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경험과 시원성(5)

조회 수 1193 추천 수 0 2017.08.19 13:38:03

역사와 하나님


시원적인 것의 중심에는 하나님이 자리한다.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했으며, 세상을 완성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경험한 사람은 거룩한 두려움에 사로잡힌다. 이런 현상을 루돌프 오토는 누미노제라고 표현했다. 누미노제는 말 그대로 거룩한 두려움이라는 뜻이다. 모세는 호렙산에서 불이 붙었지만 타지 않는 가시떨기 나무 앞에서 하나님을 경험했다.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모세는 하나님 뵈옵기를 두려워하여 얼굴을 가렸다.’고 한다(3:6). 중풍병자를 예수가 고치자 사람들이 두려워하며 이런 권능을 사람에게 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고 한다(9:7). 두려워했다는 표현들은 성경에 자주 나온다. 하나님 경험이 왜 두려움일까?


하나님 경험이 낯설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이 혼자 한적한 곳에서 산책을 하다가 갑자기 외계인을 만났다고 상상해보자. 사람처럼 생기면 안 된다. 얼굴도 없다. 달걀 모양이다. 주먹 정도로 작아졌다가 순식간에 코끼리 정도로 커지기도 한다. 어느 순간에는 불꽃이 되었다가 다시 바람이 된다. 이런 형체는 우리가 세상에서 경험하지 못한 것이다. 낯섦의 극치다. 여기서 우리는 두려움에 떨어진다. ‘전적 타자라는 칼 바르트의 신학개념은 바로 이것을 가리킨다. 하나님을 전적 타자(Totaliter Aliter)로 여긴다는 말은 하나님을 존재 유비로 해명할 수 없다는 뜻이다. 그런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놀라워하고 두려워할 수밖에 없다. 외계인과 같은 형체를 상상하기는 어렵기는 하지만 이미 성경 기자는 그런 걸 암시하고 있다. 요한계시록 기자의 예수 경험이 계 1:13-16절에 이렇게 나온다.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그의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눈 같으며 그의 눈은 불꽃같고 그의 발은 풀무불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 그의 음성은 많은 물 소리와 같으며 그의 오른손에 일곱 별이 있고 그의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그 얼굴은 해가 힘 있게 비치는 것 같더라.


이런 경험을 한 이는 그의 발 앞에 엎드려 죽은 자 같이되었다(17). 요한계시록의 표현을 사실적인 것으로 볼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이 우리 삶의 경험과 전적으로 다르다는 사실을 극단적인 상징으로 묘사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하나님 경험은 익숙한 것과의 결별이라고 말할 수 있다. 안도현은 시인이 되려는 사람은 익숙하고 편한 것들과는 결별하라.’고 충고한다(가슴으로도 쓰고 손끝으로도 써라40쪽 이하). 시인들도 그럴진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야 오죽하겠는가. 낯섦에 대한 경험을 통해 주어지는 거룩한 두려움이야말로 시원적 사유의 단초다.


성경 기자들은 이런 경험을 역사에서 찾았다. 하나님을 역사 경험으로 본 것이다. 요한계시록은 하나님을 알파와 오메가로 표현한다. 1:8절은 이렇다. “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역사를 초월한다는 뜻이다. 이런 존재는 세상에 없다. 다른 이들의 생사여탈권을 행사하던 고대 왕들도 이 땅에서 잠시 머물다 떠나야 한다. 화려한 유물과 건축도 일시적이다. 하나님만이 알파이며 오메가이기 때문에 전능한 자로 불린다. 이게 옳은지 아닌지를 어떻게 아는가? 하나님이 역사를 주관하는 게 아니라 저절로 그렇게 되는 것이라는 주장도 가능하다. 성서기자들만이 특별한 영적 능력이 있어서 그걸 본 것은 아니다. 그들도 다른 이들과 똑같이 역사를 보았다. 이집트 바로의 마병들이 홍해에 수장되는 것을 보았고, 아시리아가 무너지고 바벨론이 함락되는 것을 보았다. 논리적으로만 본다면 제국들은 절대적인 능력을 가졌기 때문에 무너지지 말아야 한다. 선지자들은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역사를 은폐의 하나님이 통치한다는 사실을 믿을 수 있었다. 역사가 하나님의 통치라고 한다면 역사의 깊이가 곧 시원성이다. 하나님의 창조와 종말 완성이 그것이다. 그 완성은 하나님의 자유에 속한다. 마지막 심판에 대한 예수의 가르침은 바로 이것을 가리킨다. 25:31-46절에 따르면 하나님의 심판은 사람들의 예상을 벗어난다. 오른 편에 분류된 양은 자신들이 칭찬받을 것으로 기대하지 못했고, 왼편에 분류된 염소는 자신들이 심판받을 것으로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복음서 기자들이 역사를 시원적 깊이로 경험했다는 의미이다.


