제한다면 그런 말은 변명이다. 루터는 생사여탈권을 행사하던 교황과의 투쟁을 불사했다. 그야말로 목숨을 건 싸움이었다. 루터야말로 좌고우면하지 않고 제자의 삶을 명실상부하게 살았던 인물이다. 이런 사실을 학문적으로 잘 알고 있는 신학대학 교수들이 발언하지 않으면 누가 발언하겠는가. 신학대학 교수들은 루터의 종교개혁을 현학적인 말로 기념만 하지 말고 오늘 한국교회의 실질적인 문제에 실존적인 차원에서 정면으로 맞서야 한다. 그것이 바로 십자가에 달린 예수를 따르는 제자의 삶이다. 그래야만 그들에게서 신학을 배우는 신학생들도 진리를 삶의 중심 문제로 붙잡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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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25]산꾼

2017.09.08 06:07:35

이번  장신대   특강에  임하시는  목사님의 결기가  느껴집니다

이번 특강을 계기로 우리나라  신학계에  목사님의 절규가 반향이 있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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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2017.09.08 20:24:09

ㅎㅎ 결기가 느껴지신다고요.

편안한 마음으로 그냥 벌거벗은 임금을 보고

'벌거벗었네.' 하고 말하는 것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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