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명에서 죽음까지

조회 수 1540 추천 수 0 2017.06.10 21:1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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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명에서 죽음까지

 

나는 내일 서울샘터교회 예배 인도하러 가는 차에 졸저 목사공부출간 기념 특강을 한다. 제목이 소명에서 죽음까지. 목사가 된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응답으로 이해된다. 복음서에 제자들이 나를 따르라는 예수님의 부르심에 순종한 거와 같다. 소명에 대한 응답도 경우에 따라서 아전인수가 없지 않다. 그런 아전인수도 궁극적으로는 소명에 대한 응답이 아니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어쨌든지 목사의 삶은 소명과의 관계를 어떻게 맺느냐에 따라서 달라진다.

나는 책에서 소명을 한 순간의 경험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죽을 때까지 하나님과의 관계를 팽팽하게 유지하는 삶의 태도라고 말했다. 목사는 강렬한 소명감으로 시작하지만 점차 목회 기술자로 전락한다. 차이가 있다면 인격적이냐 아니냐 하는 거지 근본적으로는 비슷하다. 목회를 기술만으로도 얼마든지 처리할 수 있는 게 한국 교회 상황이기도 하다. 이런 기술만으로는 목사의 영성이 유지되지 못한다. 유지될 수가 없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만 가능한 영성이 목회 기술에 떨어진 사람에게 확보될 수 있는 길은 어디에도 없다. 스스로 영적으로 만족한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사이비 영성이다. 여기서 목회 기술이라는 게 무엇인지는 설명하지 않겠다.

소명은 목사에게만 해당되지 않는다. 기독교인은 모두가 소명으로 살아간다. 특히 루터와 칼빈의 직업 소명론에 근거하면 개신교 신자들은 자신이 무슨 직업에 종사하든지 전업 목사들과 아무런 차이 없이 하나님의 소명에 관계된다. 독일어로 직업이라는 단어는 Beruf. 이 단어의 동사인 berufen은 소환하다, 초빙하다는 뜻이다. 직업은 모두 하나님으로부터의 소명이라는 뜻이다. 너무 교과서적인 이야기를 한 거 같은데, 그래도 이건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무슨 직업을 갖고 살든지 핵심은 결국 하나님과의 관계라는 뜻이니 말이다. 대학교 총장과 청소부나 모두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똑같은 위치다. 총장이 그걸 부정하고 자기 권력이나 명예로 생각한다면 청소부보다 못한 사람이고, 청소부가 자신의 일을 소명으로 여긴다면 총장보다 나은 사람이다. 세속화의 과정을 거치면서 중세기의 소명론까지 세속화되었다. 자신의 삶을 소명으로 느끼며 사는 사람이야말로 행복한 사람이다.

목사는 평생 설교하고, 예수 전하고, 심방하고, 구원 받으라고 청중들에게 말한다. 남의 구원에 매달려 있다. 그걸 소명으로 느낀다면, 그건 좋다. 남의 구원에 매달리다가 정작 자기 구원은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불행한 일이다. 나는 평소에 목사들이 교회 일에 너무 많이 매달리는 걸 불편하게 생각했다. 일중독이라는 말이 있듯이 목회자들도 목회중독에 걸린다. 그런 이들은 구원이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할 겨를이 없다. 생각할 필요조차 느끼지 않는다. 무조건 교회 조직을 활성화하는 것에만 목을 맨다. 그런 목사가 목회하는 교회 신자들 역시 구원의 깊이를 전혀 인식하지 못할 것이다.

우선 목사들이 자기의 구원에 대해서 좀더 진지하게 생각해야 한다. 자기가 죄와 죽음으로부터 해방되었는지, 그 해방이 점점 더 또렷해지고 있는지를 성찰해야 한다. 그건 매 순간 구도적으로 우리가 취해야 할 태도다. 그렇지 않으면 목회를 손 놓고 죽음 앞에 이르렀을 때 허무에 떨어질 것이다. 그런 순간이 오기 전 목회 중에도 이미 영혼이 공허할 것이다. 그 공허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서 목회에 더 열심을 낸다. 악순환이다. 이게 왜 악순환인지도 모른다. 신자들도 똑같다. ‘우리 교회 목사님은 다른 건 몰라도 교회를 정말 뜨겁게 사랑하셔.’ 하는 말로 이런 심각한 상황을 덮는다.

구원 문제는 죽음과 직결된다. 메멘토 모리! 목사가 실제로 하나님을 믿는다면 죽음을 기억하라!’를 목회 영성의 중심으로 삼아야 한다. 죽음이 이미 현재한다는 사실을 눈여겨보면 목회에 지나친 욕심을 낼 수 없다. 죽음을 기억한다는 것은 자기가 살아있는 동안 하는 일의 모든 것이 하잘 것 없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붙든다는 뜻이다. 이건 비관주의도 아니고 방임주의도 아니다. 목회의 책임을 피하려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죽음을 현실(reality)로 받아들일 때만 마음을 비우고 현실에 충실할 수 있다.

구원과 죽음의 문제는 목사만이 아니라 일반 신자 모두에게 동일하게 적용된다. 목사의 한 평생이 소명으로부터 죽음에 이르는 과정이라고 한다면 일반 신자들의 한 평생도 똑같다. 소명은 근본적으로 어머니 자궁에서 생명이 이루어지는 순간으로부터 시작된다. 삶의 과정에서 부단히 소명을 경험한다. 죽음마저도 소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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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29]최용우

2017.06.17 09:39:08

매일 올려주신 목사공부를 날마다 한숟가락씩 기대하면서 읽었었는데

또 한꺼번에 쭉 읽으니 포식을 한 것처럼 넉넉하고 좋습니다.

많은 목사님들에게 강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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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2017.06.17 21:14:10

졸저를 좋게 평가해주시니

뭐라 감사의 말씀을 드려야할지요.

삶 자체를 소명으로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분들에게

조금이라도 위로가 되는 책이 되었으면 합니다.

귀한 주일을 맞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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