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28일- 영성과 소유 (2)

조회 수 4049 추천 수 30 2006.05.28 23:19:32
2006년 5월28일 영성과 소유 (2)

곧 부르시니 그 아버지 세베대를 품꾼들과 함께 배에 버려두고 예수를 따라 가니라. (막 1:20)

아시시의 성 프란시스는 그 당시 지중해를 중심으로 국제무역을 하던 거상의 아들이었다고 합니다. 외아들인지, 큰 아들인지, 또는 여러 아들 중의 하나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가 후계자였다는 소문이 많습니다. 요즘으로 말하면 재벌 2세였던 셈이지요. 프란시스는 그 모든 것을 포기하고 출가합니다. 그리고 탁발수도회를 창설합니다. 최소한의 생존 조건도 준비하지 않은 채 오직 구걸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삶을 선택한 셈입니다. 그런데 그의 아버지가 일군 기업은 세월이 흐르자 이름조차 남아있지 않지만 프란시스 수도회는 천년 동안 그리스도교뿐만 아니라 유럽 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으며, 그의 이름은 그리스도교 영성의 대명사처럼 일컬어지고 있습니다.
오늘도 자발적 가난을 선택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중에는 이름이 난 분들도 있고, 없는 분들도 있습니다. 아마 무명의 자발적 탁발 수도승들이 훨씬 많겠지요. 떼제 공동체도 그런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종파를 초월해서 모여든 젊은이들의 영성 훈련장인 떼제 수도회의 창설자 로제 수사가 작년(?)에 어떤 열광주의자에 의해서 피습을 받아 죽었습니다. 철저하게 비폭력 평화를 설파하던 위인들이 이렇듯 어처구니없이 죽는다는 건 무슨 영문인지요. 예수님도 그렇지만, 간디와 마틴 루터 킹 목사도 그렇게 당했습니다. 이 세상은 우리가 기대하는 그런 방식으로는 결코 평화가 정착되기 힘든 것 같습니다.
깊은 영성을 추구하던 분들은 대개 소유를 포기했습니다. 그들이 왜 그랬을까요? 이런 질문은 우문입니다. 우리가 뻔히 알고 있는 것에 대한 질문은 어리석은 일이지요. 그래도 이렇게 질문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우리가 알고 있는 길을 왜 가지 않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가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리스도교의 이름으로 소유를 부추기고 있는 실정입니다. 오늘 한국교회가 최대의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청부론과 고지론은 소유지향적 삶의 종교적 합리화입니다.
그리스도인도 어쩔 수 없이 세속사회 안에서 살아가야 할 운명이라면 출세하고, 부자로 사는 게 좋지 않으냐, 하는 생각이 여기에 깔려 있는 것 같습니다. 신앙 양심에 부끄러울 것 없이 마음껏 돈을 벌고, 하나님의 원하시는 것만큼 헌금을 드리고, 세상에서 오피니언 리더로 살아가는 게 자기 자신만이 아니라 선교를 위해서도 바람직한 게 아니냐 하는 논리이겠지요. 이런 문제에 대해서 정색하고 따질 필요는 없겠군요. 생각의 틀이 다를 때는 무슨 대화를 나누어도 접점을 발견하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대신 우리는 영성의 존재론적 깊이에 대해서 조금 더 생각을 나누는 것으로 만족하는 게 지혜로울 것 같습니다.
영성은 생명의 영과 관계가 있습니다. 그 영을 히브리어로는 ‘루아흐’라고 하는데, 바람이라는 의미도 담고 있습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소유와 바람의 관계가 어떨까요? 소유가 많은 사람만 많은 바람을 경험할 수 있다는 건 말이 되지 않습니다. 바람은 그쪽으로 마음과 몸을 돌리는 모든 사람에게 존재합니다. 거꾸로 소유에 모든 마음을 빼앗긴 사람은 바람을 존재론적으로 경험하기가 쉽지 않을 겁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프로스트의 ‘잃어버린 길’이라는 시가 이걸 가리키는지 모르겠지만, 같은 시간에 두 가지의 궁극적인 것을 경험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바람을 생명으로 바꾸어 생각해보시오. 똑같습니다. 영성의 토대인 하나님의 생명 사건은, 즉 그런 생명의 영은 온 천지에 가득합니다. 그것과의 일치가 바로 그리스도교의 영성입니다. 물론 여기서 이런 생명이 예수 그리스도 사건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아는 게 중요하겠지요. 이런 영성의 깊이에서 소유는 무의미하거나, 또는 방해거리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주님, 바람 한 점, 무명초 한그루에서도도 충만한 생명의 영을 인식하며 살게 해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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