사람들은 사물을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여기는 것처럼 역사도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여긴다. 대다수는 인과율에 머물러 있다. 공부 잘한 사람에게 그만한 대가가 가고, 못한 사람에게는 그에 해당되는 결과가 임한다는 것이다. 하나님까지도 이런 인과율의 관점으로 이해하려고 한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 사람에게 축복이 임하고 불순종한 사람에게 징벌이 임한다는 것이다. 그런 관점이라면 십자가에 달린 예수는 불순종한 사람이다. 예수는 이런 인과율적 역사관을 거부했다. ‘포도원 비유에 따르면 하나님 나라는 경제 원리에 어긋난다. 하루에 10시간 일한 사람과 1시간 일한 사람에게 동일한 일당인 한 데나리온을 지급한 포도원 주인이 바로 하나님 나라와 같다고 했으니 말이다. 역사는 결정론적 인과율이 아니라 종말론적 차원에서 개방된 것으로 봐야 한다. 하나님의 자유로운 통치에 의해서 역사가 진행된다는 뜻이다. 이런 관점에서만 역사는 변혁과 개혁과 혁명의 길을 갈 수 있다. 종말 힘이 이미 현재에 은폐의 방식으로 들어와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느끼기 때문이다.


개별 인생도 역사다. 지금 당장 결정되는 게 아니라 흐름 속에서 결정된다는 뜻이다. 궁극적으로는 죽음에서 결정된다. 출생부터 죽음까지가 인생의 역사다. 이 인생의 역사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아무도 모른다. 누구를 만나서 사랑하게 될지, 누구를 만나서 대립하게 될지, 누구를 만나서 도반의 길을 걸을지, 누구를 만나서 행복하거나 불행하게 될지 모른다. 우리가 계획하고 있는 차원보다 더 깊은 차원이 우리의 삶을 움직이기 때문이다. 지금의 행복한 조건이 나중에도 행복을 보장하는 게 아니며, 지금의 불행한 조건이 나중의 불행을 결정하는 것도 아니다. 우리가 계산해낼 수 없는 수많은 요소들이 연결되어 있다. 여기서 최선은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에게 가까이 가는 것이다. 그 하나님이야말로 시원적인 것 중에서 가장 시원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우리 기독교인들은 예수를 믿음으로써 의롭다는 인정을 받고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고 믿는다. 그 영원한 생명이 바로 시원적 생명이다. 개인의 운명과 인류의 운명은 바로 그 하나님의 생명과의 결합으로 완성될 것이다

 

[참고자료]

 

하이덱거- 왜 존재자는 존재하고 더 이상 무는 없는가/ 화이트헤드- 리얼리티는 과정이다./ 장자의 호접몽/ 플라톤 동굴의 비유/ 색즉시공 공즉시색/ 도가도비상도/ 불립문자/ 줄탁동시/ 백척간두진일보시방세계/ 바둑 복기/ 대나무 바람 소리, 기왓장 떨어지는 소리/ 호모 에렉투스/ 원소/ 블랙홀  

카핑 베토벤귀 먹고 소음만 들리는 베토벤은 교향곡을 듣는다/ 베르디의 레퀴엠’- 클라우디오 아바도/ 미겔란젤리 피아니스트/ 미켈란젤로- 버린 돌에서 피에타 상을 만들어낸다/ 영화 블랙헬렌 켈러의 언어 경험

오인태 시가 내게 왔다’/ 어린왕자셍떽쥐베리/ 소피의 세계노르웨이 작가 요수타인 가아더/ 월든소로우- 각자 다른 고수의 북소리를 들으며.../ 코엘료 연금술사/ 나는 걷는다베르나르 올리비에  

루아흐, 프뉴마/ 태초/ 모세 이야기- 스스로 있는 자, Ich werde sein, der sein werde./ 에릭 프롬, To have or To be/ 판넨베르크- 모든 것을 규정하는 현실성(die alles bestimmende Wirklichkeit)/ 바르트- tataliter alieter/ 누미노제- R. Otto/ 도미니크 수도원 영성- Ora et labo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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