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벤트

조회 수 1156 추천 수 0 2017.09.14 21:25:35

914,

이벤트

 

삶이 지루하다고 느낄 때 사람들은 이벤트를 만든다. 종류도 여러 가지다. 여행, 스포츠, 영화와 연극, 외식 등등이다. 돈 버는 일에 매진하는 사람들은 특별히 다른 이벤트를 만들 필요가 없을 것이다. 돈이 그에게는 최상의 이벤트이기 때문이다. 실험실에 틀어박힌 연구자들도 마찬가지다. 수도원에서 살아가는 사람들도 특별한 이벤트가 필요 없다. 그런 이들 외에 평범한 모든 사람들에게는 이벤트가 필요하다. 그걸 만들 여력이 없는 경우에는 티브이에 매달려서 대신 만족한다. 소위 먹방 프로그램은 이런 대용 이벤트로 안성맞춤이다.

생각만 조금 바꾸면 삶의 매 순간을 이벤트로 경험할 수 있다. 두 발로 서서 걷는 것보다 더 재미있는 이벤트는 없다. 소박한 밥상을 대하는 것도 대단한 이벤트다. 커피 한잔은 또 어떤가. 가을하늘의 구름은 너무 황홀하여 돈 지불하지 않는 게 미안할 뿐이다. 설거지도 절묘하다. 낙엽 하나 뚝 떨어지는 순간, 석류의 붉은 색깔이 눈에 확 들어오는 순간은 다 이벤트다. 이 세상에는 이벤트 아닌 게 하나도 없다.

오늘도 나는 일주일에 두 번 나가는 테니스장에 들렀다. 운동을 마치고 차를 끌고 집으로 오는 중이었다. 신호등 앞에서 신호가 오기를 기다렸다. 앞차의 미등을 보고 있었다. FM 라디오에서는 클래식 음악이 흘렀다. 바로 그 순간이 나에게는 대단한 이벤트였다. 그 순간이 신비롭게 경험되었기에 다른 것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이런 이야기는 내가 너무 자주 해서 어떤 이들에게는 식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나 자신에게는 절실하다. 지금 컴퓨터 앞에서 자판을 두드리는 이 순간도 마찬가지다. 전기가 들어오고, 책상 위에 책이 어지럽게 널려 있고, 내가 마실 캔 맥주도 놓여 있다. 그 외에 수십, 수백 개의 사물이 내 방을 채우고 있다. 각각이 다 이벤트이고, 합해서 또 이벤트를 만든다. 그 모든 것들과 함께 내가 속해 있는 이 순간은 또 쏜살같이 어딘가로 가버린다. 오늘 하루도 이렇게 저물어간다.


[레벨:15]은성맘

2017.09.15 05:24:10

 샘터교회 사이트에서 목사님의 매일묵상을  이렇게 매일읽는것이 이벤트인 분들이

비단 저뿐만은 아니겠지요? 삶의 찰나가 주는 감사와 즐거움을 놓치고 살지 말아야

겠다는 생각이 다시 드네요^^

[레벨:6]시유

2017.09.15 07:49:52

이 좋은 아침에 두발로 걷는게 이벤트라는 목사님 말씀이 가슴을 찡하게 하는군요. 오늘도 모든 순간들이 이벤트로 즐감할수 있길 바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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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2017.09.15 16:55:19

두 발이 없는 분들에게는 정말 미안한 표현이 '두 발'입니다.

그런 분들에게는다른 기회에 말씀을 드리기로 하고,

일단 푸근이 님이나 나처럼 두 발 가진 사람들은

그 사실 자체로 크게 놀라워할 줄 알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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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2017.09.15 16:53:22

은성맘 님,

영혼의 길을 꾸준히 가려면

도반이 필요합니다.

다비아가 몇몇 분들에게 그런 역할을 하는 거 같아서

저로서도 힘이 납니다.

일부를 통해서 전체와 관계를 맺고 있으며,

한 순간을 통해서 전체 시간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이 존재의 신비를 만끽했으면 합니다.

[레벨:18]은나라

2017.09.15 08:45:13

이 땅에서 딛고 사는 내 존재 자체가 이벤트네요..^^
매순간 순간의 모든것들이 새로운..
존재의 비밀이 이벤트 같군요?
불교와의 다른점.. 조금은 분간할거 같습니다.
매순간 순간을 포착하머 살긴 힘들겠지만,
전에는 느껴보지 못한 존재의 기쁨에 흠뻑 젖는 순간들을 조금씩 느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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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2017.09.15 16:57:48

매순간을 신비로 경험할 수 있으면

이미 시인이 된 거고 예술가가 된 거고

영성가가 된 거랍니다.

은나라 님이 근처로 가고 있어요.

그 순간을 하이데거는 '아우겐블릭'이라고 했지요.

[레벨:7]mist

2017.09.15 08:53:25

매 순간 존재의 기쁨을 누리고자 마음과 정신을 깨우는 그 작업이야 말로 신학공부가 아닌지요?
그 작은 생각의 바꿈이 사사로운 일상을 이벤트로 만들어 주는데... 우리는 왜 그것이 그토록 힘든지... !!!
"당신이 생각하는대로 살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머지 않아 당신은 사는대로 생각할 것입니다."라고 말한 시인 폴 발레리의 글귀에 묵직한 힘이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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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2017.09.15 17:00:23

미스트 님의 표현이 맞습니다.

신학은 신에 대한 논리이자 이성이자 언어인데,

매 순간 하나님과 함께 하는 존재의 기쁨을 모르고

신학공부를 할 수 있겠어요.

이런 과정에서는 김명인 평론집 제목

<자명한 것들과의 결별>이 필요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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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43]웃겨

2017.09.15 19:54:50

그러고보니

단조로운 시골생활이야말로 이벤트로 넘치네요.

오늘만해도 그렇습니다.

알밤을 주운 것도, 쓰레기를 분리해서 버린 것도 

햇살이 좋아 여름이불을 빨아 널은 것도

분홍빛 저녁노을을 바라본 것도

저녁에 가지반찬과 호박된장국을 맛있게 먹은 것도..다 이벤트군요. 

그냥 스쳐버릴 수 있는 것들을 이렇게 깨우쳐 주시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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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2017.09.15 21:16:50

새삼스레 저에게 감사하시다니요.

세상을 저보다 훨씬 더 눈부시게 바라보며 사는 분이요.

어쨌든 숨어 있는 것들의 아름다움을

더불어서 느낄 수 있다는 걸 기쁘게 생각합니다.

정말 좋은 계절이 우리 코 앞에 다가왔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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