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종기의 시(10)- 재의 수요일

조회 수 1565 추천 수 0 2017.08.11 21:41:06

811,

마종기의 시(10)

 

재의 수요일

 

맨 처음 눈을 보았다.

두 눈이 분명했다.

그 눈 속의 작고 빛나는 물,

물속에서 적막을 보았다.

적막을 덮으며 계절이 바뀌었다.

겨울 속의 꿈, 꿈이 날아간 곳에 제비꽃,

속의 호수, 호수 적은 신음,

신음의 재가 얼어 있던 뼈를 녹인 후

그러니까 거의 반년이 지나서야

거처를 겨우 찾을 수 있었다.

땅을 파고 헤집어서야 찾을 수 있었다.

그러나 꽃이 져야 나무가 자란다면서

온몸의 꽃을 지우던 예리한 칼바람,

수요일의 날개는 그렇게 돌아왔다.

 

*제목이 교회력을 달았다. ‘재의 수요일은 사순절이 시작되는 날이다. 이 날의 미사, 또는 예배에서는 신자들의 이마에 재를 바르는 의식이 거행된다. 재는 고난을 상징한다. 더 근본적으로는 죽음이다. 사람은 죽어서 다 재가 된다. 그 사실을 기억함으로써 자신의 한계와 죄를 돌아보게 한다. 시인은 이런 교회력의 의미를 직접적으로가 아니라 간접적으로, 그러니까 문학적으로 표현한다.

이마에 재를 바를 때 자신의 운명을 거기서 느낀다면 눈물이 날 것이다. 그것을 시인은 그 눈 속의 작고 빛나는 물이라고 표현했다. 그 눈물에는 적막이 숨어 있다. 죽음 앞에서 사람은 적막을 피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사람은 그것만을 생각하면서 살기는 힘들기 때문에 가능하면 그걸 외면하려고 한다. 자연스러운 일이다. ‘적막을 덮으며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해서 적막을 완전히 극복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여전히 호수의 젖은 신음을 듣는다. ‘신음의 재가 얼어 있던 뼈를 녹인 후에 그는 살아낼 수 있는 거처를 찾았다. 마종기에게 재의 수요일은 먼저 죽은 동생에 대한 기억인가? 동생을 화장하면서 경험한 것을 가리키나? 그건 자신만 알리라.

마지막 문장은 이렇다. ‘수요일의 날개는 그렇게 돌아왔다.’ 재의 수요일이 그에게 수요일의 날개가 되었다. 날개의 수요일이 아니라 수요일의 날개다. 날개는 비상(飛上)의 도구다. 그는 재의 수요일이라는 교회력 의식에 참가하면서 죽음의 비극을 넘어서 새로운 생명으로의 비상을 꿈꾸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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