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의 삶(8)

조회 수 1585 추천 수 0 2017.09.13 22:29:40

하나님과의 관계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주어진다. 예수 그리스도와의 일치가 곧 하나님과의 일치다. 구원에 천착하는 목사라고 한다면 자신의 운명을 예수와의 일치에 걸어야 한다. 문제는 목사들이 예수와의 일치를 상투적인 것으로 여긴다는 데에 있다. 자신은 당연히 하나님의 은총에 의존하고 있으며, 예수를 믿는다고 생각한다. 착각이다. 실제로는 하나님의 은총을 의존하지도 않고 믿음으로 의로워진다는 경험도 없으면서 목사라는 권위에 숨어서 지낸다. 맹인이 맹인을 인도하는 경우가 오늘의 목사에게 그대로 해당된다. 이를 극복하는 유일한 길은 목사라는 외피에 숨지 말고 예수와의 존재론적 일치에 자신을 완전히 몰아가는 것이다. 자신의 목회 성과와 욕망을 다 내려놓고 예수와의 일치에서 기쁨과 자유를 느끼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다. 이런 말을 설교 조로 듣지 않았으면 한다.

예수와의 존재론적 일치를 바울은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2:20)이라고 표현했다. 사도신경에 따르면 예수 그리스도는 승천하여 하나님 오른 편에 앉아 계시기에 우리가 그와 몸으로 하나가 될 수는 없다. 이것은 영적인 문제다. 기독교 전통은 세례와 성찬을 통해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라는 사실을 나타내려고 했다. 예수 그리스도와의 일치는 예수 운명과의 일치다. 그는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라.’는 선포로 인해서 결국 십자가에 처형당했으며,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삼일 만에 부활했다. 그의 운명은 하나님 나라다. 하나님 나라는 생명의 나라다. 즉 하나님이 통치하는 구원의 나라다. 우리는 예수의 운명과 하나 됨으로써 생명을 얻는다고 믿는다고 믿는다. 목사의 구원도 이와 다르지 않다. 이 사실을 실질적으로 이해하고 경험한 사람은 이미 여기서 구원받은 것이다.

여기서 다시 다음과 같은 질문이 가능하다. 도대체 눈에 보이지도 않는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게 실제로 무엇을 가리키는가? 하나님 나라는 생명의 나라라고 앞에서 말했다. 생명을 파괴하는 것은 죄와 죽음이다. 따라서 하나님 나라가 지금 여기에 왔다는 말은 죄와 죽음으로부터 해방되었다는 뜻이다. 죄와 죽음으로부터 해방되었다는 사실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것이야말로 구원의 핵심이다. 여기서 죄는 자기 스스로 자기의 삶을 완성하려는 강요와 욕망이며, 죽음은 자기 소멸에 대한 두려움이다. 목회의 차원에서 이를 바꿔 말하면 다음과 같다. 죄는 자신의 노력으로 목회의 성과를 내려는 강요와 욕망에 사로잡히는 것이며, 죽음은 목회에 성과를 내지 못해서 무능력자로 낙인찍히는 두려움이다. 목사의 구원은 이런 죄와 죽음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이다. 그 해방 경험은 예수와 그의 선포인 하나님 나라 외의 것으로 자신의 삶을 채우려는 생각이 없을 때 주어진다. 목회 성공이 실제로 하찮아 보이는 것이다. 연금술사를 쓴 파울로 코엘료의 모래 한 알이 우주다.’라는 경구를 실질적으로 이해하게 된다. 이게 솔라 피데가 가리키는 세계이기도 하다. 이런 믿음에서 제자의 삶은 구체적으로 자리를 잡게 된다. 루터는 자기를 재판하는 보름스 제국의회 앞에서 마지막으로 이런 고백을 했다.

 

만약 제가 명석한 이성적 판단에 의해 확신할 수 없다면 (저는 교황이나 공의회를 믿지 않습니다. 주지하다시피 그들도 역시 실수하거나 자가당착에 빠질 때가 많기 때문이다.) 저는 저 자신이 인용한 성경 말씀에 구속될 수밖에 없습니다. 저의 양심은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있기 때문에 그 어떠한 것도 철회하지 않을 것이며, 또 그럴 수도 없습니다. 양심에 거스르는 짓을 한다는 것은 그릇된 일일 뿐만 아니라 저 자신에게 해가 된다는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여, 도와주소서. 아멘.

