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어록(392) 18:36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다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겨지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빌라도와 예수의 대화가 이어진다. 빌라도가 묻고 예수가 답하는 방식이다. 빌라도의 질문은 핵심적으로 당신은 무슨 이유로 고발당했는지 아는가?”이다. 로마법의 핵심 이념인 팍스 로마나”(로마의 평화)를 위태롭게 한 적이 있느냐는 질문이다. 그게 아니라 유대 종교에 관한 문제라면 빌라도가 간섭할 필요는 없다. 유대교 산헤드린은 예수를 로마법에 엮어 넣으려고 유대인의 왕이라는 고발장을 낸 것이다. 이게 사실인지를 빌라도는 예수에게 물었다.

예수는 유대인의 왕이라는 사실을 직접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자기의 나라는 로마 황제가 다스리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았다고 대답한다. 36절에서 두 번이나 반복한다. 이 경구는 교회와 국가의 관계에 대한 담론에서 늘 논란거리였다. 예수가 말하는 하나님 나라는 세상의 나라와 완전히 관계가 없다는 것인지, 부분적으로는 관계가 있으나 전체적으로는 관계가 없다는 것인지, 부분적으로는 관계가 없으나 전체적으로는 뗄 수 없다는 것인지, 지난 2천 년 동안 논란이 그치지 않았다. 오늘날도 여전하다. 이를 한마디로 정리하면 정교일치인가, 정교분리인가, 하는 것이다.

일단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았다.”라는 예수의 주장에 따르면 정교분리와 원칙으로 보인다. 교황이 세속 정치에 개입하던 중세기 유럽 상황이 정상은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가까이 왔다고 예수가 선포한 하나님 나라가 세상의 정치와 상관없다고 말할 수도 없다. 하나님 나라는 허공이 아니라 실질적인 우리의 삶에서 능력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가장 단순한 방식으로 말해서, 우리가 세상의 소금이자 누룩으로 살아야 한다면 당연히 정치 문제를 건너뛸 수는 없다. 히틀러를 제거하는 단체에서 활동하다가 순교 당한 본회퍼 목사에게서 하나의 대답을 들을 수 있다. 술 취한 사람이 버스를 운전하는 걸 보았다면 큰 사고로 인해 죽게 될 사람들의 장례만 준비하는 게 아니라 힘을 합해서 운전자를 강제로 끌어내려야 한다고 그는 주장했다. 모든 정치에 이런 주장을 그대로 대입시킬 수는 없으나 예수의 나라를 세상의 정치와 완전히 분리하는 게 능사가 아니라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당신 나라가 세상에 속하지 않았다는 예수의 말은 정교일치나 정교분리의 차원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근원적인 속성을 가리킨다. 하나님 나라의 왕인 예수는 로마 황제와 다투지 않는다. 로마 황제를 제거하고 예수가 그 자리에 앉지 않는다. 정치와 경제를 발전시킨다고 해서 하나님 나라가 실현되는 게 아니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만이 세울 수 있는 나라이다. 예수가 세상에 오셨다는 사실이 이미 하나님 나라의 시작이다. 그의 죽음과 부활은 그 나라의 완성이다. 하나님 나라는 황제와 주도권을 놓고 다투지 않고 다른 방식으로 황제를 압도한다. 그런 나라가 오늘 우리에게 참된 현실로 경험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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