 

오늘 목사들은 솔라 피데가 아니라 오히려 경쟁적으로 그런 죄와 죽음의 불길로 뛰어든다. 교회가 구조적으로 그걸 목사에게 강요한다. 목사는 거기서 소비된다. 어느 한 순간도 참된 평화를 누리지 못한다. 목사가 목회 성과로 평가받는다. 그것에 따라서 성과급이 지급되기도 한다. 오늘과 같은 교회 구조에서 구원받은 목사들이 있을까?

예수님은 마 16:26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 목회에 성공하고도 생명을 잃을 수 있다는 준엄한 경고다. 개인에 따라서 차이가 있겠지만 목회에 성공한 목사들일수록 구원을 받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난폭한, 그리고 워커홀릭’(workaholic) 수준의 목회 메커니즘에 휘둘리면서 자기의 구원을 성찰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평생의 목회가 끝난 뒤에 크게 후회할 것이다. 후회하지 않는 목사가 되려면 신학생 시절부터 구도적으로 구원에 집중해야 한다. 하나님의 구원 통치와 그 비밀이 갑자기 눈에 들어오는 게 아니다. 하나님의 은총도 그냥 주어지는 게 아니다. 은총은 물론 값없이 주어지지만 그걸 은총으로 깨닫는 것은 그냥 주어지지 않는다.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25:29)거나 있는 자는 받을 것이요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도 빼앗기리라.’(4:25)는 말씀이 빈말이 아니다. 신학생들에게 가장 중요한 준비는 두말할 필요 없이 바른 신학공부다. 신학공부에 내용을 채우기 위한 인문학 공부도 필수다. 이런 길을 흔들림 없이, 흔들리더라고 다시 중심을 잡고 걷는 사람은 제자의 삶이 무엇인지를 시나브로, 때로는 졸지에 깨닫게 될 것이고, 거기서 기쁨과 자유를 느끼게 될 것이다. (끝)


[레벨:4]수호천사

2017.09.15 11:14:42

지난 주일예배 때 처음 참석했던 사람입니다.

그날은 바쁜 일이 있어서 식사는 못하고 예배만 드리고 갔습니다.  

오늘 처음으로 댓글을 남깁니다. 

지금 저는 목사님께서 쓰신 '판넨베르크 사도신경 해설 강론'을 다섯 번째 읽고 있는 중입니다. 

처음에는 두세 번 읽으면 충분할 줄 알았는데 읽을수록 더 모르는 게 많아지고 깊은 맛이 조금씩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열 번 정도 읽어볼 작정입니다. 

벌써 한 달 이상 이 책만 붙들고 씨름하고 있습니다. 

'제자의 삶'이라는 짧은 글 여덟 편을 통해 구원에 대해 새롭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시간이 되는 대로 곧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목사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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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2017.09.15 16:50:25

수호천사 님, 반갑습니다.

<사도신경해설 강독>을 열번 읽을 계획이라니,

음, 놀라우면서도 기쁩니다.

강독할 때의 저의 즐거움이 전달된 것 같아서요.

속히 다시 뵙기를 기대하겠습니다.

[레벨:17]시골뜨기

2017.09.15 11:29:36

식사도 안 하시고 그냥 가버리셨다기에 조금 아쉬웠는데

이렇게 댓글로 만나게 되니 반갑습니다.

다시 만나뵐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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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20]문전옥답

2017.09.15 18:45:20

이익의 극대화를 최고 가치로 삼고 있는 이 세상에서

교회가 더 이상 거기에 동조하지 말고 

생명에 대한 존엄을 지키기 위해

분투하는 교회와 그 속에 속한 기독교인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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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2017.09.15 21:19:17

교회만이라도 생명의 다른 차원을 놓치지 말아야 하는데,

세상과 별로 다를 게 없어 보이니 안타깝습니다.

눈이 밝은 사람들만이라도 서로 믿음의 동지로 느끼면서

하나님 나라와 그의 의를 향해서 순례의 길을 가야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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